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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North Africa) - 튀니지(Tunisia) 4

林 山 2020. 5. 29. 16:45

11-21. 캡 본 반도(Cap Bon Peninsula)

 

캡 본 반도(Cap Bon Peninsula)는 튀니스 만(Gulf of Tunis)과 함마멧 만(Gulf of Hammamet) 사이에서 북동쪽 지중해 시칠리아 섬을 향해 뻗어나간 반도이다. 지질학자들은 3만 년 전 이 일대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전 한때 시칠리아까지 이어져 유럽 대륙과의 다리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캡 본 반도(Cap Bon Peninsula)  엘하우아리아( el- Haouaria) 의  로마 동굴( Roman Caves)

함마멧 만의 해변 도시 케르쿠안 카르타고 도시(Kerkuane Punic Town)와 함마멧 메디나(Hammamet Medina), 나불 메디나(Nabeul Medina)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케르쿠안은 캡 본 반도의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케르쿠안 고고학박물관(Kerkouane Archaeological Museum)에는 '케르쿠안의 공주'로 알려진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가 조각된 목관이 소장되어 있다. 함마멧과 나불은 함마멧 만의 북쪽 끝에 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다. 

 

엘하우아리아(el-Haouaria)는 캡 본 반도 끝에 있다. 엘하우아리아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해안에는 로마 동굴(Roman Caves)이 있다. 카르타고를 세우기 위해 사용된 석재들의 대부분은 엘하우아리아의 로마 동굴에서 나온 것이다. 채석공들은 절벽 표면보다 바닥에 있는 석재의 질이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절벽으로 곧바로 굴을 파고 들어가 채석했다. 

 

11-22. 케르쿠안 카르타고 도시(Kerkuane Punic Town)

 

케르쿠안의 카르타고 도시(Kerkuane Punic Town)는 튀니지 북동쪽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을 향해 튀어나온 샤리크 반도(Sharīk Peninsula, Ras at-Taib)-캡 본 반도(Cap Bon Peninsula)-끝에 있다. 카르타고, 티레(Tyre), 비블로스(Byblos)와 달리 이 페니키아 도시에는 로마의 도시가 새로이 건설되지 않았다. 케르쿠안의 카르타고 옛 도시에는 BC 3세기 당시의 항구, 누벽, 거주 구역, 상점, 작업장, 거리, 광장, 신전, 공동묘지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케르쿠안 카르타고 도시( Kerkuane Punic Town)

BC 1000년 경부터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한 제국을 세운 레바논 해안의 페니키아인들은 카르타고를 비롯한 식민지를 건설했다. 알파벳은 페니키아인들의 발명품이다. 케르쿠안은 BC 574년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II, BC 630~562)-느부갓네살-가 공격해 왔을 때 티레를 떠나 도망쳐 온 페니키아 피난민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에 의해 약탈당한 이후인 BC 256년 페니키아인들은 케르쿠안 정착촌을 버리고 떠났다. 

 

케르쿠안의 카르타고 도시 유적은 1952년에 발견되었다. 케르쿠안 성벽 밖에서는 네 곳의 묘지가 발견되었다. 공공목욕탕도 있었으며, 도시 중심부에는 카르타고의 신인 바알 신과 타닛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다. 도시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바위 언덕에 있는 아르그 엘 가주아니(Arg el Ghazouani) 공동묘지는 카르타고의 장례 건축에 대한 귀중한 유적이다. 

 

11-23. 수스 메디나(Medina of Sousse)

 

수스의 메디나(Medina of Sousse)는 아바스 제국의 아글라브 왕조(Aghlabid, 800~909) 통치기에 가장 중요한 상업적, 군사적 항구도시였다. 수스는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약 140km 거리에 있다. 수스는 아랍어로 수사(Sûsa)라고 부른다. 수스는 고대에 튀니지 동부 해안 함마마트 만의 주요 항구도시였다. 수스의 메디나는 고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이자 곡물, 올리브, 직물이 거래되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수스 메디나의  대모스크( Great Mosque of Sousse)

