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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산사나무 아래(山楂树之恋) -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순애보

林 山 2022. 9. 16. 12:24

내게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첫 사랑이 있었을까? 정말 오랜만에 아름답지만 너무나 가슴 아픈 순애보를 그린 영화 '산사나무 아래(山楂树之恋)'를 보았다. 주연 여배우 저우동위(周冬雨, 주동우)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본 저우동위는 정말 영화에서 맡은 극중 여주인공 징츄(静秋)라는 이름처럼 순진무구한 청순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 '산사나무 아래' 포스터

저우동위가 누군지도 몰랐던 필자는 장이머우(张艺谋)라는 감독 이름 때문에 이 영화를 보았다. 중국의 봉건주의적 남성 중심의 사회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일본의 압제와 수탈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삶을 그린 '붉은 수수밭(Red Sorghum, 紅高梁, 1987)', 근대화되어 가는 중국에서 법치주의가 사실은 따뜻한 정의와는 거리가 먼 차가운 행정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츄쥐 이야기(The Story of Qiu Ju, 秋菊打官司, 1992)'를 보고 그의 연출력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롄제(李连杰), 양차오웨이(梁朝偉), 장만위((張曼玉), 전즈단(甄子丹) 주연의 '영웅(英雄, Hero, 2002)'이나 류더화(劉德華), 가네시로 다케시(金城武), 장쯔이(章子怡) 주연의 '연인(十面埋伏, House of Flying Daggers, 2004)'을 보고 나서는 '장이머우 감독이 이런 킬링 타임(Killing Time)용 무협 판타지 영화도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실망까지는 아니었지만 의외였다. 

 

'秋菊打官司(츄쥐따관스)'를 '귀주 이야기'로 번역한 것은 무지의 극치다. '秋菊'의 발음기호는 'qiūjú'(츄쥐)인데, 'q'(ㅊ)를 'ㄱ'으로 읽었으니 말이다. '츄쥐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샨시성(陝西省)의 산골 마을로 당연히 중국 서남부의 구이저우(贵州)와는 전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아직도 '秋菊打官司'를 '귀주 이야기'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자.

 

 

징츄

저우동위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장이머우가 2020년에 감독한 '산사나무 아래'가 바로 그녀의 데뷔작이었기 때문이다. 1992년생인 저우동위는 허베이성(河北省) 스자좡시(石家庄市) 출신으로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산사나무 아래' 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데뷔해 화제가 됐었다. 저우동위는 2016년 제53회 진마쟝(金馬奬, Golden Horse Awards) 영화제에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七月與安生, SoulMate)'로 마쓰춘(馬思純)과 함께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저우동위를 몰랐던 것은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이후 사실 중국 영화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共产党) 일당독재 치하의 홍콩에서는 우위센(吳宇森) 감독의 '영웅본색(英雄本色, 1986)', 첸무셩(陳木勝) 감독의 '천장지구(天若有情, 1990)' 같은 누아르(Hong Kong noir)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 중국은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나라다.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는 중국에서 저우싱츠(周星馳) 류의 허무 개그 영화, 청롱(成龙) 류의 코믹 액션 영화, 회고적인 역사물, 멜로물, 그리고 한국의 케이블 영화 채널에 넘쳐나는 싸구려 4류 무협 영화가 홍수를 이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영화들은 체제를 건드리지 않기에 제재를 받지 않는다.  

 

징츄의 실재 인물 숑인(오른쪽 아래 첫 번째)

 

