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예술 영화 오딧세이

[EIDF 2020] 시네마 파미르 -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안내서

林 山 2020. 8. 24. 22:26

스웨덴(Sweden)의 마틴 폰 크로그(Martin von Krogh) 감독이 2020년에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Cinema Pameer'(시네마 파미르)는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의 수도 카불(Kabul) 소재 한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다. 아프간에서는 현재 정부군과 탈레반(Taleban), 다에시(Daesh, ISIS의 멸칭) 등 반군 사이에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극장 직원이나 관객 모두에게 전쟁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의 공포에서 도피하기 위해 시네마 파미르를 찾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영화를 보러 온다. 

 

마틴 폰 크로그 감독

마틴 폰 크로그 감독은 카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오늘날의 아프간을 들여다본다. 이 다큐 영화에는 아프간의 현실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네마 파미르'는 이 나라에 대한 일종의 소개서 또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Pashtun) 출신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탈레반 정권 시절에는 아프간의 극장들이 모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아프간 반군인 아프가니스탄 구국이슬람통일전선(북부동맹)은 2001년 11월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면서 시네마 파미르도 다시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시네마 파미르의 사장은 젊고 풍채도 좋은 누르 아카(Noor Aqa)다. 누르 아카 사장은 주로 시네마 파미르에서 상영하는 영화 필름을 정보문화부에 가지고 가서 검열을 받는 일을 한다. 검열을 대행하는 기관이 '아프간 필름'이고, 검열관은 여성 나지파(Nazifa)다. 검열에서는 주로 외설적 장면들이 가위질을 당한다. 특히 파키스탄 영화에 나오는 춤추는 장면은 대부분 가위질 대상이다. 이렇게 가위질을 당한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나지파의 어릴 적 꿈은 항공기 승무원이나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오빠들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반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 결국 나지파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직업은 영화 제작사 매니저였다. 영화 제작사 매니저를 3년 동안 한 뒤 지금은 영화 검열관으로 일하고 있다. 아프간은 남녀 차별이 심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시네마 파미르'의 한 장면

다가르왈(Dagarwal)은 장군이다. 크레딧에도 'The General'로 나온다. 실제로 그가 아프간 군 장군 출신인지 아니면 그가 극장에서 맡은 역할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는 주로 영화 상연 중 극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을 한다. 극장 안에서 마리화나(marijuana)나 해시시(Haschisch)를 피는 관객을 적발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마리화나나 해시시는 대마초((大麻草)이다. 하지만 대마의 꽃이 피는 끝부분에 있는 수지로 만든 해시시가 마리화나보다 더 강력한 환각효과가 있다. 그는 시끄럽게 떠드는 관객도 단속한다. 말로 해서 안 들으면 심지어 때리기도 한다.

 

다가르왈은 매니저에게 과거 자신의 무용담인지 경험담인지를 들려 준다. 아프간 중부 우르주간 주에서 경찰 70명이 탈레반에 포위된 적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외국 군대가 와서 경찰을 구해 주었다. 당시는 탈레반에 저항할 세력이 없었다. 다가르왈은 민주주의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그는 강력한 통치력으로 아프간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프간이 이 지경이 된 것이 정부와 권력자들의 무능과 부패,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탈레반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아프간 고위층과 특권층의 부패 때문이다.  

 

시네마 파미르 직원들은 관객들이 표를 사서 입장할 때 몸수색을 한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다. 특이하게도 샴푸는 압수 대상이다. 관객들 중에는 영화 상연 중에 미끌미끌한 샴푸를 이용해서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은 극장 안에서 샴푸를 칠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한단다. 언뜻 상상이 잘 안되는 이야기다. 

 

사이드(Said)는 시네마 파미르 매니저이다. 그는 시를 암송할 정도로 이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극장 매니저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탈레반 정권 이후 아프간 사람들이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극장 매니저라고 하면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사이드가 보기에 요즘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퇴보했다. 극장 종사자들을  술집이나 디스코텍, 매춘업소 같은 질 떨어지는 일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파이줄라(Fayzullah)는 시네마 파미르의 단골손님이다. 그는 다리 한쪽이 절단돼서 목발을 짚고 다닌다. 파이줄라가 왜 다리를 잃었는지는 나중에 설명이 나온다. 그는 영화 감상이 유일한 낙이다. 그는 거의 매일 극장에 와서 영화 두 편을 보고 간다. 

 

에와즈(Ewaz)는 나이가 많은 영사기사이다. 그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을 때 극장에서 쫓겨났다. 실업자가 된 에와즈는 시장에서 짐꾼 노릇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탈레반 정권 시절은 그에게 지옥이었을 거다.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자 에와즈는 다시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영사기를 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를 보면 이탈리아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감독의 1988년 영화 'Cinema Paradiso'(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영사기사 알프레도(필립 느와레 분)가 떠오른다.

