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중순 경이던가? 출퇴근할 때 늘 아침 저녁으로 지나다니는 아파트 단지 도로변 축대에 다소곳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미백색의 초롱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시멘트 일변도의 삭막한 회색 도시 한가운데에 피어난 초롱꽃은 나날이 무뎌지는 나의 감성을 일깨워주곤 해서 볼 때마다 늘 반가왔다.
초롱꽃은 초롱꽃목 초롱꽃과 초롱꽃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 모양이 초롱의 갓을 닮아서 초롱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학명은 캄파눌라 푼크타타 램.(Campanula punctata Lam.)이다. 속명 '캄파눌라(Campanula)'는 '종(鐘)’을 뜻하는 라틴어다. 종소명 '푼크타타(punctata)'는 '펑크츄에이티드(punctuated, 구두점을 찍다)', '포인티드(pointed, 뾰족한, 날카로운)', '펑크테이트(punctate, 반점의, 작은 반점이 있는)'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푼크타투스(puncta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통꽃 안쪽에 짙은 반점이 있는 있는 것을 표현한 이름이다.
'램.(Lam.)'은 네덜란드 식물학자 헤르만 요하네스 램(Herman Johannes Lam, 1892~1977)이다. 1919년에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램은 1933년에 네덜란드 국립 식물표본관(The National Herbarium of the Netherlands, Rijksherbarium)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초롱꽃의 영어명은 벨 플라워(bell flower)이다. 말 그대로 '종을 닮은 꽃'이라는 뜻이다. 스파티드 벨플라워(Spotted bellflower), 롱-플라워드 헤어벨(long-flowered harebell)이라고도 한다. '스파티드(spotted)'는 '점이 있는', '헤어벨(harebell)'은 '실잔대'의 뜻이다.
비너스의 거울(Venus Looking Glass)이라는 별명도 있다. 여기에는 신화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미의 여신 비너스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looking glass)을 잃어버렸다. 비너스는 거울을 찾기 위해 사랑의 신 큐피드(Cupid)를 보냈다. 거울을 발견한 큐피드는 그것을 갖고 돌아오다가 그만 땅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다. 거울 조각들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예쁜 초롱꽃이 피어났다. 이후 초롱꽃을 비너스의 거울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초롱꽃의 일어명은 호타루부쿠로(ホタルブクロ, 蛍袋)이다. '호타루(蛍)'는 '반딧불이, 개똥벌레', '후쿠로(袋)'는 '자루, 주머니, 봉지'의 뜻이다. 자루 같은 꽃에다가 반딧불이을 넣고 논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국명은 쯔반펑링차오(紫斑风铃草)이다. '쯔반(紫斑)'은 '자주색 반점', '펑링(风铃)'은 '풍령, 풍경(風磬)', '차오(草)'는 '풀'이다. 이명에는 덩롱화(灯笼花), 땨오종화(吊钟花), 티덩화(提灯花), 잉다이(蛍袋) 등이 있다.
초롱꽃의 원산지는 한강토(조선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러시아이다. 일본에는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四国), 규슈(九州) 등지에 분포한다. 러시아에는 극동 지방과 동부 시베리아에 분포한다. 중국에는 샨시(山西), 동베이(东北), 네이멍구(内蒙古), 허난(河南), 후베이(湖北), 쓰촨(四川), 깐쑤(甘肃), 샨시(陕西), 허베이(河北) 등지의 해발 500m~2,300m의 산지 숲속, 관목 지대, 풀밭에서 자란다. 한강토에서는 남부와 중부 지방의 산지에 분포한다.
초롱꽃의 뿌리줄기는 옆으로 뻗어간다. 키는 40~100cm 정도이다. 줄기 전체에는 퍼진 털이 있다. 줄기는 중상부에서 가지를 치고 잔털이 있다. 근생엽은 엽병이 길고 심장상 달걀 모양이다. 줄기잎은 날개가 있는 엽병이 있거나 없고, 삼각상 달걀 모양이거나 넓은 피침형이며, 뾰족한 끝이 둔하게 그치고 밑부분이 둥글거나 좁다. 잎 길이는 5~8cm, 너비는 1.5~4cm로서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고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5-8월에 핀다. 백색 또는 연한 홍자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으며, 긴 화경 끝에 종 같은 꽃이 달려 밑으로 처진다. 꽃의 길이는 4~8cm이며, 꽃통은 3.5cm로 아래를 향하여 핀다. 꽃받침은 5개로 좁게 갈라지며 녹색이고 털이 있으며, 열편 사이에는 뒤로 젖혀지는 부속체가 있다. 수술은 5개, 암술 1개, 씨방은 하위이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는 8~9월에 익는다. 씨방은 3실이다.
한강토에는 초롱꽃에 얽힌 전설이 하나 서려 있다. 먼 옛날, 금강산 깊은 산골에 부모 없는 오누이가 살았다. 어느 날 누나가 병에 걸리자 남동생은 약초를 찾아 산으로 떠난다.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기다리던 누나는 초롱불을 들고 길을 나섰다가 산중턱에 쓰러지고 말았다. 약을 구해 돌아오던 동생은 누나를 발견하였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런데, 죽은 누나 옆에는 초롱불을 닮은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었다. 전설이 좀 슬픈 내용이다.
초롱꽃은 꽃이 아름다워서 가정의 정원이나 공원에 많이 심는다. 초롱꽃의 어린 잎과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또, 꽃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초롱꽃의 유사종에는 자주초롱꽃, 섬초롱꽃(Korean bellflower), 흰섬초롱꽃, 자주섬초롱꽃, 금강초롱꽃(Geumgangchoronkkot, 금강사삼, 화방초) 등이 있다.
자주초롱꽃(Campanula punctata var. rubriflora Max.)은 줄기와 잎에 자주색이 많이 돈다. 북한의 평안북도에서 자라며, 짙은 자주색 꽃이 핀다. 남한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종이다. 섬초롱꽃(Campanula takesimana)은 울릉도에서 자라며, 개화 시기는 5~8월이다. 초롱꽃과의 구별은 줄기에 거의 털이 없이 매끈하고, 가지도 많이 치는 점이 다르다. 꽃은 줄기 끝과 잎겨드랑이에서 종 모양의 붉은 자줏빛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는 꽃이 핀다. 흰섬초롱꽃(Campanula takesimana f. alba T.B.Lee)은 흰색 꽃이 피는 섬초롱꽃이다. 도 울릉도에서 자생한다. 자주섬초롱꽃(Campanula takesimana f. purpurea T.B.Lee)는 자주색 꽃이 피는 섬초롱꽃이다. 금강초롱꽃(Hanabusaya asiatca)은 중부 이북의 높은 산에서 자라며, 8~9월에 보라색으로 꽃이 피는 한국 특산식물로 보호종이다.
2020. 6. 2. 林 山. 2022.11.4. 최종 수정
'야생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홍달맞이꽃 (0) | 2020.06.04 |
---|---|
인동(금은화, 金銀花) (0) | 2020.06.03 |
참골무꽃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0) | 2020.05.29 |
개양귀비 '덧없는 사랑' (0) | 2020.05.27 |
가시칠엽수(마로니에) '천재' (0) | 2020.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