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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0] 겨울 아이들의 땅 - 시베리아 설원에 펼쳐지는 동심의 세계

林 山 2020. 8. 19. 01:14

2020 EBS 국제다큐영화제(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EIDF)가 8월 17일 시작됐다. 개막 상연작은 '매들린, 런웨이의 다운증후군 소녀'였다. 2004년에 시작된  EIDF는 벌써 올해 17회를 맞이했다.  EIDF는 23일까지 열린다. 주요 작품들은 EBS를 통해서 방영된다. 

 

EIDF 팬 중 한 사람으로서 1년 동안 기다린 행사다. 23일까지는 EBS 상연작들을 보느라 밤잠을 설치게 생겼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처음 본 작품은 크세니아 엘리안(Ksenia Elyan) 감독의 '겨울 아이들의 땅'이다. 원제는 'How Big Is the Galaxy?'이다. 2018년 러시아, 에스토니아 합작 영화이다. 상연 시간은 72분이다.

 

7살짜리 자카르(우)와 그의 형 포유

영화가 시작되면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설원이 시선을 잡아끈다. 기나긴 장마가 끝나자마자 열대야를 맞이한 한국인들에게 시베리아 설원은 보기만 해도 시원한 풍경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르코프 가족이다.  엘리안 감독은 시베리아 최북단 지역에서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고수하고 있는, 마지막 남은 토착민인 돌간족(Dolgan) 자르코프 기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돌간인(Dolgans)은 사라져가는 시베리아의 소수민족이다. 돌간인은 크라스노야르스크(Красноярск, Krasnojarsk) 지방의 타이미르 자치구(Таймырский автономный округ, Taymyr Autonomous Okrug)와 사하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Саха́, Republic of Sakha)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사하 공화국은 야쿠티야((Yakutia)라고도 한다. 돌간인의 인구는 2010년 기준 7,885명이었다. 이 중 5,517명이 타이마르 반도(Таймыр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Taimyr Peninsula)에 살고 있다.

 

돌간인들은 튀르크족(Turkic peoples, Türk halkları)에 속하며 야쿠트인(Yakut)과 혈통적으로 매우 가깝다. 황인종 계통에 속하며 야쿠트인과 문화적인 관계가 매우 깊은 편이다. 또한 튀르크계 민족들 중에 가장 최북단 지역에 사는 튀르크인들이기도 하다. 돌간인은 북극권 및 튀르크족들 가운데서도 가장 뒤늦게 생겨난 민족이다. 현재 러시아에 얼마 남지 않은 소수민족 가운데 소멸 위기 10위 안에 들어 있다.

 

돌간인은 튀르크어족의 야쿠트어군에 속하는 돌간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공식 종교는 러시아 정교이지만, 실제로는 정교와 애니미즘, 샤머니즘 등이 혼합되어 있다. 돌간인의 의식주문화는 순록 유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자르코프 가족의 순록떼

자르코프 가족은 엄마, 아빠와 7살 난 자카르, 자카르보다 2~3살 많은 엉아 포유 등 4식구가 동토의 땅에서 순록을 키우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자카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중에서도 최북단 고립무원의 오지에서 자카르의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돌간족은 요즘 러시아 당국에서 배정해준 선생님을 통해서 아이들이 집에서 재택학습(Home Schooling)을 받을 수 있다. 자카르는 젊고 엄한 선생님 넬리와 함께 첫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넬리가 처음 만난 7살짜리 자카르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묻는다. 이에 자카르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럼에도 매일 자카르는 세상에 대해 궁금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그는 아빠, 엄마는 물론 선생님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해댄다. 이번엔 자카르가 선생님에게 묻는다. 

 

자카르 : 해는 하루만에 다 타나요?

넬리 : 모르겠네.

자카르 : 다 타면 무슨 일이 생겨요?

넬리 : 넌 살 수 없겠지.

 

물론 황당한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을 어찌하랴! '학문(學問)'이란 '묻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카르는 학문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카르의 질문 공세에 이번에는 엄마가 걸려들었다. 엄마에게는 무슨 질문을 할까?

 

자카르 : 엄마, 푸틴은 대머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닌데요.

엄마 : 머리카락이 자랐네.

 

엄마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대머리라고 자카르에게 말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푸틴은 앞머리만 대머리이지 나머지는 대머리가 아니다. 자카르의 날카로운 눈은 엄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자카르가 2~3살 터울 엉아에게 묻는다. 7살짜리 자카르는 이제 시야를 우주로 돌린다.

 

자카르 : 은하계는 얼마나 클까?(How Big Is the Galaxy?) 

엉아 : 아주 커. 세상에서 제일..... 지구보다 더..... 

 

어릴 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카르와 같은 의문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릴 때 절실하게 품었던 의문은 평생 갈 수도 있다. 자카르는 은하계의 크기를 생각하면서 성장해 갈 것이다. 

 

자카르는 또 아빠에게 묻는다. 자카르를 따뜻하고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그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자카르 : 아빠, 내 순록이 몇 마리에요?

아빠 : 세봐야겠는 걸.

자카르 : 네 마리 아니에요? 두 마리는 불교신자, 한 마리는 무신론자에요.

 

이쯤 되면 7살짜리 꼬맹이의 사고 수준이 비록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폭넓고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손록을 잡는 아빠에게 자카르는 또 질문을 던진다.

 

자카르 : (죽은 순록의) 왜 근육이 움직여요? 죽은 거 맞아요? 마비됐나?

아빠 : 모르겠다. 왜 그런지..... 왜 근육이 움직이는지..... 크면 알게 돼.

 

아빠는 아이들의 어려운 질문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사실 근육의 사후 경직 기전은 순록 유목민이 쉽게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리학자 정도는 돼야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문제다. 자카르는 또 감독에게도 서슴없이 질문을 던진다. 단도직입적이다. 

 

자카르 : 그거 알아요?

감독 : 뭘?

자카르 : 왜 항상 사진을 찍어요? 일을 해야죠! 내 일은 여기저기 오르내리고 말썽부리기 그런 거에요. 장작도 가져오고, 정상적이죠. 그런데, 아저씨는 겨우 사진이나 찍고, 그것도 일이에요?

 

자카르의 질문은 당돌하다. 영화 제작을 사진 찍는 일쯤으로 보는 것은 자카르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는 자카르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 

 

홈 스쿨링 교사 넬리

감독은 이 영화에서 특별히 어떤 주제를 던지지 않는다. 북극권 시베리아 설원에서 순록을 치며 살아가는 한 돌간인 가족의 막내, 호기심 많은 자카르의 일상을 그대로 비쳐준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감독은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한 시베리아의 설원,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사랑이 넘치는 돌간인 가족들의 순박한 삶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밤하늘에 펼쳐지는 북극광의 황홀한 우주 쇼는 덤이다. 죽기 전에 돌간족이 살아가는 북극권 시베리아 설원을 한번 가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2020.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