수스의 역사는 BC 11세기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하드루메툼(Hadrumetum)에서 시작한다. 포에니 전쟁 당시 하드루메툼은 로마의 동맹군으로 전쟁에 참여했으며, 그 뒤로 약 700년 간 로마 치하에서 평화를 누렸다. 로마 멸망 후 비잔틴 제국 통치기에 수스는 유스티아노폴리스(Justinianopolis)라고 개명됐다. AD 7세기 아랍인들이 점령한 뒤부터 유스티아노폴리스는 수사(Sûsa)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아랍 제국의 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했다. 아글라브 왕조 치하에서 수스는 전성기를 누렸다.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스의 메디나는 이곳에 진출한 무슬림들의 생활 중심지였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역사적 유적이 남아 있다. 항구 오른편에 위치한 수스 대모스크(Grand Mosque of Sousse, Great Mosque of Sousse)는 9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장식이 없이 기능적 측면이 강조된 이슬람 사원의 초기 건축 양식을 대표한다. 수스 대모스크는 성벽으로 이어져 있다. 

 

11-24. 수스 리바트(Ribat of Sousse)

 

수스 대모스크 안에는 8세기 말에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된 사원 요새인 수스 리바트(Ribat of Sousse)가 있다. 이 요새는 비잔틴 제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모로코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축성된 이슬람 요새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수스 리바트 (Ribat of Sousse)

성벽을 따라 지어진 2층 구조의 회랑은 벽의 두께가 2m에 달하며, 성벽의 모서리마다 높은 망루가 세워져 있고, 성벽 위에는 사대(射臺)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또한 출입구를 좁게 만들고 지하에 저수조를 설치하여 적의 침입에 철저한 대비를 갖추고 있다.

 

11-25. 수스 카스바(Kasbah of Sousse)

 

수스 카스바(Kasbah of Sousse)

수스 메디나의 주요 유적으로는 리바트 요새의 맞은편에 위치한 사원의 첨탑과 메디나 남서쪽에 위치한 9세기에 건축된 성채 카스바(Khasba) 등이 있다. 카스바 성채는 오늘날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로 로마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11-26. 모나스티르 하비브 부르기바 묘(Mausoleum of Habib Bourguiba)

 

하비브 부르기바 묘(Mausoleum of Habib Bourguiba)는 모나스티르(Monastir) 주의 주도인 모나스티르에 있다. 튀니지 독립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으로 30년에 걸쳐 장기집권한 하비브 부르기바는 2000년 4월 6일 사망했다. 이 능묘는 부르기바가 아직 살아 있던 1963년에 아랍-이슬람 스타일로 건립되었다. 

 

 

하비브 부르기바 묘( Mausoleum of Habib Bourguiba)

하비브 부르기바 묘는 모나스티르의 주요 매장지인 시디 엘 메제리(Sidi El Mézeri) 묘지 서쪽에 있다. 능묘의 길이는 약 200m, 폭은 30m이다. 묘에는 25m 높이의 첨탑 2개가 있으며, 두 개의 녹색 돔 사이에 황금색 돔이 있다. 이 능묘의 다른 두 홀에는 부르기바의 첫 부인 마틸드(Mathilde)와 부모, 형제 자매 및 그의 가족 구성원이 묻혀 있다. 무덤 안에는 부르기바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이 있다. 

 

11-27. 모나스티르 요새(Ribat of Monastir)

 

모나스티르 요새(Ribat of Monastir)는 모나스티르 시의 가장 유명한 기념물이다. 아랍 무슬림이 마그레브를 정복하는 동안 이슬람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가장 오래된 요새다. 

 

모나스티르 요새(Ribat of Monastir)

모나스티르 요새는 796년 바스 왕조의 지도자이자 주지사인 하사마 이븐 아얀(Harthama ibn A'yan)이 세웠다. 966년에는 아부 알카심 이븐 탐만(Abu al-Qasim ibn Tammam)이 요새를 증개축하고 확장했다. 요새에는 망루가 많다. 포병을 수용하기 위해 11~13세기와 17~19세기에 많은 망루가 추가되었다. 요새에는 또 두 곳의 사원이 있다. 

 

11-28. 엘 젬 원형경기장(Amphitheatre of El Jem)

 

튀니지 중동부의 마디아 주(Mahdia Governorate)에 위치한 엘 젬(El Jem)은 아프리카의 도시들 가운데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이다. 튀니지의 거의 모든 로마인 체류 지역과 마찬가지로 엘 젬도 카르타고인의 체류 지역 위에 건설되었다. 수스(Sousse)와 스팍스(Sfax) 사이의 고원에 있는 엘 젬은 튀니스 남쪽으로 2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엘 젬은 로마 시대에 티스드루스(Thysdrus)로 불렸다. 튀니지 일대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던 AD 238년 경에 지어진 원형경기장은 '아프리카의 콜로세움'으로 불렸다.

