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마르꼬 김인국 신부 자선 주일 강론 - 남이 되는 능력

林 山 2020. 12. 13. 15:10

자선 주일(慈善主日)을 맞아 충주 연수성당 마르꼬 김인국 신부가 '남이 되는 능력'이라는 제목의 강론을 보내왔다. 대림 주일(待臨主日)은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 탄생 대축일 전의 4주일 동안을 말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기 결정한 바 있다. 

 

대림(待臨)이란 메시아(Messiah, 구원자, 해방자)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미륵하생(彌勒下生)과도 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다. 미륵하생이란 미륵보살(彌勒菩薩, 慈氏菩薩)이 고타마 싯다르타(悉達多喬達摩)-샤카무니(釋迦牟尼)의 입적(入寂) 후 56억 7천만 년 뒤에 도솔천(兜率天)으로부터 하생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도(成道)한 후 3회의 설법으로 아직 제도 받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믿음을 말한다. 

 

자선이란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남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는 것이다. 자선은 유교(儒敎, Confucianism)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단(四端) 가운데 하나인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출발한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자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선은 크라이스트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요, 샤카무니의 가르침인 자타불이(自他不二)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자타불이란 남을 내 몸과 같이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이요, 내가 남이 되는 동시에 남을 나로 받아들이는 것이요, 나아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이다. 김인국 신부가 말한 '나의 들숨이 곧 너의 날숨'이라는 깨달음이다. 다음은 강론 '남이 되는 능력' 전문이다.   


연수성당 사제관(2020. 12. 13)

남이 되는 능력 - 마르꼬 김인국 신부

 

코로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일 확진자가 1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모두 걱정이다. 한편으로 조심하고 한편으로 절제해야겠다.

 

‘비대면’으로 지내는 게 싫어서, 대면하시기 위해 강생하셨음을 기억하고 또 기다리는 이 때 당분간 조금 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니 묘한 기분이 든다.

 

눈이 내리는 주일 아침 어렵게 모였으니 우선 서로 힘을 나누자.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힘을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우리 하느님이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이사 35,4) 

 

1. 우리가 다 함께 배운 것

 

생각지도 못한 재난이 벌어진 2020년에 우리가 배운 게 하나 있다. 남이 살아야 내가 산다. 남이 건강해야 내가 건강하다. 남이 잘 돼야 내가 잘 된다. 남이 잘 되는 그 만큼 내가 잘 된다.

 

한마디로 ‘타인의 가치’이다. 올해 전 국민이, 올해 전 인류가 다 함께 공부한 바다. 예전 같으면 그 어떤 재난소식이 들려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생명과 운명이 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맘으로 실감하고 있다.

  

2. 남이 되는 능력

 

금년 대림절 묵상 주제로 ‘남’이라는 한 글자를 정했다. 성당 외벽에 걸린 현수막에서 이런 구절을 보셨을 것이다. 남이 되는 일을 하고, 남이 되는 밥을 먹고, 남이 되는 공부를 하고 … 남이 될 수 있는 능력, 내가 가진 가장 큰 힘, 남이 될 수 있는 만큼이 나이다.(박노해의 시, ‘남이 될 수 있는 능력’ 중에서)

 

사람이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우리가 물려줄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하는가? 평생 이 문제를 붙들고 세상 안 가본 데가 없이 돌아다녔던 어느 시인이 내린 결론이다. 

 

나의 가장 위대한 힘은 남이 되는 데 있다. 남이 될 수 있는 만큼이 바로 나다. 오늘까지 내가 이룩한 나는 아직 내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 아니오? 엘리야가 아니오? 그 예언자가 아니오 했을 때, 요한은 “나는 아니오”만 세 번 거듭하다가 마지막까지 “나는 내가 아니오.”라고 했다. 

 

3. 어디에다 쓸 힘인가

 

오늘 이사야 예언자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하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셨으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렸으니 이것은 못난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석방을 선포하라고 주신 힘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그리스도) 귀하게 해주시고, 하느님이 거룩한 영을 내 마음에 쏟아주시어 풍요롭게 해주신 것은 우선 남이 잘 되도록 함이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네가 잘 되라고 주신 선물이었다.  

 

남을 모셔서, 남을 살려서, 남을 키워서 내가 커지고, 내가 살아지고, 내가 높아지는 이치가 얼마나 신비로운가.

 

꼭 그렇게 살아본 사람이 하는 말이 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기쁘다/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할 수밖에 없다/모든 일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1테쌀 5,16-18)

 

4. 무엇이 믿음인가? 

 

성탄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느님과 연합하여 이룬 사건이다.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을 밑바닥에서 나는 소리, <밑음音>, <밑소리>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틀림없이 하늘의 목소리인데 들리기는 땅바닥으로부터 들려오는 저 낮은 신음소리. 춥고 배고픈 생명의 불쌍한 그 밑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던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마리아였다. 

 

오늘 자선 주일이다. 밑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자. 그만큼 나는 내가 되는 것이니. 

 

오늘 많은 분들이 나오지 못하셨다. 밑에서 나는 여린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