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諱植字子長姓林氏貫長興翰林學士諡忠節諱八及之后也. 諱世殷侍中平章事諡忠貞諱頤進士文大提學冠山伯諡忠毅諱得荑官工曹判書號湖隱諱雨所官至尙州判官再任牧使號芝峰仍居尙州池洞. 諱重敬大護軍諱貴枝通訓大夫行鴻山縣監號三松移居于醴泉西栗峴於公五代祖也. 高祖諱長春厚陵參奉曾祖諱德元將仕郞司僕寺判官祖諱用漑通訓大夫行軍資監判官考諱忠國恭陵參奉兼司憲府監察妣恭人順天朴氏習讀裕之女. 宣廟十一年丁亥生公官通政大夫副護軍顯宗八年丙午卒享年八十. 公仁厚多男鄕黨稱之. 墓在栗峴松谷先塋下壬坐原有碣配淑夫人全州李氏副尉遇春之女配淑夫人安東權氏通政淨之女. 有七男二女宗厦支厦生員大厦柱厦護軍翊厦扶厦全厦女金堯錫權壽龜. 宗厦二女朴世稷宋奎輝. 支厦二男一女萬庇萬庥萬庇系伯父女李永佑. 大厦一男二女萬重女李禧權鍵. 柱厦二男萬㝡萬葉翊厦二男萬源萬蕃. 扶厦一男萬浦全厦無后. 以下不錄. 公以文學行誼士友推重與劍巖金公錕爲道義交蹟載孤山老人群仙稧錄鳴呼舊有短碣歲久而泐與僉宗合謀改竪公之遺事略記萬一
歲庚寅小春上浣 不肖 後孫 永漢 拜手 謹識
호군공(護軍公)의 이름은 식(植)이요, 자(字)는 자장(子長)이며, 성은 임씨(林氏), 관(貫)은 장흥(長興)이니 한림학사(翰林學士) 시(諡) 충절(忠節) 팔급(八及) 조(祖)의 후손이다. 중세에 이르러 세은(世殷祖) 조는 시중(侍中) 평장사(平章事, 주1)를 지냈으며 시호(諡號)는 충정(忠貞)이다. 이(頤) 조는 진사(進士) 문관(文官)으로서 대제학(大提學, 주2)을 지내고 관산백(冠山伯, 주3)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득이(得荑) 조는 공조판서(工曹判書, 주4)를 지내고 호는 호은(湖隱)이다. 우소(雨所) 조는 상주판관(尙州判官, 종5품)을 지낸 뒤 다시 상주목사(牧使, 정3품)를 제수받았고 호는 지봉(芝峰)이며, 상주(尙州) 지동(池洞, 못골)에 거주하였다.
중경(重敬) 조는 대호군(大護軍, 주5)을 지냈다. 귀지(貴枝) 조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정3품 당하관 문관 품계) 행홍산현감(行鴻山縣監, 주6)을 지내고 호는 심송(三松)이며 예천(醴泉) 서쪽 율현(栗峴, 밤재, 밤고개)으로 이주하였으니 곧 호군공의 5대조(五代祖)이다. 장춘(長春) 고조(高祖)는 후릉참봉(厚陵參奉, 종9품), 덕원(德元) 증조(曾祖)는 장사랑(將仕郞, 문산계 종9품)에 이어 사복시(司僕寺) 판관(判官, 종5품), 용개(用漑) 조는 통훈대부 행군자감판관(行軍資監判官)을 지냈다. 충국(忠國) 고(考, 돌아가신 아버지)는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이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정6품)을 지냈으며, 비(妣, 돌아가신 어머니) 공인(恭人, 주7) 순천박씨(順天朴氏)는 습독(習讀, 종9품 무관) 유(裕)의 따님이다.
호군공은 선조(宣祖) 11년(1578) 정해생(丁亥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문산계 정3품 당상관 품계) 부호군(副護軍, 종4품 무관)을 지냈고, 현종(顯宗) 8년(1667) 병오년(丙午年)에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공은 성품이 인후(仁厚)하시고, 자녀를 많이 두셔서 고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호군공의 묘소는 율현 송곡(松谷, 솔골) 선영(先塋) 아래 임좌(壬坐, 북쪽에서 서쪽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에 있고,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배위(配位) 숙부인(淑夫人, 주8) 전주이씨(全州李氏)는 부위(副尉, 의빈부 정3품 관직) 우춘(遇春)의 따님, 또 한 분의 배위 숙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는 통정(通政, 정3품 당상관) 정(淨)의 따님이다.