 

엘 젬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

지금 남아 있는 엘 젬 원형경기장은 똑같은 자리에 지어진 세 번째 경기장인데, 당시 지방총독 고르디아누스-훗날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Marcus Antonius Gordianus Pius, 225~244)-가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세에는 요새로 쓰였으며 430년 반달족, 647년 아랍인이 침공했을 때 지역 주민들은 원형경기장을 대피소로 사용했다. 1696년에는 무함마드 베이 알무라디(Muhammad Bey al-Muradi)는 자신의 형제 알리 베이 알무라디(Ali Bey al-Muradi)가 원형경기장을 근거지로 삼아 저항하자 경기장 벽을 뚫고 들어오기도 했다.18세기 말~19세기에 이곳은 초석을 만드는 공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850년 경에는 아흐마드 1세 이븐 무스타파(Ahmad I Ibn Mustafa)의 명으로 더욱 파괴되어 벽에 난 구멍이 거의 30m까지 벌어졌다. 19세기 후반에는 경기장 잔해를 지지대 삼아 가게나 집, 곡물창고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에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Life Of Brian, 1979)'이나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00)' 같은 영화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원형경기장 중 하나인 엘 젬 원형경기장은 전세계에 남아있는 로마 유적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것이다. 수용인원은 35,000명으로 추정된다. 긴축의 길이는 148m, 짧은축의 길이는 122m에 달한다. 평지 위에 돌을 깎아 만든 블럭을 쌓아올라는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엘 젬 원형경기장은 197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경기장은 엘 젬의 랜드마크이자 유명한 관광지이다.

 

11-29. 카이르완 메디나(Medina of Kairouan)

 

튀니지 동부에 위치한 중세 도시 카이르완(Kairouan)은 튀니지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카이르완은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의 초대 칼리파 무아위야 1세(Mu'awiyah I)의 원정대가 670년에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이프리키야를 정복하고 세운 군단 기지에서 비롯되었다. 카이르완은 9세기에 튀니지를 기반으로 세워진 아글라브 왕조(Aghlabid dynasty) 치하에서 번영하였다.

 

카이로완 메디나(Medina of Kairouan)

시아파인 파티마 왕조(Fatimid dynasty) 치하에서 이프리키야의 중심지가 알-마흐디야(al-Mahdiyah)로 이전되자 카이르완은 홀대를 받았다. 하지만 파티마 왕조의 속국이던 지리드 왕조(Zirid Dynasty)의 수도가 되되면서 카이르완은 다시 번영하였다. 이후 수니파로 개종한 지리드 왕조가 독립을 선언하자 파티마 왕조는 힐랄족((Hilalian)과 술라임족(Sulaym)을 보내 카이르완을 파괴하였다. 

 

11-30. 카이르완 대모스크(Grand Mosque of Kairouan, Great Mosque of Kairouan)

 

카이르완 대모스크(Grand Mosque of Kairouan, Great Mosque of Kairouan)는 카이르완 메디나-구시가지-에 있는 성지이자 관광지로 유명하다. 대모스크는 카이르완의 랜드마크이다. 카이르완 대모스크를 우크바 모스크(Mosque of Uqba)라고도 한다.

 

카이르완 대모스크 ( Great Mosque of  Kairouan )

마그레브에 지어진 첫 이슬람 사원인 카이르완 대모스크는 무슬림의 성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음가는 위치를 가지고 있다. 무슬림들에게는 카이르완을 7번 순례하면 하지(Haji)-메카 순례-와 같다는 믿음이 있다. 대모스크 내에 설립된 자이투나 대학은 지금도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교에 버금가는 명성을 지니고 있다.

 

11-31. 토주르 메디나(Medina of Tozeur)

 

튀니지 중서부의 토주르(Tozeur)는 대추야자 숲에 둘러싸인 오아시스에 자리잡은 도시다. 토주르는 튀니스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435km의 거리에 있다. 토주르와 케빌리(Kebili)는 쇼트 엘제리드(Chott el-Djerid)-엘제리드 호-를 가로지르는 둑길로 연결된다. 

