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했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의 형식', 또는 '종래의 관습, 제도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움'이다.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아야톨라흐 이맘 코메이니)와 그 추종 세력이 이슬람 혁명(Islamic Revolution)을 일으켜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던 팔라비 샤(Mohammad Reza Shah Pahlavi) 왕조(王朝) 전제정권(專制政權)을 몰아내고 이슬람 율법 샤리아로 통치하는 신정정권(神政政權)을 수립했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혁명 주체 세력은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다양한 좌파와 이슬람 단체, 학생운동 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이란 여성들도 이슬람 혁명에서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이란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행진이나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이슬람 혁명에 큰 기여를 했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항의했고, 발포 명령을 받은 팔라비 군의 병사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일부 여성들은 게릴라 부대원으로서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되었다.
마침내, 팔라비 왕조는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이슬람 공화국으로 정부가 교체되었다. 그러나, 호메이니의 신정정권은 팔라비에 충성하는 군대와 게릴라전을 벌이며 목숨 걸고 싸웠던 좌파 인사나 민주 인사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은 민중의 투쟁으로 왕조 전제정권을 타도한 시민혁명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었으나 신정정권의 수립은 그 의미를 완전히 퇴색시켜버리고 말았다.
호메이니의 신정정권 수립은 이란 여성들에게도 재앙이었다. 이란 여성들은 혁명 과정에서 약속받은 자유와 권리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팔라비 왕조 전제정권에서 누리던 것들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다. 호메이니 신정정권의 가증스런 배신이었다.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자 본모습을 드러낸 신정정권은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던 것이다.
이란 이슬람 신정정권은 먼저 여성들에게 강제로 히잡(hijab)을 쓰게 했다. 히잡은 무슬림 여성들이 외출시 머리와 목을 전체적으로 휘감으며 얼굴만 노출시키는 베일의 일종이다. 히잡의 강제 착용은 신정정권이 이란 여성들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떠올랐다.
히잡의 기원은 이슬람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이슬람 초기부터 무슬림 여성들은 모든 권리가 제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여성을 매매하는 일이 흔했기에 여성의 정조를 매우 중요시했다. 언제부터인가 히잡이 여성의 정조를 상징하게 되면서 히잡이 착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란 신정정권은 구시대의 유물인 이슬람 율법 샤리아로 이란인들을 통치하면서 히잡 착용 등 여성을 남성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여성 차별 정책을 강행했다. 호메이니는 "여성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외출하는 걸 금지합니다. 법을 따르지 않으면 강력히 처벌하겠습니다."라고 공언했다. 이란에서는 호메이니의 말 한 마디가 곧 법이 되는 전근대적인 사회로 전락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란 여성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용감한 이란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어버리는 등 신정정권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지자 이슬람 율법학자 출신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는 2022년 8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는 법을 발표했다. 라이시는 “공공장소에서 히잡 미착용 여성은 안면인식 기술로 그 자리에서 누군지 밝히겠다.”고 경고했다.
2022년 9월에는 22세의 이란 여성 마사 아미니(Mahsa Amini)가 히잡 착용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혐의로 도덕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차 안에서 구타를 당한 지 며칠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이란 신정정권이 여성에 대한 만행 사건 중 가장 최근의 일이었다.
이란에서는 이슬람 복장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부 관청이나 은행에 출입하는 것이 금지되는 등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행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란 도덕경찰이 마사 아미니를 구타 살해한 사건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아미니 구타 살해 사건을 접한 친 신정정권 인사를 포함한 많은 이란인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이던스 패트롤(Guidance Patrols)로 알려진 도덕경찰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며, '#살인순찰'로 번역되는 해시태그를 사용하고 있다.
