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앵두나무

林 山 2021. 11. 5. 15:19

앵두나무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매우 친근하게 와닿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옛사람들은 여자의 붉은 입술을 흔히 앵두에 비유하곤 했다. 미인의 붉은 입술과 하얀 이를 단순호치(丹脣皓齒)라 했고, 앵두처럼 아름답고 요염한 입술을 앵순(櫻脣)이라고 불렀다. 

 

요즘도 시골에는 웬만한 집에는 앵두나무 한 그루쯤은 다 있다. 앵두꽃이 만발하면 비로소 봄이 완연하게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또, 앵두가 바알갛게 익어가는 시골 풍경은 자못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일년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새콤달콤한 앵두는 시골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과일이었다. 그럼에도 앵두가 과일축에 들지 못한 것은 씨에 비해 과육이 너무 작아서 먹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앵두나무 꽃(출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앵두나무는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학명은 프루누스 토멘토사 툰베리(Prunus tomentosa Thunb.)이다. 꽃말은 '수줍음'이다. 

 

앵두나무의 영어명은 프루누스 토멘토사(Prunus tomentosa) 또는 코리언 체리(korean cherry), 다우니 체리(Downy Cherry), 만주 체리(Manchu cherry), 한센스 부쉬 체리(Hansen's Bush Cherry), 차이니즈 부쉬 체리(Chinese Bush Fruit), 낸킹 체리(Nanking Cherry, 난징 체리)이다. 중국명은 잉(櫻) 또는 예잉타오(野櫻桃), 샨더우즈(山豆子), 마오잉타오(毛樱桃), 메이타오(梅桃), 징타오(荆桃), 마이잉(麦樱, 麦英)이다. 일어명은 유수라우메(ユスラウメ, ゆすらうめ, 梅桃·山桜桃)이다. 우메(うめ, 梅)는 꽃이 매화를 닮았다는 뜻이다. 접두어 유스라(ゆすら, 梅桃·山桜桃)는 앵두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질 때 이스랏이란 이름도 그대로 전해져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앵두는 꾀꼬리가 먹으며, 생김새가 복숭아와 비슷하다고 하여 앵도(鶯桃)라고 하다가 앵도(櫻桃)가 되었다. 1798년 경 실학자 서호수(徐浩修)가 지은 농학서(農學書) '해동농서(海東農書)'에는 앵두를 함도(含桃)라 하였고, 가장 굵고 단단한 것을 애밀(厓密)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앵두나무를 산매자(山梅子), 작매인(雀梅仁)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肅宗) 때 홍만선(洪萬選)이 지은 농업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 제2권 <종수(種樹)>에 '앵두는 자주 옮겨다니기를 좋아하므로 이스랏(移徙樂)이라고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許浚)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醫書)들을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의학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앵두를 이스랏이라 했고, 지금 이스라지(郁李)라고 부르는 작은 나무는 멧이스랏이라고 했다. 앵두와 이스라지의 열매가 거의 비슷하므로 옛날에는 자라는 곳만 다를 뿐 같은 나무로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앵두나무는 중국 화베이(华北) 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원산지에 한반도도 포함된다는 설도 있다. 앵두나무는 한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몽골 등지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다.  

 

중국에서는 서기 500~550년 무렵 허우웨이(後魏)의 태수 쟈스시에(賈思勰)가 편찬한 동양 최초의 농학원류서 '치민야오슈(齊民要術)'에 앵두나무 재배 기록이 나온다. 한반도에서는 최치원(崔致遠)의 글에 앵두나무가 처음 등장한다. 1478년에 서거정(徐居正)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시문선집(詩文選集) '동문선(東文選)'에는 최치원이 앵두를 보내준 왕에게 올리는 사례문(謝禮文) 가운데 '모든 과일 가운데 홀로 먼저 성숙됨을 자랑하며, 신선의 이슬을 머금고 있어서 진실로 봉황이 먹을 만하거니와 임금의 은덕을 입었음에 어찌 꾀꼬리에게 먹게 하오리까?'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신라시대에 앵두는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귀한 과일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앵두나무는 늦어도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 문인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도 '앵두나무를 정원에 심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의 시문집 '포은집(圃隱集)'에도 앵두나무가 등장한다. 

 

조선 역대 왕의 치적 중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실록으로 편찬한 편년체 역사책 '국조보감(國朝寶鑑)'에는 조선 문종(文宗)이 후원에다가 앵두나무를 키웠는데, 앵두가 익으면 따다가 부왕인 세종(世宗)에게 올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세자가 올린 앵두를 맛본 세종은 '밖에서 진상하는 앵두가 어찌 세자가 직접 심은 것만 하겠는가!'라고 했다 한다. 

 

앵두나무는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앵두나무의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서 열리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양반이나 벼슬아치들의 집에서는 정원에 앵두나무를 한두 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앵무나무의 키는 3m까지 자란다.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줄기 껍질은 흑갈색이다. 일년생 가지에는 융털이 밀생한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거꿀달걀형이다. 잎 표면에는 잔털이 있으며, 뒷면에는 흰색 융털이 밀생한다.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고, 잎자루에도 털이 있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또는 같이 흰색 또는 연분홍색으로 핀다. 1개 또는 2개의 꽃이 모여 달린다. 꽃대에는 밀모가 있다. 꽃받침통은 원통형이다. 꽃받침열편은 톱니 같고 겉에 잔털이 있다. 꽃잎은 연한 홍색 또는 백색으로 거꿀달걀모양이다. 씨방에는 털이 밀생한다. 열매는 핵과이다. 핵과는 구형이며 잔털이 있다. 과실은 6월에 붉은색으로 성숙한다.