 '산사나무 아래'는 2010년 부산 국제영화제 상영작이다. 원제는 '샨자슈즈롄(山楂树之恋, The Love of the Hawthorn Tree)'이다. 숑인(熊音)이라는 중국인 여성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첫사랑 쑨졘신(孙建新)을 추억하며 쓴 회고록을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이미(艾米)가 소설화했고, 이 소설을 장이머우가 영화화한 것이다. '山楂树之恋'을 직역하면 '산사나무의 사랑' 정도의 뜻이 되겠다. 그 의미는 엔딩 부분에서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장이머우 같은 천재 감독이 공산당 일당독재와 사상 통제, 검열이 일상화된 중국에서 어떻게 영화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산사나무 아래'다. 장이머우도 이 영화에서 중국의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그는 선전선동에 능한 권력자 마오쩌동(毛澤東)과 그 친위대 홍웨이빙(紅衛兵)이 벌인 극좌(極左) 사회주의(社會主義) 운동인 무산계급문화대혁명(无产阶级文化大革命, 문화대혁명, 문혁) 시대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사실은 문화대혁명이라고 쓰고 문화대학살(文化大虐殺)이라고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혁기에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학대와 숙청을 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문혁은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의 참담한 실패로 권위의 추락과 실각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마오쩌동이 벌인 권력 투쟁에 다름아니다.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마오쩌동은 영국을 2년 또는 5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1958년부터 농공업의 대증산 정책인 대약진운동을 벌였다. 대약진운동도 대후퇴운동(大後退運動), 대멸망운동(大滅亡運動), 대아사운동(大餓死運動)이라고 읽어야 한다. 마오와 그 추종자들이 농촌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한 집단 농장화, 농촌에서의 원시적인 철강 생산 등을 강행한 결과 대약진운동은 2,500만 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아사자(餓死者)만 낸 채 대멸망운동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마오는 권위의 추락과 함께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오는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1966년 '공산당과 중국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이상적인 공산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홍웨이빙을 동원해 문혁을 벌였다. 대약진운동의 대실패로 권력이 덩샤오핑(鄧小平)과 류샤오치(劉少奇)에게 넘어가려 하자 마오가 극좌적 계급투쟁 형식을 빌어 권력 투쟁에 나선 것이다. 

 

문혁 10년 동안 마오쩌동의 어록은 인민의 성서로 우상화되었다. 교육은 마비되었고, 대입시험은 취소되었으며, 대학은 문을 닫았다. 교수들은 농촌이나 공장 같은 생산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이른바 '샤팡(下放)'에 처해졌다. 마오의 친위대 홍웨이빙은 건물, 공예, 서적 등 중국의 많은 역사적 유산들을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여 불태우고 파괴했다. 이들은 콩쯔(孔子)의 사상을 철저히 부정하고, 콩쯔의 묘와 동상까지 부숴버렸다. 친싀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보다도 더한 만행이었다. 

 

무법자 홍웨이빙에 의한 인권 유린, 학대, 학살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이들은 1966년 8월부터 9월까지 베이징(北京)에서 학교의 교장과 교사를 포함 총 1,772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붉은 8월(북경 대학살)' 사건이다. 광시성(廣西省)에서는 홍웨이빙에 의해 10만~15만 명이 학살됐다. 어떤 지역에서는 계급투쟁과 정치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식인 행위까지 일어났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기록에도 '반혁명세력을 학살한 후 소화기관과 살점을 익혀 먹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홍웨이빙은 네이멍구(内蒙古)에서 2만~10만 명을 학살했다. 또한, 수십만 명을 체포하고 고문했다. 윈난성(雲南省) 자오젠민(赵健民) 스파이 사건에서는 17,000명이 학살되고, 61,000명이 평생 불구가 되었다. 130만 8천 7백 명의 사람들이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홍웨이빙에 의해 '자본주의의 첩자, 주구(走狗), 수정주의자'로 몰린 사람들은 마구잡이식으로 감금과 살해, 강간, 고문 등 인권 유린을 당했다. 수십만 명이 처형되거나 굶어 죽고, 혹사로 죽어갔다. 반동분자로 몰린 사람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어떤 사람은 구타와 폭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덩샤오핑의 아들인 덩푸팡(鄧樸方)도 홍웨이빙의 구타를 견디다 못해 4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가 평생 불구가 되었다. 문혁 기간 추정 사망자 수는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2천만 명에 달한다. 

 

문혁이 남긴 폐해는 중국 사회를 몹쓸 불신 사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에 의해 고소, 고발되어 처형당하거나 감옥에 가야만 했다. 자신의 치부가 가족과 지인에 의해 폭로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면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바로 이러한 중국의 문혁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영화 '산사나무 아래'는 시작된다. 카메라는 1974년 항일 용사들이 흘린 피로 물들어 붉은 꽃을 피운다는 전설의 산사나무가 자라는 농촌 마을을 비춘다. 겉으로는 평화롭기 짝이 없는 시골 풍경이다. 자산계급의 아들인 아버지가 홍웨이빙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투옥되자 징츄(静秋, 저우동위 분)는 반혁명분자의 딸인 어머니, 동생 둘과 함께 홍웨이빙의 감시 아래 봉투 만드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조용하던 마을에 학생 출신 홍웨이빙들이 몰려온다. 그들 가운데 여주인공 징츄도 있다. 고교생이던 징츄는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주어진 교재 편찬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온 것이다. 징츄는 농촌 활동을 잘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면 교사가 되어 다시 집안을 일으킬 수 있기에 열심히 과업을 수행하며 공부한다. 