 

토주르는 튀니지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로 BC 8000년 전의 캡시안(Capsian) 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토주르 메디나의 울레드 엘하데프(Ouled el-Hadef) 거리에는 14세기에 건설된 흙벽돌 골목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울레드 엘하데프는 14세기에 낙타 대상을 이용한 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엘하데프 가문이 살던 곳이다. 메디나는 좁은 샛길과 작은 광장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토주르 메디나(Medina of Tozeur)

토주르는 로마 시대에는 로마군의 아프리카 내륙 진출을 위한 주둔지였고, 지중해와 사막을 오가는 대상들의 경유지였다. 지금은 산악지대인 셰비카, 미데스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미데스 협곡은 사막 위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 1996)'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1-32. 토주르 다르 체라이트 박물관(Dar Cherait Museum)

 

다르 체라이트 박물관(Dar Cherait Museum)은 토주르 투리스티케 로 2200번지에 있다. 박물관에는 19세기 튀니지 지역 귀족들이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름답고 넓은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어 로마 시대부터 유럽으로 통하는 무역 기지였던 토주르는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해 부유한 상인들을 많이 배출됐다. 다르 체라이트 박물관도 19세기 지역 거상(巨商)의 저택이다. 

 

토주르 다르 체라이트 박물관(Dar Cherait Museum)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정문을 통과하면 화려한 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박물관 안에는 옛 목조 가구로 장식된 응접실, 손님과 주인이 체스를 두는 방, 부엌, 여성들의 방, 코란을 가르치는 교실, 욕실, 하녀들의 방 등이 갖춰져 있다. 부엌에는 개방된 화덕이 있고 다양한 조리도구가 놓여 있다. 많은 장식을 한 신부의 방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 세공품, 보석함, 은 세공품 등이 있다. 목욕탕은 터키식으로 전통적인 욕실, 열기실, 증기실, 탈의실, 휴게실 등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방에는 밀랍 인형이 배치돼 있어 현실감을 더해 준다. 박물관은 다양한 보석류, 도자기, 골동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갤러리에는 튀니지의 전통을 주제로 한 유명 화가들의 회화 작품과 장식 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천장을 장식한 '유리의 방'에는 다마스커스, 베니스, 보헤미아에서 온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11-33. 토주르 쇼트 엘제리드(Chott el-Djerid in Tozeur)

 

쇼트 엘제리드(Chott el-Djerid)는 바다로 직접 통하는 하류(河流)가 없는 내부 유역의 염수호(鹽水湖)이다. 토주르와 케빌리 사이에 있다. 면적이 7,000㎢에 달하는 쇼트 엘제리드는 사하라 사막의 가장 큰 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쪽 호반에는 거대한 야자수 숲이 있다. 튀니지 제2의 넓이를 자랑하는 야자수 숲은 10가 넘는 지역에 20만 그루 정도가 자라고 있다. 그래서 쇼트 엘제리드를 '야자수 대지의 호수'(Lagoon of the Land of Palms)라고도 부른다. 

 

토주르의 쇼트 엘제리드( Chott el-Djerid in  Tozeur)

쇼트 엘제리드 바닥은 해수면보다 10~25m 정도 낮다. 호수의 가장 넓은 곳은 250km에 이르지만, 가장 좁은 곳은 20km에 불과하다. 호수의 동쪽 좁다란 입구를 쇼트 엘 페제지(Chott el Fejej)라고 한다. 이 지역은 낮의 기온이 최고 50°C, 연강수량이 100mm 이하인 전형적인 열대 사막 기후이다. 여름에는 호수가 거의 말라붙어 신기루 현상이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11-34. 마트마타 지하마을(The troglodyte dwellings of Matmata, Berber village Matmata)

 

마트마타(Matmâta)는 튀니스에서 400km 정도 떨어진 가베스 주에 있는 마을이다. 마트마타에는 약 10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있던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마을이 있다. 마트마타 마을이 생기자마자 포에니 전쟁이 일어났는데, 로마는 이곳을 정복하기 위해 이집트의 두 부족을 보냈다. 강력한 무기와 잘 조직된 군대를 갖춘 이집트 부족에게 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생존자들은 살기 위해 사막으로 도망쳤고, 땅을 파고 그 속에 마을을 건설했다.

 

마트마타 지하마을(The troglodyte dwellings of Matmata, Berber village Matmata)

마트마타 지하마을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설이 있다. 약 7000년 전 이곳 사람들의 선조들이 이곳에 이주했는데,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지하에 마을을 건설했고, 복잡한 미로로 지상과 연결했다고 한다. 하지만 분석 결과 마트마타 지하마을은 약 1천 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지하마을의 집 구조는 거의 똑같다. 거대한 우물처럼 깊이 6m 정도의 큰 구덩이를 파고, 그 벽면을 파서 방들을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큰 집들에는 두세 곳의 정원이 있으며, 지표면의 입구에서 정원까지는 좁은 통로로 이어져 있다. 