많은 이란인들은 대통령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신정정권 통치자 알리 하메네이를 직접 비난하고 있다. 많은 이란인들이 하메네이가 마사 아미니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메네이는 도덕경찰의 역할을 정당화하고 이슬람 통치 하에서 여성은 이슬람 복장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화를 열망하는 이란의 젊고 활기찬 진보 개혁 세력과 과거로의 회귀를 고집하는 극우 통치자의 갈등은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란에서는 어쩌면 민주 진보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하메네이와 신정정권, 혁명수비대를 타도하려는 시민혁명이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히드 페르손 사르베스타니(Nahid Persson Sarvestani, 1960~) 감독은 다큐멘터리 '우리의 목소리(Be My Voice)'에서 이란 통치자 하메네이와 신정정권에 저항하는 이란 여성 인권 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Masih Alinejad, 1976~)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러닝 타임은 83분, 2021년 스웨덴, 미국, 이란, 영국, 노르웨이 합작으로 제작됐다. 다큐 제목 'Be My Voice'는 '우리의 목소리'도 좋지만, 내용으로 볼 때 '내 목소리가 되라!'로 번역해도 좋을 것 같다.
사르베스타니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후 스웨덴으로 망명해 이란의 신정정권에 비판적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이란계 스웨덴인 감독이다. 주로 사회 정치적인 관점의 작품들을 만들어온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에는 'My Mother – A Persian Princess'(나의 엄마 - 페르샤 공주, 2000), 'The End of Exile'(망명의 끝, 2000), 'The Last Days of Life'(인생의 마지막 날, 2002), 'Prostitution Behind the Veil'(베일 뒤의 매춘, 2004) 등이 있다.
사르베스타니는 2007년 테헤란에서 두 매춘부의 삶을 고통스럽게 드러내는 논쟁적인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Prostitution Behind the Veil'가 이란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어 3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 다큐멘더리는 국제 에미상 후보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크라쿠프 영화제에서 황금 용 상, 몬테카를로의 TV 페스티벌 2005에서 최고의 국제 뉴스 다큐멘터리 상, SVT(스웨덴 공영 텔레비전)에서 크리스탈 어워드(크리스탈렌), 스웨덴 영화재단에서 황금 풍뎅이 상을 수상했다. 'The Last Days of Life'는 2002년 스웨덴 암 재단(Cancerfondens)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했다.
2007년 사르베스타니는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고 이란 남서부 쉬라즈(Shiraz)의 일부다처제 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 'Four Wives - One Man'(네 명의 아내 - 한 명의 남편)을 밀반출하여 스웨덴에서 편집했다. 2008년에는 이란 전 왕비 파라 팔레비와 감독 자신의 1년 동안의 관계를 돌아보는 90분짜리 다큐멘터리 'Queen and I'(왕비와 나)를 찍었다. 이 영화는 200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북미 초연을 한 뒤 이슬람 혁명 30주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적으로 개봉되었다.
마시 알리네자드는 이란계 미국인 언론인이자 작가, 여성 인권 운동가다. 현재 미국 뉴욕시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알리네자드는 이란의 인권, 특히 여성 인권의 신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런 공로는 알리네자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제네바 정상회담의 여성 인권 상, 메디 셈사르 재단의 오미드(Omid) 저널리즘 상 등을 받았다.
알리네자드는 히잡 착용이 강요되는 이란 독재 신정정권에 저항하는 수백만 명의 이란 여성들의 목소리를 SNS를 통해 대변해 왔다. 그녀는 미국으로의 망명이 가져다준 표현의 자유를 활용하여 이란 여성들의 히잡 착용 반대 시위를 이끌면서 이를 이란에서 가장 큰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성장시켰다.
알레네자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워가 7백20만 명을 넘었으며, 그녀가 이끄는 캠페인은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여성에게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도록 격려한다. 그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휴대폰을 이용해서 자기만의 방송을 하세요. 자기 검열 따위는 하지 말고 마음껏 찍자고요."라며 이란 여성들의 용기를 북돋운다. 그녀는 "이란은 지금까지 자국 여성에게 히잡을 쓰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히잡을 없애면 이란의 정체성도 사라지는 겁니다."라면서 "탄압에 반대한다! 노 히잡! 모두 리더예요, 자유를 외칩시다."라고 외친다. .
