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털중나리 '순결, 진심, 존엄'

林 山 2020. 7. 15. 15:34

6월 15일 아버지가 향년 86세를 일기로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셨다. 17일 아버지를 어머니 곁에 모셔 드리던 날, 무덤가에는 털중나리꽃이 저만치 피어 있었다. 털중나리도 천붕(天崩)을 당한 내 심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예쁜 털중나리가 그 자리에 피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무가 되어 주리라. 그렇게 믿으면서 산을 내려갔다.  

 

털중나리(충주 국망산, 2020. 6. 17)

털중나리는 백합목 백합과 백합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릴리움 아마빌레 팔리빈(Lilium amabile Palib.)이다. 속명 '릴리움(Lilium)'은 '나리(lily)'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레이리온(leírion)에서 유래했다. 종소명 '아마빌레(amabile)'는 '부드러운, 귀여운, 사랑스런 스타일(tender, loving style)'의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형용사 '아마빌레(amàbile)'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름다운 꽃의 모습을 표현한 이름이다. '팔리빈(Palib.)'은 러시아의 식물학자 이반 블라디미로비치 팔리빈(Ivan Vladimirovich Palibin, 1872~1949)이다.

 

털중나리의 영어명은 러버블 릴리(Lovable lily)이다. '러버블(Lovable)'은 '사랑스러운', '릴리(lily)'는 '나리, 백합(百合)'이다. 일어명은 고마유리(コマユリ, 高麗百合)이다. '고마(고마)'는 '한강토(조선반도)', '유리(百合)'는 '나리, 백합'이다. 중국명은 슈리바이허(秀丽百合)이다. '슈리(秀丽)'는 '수려하다, 아름답다', '빠이허(百合)'는 '백합'이다. 털중나리를 중정(中庭), 중상(重箱), 야백합(野百合)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순결, 진심, 존엄이다. 

 

털중나리는 한강토(조선반도)와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랴오닝성(遼寧省) 남동부에 자란다. 한강토에서는 중북부의 해발 100~1400M의 석회암 지대에 많이 자생한다. 제주도와 울릉도에도 분포한다. 털중나리는 한국의 자생 나리류 가운데 재배가 가장 쉬운 종이다. 빠이두백과(百度百科)에는 털중나리가 세계자연보전연맹 멸종위기종 적색목록(IUCN)에 멸종위기종(EN)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나온다. 

 

털중나리(충주 국망산, 2020. 6. 17)

털중나리의 키는 50~100cm까지 자란다. 가지는 윗부분이 약간 갈라지고 전체에 잔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피침형이다. 엽병은 없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둔한 녹색이고 양면에 잔털이 밀생한다. 꽃은 6~8월에 가지끝과 원줄기끝에서 1개씩 달리고, 1~6개가 아래를 향해 핀다. 5장의 화피열편(花被裂片)은 뒤로 말리면서 화려하게 피어난다. 꽃색은 황적색이며, 안쪽에는 자주색 반점이 있다. 수술과 암술이 모두 꽃 밖으로 길게 나오며, 꽃밥은 황적색이다. 비늘줄기는 난상 타원형이고, 비늘조각은 길며 마디가 없다.

 

털중나리와는 달리 중나리는 7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잎의 반점도 털중나리보다 반점이 크고 윤곽도 뚜렷하다. 키도 중나리가 훨씬 큰 편이다. 중나리의 줄기에는 털이 거의 없어 반들반들하다. 

 

털중나리(충주 국망산, 2020. 6. 17)

참나리와 털중나리의 비늘줄기는 백합(百合), 꽃은 백합화(百合花), 종자는 백합자(百合子)라고 하며 한약재로 사용한다. 백합에는 콜히친(colchicine) 등 다종의 알칼로이드(alkaloid) 및 전분, 단백질, 지방 등이 함유되어 있다. 참나리 약포(葯胞)에는 수분, 회분, 단백질, 지방, 전분, 환원당, 비타민 B1, B2, 판토텐산(pantothenic acid), 비타민 C 및 베타 카로티노이드(β-carotenoid) 등이 함유되어 있다. 약포는 수술 끝에 붙은 화분과 그것을 싸고 있는 화분낭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털중나리(충주 국망산, 2020. 6. 17)

