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Rebellion, L'ordre et la morale)'은 프랑스의 쿠엔틴 타란티노라 불리는 마티유 카소비츠(Mathieu Kassovit, 1967~ )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카소비츠 감독은 극중 주인공 필립 대위 역까지 맡았다. 원제는 'Rebellion, L'ordre et la morale(반란, 질서와 도덕)'이다.
영화 '리벨리온(Rebellion, L'ordre et la morale)' 포스터
1988년 4월 남서 태평양 멜라네시아(Melanesia)에 있는 프랑스령 누벨깔레도니(Nouvelle Calédonie)-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에서 원주민인 카나크(kanak) 무장 독립단체가 프랑스 경찰들을 죽이고, 판사와 경찰 등 27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프랑스 경찰특공대 대장이자 협상전문가인 필립 대위(마티유 카소비츠 분)는 사태 수습을 위해 대원들과 함께 누벨깔레도니로 파견된다.
1774년 뉴질랜드로 가는 길에 라 그랑 떼르(La Grande Terre, 큰 땅)를 발견한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은 자신의 출생지 스코틀랜드(Scotland)를 기념하여 New Caledonia(뉴칼레도니아)라고 명명했다. 'New Caledonia'는 'Scotland'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1778년에는 프랑스의 라 페루스(La Perouse, Jean François de Galaup, 1741~1788)가 이끄는 탐험대가 이 섬을 찾아왔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남서 태평양과 오세아니아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였다. 영국이 호주와 뉴질랜드에 식민지를 건설하자, 나폴레옹 3세는 1853년 말 누벨깔레도니를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유럽인들은 천연두, 홍역, 매독, 한센병 등 전염병들을 가져와 많은 남서 태평양 원주민들이 희생되었다.
남서 태평양 지역 특산품인 백단목(白檀木) 무역이 쇠퇴하자 유럽인들은 누벨깔레도니, 프로방스드일로요테(Province des îles Loyauté), 바누아투(Vanuatu),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 솔로몬 제도(Solomon Islands) 원주민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피지(Fiji)와 호주 퀸즈랜드(Queensland)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노예무역(奴隸貿易, slave trade)을 완곡하게 'blackbirding'이라고 표현했다. 백인들의 야만적인 노예무역은 20세기 초반에 중지되었다. 영국인들은 노예무역 범죄의 희생자들을 카나카스(Kanakas)라고 불렀는데, 누벨깔레도니가 프랑스에 합병된 뒤에는 이 원주민들을 카나크 또는 카낙(Kanak)이라고 불렀다.
영국이 호주에서 했던 것처럼 프랑스는 1864년부터 1922년까지 누벨깔레도니 남서 해안을 따라 세운 유형지에 모두 2만2천 명의 중죄인들을 배에 실어 보냈다. 이때 누벨깔레도니에서 전 세계 매장량의 25%를 차지하는 니켈 광산이 발견되면서 프랑스인 등 유럽 이주민과 아시아 출신 계약 노동자들이 대량 유입되었다. 같은 기간 누벨깔레도니 원주민인 카낙인들의 숫자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유럽인들이 들여온 전염병과 코드 드 랭디제나(Code de l'Indigénat)라는 인종차별정책 때문이었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카낙인들의 주거와 이동의 자유, 토지의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이에 따라 이주민이 원주민보다 많아지는 인구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6년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편입된 누벨깔레도니 주민들은 프랑스 시민이 되었다. 1976년 프랑스는 누벨깔레도니에 극히 제한된 자치를 허용하고, 파리에서 행정관을 파견했다.
장 마리 티바우(Jean-Marie Tjibaou)
1985년부터 장 마리 티바우(Jean-Marie Tjibaou, 1936~1989)가 이끄는 카낙 사회주의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Kanak Socialiste, FLNKS)은 누벨깔레도니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카낙 사회주의민족해방전선(FLNKS)의 독립투쟁은 1988년 4월 우베아(Uvea) 섬 피야웨 기지에서 일어난 유혈 인질극으로 절정에 달한다.
