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을 하면서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때 다래를 만나면 행운이다. 새콤달콤한 다래가 목마름을 가라앉혀 줄 뿐만 아니라 요기(療飢)도 되기 때문이다. 다래가 있는 산풍경은 풍성한 가을을 느끼게 해준다.
다래는 옛 문인들의 문학적 소재가 되기도 했다. 험난한 세상사를 피해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노래한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에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 시대 장유(張維, 1587~1638)가 쓴 '계곡선생문집(谿谷先生文集)'에는 '나무시렁에 덩굴 올린 지 몇 년도 안 된 사이/벌써 푸른 다래 주렁주렁 달렸네요/혀끝에 감도는 차고도 달콤한 맛 병든 폐 소생할 듯/신선에게 구태여 반도(蟠桃) 구할 필요가 없네요'라는 시가 실려 있다.
서양다래 키위(kiwi)도 사실은 원산지가 중국이다. 뉴질랜드로 전해진 키위는 '중국에서 건너온 구즈베리'라고 해서 차이니즈 구즈베리(Chinese Gooseberry)로 불렸다. 차이니즈 구즈베리는 인기리에 미국으로 수출됐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중국을 싫어한 미국인들 때문에 차이니즈 구즈베리는 '작고 맛있는 멜론'이란 뜻의 멜론넷(Melonet)으로 이름이 바꼈다. 그런데, 미국에서 멜론류 과일은 관세가 비쌌다. 그래서, 새로 지은 이름이 키위였다. 오늘날 키위는 날지 못하는 새 키위, 과일 키위, 뉴질랜드인을 가리키는 키위 등 세 가지 뜻이 있다.
다래 또는 다래나무는 물레나물목 다래나무과 다래나무속의 낙엽 활엽 만경목이다. 학명은 악티니디아 아르구타 (지볼트 & 추카리니) 플랑숑. 엑스 미쿠엘[Actinidia arguta (Siebold & Zucc.) Planch. ex Miq.]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 ‘조선방음(朝鮮方音)’에 따르면 한(漢)나라 말기 양숑(揚雄)이 쓴 '팡옌(方言)'에 '중국의 미후도가 조선에서는 달애(怛艾)라고 표기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두식으로 맛이 달다고 할 때의 ‘달’에 명사 초성의 뒤붙이 ‘애’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달애->다래로 음운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다래의 영어명은 바인 페어(Vine pear) 또는 하디 키위(hardy kiwi), 바우어 액티니디어Bower Actinidia)이다. 일어명은 사루나시(サルナシ, さるなし, 猿梨) 또는 시라쿠치(シラクチ, しらくち, 獼猴桃)이다. 중국명은 롼자오미허우타오(軟棗獼猴桃) 또는 미허우타오(猕猴桃)이고, 이명에는 양타오(羊桃, 杨桃), 마오타오(毛桃), 텅리(藤梨), 미허우리(獼猴梨), 중궈추리(中國醋梨), 중궈허우리(中國猴梨) 등이 있다. 다래를 다래몽두리, 참다래나무, 다래넌출, 조인삼(租人蔘)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깊은 사랑'이다.
다래는 한반도를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 극동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전국 각지 해발 1,600m 이하의 산지에서 자란다. 깊은 산골짜기의 나무 밑에서 자라며 양지와 음지에서 모두 잘 자라고 추위에도 잘 견딘다.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2-71번지에 있는 창덕궁 다래나무는 수령 약 600년으로 천연기념물 제251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래나무의 뿌리는 사방으로 뻗어 있다. 다래덩굴은 길이 20m, 직경 15cm까지 자란다. 줄기의 속은 갈색으로 계단모양이다. 일년생가지에는 잔털이 있으며 껍질눈이 뚜렷하다. 가지는 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넓은 달걀모양, 넓은 타원형 또는 타원형에 급한 점첨두이고 원저, 아심장저 또는 심장저이다. 잎 길이는 6~12cm, 나비 3.5~7cm이다. 잎 표면은 녹색으로 광택이 나며 털이 없다. 뒷면은 담녹색으로 맥 위에 연한 갈색 털이 있지만 곧 없어지며, 맥액에만 갈색이 도는 털이 남는다. 잎 가장자리에는 침상의 잔톱니가 있다. 엽병은 길이 3~8cm로서 흔히 복모가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나무에서 흰색으로 핀다. 꽃받침잎은 타원형이며 겉에 잔털이 있고, 꽃잎 기부에 갈색이 돈다. 열매는 장과로 난상 원형이며 털이 없고 길이 2.5cm 정도이다. 10월에 황록색으로 익고 맛이 좋다.