 

주민들은 매년 봄 마을 북쪽으로 가서 구해 온 1년치 식량을 창고에 보관하고 생활했다. 지하마을은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혈거인들은 방을 두 층으로 만들어서 2층에는 식량을 저장했다. 1층이 물에 잠기더라도 2층의 식량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1969년 튀니지에 22일 동안 폭우가 쏟아져 대홍수가 났을 때 마트마타 마을 대표는 정부에 구조 요청을 했다. 튀니지 정부가 홍수 피해상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마트마타 지하마을이 발견되었다. 홍수 때문에 지하마을은 많이 무너졌고, 남은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됐다. 마트마타에는 지하마을을 복원한 호텔도 있다.

 

마트마타 지하마을의 발견 소식을 들은 영화 감독 조지 루커스는 이곳에서 '스타 워즈(Star Wars)'를 촬영했다. 타투인 행성으로 나오는 부분은 전부 마트마타 지하마을에서 찍은 것이다. 영화 '스타 워즈'가 유명해지면서 마트마타 지하마을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했다.

 

11-35. 두가 고고학 유적지(Dougga Archaeological Site)

 

두가(Dougga)는 튀니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10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550m 지대에 조성된 도시다. 두가 시는 리비아-카르타고의 수도였다. 카르타고 영토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았던 두가에는 산기슭을 중심으로 약 3만 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961년 튀니지 정부는 두가 고고학 유적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두 가구만 남겨두고 모두 새로운 마을인 두가알자디다(Dougga-al-Jadida)로 이주시켰다. 두가는 투가(Thugga)로도 불린다. 'Thugga(투가)'는 '목초지'를 뜻하는 말이다.  

 

두가 고고학 유적지(Dougga Archaeological Site)

두가는 본래 요새화된 베르베르계의 누미디아 마을이었다. BC 2세기 경 당시 누미디아의 왕 마시니사(Masinissa, BC 240~BC 149)는 이 지역을 정복하고 두가를 여러 수도 중 하나로 삼았다. 마시니사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의 스키피오 편을 들었다. 이후 누미디아는 로마 영향권 내로 흡수되었다가 이후 비잔틴, 반달족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두가는 애초에 군사 요충지로 건설되었으며, 로마군이 진주한 때부터 이 지역의 행정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반달족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두가는 이후 산자락에 작은 마을만 남게 되었다. 

 

전체 면적이 3km²에 이르는 두가 고고학 유적지(Dougga Archaeological Site)는 튀니지에서 로마 유적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유적은 우에드 칼레드 계곡(Oued Kalledd Valley)이 내려다보이는 테베르숙 산맥(Tebersouk Mountains)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누미디아, 카르타고, 헬레니즘, 로마 등 각기 다른 시대의 문화가 훌륭하게 통합된 두가 고고학 유적은 로마의 변방 도시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두가에는 놀랍게도 대부분 2~3세기에 지어진 공공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도시 중앙에는 바람의 장미 광장(Rose of the winds square)이 있다. 바람의 장미 광장을 중심으로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주노 카엘레스티스 신전(Temple of Juno Caelestis)사투르누스 신전(Temple of Saturnus, Temple of Saturn), 미네르바 신전(Temple of Minerva) 등 12개의 신전과 시장, 목욕탕, 극장(Dougga Amphitheatre), 경기장 등이 있다. 

 

두가  극장(Dougga Amphitheatre)

