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철쭉 '사랑의 즐거움'

林 山 2021. 8. 21. 23:16

짓붉은 진달래꽃이 지고 나면 이어서 삼천리 금수강산을 연분홍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꽃이 바로 철쭉이다. 중부 지방에서는 철쭉이 4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고산지대에서는 6월 초순까지도 철쭉꽃을 볼 수 있다. 진달래의 장관은 뭐니뭐니해도 지리산 세석평전, 철쭉의 장관은 단양 소백산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에서는 '소백산철쭉제'가 열린다. 한라산과 지리산의 철쭉 군락지도 유명하다.   

 

철쭉(충주 천등산, 2006. 4. 23)

밍(明)나라 리싀젠(李時珍)의 '뻰차오강무(本草綱目)'에 '지금의 척촉화(躑躅花, 중국어 지주화)는 양이 잘못 먹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양척촉(羊躑躅, 중국어 양지주)이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철쭉은 예로부터 양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리산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도 양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1971년부터 바래봉에는 호주에서 들여온 면양을 방목했다. 양들은 다른 나무들은 모두 먹어치웠지만 철쭉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철쭉에는 글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란 독성물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래봉 철쭉 명승지는 바로 양들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철쭉(남양주 축령산, 2022. 4. 24)

중국인들은  철쭉의 독성 때문에 양들이 먹지 않으려고 머뭇거린다고 해서 척촉(躑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躑躅'은 '躑(머뭇거릴 척)'과 '躅(머뭇거릴 촉)'으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낭만적이고 멋드러진 설도 있다. 철쭉꽃이 절세의 미인처럼 너무나 아름다워 산길 나그네(山客)들이 머뭇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고 해서 척촉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철쭉(도계 미인봉, 2016. 5. 1)

척촉(躑躅)이 한국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수로부인(水路夫人) 조>에 나온다. 신라 최고의 미인 수로부인은 성덕왕(聖德王, 702~737)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한 남편 순정공(純貞公)을 따라가게 된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바위절벽에 활짝 핀 척촉을 보고 꺾어서 가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무도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 하나가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다. <수로부인 조>에 나오는 척촉에 대해 김원중이 옮긴 '삼국유사'(을유문화사, 2002)에는 철쭉, 리상호가 옮긴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 1999)에는 진달래로 번역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을까? '헌화가(獻花歌)' 첫 구절 '紫布岩乎邊希(붉은 바위 끝에)'를 고려하면 진달래가 맞다. 바위가 붉다는 것이 아니다. 붉은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바위를 뒤덮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수로부인 조>에 나오는 척촉은 진달래로 풀이하는 것이 맞다. 당시에는 척촉이 진달래와 철쭉을 모두 가리켰을 가능성이 크다. 

 

철쭉(월악산 만수봉, 2021. 5. 1)

철쭉은 진달래목 진달래과 진달래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학명은 로도덴드론 슐리펜바키아이 막시모비치(Rhododendron schlippenbachii Maxim.)이다. 한국의 철쭉은 1854년 4월 독일의 해군제독 바론 알렉산더 폰 슐리펜바흐(Baron Alexander von Schlippenbach)에 의해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되었다. 슐리펜바흐는 군함 페리스 호를 타고 한국의 동해안을 몰래 측량할 때 철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식물을 채집해 갔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철쭉의 학명에도 남아 있다.

 

철쭉(지리산 한신계곡, 2014. 5. 5)
철쭉(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철쭉의 영어명은 코리언 로도덴드론(Korean Rhododendron) 또는 로열 어제일리어(Royal Azalea)이다. 일어명은 구로후네츠쯔지(クロフネツツジ, 黒船躑躅), 중국명은 따즈두쥐안(大字杜鹃)이다. 철쭉을 개꽃 또는 개꽃나무라고도 한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어서 참꽃,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으므로 개꽃이라고 했다.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철쭉(춘천 오봉산, 2015. 5. 10)

철쭉의 원산지는 아시아이다. 철쭉은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랴오둥(遼東) 남부, 네이멍구(内蒙古), 극동 러시아,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전국 각지의 산지에서 자란다. 반그늘에서 잘 자라나 양지에서도 잘 자란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반론산의 철쭉나무와 분취류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3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반론산 철쭉은 외줄기이며 키 4.5m, 줄기둘레 84cm이다. 나이는 200년에 이른다.

