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도라지 '영원한 사랑(永遠之愛)'

林 山 2021. 12. 20. 18:11

6월 말경으로 들어서면 삼천리 금수강산에 자주색, 하얀색의 이름다운 도라지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도라지는 아주 오래전 옛날부터 조선인들의 정서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야생화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이라면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深深山川)의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철철 넘는다.....'로 시작되는 '도라지 타령'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도라지 숙채는 고사리, 시금치 나물과 함께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꼭 올려야 하는 제사 음식이기도 하다. 도라지는 조상, 고사리는 나, 시금치는 자손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도라지는 식탁에 종종 올라오는 좋은 나물일 뿐만 아니라 한의학에서도 폐(肺) 등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한약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도라지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는 식물이다.      

 

몇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지인이 한겨울인 1월에 보내온 도라지꽃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남반구인 뉴질랜드가 북반구와는 기후가 정반대인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국의 계절이 겨울이면 뉴질랜드는 여름이다. 지인은 고향에서 도라지 씨앗을 받아서 뉴질랜드로 가져가 화단에 심었다고 한다.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도라지를 머나먼 이국 땅 정원의 화단에 심었을까! 

 

도라지 꽃(뉴질랜드 오클랜드, 2013. 1. 10)

도라지는 초롱꽃목 초롱꽃과 도라지속의 괴근상 숙근성 여러해살이풀이다. 도라지를 길경(桔梗), 도랏, 길경채, 백약(白藥), 질경, 산도라지라고도 한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永遠之愛)'이다. 중국에서 꽃말은 '영원한 사랑(永恒不变的爱), 가망 없는 사랑(无望的爱), 그리움(想念), 진실(真诚), 온유(柔顺), 슬픔(悲哀)'이다. 일본에서는 도라지 꽃의 색깔마다 꽃말이 다르다. 파란색은 '영원한 사랑(永遠の愛), 변함없는 사랑(変わらぬ愛), 성실(誠実), 기품(気品)'이다. 흰색은 '청초(清楚), 순종(従順)', 분홍색은 '박행, 박복, 박명(薄幸)'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과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 등재된 도라지의 학명은 플라티코돈 그란디플로룸 (자퀸) 알퐁스 드 캉돌[Platycodon grandiflorum (Jacq.) A.DC.]이다. 속명 '플라티코돈(Platycodon)'은 플라티(platy)' + '종(bell)'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코돈(kōdōn)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근대 라틴어이다. '플라티(platy)'는 '넓은(broad, wide), 평평한(flat)의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플라투스(platús)'에서 유래한 중세 영어 '플레이트(plate)'에 형용사형 어미 '이(-y)'가 붙은 말을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형용사형 어미 '이(-y)'는 명사와 형용사에 추가되어 '품질을 가지고 있다', '유사하다'는 뜻의 형용사를 형성한다. 종소명 '그란디플로룸(grandiflorum)'은 '큰( large)'이란 뜻의 라틴어 '그란디스(grandis)'와‎ '꽃(flower)'이란 뜻의 '플로스(flōs)'가 합쳐서 된 라틴어 '그란디플로루스(grandiflorus)'에서 어형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꽃의 모양을 표현한 이름이다.  

 

'자퀸(Jacq.)'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사망한 식물학자 니콜라우스 조셉 폰 자퀸(Nikolaus Joseph Freiherr von Jacquin, 1727~1817)이다.  '알퐁스 드 캉돌(A.DC.)'은 식물의 내부 생체시계 발견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식물학자 오귀스탱 피라무스 드 캉돌(Augustin Pyramus de Candolle, 1778~1841)의 아들인 식물학자 알퐁스 루이 피에르 피라뮤 드 캉돌(Alphonse Louis Pierre Pyramus de Candolle, 1806~1893)이다.   

 

영어명은 벌룬플라워(Balloonflower)이다. 직역하면 풍선꽃이라는 뜻이다. 꽃이 피기 전 꽃망울이 공기가 가득 들어 있는 풍선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일본명은 기쿄우(キキョウ, 桔梗)이다. 일본명은 한명(漢名)의 기치코(きちこう, 桔梗)를 음독(音讀)한 것이다. 만요슈(万葉集)에 나오는 야마노우에노 오쿠라(山上憶良)가 읊은 가을에 꽃이 피는 대표적인 일곱 가지 풀(秋の七草) 가운데 '아사가오노하나(朝顔の花)'가 도라지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만요슈에 나오는 가을에 꽃이 피는 대표적인 일곱 가지 풀은 싸리, 억새, 칡, 패랭이꽃, 마타리, 등골나무, 도라지이다.  

