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지방에서는 3월 중순이 지나면 냉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냉이는 이제 도심지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아스팔트 도로 갈라진 틈바구니나 시멘트 보도 블럭 사이를 뚫고 올라와 작고 햐얀 꽃을 피워 올리는 냉이를 볼 때마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새삼 감탄하곤 한다.
식탁에 냉이향이 풍기면 새봄이 왔다는 신호다. 된장 찌개를 끓일 때 냉이를 넣으면 풍미의 차원이 달라진다. 이처럼 냉이는 이른 봄 식탁에 계절의 향기를 담뿍 전해주는 고마운 나물이다. 냉이는 산과 들 어디서나 흔하게 자라기에 조금만 발품, 손품을 팔면 봄철 식탁을 풍성하게 차릴 수 있다. 냉이의 꽃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이다. 사람들에게 뿌리부터 잎까지 봄철 나물로 모든 걸 바치는 냉이에게 잘 어울리는 꽃말이 아닌가 한다.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국생관)은 냉이를 피자식물문(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Angiospermae) 목련강(木蓮綱, Magnoliopsida) 풍접초목(風蝶草目, Capparales) 십자화과(十字花科, 배추과, Brassicaceae) 냉이속(Capsella)의 관속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다음백과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는 냉이가 양귀비목(楊貴妃目, Papaverales) 십자화과 냉이속의 두해살이풀로 분류되어 있다. 국생정의 과명(科名)은 배추과(Brassicaceae)다. 국가 기관 사이에 용어의 통일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는 냉이(추천명), 나생이, 나숭게, 내생이 등의 국명(國名), 냉이(추천명), 내생이 등의 북한명이 등재되어 있다. 국생정 등재 국명은 냉이(추천명), 나생이(비추천명)다. 다음백과 국생정에는 나시, 나상구, 나생이, 나숭개, 제채(齊菜) 등의 국명이 실려 있다. 충주 지방에서는 냉이를 나생이라고 부른다.
국표, 국생정, 국생관 등재 냉이의 학명은 캅셀라 부르사-파스토리스 (린네.) 메디쿠스[Capsella bursa-pastoris (L.) Medik], 다음백과 국생정 등재 학명은 Capsella bursa-pastoris (L.) L.W.Medicus다. 냉이속 식물은 국표에 냉이 1종만 등재되어 있다.
속명 '캅셀라(Capsella)'는 '작은 상자(small box), 용기, 통(case)'이라는 뜻의 라틴어 명사 '캅사(capsa)'에 지소형(指小形) 근대 라틴어 접미사 '-엘라(-ella)'가 붙어서 이루어진 근대 라틴어 명사다.
종소명 '부르사-파스토리스(bursa-pastoris)'에서 '부르사(bursa)'는 '은신처, 가죽(hide), 포도주 담는 가죽 부대(wine-skin)'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부르사(búrsa)'에서 온 후기 라틴어(4세기) 명사다. '파스토리스(pastoris)'는 '양치기(A person who tends sheep, shepherd)'라는 뜻의 라틴어 명사 '파스토르(pāstor)'의 속격 단수형이다. 합쳐서 '양치기의 지갑(purse of the shepherd)'이란 뜻이다. 삼각형 모양의 열매 캡슐을 표현한 이름이다. 캡슐의 뾰족한 끝은 가느다란 줄기에 붙어 있고, 꼭대기에 홈이 있다(Fiowers of India).
'린네(L.)'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이다. 린네는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현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린다. '메디쿠스(Medik)'는 독일의 의사 겸 식물학자이자 정원사 프리드리히 카지미르 메디쿠스(Friedrich Kasimir Medikus, 1736~1808)다. 'Medikus'는 'Medicus'라고도 쓴다. 'L.W.Medicus'는 프리드리히 카지미르 메디쿠스의 아들로서 독일의 산림/농업대학 교수를 지낸 루트비히 발라드 메디쿠스(Ludwig Walrad Medicus, 1771~1850)다.
국표, 국생정 등재 냉이의 영문명은 냉이(Naengi) 또는 세퍼즈 퍼스(Shepherd’s purse)다. 'Naengi'는 한글 '냉이'의 영문 표기다. '세퍼즈 퍼스(Shepherd’s purse)'는 종소명이 그대로 영문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다음백과 국생정, 일본어판 Flora of Mikawa(三河の植物観察, FOM) 등재 영문명은 세퍼즈 퍼스(Shepherd’s purse)다.