 

철쭉(정선 달팽이산, 2014. 5. 10)

경상남도 하동에는 철쭉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아주 먼 옛날 하동 금오산에 예쁜 처녀 달님과 총각 별님이 살았다. 달님과 별님은 서로 사랑하며 부부의 연을 맺을 것을 기약했다. 그런데, 이웃에 살고 있던 지신(地神)이 달님을 탐내 별님을 해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지신은 못된 잡신에게 별님을 죽여주면 하동의 넓은 너뱅이들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잡신은 칼과 도끼로 별님을 공격했다. 이를 본 산새들이 남해의 산신령 호랑이 부부에게 알렸다. 영감 호랑이는 할멈 호랑이에게 하던 일을 끝내고 갈 테니 먼저 가서 별님을 구하라고 일렀다. 할멈 호랑이가 금오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남해가 육지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신이 할멈 호랑이가 못 오게 도술을 부린 것이다. 별님이 잡신의 칼을 맞고 죽자, 달님이 달려와 자신도 칼을 잡고 자결하고 말았다. 별님과 달님이 죽으며 흘린 피가 철쭉꽃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철쭉(가평 연인산, 2014. 5. 18)

철쭉은 긴 뿌리가 있다. 키는 2~5m이다. 나무껍질은 연황갈색으로 털이 없다. 일년생 가지에는 샘털이 있으나 없어지며 회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가지 끝에서는 5개씩 모여나기한다. 잎 모양은 거꿀달걀형이고 작은 오목형이며 예형이다. 잎 뒷면은 연한 녹색이고, 맥 위에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철쭉(월악산 만수봉, 2021. 5. 23)
철쭉(단양 소백산, 2006. 5. 28)

꽃은 4월 말~6월 초에 잎과 더불어 피고 향기가 있다. 꽃부리는 연한 붉은색이다. 윗부분의 꽃잎은 적갈색 반점이 있고, 깔때기 모양이다. 열매는 삭과로 긴 타원상 난원형이고 샘털이 있다. 종자는 10월~11월에 성숙한다.

 

철쭉(가평 명지산, 2011. 5. 29)

철쭉은 꽃이 아름다워서 정원이나 공원 등에 조경용으로 이용된다. 내음성이 강해 숲 밑에 하목으로 식재하면 복층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서양철쭉은 유럽에서 개량된 원예종으로 분화용이 많다. 일본에서 개량된 품종도 많으며, 사계절 꽃이 피는 사계철쭉도 있다.

 

철쭉(지리산 노고단, 2016. 6. 5)

철쭉의 줄기와 뿌리는 조각재로 이용한다. 옛날에는 척촉장(躑躅杖)이라고 하여 철쭉으로 지팡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어떤 문헌에는 철쭉의 잎과 꽃을 강장제나 이뇨제, 건위제 등으로 사용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철쭉꽃은 독성이 있어 경련발작과 호흡마비를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꽃은 진달래와 달리 식용할 수 없다.

 

철쭉(설악산 서북능, 2016. 6. 5)

철쭉의 유사종에는 흰철쭉, 산철쭉(Korean Azalea, チョウセンヤマツツジ), 만첩산철쭉(Multipetalous Korean Azalea) 등이 있다. 흰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 f. albiflorum Y.N.Lee)은 전남 영광과 함평의 불갑산에 자란다. 키는 2~5m이다. 흰색 꽃이 핀다. 산철쭉[Rhododendron yedoense f. poukhanense (H.Lev.) M.Sugim. ex T.Yamaz.]은 키가 1~2m이다. 꽃은 연한 홍자색이고, 상부의 꽃잎 내측에는 진홍색의 반점이 있다. 만첩산철쭉(Rhododendron yedoense Maxim.)은 경기도 이북에 자란다. 산철쭉과 같은데, 꽃이 만첩이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 

 

철쭉(설악산 서북능, 2016. 6. 5)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양척촉(羊躑躅, 철쭉꽃)에 대해 '성질은 따뜻하고[溫] 맛은 매우며[辛] 독이 많다. 온학(溫瘧, 학질의 일종), 귀주(鬼疰, 헛것에 들려 흉복부나 아랫배가 아픈 증세), 고독(蠱毒, 뱀이나 지네, 두꺼비 등의 독)을 낫게 한다. ○ 즉 지금의 리소화(甅瘙花)이다. 양(羊)이 철쭉을 잘못 먹으면 죽기 때문에 양척촉이라 한 것이다. 음력 3월, 4월에 따서 말린다[본초].'고 나와 있다. '동의보감' <잡병편 : 해독>에는 철쭉중독(躑躅毒)에 대해 '산치자를 달인 물을 마신다. 또는 감두탕을 달여서 먹는다[본초].'고 나와 있다. 

 

2021. 8. 21. 林 山. 2022.5.19.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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