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은 한반도 어디를 가나 산기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예로부터 칡은 농촌에서 쓰임새가 많았다. 칡의 연한 덩굴과 잎은 소나 염소, 토끼 등의 사료로 쓰였다. 칡 덩굴은 옛날에 나뭇단을 묶거나 빗자루를 만들 때 엮는 끈으로 썼다. 도리깨발을 엮을 때도 칡끈을 사용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칡뿌리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구황식품이었다. 칡뿌리에서 낸 녹말로는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처럼 칡은 옛날부터 한민족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칡은 지명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칡고개, 칡사리고개, 칡받이고개, 칡미기재 등 '칡'자가 들어가는 고개이름도 많다. 지명에서 고개 인근에 칡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칡 갈(葛)'자가 들어가는 지명도 칡과 관련이 있다. '칡고개'를 한자로 옮기면 '갈현(葛峴)'이다.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葛峴洞)은 갈현(葛峴)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옛날 이 일대에는 칡이 많아서 갓을 만드는 원료가 되어 왔기 때문에 ‘칡고개', '갈고개', '가루개', ‘가루게' 등으로 불렀다. 이를 한자명으로 갈현(葛峴)이라고 한 것이다.
칡을 소재로 해서 쓴 유명한 시조가 있다. 멸망한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굽히지 않았던 정몽주(鄭夢周)에게 이성계(李成桂)의 5남 이방원(李芳遠)이 던진 '하여가(何如歌)'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하여가'의 내용은 언뜻 보면 온화한 듯하지만 쿠데타에 협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무서운 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정몽주는 죽을 줄 알면서도 태연하게 '단심가(丹心歌)'를 이방원에게 불러주었다. 결국 정몽주는 공양왕(恭讓王) 4년인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철퇴를 맞고 암살되었다.
칡은 장미목 콩과 칡속의 낙엽 활엽 덩굴성 식물이다. 학명은 푸에라리아 로바타 (윌드) 오위[Pueraria lobata (Willd.) Ohwi]이다. 영어명은 쿠드주 바인(kudzu vine) 또는 쿠드주(kudzu), 재퍼니즈 애로우룻(Japanese arrowroot)이다. 중국명은 거(葛)이고, 이명에는 예거(野葛), 샨거(山葛), 예거텅(野葛藤), 샨거텅(山葛藤), 거텅(葛藤), 샨예거(山野葛) 등이 있다. 일어명은 구즈(クズ, くず, 葛)이다. 칡을 분갈(粉葛), 갈자근(葛子根)이라고도 한다. 제주에서는 곡불히라고 한다. 꽃말은 '사랑의 한숨'이다.
칡의 원산지는 동북아시아이다. 칡은 한반도를 비롯해서 중국, 일본, 타이완, 러시아 극동지역, 말레이시아,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칡은 지구상에 약 17종이 분포한다. 한반도에는 1종이 자생한다. 한반도에서는 전국의 산과 들에서 자란다. 산기슭 양지쪽에 나며 햇볕을 잘 받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단일종이면서 칡만큼 널리 퍼져 있는 식물도 드물다.
칡뿌리는 길이 2~3m, 지름 20~30cm나 되는 것도 있다. 땅 속에서 옆으로 뻗고 섬유질로서 회백색을 띠며 녹말을 저장한다. 덩굴의 길이는 10m 이상, 지름은 20cm까지 자란다. 줄기는 길게 자라지만 끝부분이 겨울 동안에 말라 죽는다. 줄기 껍질은 흑갈색으로 갈색 또는 백색의 퍼진 털과 구부러진 털이 있다. 아랫부분은 목질화해서 가지가 잘 갈라진다. 오래된 것은 줄기의 직경이 10cm나 되는 것도 있으며, 지면이나 다른 나무를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잎은 3출엽으로 소엽은 마름모모양이다. 길이와 폭은 각 10~15cm × 10~15cm 정도이다. 잎에는 털이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얕게 3갈래로 갈라진다. 잎자루는 길이 10~20cm로 털이 있다. 턱잎은 피침형으로 중앙 부근에 붙어 있으며 길이가 15~20mm이다.
꽃은 8월에 홍자색으로 핀다. 꽃 길이는 18~25mm이다. 총상꽃차례는 곧추서며 길이 10~25cm이다. 포는 선형이고 긴 털이 있으며 꽃받침은 가운데까지 갈라진다. 열매는 협과이다. 협과는 넓은 선형으로 편평하고, 길이와 폭이 각 4~9cm × 8~0mm이며, 굳은 갈색의 퍼진 털이 있다. 종자는 갈색으로 9~10월에 성숙한다.