주피터 신전은 AD 166년에 건립되었다. 여섯 개의 거대하고 세로 홈을 판 기둥이 8m 위의 주랑 현관을 받치고 있으며, 독수리의 발톱으로 옮겨지는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를 묘사한 조각이 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주피터 신의 조상이 있었다. 카르타고의 여신 타닛에 해당하는 로마 여신 주노 카엘레스티스에게 바쳐진 신전은 230년 경에 지어졌다. 도시의 끝에 있는 사투르누스 신전은 바알 신에 바쳐진 오래된 성소가 있는 지역에 지어졌다. 두가 요새는 후기 비잔틴 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개선문은 많이 파손되었지만, 세베루스 알렉산더(Severus Alexander) 개선문은 여전히 상당한 높이로 서 있다. 3세기에 도시 설비로 지어진 리시니안 목욕탕(Licinian bath)은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두가의 가장 중요한 기념물 가운데 하나인 도시 남쪽의 리비아-카르타고 능묘는 1908~1910년에 복원되었다. 이 능묘는 튀니지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카르타고 건축물의 유일한 주요 기념물이다. 이슬람 시대에는 시디 사비 모스크(Sidi Sahbi Mosque)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디오니수스와 율리시즈의 집(House of Ulysses and Dionysus)은 한때 화려한 주거지였던 곳이다. 여기서 율리시즈가 사이렌에게 매혹되는 장면을 묘사한 '율리시즈 모자이크(Ulysses mosaic)'가 발견되었다. 두가 극장은 AD 188년에 이 도시의 부유한 주민이 언덕배기에 세웠다. 극장은 작고 표준적인 로마식이며, 3,500석 규모이다. 극장의 무대(scenae frons) 바닥은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다. 

 

리비아어와 카르타고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쓰여진 2,000점 이상의 비문으로 구성된 두가의 중요한 금석학 자료들은 리비아어의 판독, 누미디아의 사회 및 생활, 로마의 식민 정치와 도시 조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11-36. 이츠쿨 국립공원(Ichkeul National Park)

 

이츠쿨 국립공원(Ichkeul National Park)은 튀니지 북부 비제르트 주에 위치한다. 호수와 습원(濕原), 이츠쿨 산(Jebel Ichkeul, 511m)으로 이루어진 총면적 126㎢의 자연공원이다. 198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간척이 급속도로 진행된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면서도 아직까지 미개척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유일의 습지대이다.

 

이츠쿨 국립공원(Ichkeul National Park)

이츠쿨 국립공원 지역은 1240년 이후 하프스 왕조(Hafsid Dynasty) 소유의 수렵지였는데, 1891년부터 튀니지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 이 지역의 중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면서 1977년 유네스코 국제 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되었고, 198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80년 국제습지조약-람사조약-에 의해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지정되었다. 

 

공원에는 검둥오리와 홍머리오리, 자색쇠물닭, 거위, 황새, 홍학 등 200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흰눈기러기와 회색기러기 등 연간 25만 마리나 되는 철새가 날아오는 새들의 낙원이다. 또한 유라시아수달, 갈기산미치광이-호저, 야생 물소 등 진귀한 동물도 서식하고 있다. 

 

최근 이츠쿨 호로 흘러드는 강 상류에 3개의 댐이 건설되면서 습원으로 흐르던 담수의 공급이 거의 차단되었다. 호수와 습원의 염도가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높아지자 유네스코는 1996년 이 공원을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11-37. 비제르테 항(Port of Bizerte)

 

비제르테 항(Port of Bizerte)은 튀니스에서 북서쪽으로 65km 정도 거리에 있다. 지중해와 비제르테 호(Bizerte Lake)를 연결하는 운하변에 자리잡은 비제르테(Bizerte) 튀니지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비제르테 주의 주도이다. 비제르테 카스바(Bizerte Kasbah)는 구도심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거대한 성벽은 오래된 항구 입구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다. 비제르테 카스바는 원래 비잔틴 제국이 AD 6세기에 세웠으며, 지금의 요새는 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재건한 것이다. 비제르테 크시바(Bizerte Ksibah)-작은 요새-는 항구의 남쪽 보루로 비잔틴 제국이 쌓은 것이다. 비제르테 크시바에는 해양박물관(Oceanographic Museum)이 들어서 있다.

 

비제르테 항(Port of Bizerte)

부쵸우챠 광장(Bouchoucha Square)은 예전 오스만 마을의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는 옛 성채, 서쪽에는 비제르테 아랍 메디나(Arab Medina of Bizerte)가 있다. 비제르테 대모스크(Great Mosque in Bizerte)는 1652년에 건립되었으며, 유세프 데이 분수(Youssef Dey Fountain)는 이 모스크보다 10년 전에 세워진 것이다. 메디나 북쪽 고원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른바 스페인 성채(Spanish Fort aka Alj Ali Fort)는 사실 터키가 1570년에 세운 것이다.