국표, 국생정, FOM 등재 냉이의 일문명은 나즈나(ナズナ, 薺)이다. FOM에는 펜펜구사(ペンペングサ)라는 별명도 실려 있다. 별명은 열매가 삼각형이고, 샤미센(三味線)의 바치(バチ, 撥, 채)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FOM). 열매의 한 부분을 잡아당겨 펴고 휘두르면서 놀면 '펜펜(ペンペン)'이라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マイナビ農業).
중국어판 바이두백과(百度百科) 등재 냉이의 중문명은 지(荠), 위키백과(維基百科) 등재 중문명은 지차이(荠菜)다. 百度百科에는 지차이(荠菜), 링쟈오차이(菱角菜), 띠미차이(地米菜), 지에(芥, 까이)의 별명이 실려 있다. 維基百科에는 후셩차오(护生草), 띠차이(地菜), 링자차이(菱闸菜) 등의 별명도 등재되어 있다.
지차이(荠菜)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재된 문헌은 밍(明)나라 의학자 이싀젠(李时珍)이 쓴 본초서인 '뻰차오강무(本草纲目)'다. 이 책에서는 지차이(荠菜)의 종류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잎과 꽃, 줄기가 모두 작은 샤지(沙荠)가 맛이 가장 좋다고 하였으며, 줄기가 단단하고 털이 있는 것을 시미(菥蓂, 황새냉이)라고 하는데, 맛이 매우 좋지 않다고 하였다.
냉이는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한강토(조선반도)에서는 전국 각지에 야생한다(국생정). 나즈나(薺)의 원산지는 유라시아, 아메리카다. 일본에서는 귀화종(帰化種)이다. 전 세계에 약 8종이 있다(FOM).
지(荠)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전 세계 온대 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거의 모든 성(省)에 분포한다. 재배도 한다(百度百科). 지차이(荠菜)는 동유럽과 소아시아에서 유래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흔하게 분포한다. 종소명은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작은 상자(小盒子)' 또는 '목자의 지갑(牧人的钱包)'을 의미한다(維基百科).
냉이는 땅속에 원뿌리가 자라며, 뿌리는 맛이 달다. 키는 높이 10~50cm 정도까지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전체에 털이 없으며, 줄기 상부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근생엽(根生葉)은 많이 돋아서 지면에 퍼지며, 엽병(葉柄)이 있고, 두대우열(頭大羽裂)된다. 열편(裂片)은 좁고 길며, 유이편(有耳片) 또는 뭉뚝한 치아(齒牙) 모양 톱니가 있다. 줄기에 나는 잎은 어긋나며 피침형(披針形)인데, 밑이 귓불 모양으로 되어 줄기를 반쯤 감싼다. 줄기잎의 가장자리는 깃꼴로 갈라지지만, 위로 갈수록 크고 날카로운 이 모양으로 된다.
꽃은 5~6월에 원줄기 끝에서 흰색의 십자(十字) 모양 꽃부리가 많이 달려 총상꽃차례(總狀花序, raceme)를 형성하며, 화경(花莖)이 있다. 꽃부리는 소형이며, 꽃받침조각은 4개로서 긴 타원형(楕圓形)이다. 꽃잎도 4개이며 거꿀달걀 모양이다. 네 개의 긴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편평한 도삼각형(倒三角形)이며, 요두(凹頭, truncate)이고 털이 없다. 종자(種子)는 20~25개 들어 있다.
냉이는 한강토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봄나물 가운데 하나이다. 냉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고들빼기, 씀바귀, 소리쟁이, 물쑥, 달래와 함께 나올 만큼 예로부터 한강토인들에게 중요한 봄나물이었다. 겨울에서 이른 봄 꽃자루가 나오기 전에 냉이를 채취해 겉절이를 하거나 데쳐서 죽이나 밥,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나물이나 무침으로도 먹는다. 냉이는 건강식품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감기나 몸살을 앓을 때 따끈한 냉이국은 훌륭한 치료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냉이는 또 소화(消化, digestion), 흡수(吸收)를 촉진시켜 건위제(健胃劑, stomachic) 역할도 한다.
