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를 처음 만난 곳은 지리산 한신계곡이었다. 그때는 이파리는 보이지 않고 꽃대만 올라와 있어서 '처녀치마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백두대간 백복령에서 원방재를 향해 가다가 군락을 이룬 처녀치마를 보고 나서야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방으로 퍼져서 나는 잎이 마치 옛날 처녀들이 입는 화려한 치마와 꼭 닮았던 것이다. 이른 봄에 나오는 처녀치마의 잎은 초식동물이 뜯어먹어서 꽃대만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녀치마는 백합목 백합과 처녀치마속의 숙근성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헬로니옵시스 커리아나 퓨즈 & 이남숙 & 미노루 엔. 다무라(Heloniopsis koreana Fuse & N.S.Lee & M.N.Tamura)이다. 꽃말은 '절제'이다.
처녀치마의 영어명은 커리언 스왐핑크(Korean swamppink)이다. 중국명은 후마화(胡麻花) 또는 즈화후마화(紫花胡麻花)이다. 일어명은 쇼죠우바카마(ショウジョウバカマ, しょうじょうばかま, 猩々袴)이다. 쇼죠우(猩猩)는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짐승이다. 오랑우탄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카마(はかま, 袴)는 일본 옷의 겉에 입는 주름잡힌 하의(下衣)를 말한다. 지금은 하오리(はおり, 羽織)와 함께 정장(正裝)의 경우에 입는다. '쇼죠우(ショウジョウ(猩猩)'에서 'ウ(우)'를 빼면 '소녀, 처녀'의 뜻을 가진 '쇼죠(ショウジョショ)'가 된다. 이것을 번역한 것이 '처녀치마'이다. 이처럼 '오랑우탄'에서 '처녀'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름을 붙이면서 생긴 일이라는 설도 있다. 처녀치마를 자화동방호마화(紫花東邦胡麻花), 치마풀, 치맛자락풀, 성성이치마라고도 한다. 성성이치마라는 이름은 일어명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처녀치마는 한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타이완, 사할린 등지에 분포한다. 처녀치마속은 한반도에 2종, 일본에 3종, 타이완에 1종 등 모두 6종이 있다. 한반도 특산종인 처녀치마는 전국의 산지에 분포한다. 높은 산 부엽(腐葉)이 두텁게 쌓여 비옥하고 습윤하며 반그늘진 낙엽수림 아래서 주로 자란다. 꽃이 특이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의 도채(盜采)가 많이 이루어진다.
처녀치마의 근경은 짧고 곧으며, 수염뿌리가 많다. 줄기는 잎과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잎은 로제트를 이루며 나와 치마를 펼쳐놓은 것처럼 퍼진다. 거꿀피침모양의 잎 길이는 6~20cm이다. 잎은 가죽질이고 윤이 나며 끝이 뾰족하다. 앞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꽃대는 높이 10~30cm 정도 자란다. 꽃대에는 포같은 잎이 달리며, 새로운 잎이 방석처럼 밑부분의 옆에서 돋는다. 꽃은 4월에 꽃대 끝에 고개를 숙이면서 적자색으로 핀다. 3~10개의 꽃이 총상으로 달린다. 꽃이 핀 후에는 자록색이 돈다. 꽃자루는 열매가 익을 때는 길이 1.5~2cm이다. 화피열편은 6개로 거꿀피침모양이며 길이 1~1.5cm이다. 수술은 6개이고 수술대는 화피보다 길다. 꽃대는 점차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점점 높이 자라 약 50cm에 이른다. 이것은 바람에 의해 가능한한 종자를 멀리까지 날려보내기 위함이다.
열매는 삭과이다. 삭과는 마른 화피로 싸이고 위를 향하며 3개의 능선이 있고 포간으로 터진다. 종자는 선형이며 길이 5mm정도로서 양끝이 좁다.
처녀치마는 낙엽성 교목 아래의 지피용 소재로 알맞다. 화단에 심거나 잔디밭 주변의 경계에 심어도 좋다. 무리지어 심어도 좋은 경관을 연출할 수 있다. 화분에 심으면 초물분재로도 가치가 있다.
처녀치마의 유사종에는 흰처녀치마, 숙은처녀치마(Tubular-flower swamppink) 등이 있다. 흰처녀치마[Heloniopsis orientalis var. flavida (Nakai) Ohwi]는 북한산, 소백산, 태백산 등지에 분포한다. 꽃이 흰색이다. 숙은처녀치마(Heloniopsis tubiflora Fuse, N.S.Lee & M.N.Tamura)는 2006년에 등재되었다. 좁은잎처녀치마라고도 한다. 잎이 좁으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다.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특징이 있다.
2022. 5. 3.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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