소셜 미디어를 통한 알레네자드의 선도에 용기를 얻은 이란 내 여성들은 "기분 최고예요. 왜 히잡을 써야 하죠?", "우리는 히잡 의무 착용을 반대한다!"면서 행동에 나선다. 히잡 착용을 반대하는 이란 여성들은 "여성도 신체 결정권이 있다."고 항변한다.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남자들의 욕설과 구타, 도덕경찰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이란은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은 강간을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그런 사회다.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고 무지막지하게 24년 형을 선고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이처럼 여성 인권이 열악한 사회에서 히잡 착용 반대 운동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란에서 히잡 착용 반대 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전 세계인들의 양심에 "제 딸은 24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에요. 전 세계에 있는 여러분 왜 침묵하고 있습니까?"라고 호소한다. 알리네자드는 이란의 여성 인권 탄압에 침묵하는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을 비판한다. 그녀는 특히 여성 정치인들에게 "저 여성들은 자유를 쟁취하려고 몸을 던져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성 정치인들은 우리가 반대하는 법에 순응했어요. 독재 국가를 정상 국가이자 합법적이라고 인정한 행위입니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란 신정정권은 알레네자드의 저항 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알레네자드에 대한 암살 기도는 물론 그녀의 가족에게도 핍박과 탄압이 가해진다. 국제앰네스티는 2019년 9월 23일 이슬람 공화국 보안군이 알리네자드의 여성 인권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가족 3명을 체포했다고 폭로했다. 알리네자드의 오빠 알리레자 알리네자드(Alireza Alinejad)는 테헤란, 하디(Hadi)와 그녀의 전 남편 막스 로트피(Max Lotfi), 로트피의 여동생 레일라 로트피(Leila Lotfi)는 북부 도시 바돌(Babol)에서 체포되었다. 그녀의 부모, 형제 자매, 친척과 동료들은 반복적으로 괴롭힘과 해고 위협을 받았다. 정보부 요원은 부모와 형제 자매에게 '가족 상봉'을 위해 알리네자드를 이웃 터키로 유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알리네자드의 오빠는 '가족 상봉'이 그녀를 납치하기 위한 함정임을 알려 위기를 모면하게 했다. 알리레자는 8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2021년 7월 미국 법무부는 이란에 비판적인 미국, 캐나다, 영국 내 언론인을 납치하려는 이란 정보 요원들의 음모를 적발, 4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의 납치 대상에는 알리네자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뉴욕 알리네자드의 집에서 브루클린 해안까지의 여행 경로를 확인하고, 뉴욕에서 해상 대피를 위한 군용 쾌속정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조사했으며, 뉴욕에서 베네수엘라까지의 해상 항로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7월 28일 뉴욕 경찰은 브루클린 교외에 있는 알리네자드의 자택 인근에서 23세의 암살 용의자를 검거했다. 경찰은 용의자의 차량에서 1000달러 이상이 담긴 서류 가방과 AK-47 소총을 발견해 압수했다. 이란 신정정권은 협박이 통하지 않자 알리네자드를 암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알리네자드는 이란 신정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바쁘고 힘들지만 늘 머리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식처럼 플루메리아(Plumeria) 꽃이 꽂혀 있다. 그녀는 "꽃 하나 심는다고 세상이 정원으로 바뀔 수는 없지만, 모두가 씨앗을 하나씩 심으면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꿈은 혼자 꾸면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실현될 수 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도 여럿이 함께 하면 이룰 수 있다.
다큐 영화는 여성들이 인권 운동 가요를 부르는 것으로 엔딩을 대신한다. 여자, 여자로 평가받아온 세월,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함께 시련을 견디고, 서로의 손을 꽉 잡으면, 억압에서 벗어나게 될 거야. 평등하고 서로에게 공감하는 여성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 모두가 더 행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들에게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 옹졸한 지도자, 가혹한 정권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전혀 없다. 인류 역사는 세상의 모든 전제정권과 신정정권,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자유과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위다. 이란 여성들의 인권 운동, 나아가 이란 신정체제(神政體制)에 대한 저항 운동을 지지한다. 이란 여성들이 진정 바라는 사회가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기원한다.
2022. 9. 18.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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