영화 '리벨리온(Rebellion, L'ordre et la morale)'의 한 장면
누벨깔레도니 우베아 섬 인질 사태 현장에 도착한 필립 대위는 사건이 테러가 아닌 단순한 우발적 사고임을 알게 된다. 필립 대위는 협상을 통해 인질들을 석방시키려고 노력한다. 협상 과정에서 필립 대위의 경찰부대원들도 인질이 되면서 사태는 점점 더 꼬이기 시작한다. 필립 대위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이 타결되려는 순간 프링스 정부의 유혈 진압 특명이 떨어지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영화 '리벨리온(Rebellion, L'ordre et la morale)'의 한 장면
때는 마침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좌파 사회당(Parti Socialiste, PS)의 프랑수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 1916~1996)과 신드골파 집단인 우파 공화국연합(RPR)의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1931~2019) 두 후보 간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벨깔레도니 인질 사태는 TV 토론에서도 주요 쟁점이 된다. 미테랑은 인질 사태에 대해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반면 시라크는 FLNKS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식민지 누벨깔레도니의 우발적인 작은 인질 소동을 테러리즘에 의한 폭동이라고 선동하면서 강경 진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은 정권야욕을 숨긴 채 유혈 강경 진압만이 프랑스의 국익과 위신을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속인다. 프랑스 군부도 강경파 정치인들의 유혈 진압 주장에 동조한다.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었던 우베아 인질 사태는 협상 담당 필립 대위의 손을 떠나 대테러 진압을 위해 특수훈련을 받은 테러진압부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정치인의 권력야욕으로 인해 인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특명을 받은 테러진압부대는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나선다.
영화 '리벨리온(Rebellion, L'ordre et la morale)'의 한 장면
우베아 작은 섬에 전투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프랑스 테러진압부대는 카낙인 토벌 작전에 돌입한다. 필립 대위도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작전에 참가한다. 프랑스군의 유혈 토벌작전으로 카낙인 70여명이 사망했다. 필립 대위가 목격한 것은 여기저기 나뒹구는 카낙인들의 시체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바라보는 포로 카낙인의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전투 장면에서 필립 대위가 자신은 뒤쳐진 채 부하들에게 총알이 날아다니는 앞으로 전진하라고 명령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필립 대위의 부하들은 어쩌면 그의 실수로 인질이 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인질들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부하들을 총알받이로 앞장세우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영화는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이 누벨깔레도니에서 자행한 범죄적 추악상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한 개인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거대 권력이 어떻게 좌절시켰는지도 보여준다. 영화는 필립 대위가 관객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진실은 쓰라지지만 기만은 죽음이다.'라는 독백을 던지면서 끝난다. 비극적인 사건의 진실에는 언제나 권력자의 추악한 모습이 드리워져 있다는 메시지다.
타인을 강제로 복종시키고, 타국을 강제로 점령하는 것 자체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다. 따라서 영화 '리벨리온'은 누벨깔레도니 식민지배에 대해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을 대신해서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이 쓴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다.
Rebellion, L'Ordre et la morale(2012) - Trailer French
지금부터는 영화 밖의 이야기다. 우베아 인질 사태 이후 누벨깔레도니는 1988년 프랑스 미테랑 정부와 마티뇽 협약(Accords de Matignon)을 맺었다. 1989년 5월 4일 누빌깔레도니 독립운동 지도자 장 마리 티바우가 암살되었다. 범인은 티바우의 죽음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일 것이다. 1998년 누벨깔레도니는 프랑스 시라크 정부와 누메아 협약(Accords de Nouméa)을 통해서 외교와 국방, 통화정책, 사법권을 제외한 분야에서 자치권을 보장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프랑스로부터 매년 13억 유로(약 1조6600억 원)의 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협약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은 2014년 이후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원주민인 카낙인들의 오랜 투쟁이 거둔 값진 성과였다.
2018년 11월 4일 마침내 프랑스령 누벨깔레도니 독립을 묻는 역사적인 투표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독립안에 대해 유권자의 57%가 반대함으로써 누벨깔레도니 독립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누벨깔레도니 인구의 61%를 차지하는 이주민들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 경제적 타격이 클 것이라는 이유로 독립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독립 투표는 2020년과 2022년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 세 번의 독립 투표가 모두 부결되면 누벨깔레도니는 앞으로 영원히 프랑스령이 된다. 누벨깔레도니 주민 26만 명 중 원주민 비율은 전체 인구의 39%에 불과하다. 27%는 프랑스 등에서 건너온 이주민, 나머지 34%는 아시아나 태평양 섬 출신이다. 앞으로 누벨깔레도니의 독립을 묻는 투표가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것이다. 현재 누벨깔레도니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2020.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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