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山査木)는 꽃도 예쁘지만, 그 열매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귀중한 한약재로 쓰이는 고마운 나무다. 산사나무의 열매를 찔광이 또는 아가위라고 한다. 찔광이를 본초명 산사(山楂, 新修本草) 또는 산사자(山査子, 東醫寶鑑)라고 하는데, 소식약(消食藥) 중 최고의 약으로 친다. 산사는 소화제(消化劑)로서도 뛰어나지만 지방을 분해하는 효능도 뛰어나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매우 자주 사용하는 한약재 가운데 하나이다.
산사나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민속에도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산사나무를 희망의 상징으로서 봄의 여신에게 바쳤다. 아테네의 여인들은 결혼식 날 머리를 장식할 때 산사나무 꽃을 이용했다. 로마인들은 산사나무 꽃을 꽃의 여신에게 바쳤다. 로마에서는 산사나무의 가시가 귀신으로부터 집을 지켜주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산사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아기의 요람이나 아이들의 침실에 산사나무 가지를 얹어두기도 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신랑 신부가 산사나무 가지를 든 들러리를 따라 입장을 하고, 산사나무로 만든 횃불 사이로 퇴장을 하기도 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가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머리에 썼던 가시면류관도 산사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산사나무 꽃을 영어로 '메이플라워(mayflower)'라고 한다. '5월의 꽃' 또는 '5월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메이플라워는 서양인들에게 5월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5월 1일이면 산사나무 꽃다발을 만들어 문에 매달아 두는 풍습이 있다.
영국에도 산사나무에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영국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잉글랜드 서머싯 주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에는 예로부터 기적의 산사나무에 얽힌 전설이 전해 온다.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제자 요셉(Joseph)이 게이브리얼(Gabriel) 대천사의 명령대로 교회를 세우고 웨어리올 언덕에 지팡이를 꽂았더니 땅에 뿌리가 내리면서 산사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신기하게도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어김없이 꽃을 피워 왕에게 귀중한 선물로 보내지기도 했다.
유럽의 농민들은 해마다 5월 1일 오월절(五月節) 축제를 열었다. 새봄을 맞아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유럽의 농민들은 영주(領主)나 귀족들의 눈을 피해 숲에서 축제를 벌였다. 유럽인들은 이날을 '메이데이(May Day)'라고 불렀고, 이후 노동절(Labor Day)의 기원이 되었다. .
유럽인들은 메이데이에 광장에 기둥을 세우고 꽃이나 리본 등으로 장식했다. 이 기둥은 메이폴(Maypole)이라 불렸다. 메이데이를 기념하며 장식했던 꽃은 5월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산사나무 꽃이었다. 유럽인들은 산사나무 꽃을 ‘메이플라워’라고 불렀다.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102명을 태우고 영국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배의 이름도 ‘메이플라워'였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발포해 노동자 4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5월 4일에는 '헤이마켓 광장'에서 폭탄이 터져 경찰 7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폭탄 테러범을 잡겠다며 노동운동 지도자 수백 명을 체포했고 그중 8명을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나 이들이 폭탄을 던졌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사건과 무관하게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들 중 4명은 사형됐고, 1명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시카고의 8인'으로 알려진 이 사건을 접한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은 분노했다. 1889년 프랑스 파리에 모인 전 세계 노동자들은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기 위해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선포했다.
시카고 노동자 파업 5년 후인 1891년 5월 1일 프랑스 북부 노르(Nord) 주의 푸흐미(Fourmies)에서 피로 물든 노동절 시위가 발생했다. 흰 옷을 입은 18살의 여성 노동자 마리 블롱도(Marie Blondeau)는 산사나무 꽃을 한아름 안고 노동절 시위 행렬에 참가했다.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발포로 블롱도는 꽃다운 나이에 희생되고 말았다. 블롱도는 노동절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녀의 죽음 이후 노동절은 '메이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산사나무 꽃은 노동절을 상징하는 꽃-메이플라워로 자리잡았다.
산사나무는 장미목 장미과 산사나무속의 낙엽 활엽 교목이다. 학명은 크라타에구스 피나티피다 붕에(Crataegus pinnatifida Bunge)이다. 영어명은 차이니즈 호손(Chinese Hawthorn) 또는 라지 차이니즈 호손(Large Chinese Hawthorn)이다. 중국명은 샨자(山楂) 또는 샨자슈(山楂樹)이다. 이명에는 샨리궈(山里果), 샨리홍(山里红) 등이 있다. 일어명은 오오산자시(オオサンザシ)이다. 산사나무를 아가위나무, 산리홍(山里红)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유일한 사랑'이다.