 

'시네마 파미르'의 한 장면

나키브(Naqib)는 호객과 음식 판매 담당이다. 그는 머리의 절반 정도가 화상을 입었고, 오른쪽 귀도 잃었다. 나키브가 18살 때 정체불명의 무장단체에 납치가 되었다. 머리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끌려가던 나키브는 '머리에 못을 박아서 죽이자'는 말을 듣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납치범 중 한 사람이 나키브의 나이가 어리다고 말려서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납치범들은 펄펄 끓는 기름을 나키브의 머리에 사정없이 부었다. 뜨거움을 이기지 못한 나키브가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머리와 오른쪽 귀에 심한 화상을 입었던 것이다. 납치범들은 나키브를 리쉬호르 고자르가 다리에서 풀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3일 동안이나 기절해 있다가 깨어났다.

 

영화에서 무장단체의 소속은 밝히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또 나키브가 왜 납치가 됐고, 또 왜 그런 비인도적인 테러를 당했는지도 그 이유를 알 수도 없다. 

 

탈레반 정권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이끄는 알카에다(Al-Qaeda)를 아프간에 숨겨주고 보호했다. 탈레반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2001년 당시 아프간에 설치한 테러 기지는 모두 80여 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개의 테러 기지가 카불 근처에 있었고, 그중 가장 큰 것은 리쉬호르 기지였다. 리쉬호르 테러 기지 사령관은 파키스탄 출신 카리 사이풀라 아흐타르로 수천 명의 지원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으로 볼 때 나키브는 알카에다나 탈레반 조직원들에게 납치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파미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대부분 파키스탄(Pakistan)에서 수입해온다. 미국(USA)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 할리우드(Hollywood)가 있고, 인도 뭄바이에 발리우드(Bollywood)가 있다면, 파키스탄 라호르에는 롤리우드(Lollywood)가 있다. 파젤(Fazel)은 파키스탄 영화 수입업자다. 그는 9년 전부터 시네마 파미르를 위해 일하고 있다. 파젤은 파키스탄 영화를 1년에 200편 정도 수입해서 시네마 파미르 사장 누르 아카에게 판다. 

 

승용차에는 8~10편의 영화 필름을 실을 수 있다.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영화를 싣고 아프간과의 국경지대인 토르캄(Torkham)까지 가서 에이전트에게 넘긴다. 험준한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지대를 넘어 카불에 아르는 도로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도로에는 아프간 정부군과 미군은 물론 탈레반과 다에시도 출몰한다. 

 

반란군에게 파슈토어(Pashto language) 영화를 들키면 죽음이다. 파슈토어는 동부 이란어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와 파키스탄 북부에서 파슈툰족(Pashtun)이 사용하는 언어다. 다리어(Dari language)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공용어이다. 왜 파슈토어 영화를 들키면 죽음인지는 설명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다소 불친절하다.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 때 극장 바로 앞 도로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관객들은 이런 일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놀라는 기색도 없다. 수도 카불에서도 폭발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수도 카불의 치안 상황이 이 정도라면 나머지 지역은 안 봐도 뻔하다. 테러의 목적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이다. 폭력으로 투쟁 의지를 약화시킨 다음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속셈이다. 그래서 테러 조직은 두려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공장소를 노린다.   

 

이때 파르쿤다 말릭자다(Farkhunda Malikzada) 집단 살해 사건을 다룬 영화 상영을 앞두고 파미르 극장에 긴장감이 감돈다. 2015년 3월 19일 당시 27살이던 파르쿤다는 점쟁이와 언쟁을 벌이다 코란을 불태웠다'는 누명을 쓴다.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파르쿤다를 무차별 폭행하고 시신은 불태워 강물에 버렸다. 묻힐 뻔했던 사건은 파르쿤다의 집단 살해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점쟁이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다고 자백했다. 

 

파르쿤다 군중 처형 현장

장군 다르가왈과 매니저 사이드는 그 점쟁이가 부패하고 타락한 이슬람 율법학자라고 말한다. 파르쿤다가 미인인 것을 보면 율법학자가 그녀를 범하려다 거부당하자 앙갚음으로 코란을 불태웠다고 모함을 했을지도 모른다. 중세 유럽에서 캐돌릭 사제들이 마을의 미녀를 범하려다 거부당하면 마녀로 몰아서 화형을 시켰듯이 말이다.  

 

당국은 파르쿤다 살해에 가담한 18명을 체포하고, 폭행을 방관한 경찰 13명에 정직 처분을 내렸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프간 등 일부 이슬람 국가에선 코란을 훼손한 죄로 사형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녀사냥식 군중 처형은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일부 지역에선 군중 재판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2014년 11월 파키스탄에선 코란을 태웠다는 혐의로 기독교도 부부가 산 채로 가마에 던져져 살해되기도 했다. 

