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백당나무 '마음'

林 山 2022. 9. 18. 09:57

2015년 6월 초순 백두대간 설악산 서북능선을 오르다가 하얀 중성화(中性花, 가짜꽃)가 활짝 피어난 백당나무를 만났다. 산길을 오르다가 아름다운 꽃을 만나면 산행의 힘든 것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특이한 모습으로 피는 백당나무의 꽃은 산수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백당나무의 무성꽃은 흰색, 산수국의 무성꽃은 백홍벽색(白紅碧色) 또는 벽색(碧色)이다. 

 

백당나무라는 이름은 경기도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하얀 꽃에서 '희다'는 뜻의 '백(白)', 잎이 비슷하게 생긴 '닥나무'를 합쳐서 '백닥나무'라고 불렀는데, 음운변화가 일어나 '백당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얀(白)' 꽃이 '단(壇)'을 이룬 것 같다는 뜻에서 ‘백단(白壇)나무’라고 불렀는데, 역시 움운변화가 일어나 '백당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꽃이 '흰색(白)'이고, '당분(糖分)'이 많아서 '백당나무'이름이 붙었다는 설, '흰색(白)' 꽃이 '불당(佛堂)' 앞에 많이 피어 있다고 해서 '백당나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백당나무에서 생식기능을 없애 무성화(無性花)로 개량한 품종이 바로 불두화(佛頭花)이다. 

 

백당나무와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國花)이기도 하다. 백당나무는 시와 노래, 장식 예술, 자수 등 우크라이나 민속, 전통 문화에서 매우 인기있는 소재로 등장한다. 백당나무가 우크라이나의 국화가 된 것은 슬라브족의 고대 민족 종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백당나무의 우크라이나어 이름은 칼리나(kalyna)이다. 칼리나는 이른바 '불 삼위일체(Fire Trinity)'라 불리는 우주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불 삼위일체는 태양과 달, 별이다. 백당나무 열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고향과 조국, 피, 가족의 뿌리를 상징한다.   ​

 

백당나무(설악산 서북능선, 2015. 6. 6)

백당나무는 산토끼꽃목 인동과 산분꽃나무속의 낙엽 활엽 관목이다. 꽃말은 '마음'이다. 학명은 비부르눔 오풀루스 린네(Viburnum opulus L.)이다. 속명 '비부르눔(Viburnum)'은 그 유래가 알려져 았지 않다. 종소명 '오풀루스(opulus)'는 ‘관목(灌木)’의 라틴어명이다. 명명자 '린네(L.)'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이다. 린네는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현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린다. 

 

백당나무의 영어명에는 스무스-크랜베리 부쉬 바이버넘(Smooth-cranberrybush viburnum) 또는 유러피언 크랜베리부쉬(European cranberrybush), 겔더 로즈(guelder rose), 휘틴 트리(whitten tree), 워터 엘더(water elder), 크램프 바크(cramp bark), 스노우볼 트리(snowball tree), 커먼 스노우볼(common snowball)등이 있다. 겔더 로즈(guelder rose)는 인기리에 재배되는 불두화(snowball tree)가 유래한 네덜란드 동부 헬데를란트(Gelderland)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사실 백당나무는 덩굴월귤(cranberry)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다. 

 

일어명은 세이요우칸보쿠(セイヨウカンボク, 西洋肝木)이다. 이명에는 요우슈칸보쿠(ヨウシュカンボク, 洋種肝木) 등이 있다. '간보쿠(肝木)'는 ‘간보쿠(灌木)'의 관용적 표현이다. 약용 식물이기 때문에 관용적으로 '간보쿠(肝木)'로 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당나무의 중국명은 어우저우쟈미(欧洲荚蒾)이다. 이명에는 어우저우춍화(歐洲瓊花), 어우저우쉬에치우(欧洲雪球), 쉬에치우(雪球) 등이 있다. 

 

백당나무를 대한민국(남한)에서는 개불두화, 까마귀밥나무, 청백당나무라고도 한다. 까마귀밥나무는 열매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본초명은 계수조(鷄樹條)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는 접시꽃나무라고 부른다. 꽃을 보면 가운데에 황록색의 자잘한 진짜 꽃 수십 개가 동그랗게 모여 있고, 그 주위를 동전 크기의 하얀 가짜 꽃이 감싸듯 에워싸고 있다. 마치 흰 접시에 음식을 담은 모습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백당나무를 접시꽃나무라고 부른다.  

 

백당나무는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아시아에는 한강토(조선반도)를 비롯해서 중국 중북부, 일본, 타이완, 러시아 동북부에 자란다. 중국에서는 신쟝(新疆), 네이멍구(内蒙古), 칭다오(青岛) 등지에서 난다. 한강토에서는 전국 산지의 계곡과 산록의 습한 지역에 자생한다.