산사나무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중국 등 아시아이다. 한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러시아 극동지방 등지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강원도, 경기도, 경상북도 등의 산지에 자생한다. 주로 중부지방에 분포하며, 제주도에도 자생지가 있다. 약재 생산을 위해 재배하기도 한다. 천연기념물 506호로 지정된 서울 영휘원(永徽園) 산사나무는 줄기 둘레 2.03m, 키가 9m에 이른다.
산사나무는 뿌리 근처에서 근맹아가 올라와 군집을 이룬다. 키는 10m까지 자란다. 줄기는 대부분 회색을 띠며, 어린줄기에는 예리한 1~2cm 길이의 가시가 있다. 가시가 없는 경우도 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넓은 달걀모양, 삼각상 달걀모양 또는 능상 달걀모양이며 절저 또는 넓은 예저이다. 잎 길이는 5~10cm, 너비 4~7cm이다. 잎은 5~9개의 깃모양으로 깊게 갈라지며, 밑부분의 열편은 흔히 주맥까지 갈라지고, 양면의 주맥과 측맥에 털이 있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이고 윤채가 있으며, 가장자리에 뾰족하고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 길이는 2~6cm이다. 턱엽은 크고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 잎이 핀 다음에 백색 또는 담홍색으로 핀다. 꽃의 지름은 1.8cm 정도이다. 편평꽃차례는 지름 5~8cm로서 털이 있다. 꽃잎은 둥글며, 꽃받침조각과 더불어 각 5개이다. 수술은 20개이고, 꽃밥은 홍색이다. 배꽃 같은 작은 꽃이 몇 송이씩 뭉쳐서 핀다.
열매는 이과(梨果)이다. 이과는 둥글고 지름 1.5cm로서 백색 반점이 있다. 9~10월에 빨갛게 혹은 노랗게 익는다. 열매가 많이 달려 꽃 못지 않게 아름답다. 한 개의 이과 안에 보통 3~5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열매를 찔광이 또는 아가위라고 한다.
산사나무는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서 정원이나 공원에 관상용으로 심어도 좋다. 주택 정원의 테라스 부근에 심는 독립수로도 적합하다. 한반도 서북지방이나 중국에서는 가시가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집의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었다. 밀원용으로도 심는다. 분재의 소재로도 이용된다. 산사나무의 목재는 목질이 굳고 치밀하면서도 탄력이 있어 다식판을 비롯하여 상자, 지팡이, 목침, 책상 재료로 쓰였다.
산사나무의 열매는 비타민C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 열매의 신맛을 살려 떡, 술, 정과 등 음식을 만드는데 쓰인다. 화채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수피로는 약죽을 끓여 먹는 경우가 있다. 잎은 차로 우려서 마신다.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산사는 크기가 밤알만 하고, 살이 많고 맛이 좋으며, 보드라운 가루로 만들어 꿀에 타 떡을 만든다'라고 나와 있다.
중국에는 탕후루(糖胡蘆)라는 음식이 있다. 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를 꿀이나 설탕에 절인 것이다. 중국인들은 고기를 먹고 난 다음 탕후루를 후식으로 먹는다. 탕후루는 일종의 소화제라고 할 수 있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산사나무, 야광나무, 이노리나무, 미국산사의 과실, 뿌리, 목재, 줄기와 잎, 종자를 약용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야광나무는 학명이 Malus baccata (L.) Borkh.로 산사나무와 속명이 다르다. 아마도 아광나무(뫼찔광나무, 뫼산사나무)의 오기(誤記)가 아닌가 한다.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산사에 대해 산리홍(山里红, Crataegus pinnatifida Bunge var. major N.E. Br)과 산사(山楂, 酸楂, Crataegus pinnatifida Bunge), 야산사(野山楂, Crataegus cuneata Sieb et Zucc)의 성숙한 과실을 건조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뿌리나 목재, 줄기와 잎, 종자는 본초학 교과서에 수재되어 있지도 않다.
