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는 한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조현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 이 주장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박정희 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조현래는 주장한다.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林 山>
[두 얼굴의 무궁화] 서울 집. 우리 아이들 보, 영, 정은 근화(槿花, 무궁화)유치원 아이들과 지금 활찍 핀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이왕직 화원에 갔다. - 1934. 4.27. 금. 아름답고 따뜻함. 윤치호 일기 윤치호에게 이 시절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따뜻했을 것이다. 유치원 이름도 '무궁화'뿐만이 아니다. 그가 '천양무궁(천황 영토의 무궁한 확장)'을 함축한 꽃 이름 '무궁화'라고 작명하고 그걸 또 한국의 국화로 정하고...(이하 생략)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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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유튜브]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친일파 자녀들만 다닐 수 있는 귀족유치원인 무궁화(근화)유치원. 무궁화 도입자이자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는 아이들을 귀족 유치원 무궁화(근화)유치원에 보냈다.(강효백 유튜브, 2020. 7.16.) |
《fact check》 : 전혀 사실이 아니다.
▷1930년대 말 이후 친일행각이 뚜렷해진 윤치호가 자신의 자녀를 근화유치원에 보낸 것은 맞다.
Seoul home. Our little children 寶, 瑛, 珽 went into Royal Garden(李王職花園) with the Kun Wha Kindergarten children to see the cherry blossoms, now in their glory. Just to see our little ones enjoy the day, I went too, after lunch. An immense crowd―so much, so I didn't enjoy the show. The Seoul Electric Co. and the King Yi Household are scooping in ten sen and five sen nickels by the bushels. <윤치호 일기 10권, 1934.4.27.>
○ 번역 : 27일《금요일》 아름다움. 따뜻함. 서울 집. 우리 아이들 寶(보), 瑛(영), 珽(정)은 근화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지금 활짝 핀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이왕직화원에 갔다. 나 또한 점심식사 후 우리 아이들이 그 날을 즐기는 것을 보기 위해 갔다. 군중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그 광경을 즐기지 못했다. 서울전기회사와 이왕가는 엄청난 돈을 끌어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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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치호는 친일파들과 교류했지만 선교사 언드우드와 아펜젤러뿐만 아니라 남궁억, 안창호, 이승만, 여운형, 안재홍 등 독립운동가들과도 교류했다. 윤치호가 독립운동가와 교류했다고 하여 독립운동가가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윤치호가 자녀들을 근화유치원에 보냈다고 하여 근화유치원이 일본인과 친일파 자녀들만 다닐 수 있는 귀족유치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번역 : 16일《토요일》 맑음. 서울 집. 오전 10시에 어머니, 아내와 함께 나는 근화유치원에 아들 정선이 졸업하는 것을 보러 갔다. 작은 아이가 연설을 훌륭하게 했다. 김미리사(金美理士)양이 이 유치원을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돈이 없어서 그녀는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에 단지 한 명의 교사만을 데리고 있다. 방청소를 맡길 관리인도 없다. 그녀는 부모들로부터 기부금을 받고 있다. 졸업식을 위해 우리는 30원을 내야 했다. 김양은 능력 있는 여자이지만 야망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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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화유치원은 한국의 여성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미리사(金美理士, Kim Melissa, 1880~1955; 이후 차미리사로 개명)가 1920년대 초반에 설립한 근화여학교의 부설유치원이었다.
- 근화유치원은 조선인 여성 교육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것이었다(1929.2.22.자 『동아일보』 기사 참조).
-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된 차미리사는 미국에 유학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차미리사는 귀국한 후 "나라를 위하여 피 흘리는 것은 백성 된 의무다"라는 신념으로1920년 부인야학강습소로 출발해 1925년 근화여학교를 설립하고 여성계몽과 독립 운동에 헌신하였다[한상권,『차미리사 평전(일제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 푸른역사(2008) 참조]
-근화(槿花, 무궁화)를 모토로 내세운 것은,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인식한 한서 남궁억과 배화여고에서 같이 근무한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근화여학교를 이끈 '근화학원'은 중일전쟁(1937) 이후 근화가 곧 무궁화라며 불온시하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덕성학원'으로 개칭했다. 덕성여자대학교의 전신이었다.
<사진2> 동아일보, 「근화유치원 새로이 설립되어」, 1929.2.22.자 기사
▷강효백은 오로지 일본이 무궁화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만을 바라본다. 그것도 사실이 아닌 허위와 왜곡된 내용으로!
▷우리의 무궁화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는 모르는 강효백은, "나라를 위하여 피 흘리는 것은 백성 된 의무다"라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던 차미리사가 설립한 근화유치원을 친일 귀족학교로 만들었다. 우리의 무궁화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는 모르는 강효백의 눈에는, 달에 있는 계수나무를 베어내고 무궁화를 심자고 한 만해 한용운의 옥에서 외치는 절규도 모두 친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강효백은 스스로 애국한다고 외친다! 애국한다고 외치고 또 외친다!
無窮花를 심으과저(獄中詩) 쇠창을 넘어와서 나의 마음 비춘 달아 桂樹나무 버혀내고 無窮花를 심으과저
달아달아 밝은 달아 님의 거울 비춘 달아 쇠창을 넘어와서 나의 품에 안긴 달아 이즐어짐 잇슬 때에 사랑으로 도우과저 달아달아 밝은 달아 가이업시 비춘달아 쇠창살을 넘어와서 나의 넉을 쏘는 달아 구름재(嶺)를 넘어가서 너의 빗을 따르과저 - 만해 한용운, 「無窮花를 심으과저」, 『개벽』제27호(1922.9.1.), 1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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