  

파르쿤다의 장례는 이슬람 전통을 깨고 여성들이 직접 운구해 치러졌다. 파르쿤다를 지키지 못한 남성들의 운구는 거부됐다. 분노한 조문객들은 아프간 사회의 변화와 함께 파르쿤다 살해를 지지한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슬람 율법을 왜곡해 아프간에 수많은 고통을 야기한 율법학자들을 향한 분노가 들끓었다. 

 

파르쿤다의 장례식에 참석한 추모객들은 설교를 통해 파르쿤다의 살해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남성 9명의 석방을 요구한 와지르 아크바르 칸 모스크(Wazir Akbar Khan Mosque) 율법학자 무함마드 아야즈 니아지(Muhammad Ayaz Niazi)에게 분노의 화살을 겨눴다. 니아지는 '만약 그들을 체포할 경우 폭동이 야기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정부에 그들을 체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말해 아프간 여성과 인권운동가들의 분노를 샀다. 니아지는 파르쿤다의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분노한 조문객들에게 쫓겨났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슬람은 종교 혁명이 필요한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드디어 파르쿤다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다. 카불 경찰까지 동원되어 여느 때보다 극장의 보안이 한층 더 강화된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총을 소지하고 있다. 영화 상영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테러를 자행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화물질은 극장 입구에서 모두 압수된다. 경찰한테 거짓말을 하면 화를 내면서 때리기도 한다.  

 

이때 극장 입구에서 소란이 벌어진다. 장군 다가르왈이 한 남자를 때린다. 해시시를 피웠다는 이유다. 그는 경찰에게 알려서 해시시를 피운 남자를 쫓아내라고 한다. 다가르왈도 좋아서 때리는 것은 아니다. 정신차리라고 때리는 거다. 밤늦게 퇴근할 때면 골목에서 서너 명이 모여 해시시를 피우며 '저기 극장에서 해시시를 못 피우게 하는 장군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다가르왈은 '여긴 해시시 피우기에 딱 좋네. 나도 피우고 싶지만 늦어서 말이야'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장군은 거리의 불량배들이 다가르왈에게 붙여준 별명이 아닌가 한다. 

 

다가르왈은 언젠가 그런 약쟁이가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극장에서 적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런 걸 무서워하면 카불에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카불에선 모두가 위선자이니까.  

 

'시네마 파미르'의 한 장면

영화 '파르쿤다'가 시작되기 전 장군 다가르왈과 매니저 사이드는 감시 카메라로 극장 안을 살핀다. 극장 한쪽 구석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을 놓고 쫓아낼 것인지 말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사이드는 '누구나 그들만의 추억이 있다'면서 그냥 두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사이드가 어렸을 때 일했던 곳은 시네마 바하레스탄이었다. 아마 18~19살이었을 거다. 어느 날, 어떤 가족이 매니저 또래의 딸을 데리고 극장에 왔다. 사이드는 그 딸과 대화를 나눴고, 그녀는 하루나 이틀 뒤에 또 오겠다고 말했다. 이틀 뒤 그녀가 다시 극장에 왔을 때 그들은 나란히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그녀는 사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망설이더니 '당신을 많이 생각해요. 당신과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고백한다. 그 얘기를 들은 사이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했다. 황홀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이드는 그때까지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고백을 들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그는 온몸이 후끈거리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사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녀는 영화를 보다가 손을 매니저의 손 위에 올려놨다. 그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관객 여러분, 시네마 파미르에 잘 오셨습니다. 본 극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니 소중히 사용해 주십시요. 극장은 문화공간입니다. 약물 사용이나 위법 행위는 금지돼 있습니다. 극장에서 약물을 사용하거나 남에게 배포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 주십시요.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시네마 파미르의 단골손님 파이줄라도 영화를 보러 왔다. 그는 다리를 잃은 사연을 들려준다. 파이줄라가 15~16살 때였다. 어리고 순진했다. 그 당시 벌어진 공격에 죽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사람들이 치운다기에 밖으로 나가보니 시신들이 막 쌓여서 실려가고 있었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속이 울렁거려서 주저앉았다. 그때 갑자기 사방에 먼지가 날렸다. 근처 가게가 로켓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파이줄라의 사촌은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두 명의 삼촌은 로켓의 충격에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다. 떨어진 신체 일부가 바닥에서 움찔거렸다. 잘린 몸이 길 아래까지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고, 흩어진 신체 부위를 보고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는 현장에서 끌려 나가고 있었다. 마치 죽은 고깃덩이가 옮겨지는 것처럼..... 그런데 전투가 너무 격렬해져서 병원에 도착하지도 못 했다. 그는 다리에 파편을 맞았는데, 이틀간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더니 다리가 검게 변했다. 마침내 전투가 잦아들자 아버지와 사촌이 그를 손수레에 싣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급히 수혈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눈을 뜨고 밑을 보니 온통 하얀 붕대뿐이었다. 다리를 절단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으로 모두 12명의 가족을 잃었다. 그런 일들을 잊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시네마 파미르에 가는 것이다. 