호군공은 7남2녀를 두었는데, 아드님은 종하(宗厦), 지하(支厦) 생원(生員, 生進科에 급제한 儒生), 대하(大厦), 주하(柱厦) 호군(護軍, 정4품 무관), 익하(翊厦), 부하(扶厦), 전하(全厦) 등 7명이고 사위는 김요석(金堯錫)과 권수구(權壽龜)이다. 종하(宗厦)분은 따님 둘을 두었는데, 사위는 박세직(朴世稷)과 송규휘(宋奎輝)다. 지하(支厦)분은 아들 만비(萬庇), 만휴(萬庥)와 1녀를 두었는데, 만비는 백부(伯父) 종하분에게 양자로 가고, 사위는 이영우(李永佑)다. 대하(大厦)분은 아들 만중(萬重)과 2녀를 두었는데, 사위는 이희(李禧)와 권건(權鍵)이다. 주하(柱厦)분은 아들 만최(萬㝡)와 만엽(萬葉) 2남을 두었다. 익하(翊厦)분은 아들 만원(萬源)과 만번(萬蕃) 2남을 두었다. 부하(扶厦)분은 만포(萬浦) 1남을 두었으나 전하(全厦)분은 후사가 없다. 그 이하는 기록할 수 없다.
호군공은 문학(文學) 행의(行誼, 행실)가 출중하셔서 사우(士友)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셨다. 특히 명현(名賢)이신 검암(劍巖) 김곤(金錕) 선생과 도의(道義)로써 교유한 행적이 고산(孤山) 노인군선계(老人群仙稧)에 기록되어 있다. 오호라! 옛날에는 호군공의 비석 등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 퇴락하고 파손되어 종족(宗族)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 다시 비석을 세우고 공의 사적 일부를 여기에 간략하게 적는다.
경인년(歲庚寅) 음력 10월 상순(小春上浣) 불초(不肖) 후손(後孫) 영한(永漢) 큰절을 올리고(拜手) 삼가 기록함(謹識)
주1) 시중(侍中)은 고려 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최고 관직이다. 종1품 재상직의 통칭이며, 고려 후기에는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이라고도 하였다. 평장사(平章事)는 고려 문종 때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문하평장사, 중서평장사가 있었으며, 정원은 각 1인이었다. 품계는 모두 정2품이었다.
주2) 대제학(大提學)은 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에 둔 정2품 벼슬이다. 전임직이 아니라 타관이 겸임하는 겸직이다. 때로 종2품관도 임명했다. 관직은 둘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두 관서의 대제학을 겸하는 것이 상례였다. 국가의 문한을 총괄하는 지위로 반드시 문과 출신 중에서도 학문이 높은 사람을 임명했다.
주3) 관산(冠山)은 장흥(長興)의 별호이다. 천관산(天冠山, 723m)을 줄여서 관산이라고도 한다. 장흥군에는 관산읍(冠山邑)이 있다.
주4) 공조판서(工曹判書)는 조선시대 6판서(六判書) 중의 하나이고, 공조(工曹)의 으뜸 벼슬로 정이품(正二品)이며 현재의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아래로 공조참판(工曹參判, 종2품), 공조참의(工曹參議, 정3품 당상) 각 1인, 공조정랑(工曹正郞, 정5품), 공조좌랑(工曹佐郞, 정6품) 각 3인이 있었다.
주5) 대호군(大護軍)은 조선시대 무관직의 하나이다. 건국초에는 10위의 부지휘관으로 대장군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곧 도위첨사로 개칭되었다가 태종초에 이르러 대호군으로 되었다. 문종~세조 연간에 10위는 5위체제로 확립되었는데, 대호군은 5위의 부지휘관으로 계속 존재했다. 품계는 종3품이고, 정원은 14명이었다.
주6) 행홍산현감(行鴻山縣監)의 행(行)은 품계보다 낮은 관직을 받게 될 때 붙인다. 정3품 당하관 문관인 통훈대부가 종6품 홍산현감을 제수받았으니 행(行)을 앞에 붙인 것이다.
주7) 공인(恭人)은 정5품과 종5품 문무관의 적처(嫡妻)에게 내리던 외명부(外命婦)의 작호(爵號)이다. 1396년(태조 5)에는 4품 문무관의 정처에게 내리는 작호였으나, '경국대전' 이후 5품의 아내에게 봉작되었다.
주8) 숙부인(淑夫人)은 문무관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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