칡은 생명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경사지나 황폐지에 식재하여 토양침식을 방지하는 용도로 심기도 한다. 그러나 주위 식물들을 감아올라가 생육을 저해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칡은 일단 자리를 잡으면 다른 식물들을 고사시키고 주변 숲을 완전히 황폐화시킬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칡덩굴은 전봇대를 타고 전선까지 올라가 비 오는 날 전기합선을 일으키기도 한다. 전봇대를 지탱하는 철사 줄에 고깔을 뒤집어씌워 놓은 것은 칡이 타고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요즘에는 각 지자체에서 칡을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칡을 제거하는 기계도 개발되었다.
칡뿌리에서 추출한 전분은 제과원료, 제약정제의 결합제로 쓰인다. 옛날에는 칡뿌리가 중요한 구황식물이었다. 요즘 뿌리는 건강식품이나 자양강장제로 이용된다. 즙을 내서 마시거나 달여서 꿀을 탄 뒤 칡차로 마신다. 녹말로 만들어 칡개떡이나 과자, 칡국수, 칡냉면을 해 먹는다. 조선 시대에는 전분으로 묵을 만들거나 응이(죽)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요즘에는 칡송편, 칡전, 칡부꾸미, 칡전병, 칡조청을 만들어 먹는다. 알칡으로는 칡술을 담그기도 한다.
봄에 새순과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거나 튀김을 해 먹는다. 데쳐서 무치거나 볶아서 치즈를 올린 오븐구이로 먹기도 한다. 장아찌를 담그거나 칡밥을 짓기도 한다. 잎은 차의 대용이나 사료로도 쓰인다. 칡꽃의 가루를 술에 타서 먹으면 취기를 덜 수 있다.
칡덩굴의 속껍질을 청올치라고 하며, 끈으로 쓰거나 피륙을 짠다. 청올치로는 갈포(葛布)를 만든다. 갈포는 칡 줄기를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내 만든 하얀 섬유로 짠다. 한때는 칡 섬유로 벽지를 만들었고, 칡덩굴로 바구니와 광주리를 만들기도 했다. 칡은 녹색을 얻는 염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칡덩굴을 끈이나 밧줄, 새끼 대신 쓰기도 했다. 1433년(세종 15년) 정흠지(鄭欽之)는 '다리를 만드는 데에는 갈대와 칡을 많이 쓴다'고 했고, 1711년(숙종 37년)에는 북한산의 축성을 논의하면서 '성을 쌓는 역사를 할 때에 숯과 칡 등을 수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793년(정조 17년)에는 배다리를 놓은 방법으로 '두 배의 머리를 서로 마주 잇닿게 하고 말뚝을 마주 세워 박은 다음 칡 밧줄로 야무지게 묶는다'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는 칡으로 만든 밧줄이 중요한 군수물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왕이나 부모의 상을 당해 상복을 입을 때 매는 허리띠도 칡덩굴로 만들었다.
칡뿌리를 본초명 갈근(葛根)이라고 한다.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칡[Pueraria thunbergiana Benth. P. lobata (Willd) Ohwi.]의 뿌리를 건조한 것을 갈근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깐거(甘葛, 粉葛, Pueraria thomsonii Benth.)의 뿌리를 갈근으로 쓴다. 갈근의 이명에는 계제근(鷄薺根), 녹두(鹿豆), 건갈(乾葛), 감갈(甘葛), 분갈(粉葛), 황근(黃斤) 등이 있다. 사슴이 9종의 풀을 먹는다는 설이 있는데 갈근이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녹곽근(鹿藿根)이라 하기도 한다.
갈근에 얽인 전설이 전해온다. 갈근은 갈씨(葛氏) 집안의 뿌리(根)라는 뜻이다. 옛날에 충신으로 유명한 갈씨 집안에 어린 외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갈씨 집안은 간신의 모함으로 온 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외아들 소년만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 소년은 산속에서 약초를 캐는 노인을 만나자 목숨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다. 갈씨 가문이 충신 집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노인은 소년을 숨겨주고 추격해오는 군사를 따돌렸다. 그후 소년은 노인과 가족처럼 살면서 약초를 배우게 되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 뒤 소년은 노인에게 배운 의술로 환자들을 고쳐 주었다. 평소 잘 쓰던 칡뿌리의 이름을 자신의 성과 뿌리라는 뜻으로 갈근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갈근은 본초학에서 해표약(解表藥) 중 발산풍열약(發散風熱藥)으로 분류된다. 사상의학에서 갈근은 태음인약(太陰人藥)에 속한다. 갈근은 승양해기(升陽解肌), 투진지사(透疹止瀉), 제번지갈(除煩止渴), 발한해열(發汗解熱)의 효능이 있어 외감병(外感病)에 의한 온열두통(溫熱頭痛)으로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항배강통(項背强痛), 번열(煩熱), 구갈(口渴), 소갈(消渴), 습열(濕熱)로 인한 설사(泄瀉), 열리(熱痢), 마진불투(麻疹不透, 발진이 쉽게 나오지 않는 반진), 고혈압, 경항강통(頸項强痛) 등을 치료한다. 갈근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처방에는 감기(感氣)를 치료하는 갈근탕(葛根湯), 태음인 체질의 양명표증(陽明表症)과 어린이 열병인 양독(陽毒)에 사용하는 갈근해기탕(葛根解肌湯)이 있다. 갈근은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자주 처방하는 중요한 한약재이다.
