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로 쓰이는 식물 가운데 작약(芍藥)이나 모란(牧丹)의 꽃은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는 반면에 백선(白鮮)의 꽃은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백선의 꽃차례는 다소 엉성하지만 꽃 하나하나는 나름대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민간에서 봉삼(鳳蔘) 또는 봉황삼(鳳凰蔘)이란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약초가 바로 이 백선의 뿌리다. 봉삼이나 봉황삼은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도 등재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이름이다. 본초학 교과서에는 백선의 뿌리껍질인 백선피(白鮮皮)만 등재되어 있다. 백선피는 한의사들도 조심스럽게 처방하는 한약재다. 백선피를 함부로 복용했다가 돈도 잃고 건강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겠다.
백선은 운향목(芸香目) 운향과(芸香科) 백선속(白鮮屬)의 숙근성 여러해살이풀이다. 백선이라는 이름은 ‘희고 선명하다’는 뜻이다. 학명은 딕탐누스 다시카르푸스 투르크자니노(Dictamnus dasycarpus Turcz.)이다. 속명 Dictamnus는 고대 희랍명으로 dicte(산에서)란 뜻으로 이 식물의 생육지를 나타내고, 종명 dasycarpus는 열매에 거센 털이 있다는 뜻이다. 영어명은 덴스-프루트 피타니(Dense-fruit Pittany), 일어명은 하쿠센(ハクセン, 白鮮)이다. 중국명은 바이셴(白鮮) 또는 바이양셴(白羊鲜)이다. 백선을 백전, 자래초, 검화, 점화, 금작아초(金爵兒椒), 양선초(羊鲜草), 백양선(白羊鮮), 팔고우(八股牛)라고도 한다. 꽃말은 '방어'이다.
백선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이다. 백선은 한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동북지방, 몽골,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지에 자생한다. 해발 800m 이하 낮은 야산의 양지바른 풀밭에 키가 낮은 잡목들과 더불어 자란다. 백선은 산호랑나비 애벌레의 숙주식물이다.
백선의 뿌리는 굵다. 키는 90cm까지 자란다. 원줄기는 곧추 자라며, 줄기의 윗부분에 털이 퍼져 난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2~4쌍의 소엽으로 구성된 홀수깃모양겹잎이다. 엽축에 좁은 날개가 있으며, 소엽은 타원형이고 양끝이 좁다. 잎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고 투명한 유점이 있다. 표면에는 작은 선점이 있다.
꽃은 5~6월에 연한 홍색으로 피며, 원줄기 끝의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꽃잎은 5개이다. 꽃자루는 털과 더불어 샘털이 있고, 꽃잎에는 홍자색의 줄이 있다. 꽃자루와 포에는 강한 냄새를 내는 선점이 있다. 냄새는 약간 역겹다. 수술은 10개로 암술대와 더불어 처지지만 끝이 위를 향한다. 수술 안쪽은 작고 검은 돌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씨방은 5실이다. 열매는 삭과이다. 삭과는 5개로 갈라지며 털이 있다.
백선은 꽃이 아름다운 식물이므로 정원이나 공원에 관상용으로 심으면 좋다. 지하부가 튼튼하여 토양을 고정시키는 능력이 강하므로 절사면 녹화용 식물로도 적합하다. 뿌리를 지상으로 노출시켜 초물분재로 이용해도 좋다. 뿌리를 조미료로도 이용한다.
백선의 뿌리껍질을 본초학에서 백선피(白蘚皮)라고 한다. 백선피는 청열약(淸熱藥) 중에서도 청열조습약(淸熱燥濕藥)에 속한다. 청열조습, 거풍해독(祛風解毒)의 효능이 있어 습열창독(濕熱瘡毒), 황수임리(黃水淋漓), 습진(濕疹), 풍진(風疹), 개선창라(疥癬瘡癩), 풍습열비(風濕熱痹, 류머티즘), 황달뇨적(黃疸尿赤) 등을 치료한다. 백선피는 피부습진소양(皮膚濕疹瘙痒)을 치료하는 요약(要藥)이다.
유럽에서는 예로부터 낙태약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약으로 쓸 때는 주로 탕으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복용 중에 황기를 금한다.
백선의 유사종에는 털백선이 있다. 털백선[Dictamnus dasycarpus f. velutinus (Nakai) W.T.Lee]은 북한의 함경북도 청진에서 자란다. 백선과 유사하나 잎에 털이 많다.
2021. 10. 21.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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