 

백당나무(정선 함백산, 2022. 6. 11)

백당나무의 뿌리는 천근성(淺根性)이다. 키는 3m 정도까지 자란다. 원줄기에서 많은 줄기를 내어 덤불을 이룬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다. 일년생 가지는 붉은빛이 도는 녹색이며, 잔털이 있다. 잎은 마주나기한다. 잎 끝은 보통 3개로 갈라지고, 양쪽 2개의 열편이 밖으로 벌어지지만, 윗부분의 잎은 갈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잎은 점첨두 원저이고, 길이 5~10cm로서 톱니가 약간 있다. 잎 뒷면에는 털이 있다. 잎자루는 길이 2.0~3.5cm로서 끝에 2개의 꿀샘(蜜腺)이 있으며, 밑에는 2개의 탁엽(托葉)이 있다.

 

꽃은 5~6월에 핀다. 꽃차례는 짧은 가지 끝에 달린다. 화경은 길이 2~6cm로서 주변에 무성꽃이 있고, 잔털이 있는 것도 있다. 중성화관(中性花冠)은 지름 3cm로서 흰색이며, 크기가 다른 5개의 열편으로 갈라진다. 유성화관(有性花冠)은 지름 5~6cm로서 흰색이며, 5개의 열편으로 갈라지고, 열편은 달걀모양 둔두(鈍頭)이다. 꽃차례 가장자리에는 중성화(무성화, 장식화, 꾸밈꽃, 가짜꽃), 안쪽에는 양성꽃이 달린다. 

 

중성화는 통꽃으로 씨방이나 암술, 수술이 없다. 즉,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석녀화(石女花)다. 중성화의 역할은 진짜 꽃에 수분을 매개하는 곤충이나 나비 등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얀 큰 꽃잎을 활짝 피워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백당나무 나름대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수술은 5개이며 길이 3mm로서 꽃부리보다 길고, 꽃밥은 자주색이다. 열매는 핵과(核果)이다. 핵과는 지름 8~10mm로서 둥글다. 열매는 9월에 빨간색으로 익고, 겨울까지 달려 있으나 악취가 난다.

 

백당나무(정선 함백산, 2022. 6. 11)

백당나무는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 공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공원의 교목 아래에 심거나 사찰 주변에 심어도 잘 어울린다. 열매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정원수로는 좋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겨우내 열매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산새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보기에는 먹음직스럽지만 맛이 시큼하고 청국장 같은 냄새가 나 사람들도 잘 먹지 않는다. 

 

백당나무(정선 함백산, 2022. 6. 11)

민간에서는 백당나무의 잎과 가지를 풍습으로 인한 관절염, 타박상, 염좌, 피부소양증, 옴, 종기 등의 치료에 쓰기도 한다. 열매는 기관지염과 기침, 위궤양, 위통에 쓴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백당나무의 잎과, 가지, 열매 등을 거의 쓰지 않는다. 

 

백당나무 열매(정선 함백산, 2022. 6. 11)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백당나무의 유사종에는 민백당나무(Viburnum opulus for. calvescens Rehder), 부처머리모양꽃차례(Viburnum opulus for. sterile Hara) 등이 있다.'고 나와 있다. 또, '민백당나무는 일년생 가지와 잎에 털이 없다. 부처머리모양꽃차례는 모든 꽃이 무성꽃이며 절에서 심고 있다.'고 나와 있다. 부처머리모양꽃차례는 불두화를 말하는 듯하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과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Viburnum opulus for. calvescens Rehder', 'Viburnum opulus for. sterile Hara', '불머리모양꽃차례', '불두화'가 등재되어 있지 않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백당나무[Viburnum opulus L. var. calvescens (Rehder) H.Hara]가 정명, Viburnum sargentii Koehne f. calvescens (Rehder) Rehder, Viburnum opulus L. f. hydrangeoides (Nakai) H.Hara, Viburnum sargentii Koehne f. intermdium (Nakai) H.Hara 등은 이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은 정명이든 이명이든 백당나무이다. 민속특산식물사전에는 수국백당나무(Viburnum sargentii Koehne for. sterile Hara)를 불두화라고 했다.  

 

백당나무의 유사종에는 황실백당나무, 털백당나무도 있다. 황실백당나무(Viburnum sargentii f. flavum)는 향기로운 흰색 또는 분홍색 꽃이 핀다. 수술의 꽃밥이 황금색이다. 열매는 반투명의 황금빛 노란색이다. 털백당나무[Viburnum opulus f. puberulum (Kom.) Sugim.]는 가지나 잎자루, 꽃차례의 가지에 보통 털이 있다. 잎 뒷면에는 개출모(開出毛)가 있다.

 

2022. 9. 18.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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