산사는 본초학에서 소식약으로 분류되어 있다. 소식적(消食積), 산어혈(散瘀血), 구조충(驅條蟲)의 효능이 있어 육적(肉積, 고기로 인해 체한 것), 징가(癥痂, 뱃속의 덩어리), 담음(痰飮), 비만(肥滿), 탄산(呑酸, 위산 역류), 사리(瀉痢), 장풍(腸風, 직장 궤양 출혈), 요통(腰痛), 산기(疝氣, 하복부 통증), 산후아침통(産後兒枕痛, 産後瘀血凝滯, 산후 복통), 오로부진(恶露不盡), 소아유식정체(小兒乳食停滯) 등을 치료한다. 산사는 소화를 도와주고 보비건위(補脾健胃)하면서도 어혈을 없애주는 한편 체지방을 분해하는 효능이 뛰어나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매우 많이 사용하는 한약재다. 최근 연구 결과 산사가 피부에 생기는 종양의 발달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사근(山査根)은 소적(消積), 거풍(祛風), 지혈(止血)의 효능이 있어 식적(食積), 이질, 관절통, 객혈(喀血) 등을 치료한다. 산사목(山査木)은 수양성하리(水樣性下痢), 두풍(頭風), 소양증(搔痒症) 등을 치료한다. 산사엽(山査葉)은 고혈압을 치료한다. 잎과 꽃을 차로 하여 복용한다. 줄기와 잎(莖葉)을 삶은 물로 칠창(漆瘡, 옻독에 의한 피부병)을 씻는다. 산사핵(山査核)은 식적, 산기, 퇴산을 치료한다. 산사근, 산사목, 산사엽, 산사핵 등은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동의보감' <탕액편 : 과실>에는 산사자(山査子, 찔광이)에 대해 '식적(食積)을 삭히고 오랜 체기를 풀어 주며 기가 몰린 것을 잘 돌아가게 하고 적괴(積塊), 담괴(痰塊), 혈괴(血塊)를 삭히고 비(脾)를 든든하게 하며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이질을 치료하며 종창을 빨리 곪게 한다. ○ 일명 당구자(棠毬子)라고도 하며 산속 어느 곳에나 다 있다. 선 것은 푸르고 익으면 붉어진다. 절반쯤 익어서 시고 떫은 것[酸澁]을 약재로 쓴다. 오랫동안 묵은 것이 좋다. 물에 씻은 다음 잘 쪄서 씨를 버리고 햇볕에 말려 쓴다[입문].'고 했다.
'산림경제(山林經濟)' <치약(治藥)> 편에는 '산속 곳곳에서 나는데 반쯤 익어 맛이 시고 떫은 것을 채취하여 약에 쓴다. 오래 묵은 것이 좋으며 물에 씻어 연하게 쪄서 씨를 제거하고 볕에 말린다'라고 나와 있다.
산사나무의 유사종에는 넓은잎산사(Wide-leaf mountain hawthorn), 좁은잎산사, 가새잎산사, 털산사, 자작잎산사, 미국산사(美國山査), 일월산사나무(Large-bract mountain hawthorn), 아광나무(Maximowicz’s hawthorn), 이노리나무(Komarov's hawthorn) 등이 있다.
넓은잎산사(Crataegus pinnatifida var. major N.E.Br.)는 잎이 크고 얕게 갈라진다. 열매의 지름은 2.5cm이다. 좁은잎산사[Crataegus pinnatifida f. psilosa (C.K.Schneid.) Kitag.]는 잎, 화경 및 꽃차례에 털이 있다. 잎의 열편이 좁다. 가새잎산사(Crataegus pinnatifida var. partita Nakai ex T.H.Chung)는 함경북도에 분포한다. 잎이 깊게 갈라져 거의 완전한 깃모양겹잎이다. 털산사[Crataegus pinnatifida f. pilosa (C.K.Schneid.) Kitag.]는 잎 뒷면과 꽃자루에 밀모가 있다. 자작잎산사(Crataegus pinnatifida for. betulifolia Nakai ex Handb)는 잎이 갈라지지 않는다. 미국산사(Crataegus scabrida Sarg.)는 미국에서 들어온 낙엽 관목으로서 산사나무와 비슷하지만 큰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월산사나무(Crataegus pinnatifida f. bracteata Nakai)는 키가 3~6m이다. 잎은 달걀모양 또는 거꿀달걀모양이며 우상으로 갈라진다. 열편은 끝이 뾰족하며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잎 표면은 광택이 나고, 뒷면 맥을 따라 미모가 있다.
아광나무(Crataegus maximowiczii C.K.Schneid.)는 한반도 북부지방에 분포한다. 키는 5m 정도이다. 잎은 달걀모양 또는 넓은타원모양이다. 잎 표면에는 털이 없으며, 뒷면에 백색 융털과 얕은 결각이 있다. 복산방꽃차례는 융털이 밀생한다. 이노리나무(Crataegus komarovii Sarg.)는 한반도 특산식물이다.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 강원도 설악산 등지에 분포한다. 키는 5m 정도이다. 잎은 3~5개의 장상으로 깊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다. 왕이노리나무는 이노리나무보다 형질이 크다. 털이노리나무는 함경도에 분포하며, 잎의 양면, 열매자루와 잎자루에 털이 많다.
2021. 12. 1. 林 山. 2022.5.19.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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