 

앵두(충주, 2020. 5. 25)

앵두나무의 열매는 생과일로 먹는다.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앵두로는 약주를 담그기도 한다. 앵두주는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1670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安東張氏)가 쓴 동아시아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음식지미방)'에는 앵두편(䭏)을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앵두편은 '앵두를 끓는 물에 반쯤 익혀서 씨를 발라내고 잠깐 데친 후, 체로 거른 다음 꿀에 졸여 섞고 엉기면 베어 쓴다'고 했다. 

 

앵두나무는 4월경에 피는 꽃과 6월경에 붉게 달리는 열매의 관상 가치가 매우 높다. 공원이나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독립수, 차폐용, 경계용으로 이용되며, 생울타리용으로도 적합하다. 엣날에는 울타리 안에 앵두나무를 심으면 뱀 같은 파충류가 범접을 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앵두나무, 양이스라지(歐李, Prunus humilis Bge), 욱리(郁李, Prunus japonica Thunb), 이스라지[Prunus japonica var. nakaii (H.Lev.) Rehder]의 종자를 본초명 욱리인(郁李仁)이라고 한다. 본초학에서 욱리인은 사하약(瀉下藥) 중 윤하약(潤下藥)으로 분류된다. 윤조활장(潤燥滑腸), 하기(下氣), 이수(利水)의 효능이 있어 대장기체(大腸氣滯), 조삽불통(燥澁不通), 소변불리(小便不利), 대복수종(大腹水腫), 사지부종(四肢浮腫), 각기(脚氣) 등을 치료한다. 욱리인은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종종 처방하는 한약재다.

 

앵두(충주 막은대미재, 2016. 6. 1)

'동의보감' <탕액편 : 나무>에는 욱리인(郁李仁, 이스라치씨)과 욱리근(郁李根, 이스라치뿌리)에 대해 '욱리인의 성질은 평(平)하며 맛은 쓰고[苦] 매우며[辛] 독이 없다. 온몸의 부종을 가라앉히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 장 안에 뭉쳐 있는 기와 관격(關格)으로 통하지 못하는 기를 잘 통하게 한다. 또한 방광의 기를 잘 통하게 하고 5장이 켕기고 아픈 것을 낫게 한다. 허리와 다리의 찬 고름을 빠지게 하고 오랜 체기를 삭히며 기를 내리게 한다. ○ 곳곳에서 난다. 가지, 줄기, 꽃잎이 모두 추리 비슷한데 다만 열매가 잘다. 앵두만하고 빛이 벌거며 맛이 달고[甘] 시며 약간 떫다. 씨는 열매와 같이 익는다. 음력 6월에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어 쓴다. 일명 차하리(車下李)라고도 한다[본초]. ○ 껍질을 버리고 더운물에 담갔다가 꺼풀과 끝, 두알들이를 버리고 꿀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갈아서 쓴다[입문]. ○ 일명 천금등(千金藤)이라고도 하는데 어혈을 헤치고 마른 것을 축여 준다[정전]. 욱리근은 치통과 잇몸이 붓는 것, 이삭기(충치)를 낫게 하며 이빨을 든든하게 한다. 촌백충도 죽인다. 달인 물로 양치한다[본초].'고 나와 있다.

 

앵두(남양주 예빈산, 2013. 6. 16)

'동의보감' <탕액편 : 과실>에는 앵도(櫻桃, 앵두)와 앵도엽(櫻桃葉, 앵두나무잎)을 별도로 수재하고 있다. 앵도에 대해서는 '성질은 열(熱)하고(따뜻하다[溫]고도 한다) 맛은 달며[甘] 독은 없다(약간 독이 있다고도 한다). 중초를 고르게 하고 비기(脾氣)를 도와주며 얼굴을 고와지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하며 수곡리(水穀痢)를 멎게 한다. 모든 과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익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흔히 귀하게 여겨왔다. 따서 침묘(寢廟)에 올렸다. 일명 함도(含桃)라고도 하는데 음력 3월 말-4월 초에 처음으로 익기 때문에 정양의 기운[正陽之氣]을 받으며 모든 과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익기 때문에 성질이 열(熱)하다. ○ 많이 먹어도 나쁠 것은 없으나 허열(虛熱)이 생긴다[본초]. ○ 꾀꼬리가 먹으며 또 생김새가 복숭아 같기 때문에 앵도라고 하였다[입문].'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앵도엽에 대해서는 '뱀에게 물렸을 때 짓찧어 붙이고 또 즙을 내어 먹으면 뱀독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본초].'고 했으며, 동행근(東行根, 동쪽으로 뻗은 앵두나무 뿌리)에 대해서는 '촌백충증과 회충증을 치료하는데 삶아서 그 물을 빈속에 먹는다[본초].'고 나와 있다. 불에 탄 앵두나무 가지의 재를 술에 타 마시면 복통과 전신통에 효과가 있다는 설도 있다.  

 

2021. 11. 5.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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