백합은 윤폐지해(潤肺止咳), 청심안심(淸心安神)의 효능이 있어 폐결핵으로 인한 기침, 피가래, 열병(熱病)으로 인한 발열, 허번경계(虛煩驚悸), 정신황홀(精神恍惚), 실면다몽(失眠多夢), 각기부종(脚氣浮腫)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백합화는 윤폐(潤肺), 청화(淸火), 안심(安心)의 효능이 있어 기침, 현기증, 야침불안(夜寢不安), 천포습창(天疱濕瘡) 등을 치료한다. 백합자는 장풍하혈(腸風下血)을 치료한다. 백합자를 술로 약간 빨갛게 될 정도로 볶아서 가루내어 따뜻한 물에 타 먹는다. 장풍(腸風)은 치질(痔疾) 등 변혈(便血)을 주증으로 하는 질병이다. 요즘 한의사들은 장풍이란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털중나리(충주 국망산, 2020. 6. 17)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湯液篇)>에 백합은 '성질이 평(平)하고 맛은 달며(甘) 독이 없다. 혹은 독이 있다고도 한다. 상한(傷寒)의 백합병(百合病)을 낫게 하고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모든 사기와 헛것에 들려(百邪鬼魅) 울고 미친 소리로 떠드는 것을 낫게 한다. 고독(蠱毒)을 죽이며 유옹(乳癰), 등창(發背), 창종(瘡腫)을 낫게 한다.'고 나와 있다. 또 '산과 들에서 자라는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한 종류는 잎이 가늘며 꽃이 홍백색이다. 다른 한 종류는 잎이 크고 줄기가 길며 뿌리가 굵고 꽃이 흰데 이것을 약에 쓴다. 또 한 종류는 꽃이 누르고 검은 얼룩점이 있으며 잎이 가늘고 잎 사이에 검은 씨가 있다. 이것은 약으로 쓸 수 없다.'고 했다. 중국 '쩡레이뻰차오(證類本草)'를 인용하여 '꽃이 붉은 것은 산단(山丹)이라고 하는데 아주 좋지는 못하다.'고 했으며, 리찬(李梴)의 '이쉬에루먼(醫學入門)'을 인용하여 '나리의 뿌리는 오줌을 순하게 내보내는 좋은 약이다. 꽃이 흰 것이 좋다.'고 했다. 

 

털중나리(포천 국립수목원, 2022. 6. 19)

백합병은 '진쿠이야오루에(金匱要略)' <빠이허후훠인양두삥쩡즈(百合狐惑陰陽毒病證治)>에 '모든 맥이 맥을 마루로 삼아 모두 그 병에 걸리는 것이다. 먹고 싶어도 더 먹을 수 없고 늘 말이 없으며 누우려 해도 눕지 못하고 걸으려 해도 걷지 못한다. 음식이 어떤 때는 맛있다가도 어떤 때는 냄새조차 맡기 싫어진다. 추운 듯하지만 몸에 찬 기는 없고, 더운 듯하지만 열이 나지는 않으며, 입이 쓰고 소변이 붉다. 어떤 약으로도 치료하지 못하며, 약을 먹으면 심하게 토하고 설사한다. 마치 귀신에 씌운 듯하며 신형(身形)은 괜찮은 듯한데 맥은 미삭(微數)하다.(百合病者, 百脈一宗, 悉致其病也. 意欲食, 復不能食; 常黙然, 欲臥不能臥, 欲行不能行; 飮食或有美時, 或有不用聞食臭時; 如寒無寒, 如熱無熱; 口苦, 小便赤; 諸藥不能治, 得藥則劇吐利, 如有神靈者, 而身形如和, 其脈微數.)'라고 했다. 

 

털중나리(포천 국립수목원, 2022. 6. 19)

요즘 한의사들은 백합병이란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백합병은 칠정울결(七情鬱結)이나 중병을 앓고 난 후 심폐(心肺)의 음허(陰虛)로 인해 내열(內熱)이 생겨서 오는 병증이다. 현대적인 의미로 분석하면 이런 병증은 열병 후기에 몸이 쇠약해진 경우나 갱년기증후군에서 나타날 수 있다. 신경쇠약이나 히스테리 등 정신병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털중나리(포천 국립수목원, 2022. 6. 19)

백합병을 치료하려면 음정(陰精)을 자양하며 열을 내리는 백합지황탕(百合地黃湯)이나 백합지모탕(百合知母湯)을 쓴다. 백합, 지황, 지모는 자음청열(滋陰淸熱)의 효능이 있다. 백합을 써서 치료 효과를 본 병이라는 데서 백합병이라고 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2020. 7. 15. 林 山. 2022.11.10.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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