 

중국명은 지에껑(桔梗) 또는 빠오푸화(包袱花), 링당화(铃铛花), 승마오화(僧帽花), 따오라지(道拉基)이다. 빠오푸(包袱)는 보따리 또는 보자기, 링당(铃铛)은 방울, 승마오(僧帽)는 승려가 쓰는 모자의 뜻이다. 도라지 꽃의 모양을 나타낸 말이다. 따오라지(道拉基)는 한글명 도라지를 음역(音譯)한 것이다. 

 

도라지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상당히 긴 전설인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도라지라는 처녀가 상사병을 앓다가 죽었다. 그녀가 묻힌 무덤가에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 처녀의 이름을 따서 도라지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도라지의 꽃말도 '영원한 사랑'이다. 

 

도라지의 원산지는 한강토(조선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러시아이다. 한강토에서는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란다. 한약재나 산채를 생산하기 위해 각지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四国), 규슈(九州)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동베이(东北), 허베이(河北), 화베이(华北), 화동(华东), 화중(华中), 광동(广东), 광시(广西), 꾸이저우(贵州), 윈난(云南), 쓰촨(四川), 샨시(陕西) 등지에 난다. 

 

도라지 꽃(뉴질랜드 오클랜드, 2013. 1. 10)

도라지의 뿌리는 다육성의 덩이뿌리로 되어 있다. 키는 40cm~1m 정도이다. 줄기는 곧게 자란다. 줄기를 자르면 백색의 유액이 나온다. 줄기 전체는 회록색을 띠고 털이 없다.

 

잎은 엽병이 없다. 아랫잎은 마주나기하지만, 윗잎은 어긋나기하거나 3엽이 돌려나기한다. 잎은 긴 달걀모양 또는 넓은 피침형에 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이 넓은 예저 또는 원저이다. 잎 길이는 4~7cm, 나비는 1.5~4cm이다. 잎 표면은 녹색, 뒷면은 분백색이다. 잎 가장자리에는 예리한 톱니가 있다.

 

꽃은 6~8월에 하늘색 또는 백색으로 핀다. 원줄기 끝에 1개 또는 여러 개가 위를 향해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열편은 길이 0.5~5mm로서 삼각상 피침형이다. 꽃부리는 끝이 퍼진 종형이고, 지름은 4~5cm이다. 꽃부리 끝은 5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끝은 삼각형이다. 씨방하위에 웅예(雄蕊) 선숙화(先熟花)로 끝에서 종자를 맺는다. 씨방은 5실이다.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암술대는 끝이 5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이다. 삭과는 거꿀달걀모양이고 꽃받침열편이 달려 있으며, 포간개열(胞間開裂)한다.

 

도라지 꽃(충주시 교현동 부강아파트, 2006. 6. 24)

도라지는 꽃이 아름다워서 공원이나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꽃꽂이용 절화로도 이용된다. 센티멘탈 블루(Sentimental blue)는 도라지를 원예용으로 품종 개량한 것이다. 센티멘탈 블루의 키는 10cm 정도로 왜성이다. 꽃은 도라지와 크기가 같다. 포기당 4~5개의 꽃이 핀다. 분화용은 물론 화단용으로도 좋다. 

 

도라지꽃은 산성에는 분홍색, 염기성에는 푸른색으로 변하는 특성이 있다. 꽃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산성과 염기성을 판별하는 천연지시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도라지(단양 사인암, 2007. 7. 8)

도라지의 연한 잎과 줄기는 삶아 나물로 먹거나 튀겨 먹는다. 꽃잎은 생으로 무치거나 화전처럼 튀겨 먹어도 좋다. 뿌리는 나물 무침, 튀김, 덮밥으로 먹는다. 초고추장에 무치거나 볶아서 먹기도 한다. 고추장을 발라서 구워먹는 것도 별미다. 도라지 숙채는 산채비빔밥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다. 도라지를 쪼개 쇠고기와 번갈아 꼬치에 꿰어 도라지산적을 만들기도 한다. 느름적이나 화양적(華陽炙)에도 도라지가 들어간다. 고기, 다시마와 함께 졸여서 설탕과 마늘을 섞어 간장에 담가 도라지장아찌를 만들기도 한다. 도라지는 꿀과 음식 궁합이 잘 맞는다. 꿀은 도라지에 부족한 칼로리를 보충해 주고 쓴 맛을 줄여준다. 이런 음식 궁합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 도라지 정과이다.

 

도라지(충주시 연수성당, 2021. 7. 9)

옛날 흉년이 들면 도라지가 구황식으로 중요하였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도라지로 밥을 지어 먹었다. 도라지를 잘 씻은 다음 충분히 삶아서 주머니에 넣고 물에 담가 발로 밟아주면 쓴 맛이 빠진다. 이를 밥에 섞어서 먹었다. 1554년에 나온 '구황촬요(救荒撮要)'에는 도라지로 장을 담근다는 내용이 있다. 