칡의 꽃을 갈화(葛花), 덩굴을 갈만(葛蔓), 잎을 갈엽(葛葉), 종자를 갈곡(葛穀), 덩이뿌리를 물로 갈아서 맑은 웃물을 제거한 다음 침전물을 건조한 가루를 갈분(葛粉)이라고 한다. 갈화는 주독(酒毒)을 풀어 술을 깨게 하는 효능이 있다. 과음에 의한 발열(發熱), 번갈(煩渴), 오심(惡心), 식욕부진, 구역토산(嘔逆吐酸), 토혈(吐血), 장풍하혈(腸風下血) 등을 치료한다. 갈화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처방이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능을 가진 갈화해성탕(葛花解醒湯)이다. 갈만은 옹종(癰腫), 후비(喉痺)를 치료한다. 갈엽은 절상출혈(切傷出血)을 치료한다. 갈엽을 비벼서 부드럽게 하여 상처에 붙인다. 갈곡은 보심청폐(補心淸肺)하는 효능이 있다. 주독(酒毒)을 풀어주고 하리(下痢)를 치료한다. 갈분은 생진지갈(生津止渴), 청열제번(淸熱除煩)의 효능이 있다. 번열(煩熱), 구갈(口渴), 열창(熱瘡), 후비 등을 치료한다.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갈근(葛根, 칡뿌리)에 대해 '성질은 평(平)하고(서늘하다[冷]고도 한다) 맛은 달며[甘] 독이 없다. 풍한으로 머리가 아픈 것을 낫게 하며 땀이 나게 하여 표(表)를 풀어 주고 땀구멍을 열어 주며 술독을 푼다. 번갈을 멈추며 음식맛을 나게 하고 소화를 잘 되게 하며 가슴에 열을 없애고 소장을 잘 통하게 하며 쇠붙이에 다친 것을 낫게 한다. ○ 산에서 자라는데 곳곳에 다 있다. 음력 5월 초에 뿌리를 캐어서 햇볕에 말린다. 땅 속으로 깊이 들어간 것이 좋다[본초]. ○ 일명 녹곽(鹿藿)이라고도 한다[본초]. ○ 족양명경에 인경하는 약이다. 족양명경에 들어가서 진액이 생기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한다. 허해서 나는 갈증은 칡뿌리(갈근)가 아니면 멈출 수 없다. 술로 생긴 병이나 갈증이 있는데 쓰면 아주 좋다. 또한 온학(溫瘧)과 소갈(消渴)도 치료한다[탕액].'고 나와 있다. 또, 갈생근(葛生根, 생칡뿌리)에 대해서는 '어혈을 헤치며 헌데를 아물게 하고 유산을 시키며[墮胎解] 술독으로 열이 나는 것과 술로 황달이 생겨 오줌이 붉고 잘 나가지 않는 것을 낫게 한다. ○ 생뿌리를 짓찧어 즙을 내어 마시면 소갈, 상한, 온병으로 열이 몹시 나는 것이 내린다[본초].'고 설명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또 갈곡(葛穀, 칡씨)에 대해 '10년 이상 된 설사를 멎게 한다[본초].', 갈엽(葛葉, 칡잎)에 대해 '쇠붙이에 상한 것을 낫게 하며 피를 멎게 한다. 짓찧어서 붙인다[본초].', 갈화(葛花, 칡꽃)에 해 '술독을 없앤다. ○ 칡꽃(갈화)과 팥꽃(소두화)을 같은 양으로 가루내어 먹으면 술을 마셔도 취하는 줄 모른다[본초].'고 했다. 갈분(葛粉, 칡가루)에 대해서는 '성질은 몹시 차고[大寒] 맛은 달며[甘] 독이 없다. 번갈을 멎게 하고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어린이가 열이 나면서 명치 밑이 트직해지는 데 쓴다[본초]. ○ 생칡뿌리를 캐어 푹 짓찧어 물에 담갔다가 주물러 앙금을 앉히면 넓적한 덩어리가 된다. 이것을 끓는 물에 풀고 생꿀을 타서 먹으면 술마신 사람의 갈증이 아주 잘 풀린다[입문].'고 나와 있다.
2022. 2. 1.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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