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가 '토요 명화' 시간에 언론 자유의 소중함을 그린 2017년 영화 '더 포스트(The Post)'를 내보냈다. '누가 이렇게 영화를 잘 만들었을까?' 하고 감독을 보니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였다.
스필버그는 1993년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PARASITE)'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한 번 받고도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스필버그는 그런 상을 두 번이나 받은 것이다. 미국 최고의 배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캐서린 그레이엄 역)과 톰 행크스(Tom Hanks, 벤자민 브래들리 역)의 실감나는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케이블 TV 영화 채널들이 날이면 날마다 재탕, 삼탕, 주구장창 틀어대는 저질 헐리우드 영화나 싸구려 중국 영화 1,000편보다 '더 포스트' 한 편이 훨씬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언론사 사주들과 기자들도 꼭 봐야 하는 영화다. 언론사 사주나 기자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는 책이 필요없다. '더 포스트' 영화 한 편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KBS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 나아가 KBS에 부탁 하나 하자.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만든 영화도 자주 방영하기 바란다. 우리는 너무나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찌들어 있다.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너무나 미국 문화, 미국의 가치에 찌들어 있다. 편식은 건강에도 해롭다는 것을 KBS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 포스트'는 베트남전의 추악한 진실을 미국인들에게 알리려던 워싱턴 포스트(포스트)의 용기있는 사주와 용감한 편집국장, 기자들을 그린 영화다. 따라서 베트남전을 모르고서는 영화 '더 포스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베트남전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아니라 1955년 11월 1일~1975년 4월 30일까지 벌어진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을 말한다. 베트남전은 냉전시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리전쟁 양상을 띠면서 1964년 8월부터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했다. 전선도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로 확대되었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베트남전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게릴라전과 북베트남 정규군인 베트남 인민군의 정규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1964년 8월 미국이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g Incident)을 구실로 부패한 구엔 반 티우 독재정권의 남베트남을 지원함으로써 베트남전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2005년 미국 안전보장이사회의 옛 비밀문건이 해제되어 공개되었을 때 통킹만 사건은 미 대통령 린드 존슨(Lyndon Johnson)이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1965년에는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지상군을 파병했다.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도 남베트남에 지상군을 파병하여 독재자 구엔 반 티우 정권을 위해서 싸웠다.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북베트남은 무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베트남 해방전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이후 8년간의 전쟁 끝에 1973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 그 해 3월 말 미군은 패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철수하였고,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북베트남이 무력 통일을 이뤄 1976년에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베트남전에서 제공권을 장악한 압도적 군사력의 미군은 무자비한 폭격과 공습, 포격을 가하고, 수색 섬멸 작전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비인도적인 무기로 사용이 금지된 네이팜탄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투하하고, 제네바일반의정서에서 사용 금지한 고엽제 등 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희생시킴으로써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베트남전이 장기화하면서 미 대통령 린든 존슨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서 베트남전에 개입했으며,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은 미국민들을 속이고 비밀리에 베트남전을 확대한 사실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타임스) 등 신문을 통해서 폭로되었다. 두 신문의 진실 보도는 미국 내 양심적인 미국인들의 거센 반전 운동을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 군사개입에 대한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영화 '더 포스트'는 관객을 1966년 당시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미 정부 전략분석가 대니얼 엘즈버그(Daniel Ellsberg, 매튜 리즈 분)는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브루스 그린우드 분) 국방장관 아래서 전쟁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존. F. 케네디 정권의 국방장관을 지낸 맥나마라는 베트남전 초기에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군사개입 확대를 정당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맥나마라가 베트남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맥나마라는 후일 미국의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국방장관을 사임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에 희망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막상 기자회견에서는 낙관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엘즈버그는 그런 맥나마라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의문을 품는다. 몇 년 후 랜드 연구소의 분석가로 일하게 된 엘즈버그는 양심의 명령으로 베트남전 보고서를 밀반출하여 타임스 기자에게 넘긴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세월은 흘러 1971년이다.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분)은 아버지와 남편이 죽어 졸지에 사주가 된 인물이다. 신문 편집을 전적으로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톰 행크스 분)에게 맡긴 캐서린은 이사진들로부터는 여성 발행인에 대한 편견에 찬 시선을 받고 있다.
포스트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주식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레이엄과 평소 절친한 사이였던 맥나마라는 그녀를 직접 불러내 타임스에 자신에게 불명예스러운 기사가 실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날 타임스에는 정부가 트루먼에서 존슨까지 30년에 걸쳐 베트남에 군사적 개입을 했다는, 일명 펜타곤 문서가 폭로된다. 포스트의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특종을 경쟁지인 타임스에 빼앗겼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이때 법원은 펜타곤 문서에 대한 보도 금지를 명령하면서 추가 보도를 할 경우 해당 언론과 언론인들을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한다.
포스트의 베테랑 기자 벤 백디키언(Ben Bagdikian, 밥 오덴커크 분)은 펜타곤 문서를 유출한 장본인 엘즈버그와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 백디키언은 엘즈버그로부터 타임스의 것과 같은 펜타곤 문서를 입수한다. 브래들리와 포스트 기자들은 폭로 기사를 준비하고, 포스트의 변호사들과 이사진은 회사를 위협할 수 있는 보도를 반대하고 나선다. 그러나,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미 정부가 개입하여 베트남 전쟁을 조작한 사건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브래들리 편집국장을 신뢰한 그레이엄은 깊은 고심 끝에 펜타곤 문서 보도를 지시한다. 변호사들은 백디키언으로부터 문서 입수처가 타임스와 같은 것이라는 대답을 얻어내고, 이를 보도하면 캐서린과 브래들리가 구속되고 회사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서 그레이엄의 결정을 철회시키려고 한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그레이엄은 발행인으로서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는다. 그레이엄은 기사 보도를 반대하는 이사진과 변호사들 앞에서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라고 선언한다. 브래들리의 아내는 그레이엄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치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렸음을 칭송한다.
언론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
포스트의 폭로 기사가 터지자 닉슨은 곧바로 보복 조치를 취한다. 타임스와 포스트는 함께 나란히 법원의 피고석에 선다. 미 연방 대법원은 '우리 선조들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언론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취지로 두 신문의 손을 들어준다. 이에 다른 언론들도 추가 보도를 하고 나선다. 닉슨은 화가 나서 포스트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금한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1년이 지나고.....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을 암시하는 장면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벤자민 브래들리(Benjamin Bradlee) 편집국장은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를 지휘하면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브래들리는 그 공로로 2013년 미국 대통령 자유메달, 200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 자유메달은 미국 국가안보 및 세계평화와 문화에 기여한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 훈장이다. 예의와 격식을 중시하는 프랑스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수훈은 다이상 비할 데 없는 영예로 여겨지며, 훈장 수훈자는 각종 국가적 행사에서 특별한 예우를 받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추악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도중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다. 미 의회와 연방 대법원은 맡은 바 그 직무를 완수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전통을 수호했다. 닉슨 사임 후 그의 형사책임은 후임 대통령 제럴드 포드가 9월 8일 재임기간 중에 저지른 닉슨의 모든 죄에 대해 특별사면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부패한 구엔 반 티우 독재정권을 위해 꽃다운 미국 청년들과 한국 청년, 그리고 베트남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가! 존슨과 닉슨 같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부도덕한 인간들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명심해야 한다.
'포스트(post)'는 '기둥, 푯대'라는 뜻이 있다. 신문 이름을 '포스트'로 지은 것은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올바른 이정표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ㅇㅇ일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귀한 이름이다.
2020.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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