 

176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도라지에 양념을 발라서 굽는 방법과 이른봄에 큰 도라지를 골라서 쌀뜨물에 담가 껍질과 상한 것을 제거한 다음 물에 삶아 쓴 맛을 빼고, 꿀을 섞어 약한 불에 졸였다가 말려서 먹는 도라지정과가 소개되어 있다.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도라지를 이용한 나물조리법이 설명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연회를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진찬의궤(進饌儀軌)'를 보면 화양적, 각색화양적(各色花陽炙), 낙제화양적(絡蹄花陽炙), 어화양적(魚花陽炙), 생복화양적(生鰒花陽炙), 양색화양적(兩色花陽炙) 등에 도라지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도라지에는 단백질, 지질, 당류, 회분, 철, 사포닌, 이뉴린, 회이트스테린, 프라티코디닌 등이 들어 있어 예로부터 민간에서 기침, 감기, 가래, 천식 등의 치료에 이용해 왔다. 최근에는 도라지의 항암효과가 밝혀져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도라지가 건강식품으로서 매우 가치가 있음을 시사한다. 100년 묵은 도라지는 산삼과 같은 효능을 가진다는 속설도 있다

 

도라지는 한국산 품질이 우수하여 일본, 홍콩 등지에 수출되고 있다. 특히 타이완에서는 한국에서만 길경을 수입하도록 지정하고 있다.

 

도라지(충주시 연수성당, 2021. 7. 9)

도라지의 뿌리를 본초학에서 길경(桔梗), 근경(根莖)을 길경노두(桔梗蘆頭)라고 한다. 본초학에서 길경은 화담지해평천약(化痰止咳平喘藥) 중에서도 청화열담약(淸化熱痰藥)으로 분류된다. 청화열담약 중에서는 전호(前胡) 다음으로 중요한 약이다. 길경은 선폐이인(宣肺利咽), 거담배농(祛痰排膿)의 효능이 있어 해수담다(咳嗽痰多), 흉민불창(胸悶不暢), 인통음아(咽痛音啞), 폐옹토농(肺癰吐膿), 창양농성불궤(瘡瘍膿盛不潰) 등을 치료한다. 길경노두는 상격풍열담실(上膈風熱痰實)을 치료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길경을 많이 쓰지만, 길경노두는 거의 시용하지 않는다.

 

길경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처방이 인후두염, 편도선염을 치료하는 감길탕(甘桔湯), 필용방감길탕(必用方甘桔湯)이다. 습진 등 피부병이나 화농성 종기에 쓰는 십미패독탕(十味敗毒湯), 실열증(實熱證) 통치방 방풍통성산(防風通聖散), 화농성 질환에 쓰는 배농산(排膿散)도 길경이 들어가는 중요한 처방이다. 

 

도라지(충주시 연수동, 2022. 7. 16)

'일화자제가본초(日華子諸家本草)' 일명 '일화본초(日華本草)'는 길경에 대해 허파의 화농증을 다스리고 농을 배설시킨다고 하였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은 길경에 대해 '맛이 맵고 온화하며 독이 약간 있다. 2∼8월에 뿌리를 캐며, 햇볕에 말린 것은 인후통을 잘 다스린다.'고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 : 채소>에는 길경에 대해 '성질이 약간 따뜻하며[微溫](평(平)하다고도 한다) 맛이 매우면서 쓰고[辛苦] 독이 약간 있다. 폐기로 숨이 찬 것을 치료하고 모든 기를 내리며 목구멍이 아픈 것과 가슴, 옆구리가 아픈 것을 낫게 하고 고독을 없앤다. ○ 어느 지방에나 다 있는데 산에 있다. 음력 2월과 8월에 뿌리를 캐어 햇볕에 말린다[본초]. ○ 도라지는 모든 약 기운을 끌고 위로 올라가면서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또한 기혈도 끌어올린다. 그러니 나룻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약인데 수태음경의 인경약이다[단심]. ○ 요즘은 채소로 4철 늘 먹는다[속방].'고 나와 있다.

 

도라지(삼척 장송산, 2005. 8. 11)

국표에 등재된 한강토 자생 도라지속 식물은 도라지 1종뿐이다. 국생정에 등재된 도라지의 유사종에는 백도라지(White balloonflower), 겹도라지(Double balloonflower), 흰겹도라지 등이 있다.   

 

백도라지[Platycodon grandiflorum f. albiflorum (Honda) H. Hara]는 흰색 꽃이 핀다. 겹도라지(Platycodon grandiflorum var. duplex Makino)는 하늘색 겹꽃이 핀다. 흰겹도라지(Platycodon grandiflorum var. duplex f. leucanthum H. Hara)는 백색 겹꽃이 핀다. 

 

국표에 등재된 재배 도라지 유사종에는 도라지 '아스트라 핑크', 도라지 '츠베르크', 도라지 '하코네 블루', 도라지 '하코네 화이트', 도라지 '후지 핑크' 등이 있다.  

 

2021. 12. 20. 林 山. 2023.2. 20.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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