 

시네마 파미르의 보스 누르 아카 이야기로는 아프간에 극장이 두세 곳밖에 없단다. 그가 바라는 것은 아프간에 평화가 찾아와서 사람들이 삶을 다시 즐기는 것이다. 그는 아프간 전국에 극장이 생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극장은 문화와 오락의 공간이 될 테니까. 극장은 사람들이 즐겁게 지내고 쉴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오늘은 아프간 영화 '파르쿤다'와 '이스케이프 프롬 데스(Escape from death)' 등 두 편이 상영된다. 아프간의 유명 배우이자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살림 샤힌(Salim Shaheen)의 작품이다. 그는 비종교적 액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이유로 과격 이슬람근본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살해 협박을 받아왔다. 

 

장군 다가르왈이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르쿤다가 코란을 태운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받은 사람들과 지각 있는 젊은이들은 그것이 음모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가 도움을 청했던 이슬람 율법학자가 꾸민 짓이다. 영화 '파르쿤다'는 돈이면 뭐든지 하는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배신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돈을 뜯어낸다. 아프간의 많은 율법학자들이 그렇다. 종교적인 문제다. 다가르왈 같은 사람들의 적은 이런 문제를 이용하고 싶어할 것이다. 

 

영화 상영 10분 전이다.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영화감독 살림 샤힌도 시네마 파미르에 왔다. 관람객 입장이 시작되고 경찰이 몸수색을 한다. 극장은 만원이고, 에와즈는 영사기에 필름을 건다. 여자들도 영화를 보러 왔다. 그만큼 아프간 사람들이 영화 '파르쿤다'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시네마 파미르'의 한 장면

영화가 끝났다. 관객들은 무겁고 어두운 표정으로 극장을 나선다. 사람들이 다 나간 다음에도 시네마 파미르의 단골손님 파이줄라는 남아 있다. 그는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 저 율법학자 같은 자들이 이 나라에 혼란을 일으키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에 매니저 사이드는 '저런 힘 있는 자들이 종교에 먹칠을 하는 거지. 이 나라는 치안도 불안하고  법적 권리나 정의도 없어. 그런 게 있었다면 파르쿤다를 죽인 자들도 응당한 처벌을 받았겠지'라고 맞장구를 친다. 파이줄라는 바로 그런 것들이 아프간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시네마 파미르 모든 직원들이 모여 매니저 사이드의 주재로 기도회를 갖는다. '신이여 그들의 영혼을 천국에서 맞아주시기를!'이라는 기도로 모임은 끝난다. 오늘은 또 직원들 월급을 주는 날이다. 직원 모두에게 월급을 다 주지는 못한다. 영사기사 에와즈는 월급 8천 아프가니를 받았다. 사이드는 시네마 파미르 문단속을 한 다음 퇴근한다. 

 

사이드의 말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극장은 나쁜 곳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극장에 가면 잘못된 길로 빠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아마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나 탈레반을 가리키는 듯하다.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사이드는 그런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극장은 학교다. 영사기와 스크린이 선생님이다. 영사기가 우리에게 말을 한다. 극장에 대한 위협은 문화에 대한 위협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평화다. 그는 늘 아프간을 위해 신에게 기도한다. 우리는 절대로 이 나라를 위한 평화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오늘 아니면 내일 평화가 올 거란 희망을 품어야 한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시네마 파미르의 일상은 어제처럼 '관객 여러분, 시네마 파미르에 잘 오셨습니다. 본 극장은 우리 모두의 것이니 소중히 사용해 주십시요. 극장은 문화공간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반복된다. 직원들에게 시네마 파미르는 이자 희망이다. 또 꿈이기도 하다. 아프간 사람들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진실로 바란다.      

 

다큐 영화 '시네마 파미르'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프간 권력자나 기득권층은 왜 그렇게 속속들이 부패하고 썩었을까? 신정일치 사회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아프간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왜 타락했을까? 탈레반은 왜 영화를 싫어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이슬람극단주의의 해악이나 단점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이들은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일까? 캄보디아의 인간백정 폴 포트(Pol Pot, Saloth Sar)가 지식인들을 대량학살한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아프간에는 언제쯤 평화가 찾아올까? 

 

'시네마 파미르'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내 자신이 아프간 국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안도하게 된다. 아프간처럼 전쟁이 일상인 나라, 부패가 만연한 세계 최빈국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또 하나는 한국이 이슬람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종교 권력자들이 신의 권능을 빌어 일상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숨이 막혀서 살수 없을 것 같다. 

 

2020. 8. 24.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