 

11-38. 마디아 메디나(Mahdia Medina)

 

마디아(Mahdia)는 튀니스에서 남동쪽으로 200km 떨어진 작은 반도에 있다. 916년에 세워진 마디아는 모나스티르 바로 남쪽에 있는 해안 도시이다. 마디아 메디나(Mahdia Medina)는 14세기에 유명한 역사가 이븐 할둔(Ibn Khaldoun)이 방문하였을 때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할둔은 마디아를 바르바리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라고 말했다. 

 

마디아 메디나(Mahdia  Medina )의  스키파 엘칼라(Skifa el-Kahla)

스키파 엘칼라(Skifa el-Kahla)는 메디나로 통하는 거대한 문이다. 스키파 엘칼라에서 메디나의 좁고 자갈로 덮인 주요 도로인 루에 알리 베이(Rue Ali Bey)가 이어진다. 메디나 동쪽에는 카이레 광장(Place du Caire)이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무스타파 함자 모스크(Mustapha Hamza Mosque)는 1772년에 세워진 것이다. 루에 알리 베이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마디아 대모스크(Great Mosque of Mahdiya)가 나타난다. 921년 세워진 마디아 대모스크는 1554년 스페인 군대가 퇴각하면서 파괴하였다. 지금의 대모스크는 1965년에 복원한 것이다. 반도를 따라 더 동쪽으로 가면 16세기에 건립된 엘케비르 요새(Borj el-Kebir, Borj El Ghazi Mustapha)가 나온다. 엘케비르 요새는 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요새를 지나면 옛날 항구 근처의 묘지와 등대가 나온다.

 

11-39. 우티카 유적(Ruins of Utica)

 

우티카(Utica)는 튀니스에서 북북서쪽으로 약 35km, 카르타고에서 북서쪽으로 35km 거리에 있다. 레반트(Levant)-소아시아와 고대 시리아 지방의 지중해 연안지방-의 티레(Tyre) 또는 시돈(Sidon)-레바논 남부 지중해안의 사이다(Saida)-출신의 페니키아인이 BC 8~7세기 경 북아프리카에 최초로 건설한 항구 도시다. 아프리카의 페니키아인 거주지 가운데 최초로 카르타고에 버금가는 도시가 되었다. 

 

우티카 유적 (Ruins of Utica)

우티카는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146) 당시 로마 편에서 카르타고와 맞서 싸웠으며, 카르타고가 멸망한 뒤 아프리카의 로마 지역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BC 36년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Gaius Julius Caesar, B.C. 63~14) 시대에 자치도시-로마 시민권을 부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고, 하드리아누스(Pablius Aelius Hadrianus, AD 76~138) 황제 시대에 콜로니아-완전한 시민권을 갖는 로마 지역-가 되었다. 그러나 우티카는 BC 44년 카르타고가 로마 도시로 재건되면서 우위권을 잃었다. 이후 우티카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우티카는 1세기 경 메제르다 강(Medjerda River)-고대의 바그라다스 강(Bagradas River)-의 퇴적작용으로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우티카에서는 BC 8세기 경 페니키아인들의 무덤과 로마 도시의 주거지가 다수 발굴되었다.

 

11-40. 미데스 협곡(Mides Canyon)

 

미데스 협곡(Mides Canyon)은 알제리와의 국경 근처 산악지대에 있으며, 타메르자(Tamerza)에서 6km 떨어져 있는 산악 오아시스이다. 구비구비 이어지는 깊은 협곡으로 유명하다. 이 협곡에는 버려진 마을이 있다. 

 

미데스 협곡( Mides Canyon )

미데스 협곡의 절경은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의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 앤서니 밍겔라 감독, 랄프 파인즈,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 1996)' 등은 여기서 쵤영한 영화들이다.  .

 

11-41. 두즈(Douz) 

 

사하라 사막의 관문으로 알려진 두즈(Douz)는 튀니지 남부의 케빌리 주에 있는 도시다. 블리뎃(Blidet)에서 남서쪽으로 31km, 토주르(Tozeur)에서 남동쪽으로 125km, 수도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475km 떨어진 곳에 있다. 

 

사막 투어

5십만 그루가 넘는 야자수가 자라고 있는 두즈는 맛이 뛰어나고 품질이 좋은 대추야자가 생산되기 때문에 '야자수 오아시스'라고도 불린다. 두즈는 옛날 사하라 사막 횡단 캐러밴 노선의 중요한 기착지였다. 오늘날에는 관광객들이 낙타를 타고 사막 투어를 할 수 있다. 오토바이나 4륜구동 차량으로 사막 여행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2020. 5. 27. 최종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