다래나무의 어린잎은 나물로 먹는다. 데쳐서 말렸다가 묵나물로 이용한다. 열매는 생식, 다래주, 과즙, 쨈 등으로 이용된다. 다래는 갈증 해소, 해열, 건위, 강심, 강장 등에 효과가 있다. 피로회복, 미용에도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래나무 열매나 수액을 생강과 함께 먹으면 두 음식의 성분이 결합하여 이뇨작용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에 신장결석 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다래와 생강은 음식궁합이 잘 맞는다. 옛날에는 다래를 꿀에 넣고 조린 다래정과(正果)를 만들기도 했다. 다래덩굴은 정원이나 공원 등에 관상용으로 심어도 좋다.
다래나무의 근경(根莖)을 본초명 등리근(藤梨根), 덩굴을 미후등(獼猴藤), 잎(葉)을 미후도지엽(獼猴桃枝葉), 열매를 미후도(獼猴桃) 또는 미후리(獼猴梨), 연조자(軟棗子)라 하며 약용한다. 등리근, 미후등, 미후도는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수재되어 있지 않다. 미후등은 사상의학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태양인약(太陽人藥)으로 분류된다. 특히, 태양인 오심(惡心)과 구토(嘔吐)에 특효다. 미후등이 들어가는 처방에는 태양인의 고혈압 등 일체 이증(裏證)을 치료하는 처방인 미후등식장탕(獼猴藤植腸湯)이 있다. 원래는 미후도를 써야 하는데, 구하기 어려우므로 미후등을 쓴다고 나와 있다.
미후등과 등리근, 미후도지엽은 건위(健胃), 청열이습(淸熱利濕), 최유(催乳) 등의 효능이 있어 소화불량, 구토, 복사(腹瀉), 황달, 류머티즘에 의한 관절통 등을 치료한다. 미후도는 지갈(止渴), 해번열(解煩熱)의 효능이 있으며, 석림(石淋, 비뇨기결석)을 치료한다.
'동의보감' <탕액편 : 과실>에는 미후도(獼猴桃, 다래)에 대해 '성질은 차며[寒] 맛이 시고[酸] 달며[甘] 독이 없다. 심한 갈증과 번열을 멎게 하며 석림을 치료한다. 또 비위(脾胃)를 차게 하고 열기에 막힌 증과 반위(反胃)를 치료한다. ○ 어느 곳에나 다 있으며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데 나무를 감고 덩굴지어 뻗어 있다. 그 열매는 푸른 풀색이며 생김새가 좀 납작하면서 크다. 처음에는 몹시 쓰고 떫다가[甚苦澁] 서리를 맞은 다음에는 맛이 달고[甘] 좋아져서 먹을 만하다. 일명 등리(藤梨)라고도 한다[본초].'고 나와 있다.
다래의 유사종에는 녹다래(Red-nerve hardy kiwi), 털다래, 개다래(silver vine), 섬다래(Reddish-brown hardy kiwi), 쥐다래 등이 있다. 녹다래(Actinidia arguta var. rufinervis Nakai)는 잎 뒷면 맥액에 갈색 털이 있다. 잎맥 겨드랑이에 갈색 털이 있으면 녹다래다. 다래에 비해 열매 꼭지가 약간 튀어나와 있다. 잎은 다래보다 원형에 가깝고 현저하게 작다. 털다래[Actinidia arguta var. platyphylla (A.Gray) Nakai]는 잎 뒷면 맥 위에 돌기가 있고 맥액에 백색 털이 있다. 잎의 주맥에 털 형태의 돌기가 나 있으면 털다래다. 다래에 비해 열매 꼭지가 약간 튀어나와 있다. 녹다래보다 잎이 크고, 다래보다 잎이 원형에 가깝다. 개다래[Actinidia polygama (Siebold & Zucc.) Planch. ex Maxim.]는 줄기 윗부분의 잎이 하얀 것이 특징이다. 열매 끝이 뾰족하다. 개다래 열매에 충영(蟲癭)이 생긴 것을 목천료(木天蓼)라고 한다. 목천료는 신장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혈액의 요산 수치를 낮춰주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 통풍의 치료에 쓴다. 목천료는 본초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고, 한의사들도 임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섬다래[Actinidia rufa (Siebold & Zucc.) Planch. ex Miq.]는 전라남도와 제주도에 분포한다. 잎과 엽병, 일년생가지와 열매에 갈색털이 있다. 쥐다래[Actinidia kolomikta (Maxim. & Rupr.) Maxim.]는 백두대간에 분포한다. 잎이 얇고 대부분 백색의 무늬를 가진다. 줄기는 자갈색이고 열매가 가늘고 길게 익는다.
2022. 2. 2.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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