중국에서 냉이는 약용 가치가 높아 '채소의 감초(菜中甘草)'로 알려져 있으며, 한(漢)나라 말기에 나온 본초서 '밍이비에루(名医别录)'에 '냉이는 화비(和脾), 이수(利水), 지혈(止血), 명목(明目)의 효능이 있다.'고 하였다. 중국에서 냉이는 산후출혈(産後出血, postpartum hemorrhage) 및 월경과다증(月經過多症, Menorrhagia)을 치료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냉이는 또한 영양가가 높고 비타민 C와 카로틴이 풍부하여 신체의 면역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싀징·구펑(诗经·谷风)'과 '추치·뻬이후이펑(楚辞·悲回风)'에서는 냉이를 고결한 군자(君子)의 모습에 비유했다. 수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도 냉이가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은인(隐忍)과 절제(節制)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중국인들은 음력 3월 3일 냉이꽃에 삶은 달걀(鷄卵)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 탕(唐)나라 때는 만두(饅頭)와 춘권(春卷)을 빚을 때 소로 냉이를 넣었다. 성질이 따뜻한 냉이를 넣어 양기(陽氣)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중국 북방에서는 봄이면 냉이로 만두와 춘권을 빚는다.
일본에서도 냉이는 매우 중요한 봄나물이었다. 일본에서 냉이는 봄을 맞으며 먹던 미나리, 떡쑥, 별꽃, 광대나물, 순무, 무 등과 함께 칠종채(七種菜) 중 하나였다. 봄을 축하하는 일본인들의 음식에 냉이가 빠져서는 안 되었다.
냉이의 전초(全草)를 본초명 제채(薺菜), 꽃차례는 제채화(薺菜花), 종자는 제채자(薺菜子)라 하며 약용한다. 제체는 뿌리를 포함한 전초를 3~6월 개화시에 캐어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린다. 제채는 화비和脾), 이수(利水), 지혈(止血), 명목(明目)의 효능이 있어 이질, 수종(水腫), 임병(淋病), 유미뇨(乳糜尿, 단백뇨), 토혈(吐血), 혈변(血便), 혈붕(血崩, 자궁출혈), 월경과다, 목적동통(目赤疼痛)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 또는 환제(丸劑), 산제(散劑)로도 복용한다. 외용시(外用時)에는 가루를 만들어 붙인다. 짓찧어서 붙이거나 즙(汁)을 내어 환부(患部)에 바르기도 한다.
제채화는 이질, 붕루(崩漏, 자궁출혈)를 치료한다. 그늘에서 건조하여 가루내어 대추 달인 물로 복용하면 구리(久痢)가 치유되고, 소아의 유적(乳積)을 치료할 수 있다. 소존성(燒存性)으로 초탄(炒炭)하여 복용하면 적백리(赤白痢)가 낫는다. 달여서 복용하거나 가루로 만들어 복용한다. 제채자는 여름에 과실이 익으면 과지(果枝)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종자만 떨어낸다. 제채자는 거풍명목(祛風明目)의 효능이 있어 목통(目痛), 녹내장(綠內障), 예장(翳障, 角膜片雲)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한다(국생정).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제채(薺菜), 제채화(薺菜花), 제채자(薺菜子) 등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한의사들도 임상에서 이들 한약재들을 거의 안 쓴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 : 채소>에 '제채(薺菜, 냉이)는 성질이 따뜻하고[溫]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간기를 잘 통하게 하고 속을 고르게 하며 5장을 편안하게 한다. ○ 밭이나 들에 나는데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 냉이로 죽을 쑤워 먹으면 그 기운이 피를 간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에 눈이 밝아진다[본초]. ○ 음력 8월은 음 가운데 양이 포함되어 있는 때이기 때문에 양기(陽氣)도 생긴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냉이와 밀이 다시 살아난다[참동계의 주해].
제채자(薺菜子, 냉이씨)는 일명 석명자(菥蓂子)라고도 한다. 오장(五臟)이 부족한 것을 보하고 풍독(風毒)과 사기(邪氣)를 없애며 청맹과니와 눈이 아파서 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또한 눈을 밝게 하고 장예(障翳)를 없애며 열독(熱毒)을 푼다. 오랫동안 먹으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음력 4월에 받는다[본초]. 제채근(薺菜根, 냉이뿌리)은 눈병[目疼]을 치료한다[본초]. 제채경엽(薺菜莖葉, 냉이의 줄기와 잎)은 태워 가루내서 쓰는데 적백이질(赤白痢疾)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2021. 3. 29. 林 山. 2023. 12. 27. 최종수정
#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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