 

1974년 어느 봄날 징츄는 그녀가 묵고 있는 집에서 청년 라오싼(老三, 쑨졘신, 窦骁, 떠우샤오 분)을 만난다. 라오싼(老三)은 '셋째, 삼남, 삼녀'라는 뜻이다. 라오싼은 지질탐사대 일원으로 이 마을에 와 있었다. 그는 징츄에게 다음해 봄 산사나무에 꽃이 피면 같이 꽃구경 가자며 환하게 웃는다. 

 

자전거를 함께 타며 즐거워하는 징츄와 라오싼

징츄와 라오싼은 몇 번 마을 밭길을 함께 걸으면서 그게 인연이 되어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징츄는 라오싼을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부모의 출신 성분 때문에 당의 감시를 받는 집안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처지라 다가온 사랑을 선뜻 받아들이지지 못한다.   

 

징츄가 일을 마치고 떠나자 라오싼은 그녀를 쫓아가 학교 주변을 서성이며 지켜본다. 수습 교사 기간 중에도 라오싼은 징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준다. 라오싼은 잉크가 새는 징츄의 낡은 만년필을 새 만년필로 바꿔주고, 침침한 전등을 새 전등으로 갈아준다. 또, 맨발로 일하는 징츄에게 장화를 사다주고, 상처 난 연인의 발을 씻겨 주며 마음 아파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런 남자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 성분 때문에 징츄는 반혁명분자의 부모를 두지 않은 라오싼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까봐 그를 밀쳐낸다. 

 

그러나 라오싼은 징츄가 아무리 밀어내고, 말을 모질게 내뱉어도 언제나 그녀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천사가 되어 준다. 남녀의 연애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징츄는 남자 문제로 가족이 또다시 비판을 받게 될까봐, 또 그로 인해 삶이 더 힘들어질까봐 전전긍긍하지만 '매일 보고 매일 읽고 매일 생각'해야 하는 빌어먹을 마오쩌동의 어록보다 라오싼에 대한 사랑이 강렬하다.  

 

라오싼은 자신을 밀어내는 징츄에게 "아마도 넌 아직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있다는 걸 믿지 못하겠지. 훗날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이 세상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절대 그 사람을 배신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을 들려 준다. 

 

라오싼은 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징츄에게 "나도 알아, 네가 무척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거. 하지만 난 절대 네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난 다만 널 보호해주고, 보살펴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네가 바라는 일만 하고 싶어."라면서 안심시킨다. 

 

징츄와 라오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기 시작한다. 폐수가 흘러 아무도 오지 않는 강가의 자갈밭이나 칼바람이 몰아치는 외딴 정자, 밤의 산길, 낡은 버스, 흙먼지 이는 터미널, 밭두렁, 징검다리, 털털거리는 경운기, 사람들을 싣고 강을 오가는 나룻배에서 둘은 조용히 속삭이고 수줍게 입맞춤하면서 풋풋한 산사나무 열매처럼 더디고 미숙하지만 순수한 사랑을 키워 간다.  

 

징츄를 업고 개울을 건너는 라오싼

어느 날,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징츄 엄마는 라오싼에게 "징추는 수습 기간이라 언제든지 학교에서 정리될 수 있네. 정말 내 딸을 좋아한다면 2년 동안은 만나지 말게."라며 엄명을 놓는다. 엄마의 엄명에 라오싼의 발길이 끊어지자 징츄의 가슴 속에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간다. 징츄의 눈과 귀와 마음에서는 라오싼이 마오쩌둥의 어록과도 같았다. 매일 보고, 매일 읽고, 매일 생각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징츄는 "난 스물다섯이 되기 전엔 연애할 수 없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라고 묻자 라오싼은 "기다릴 수 있어. 네가 기다리라고만 한다면, 네가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평생이라도 기다릴 수 있어"라고 말한다. 징츄가 또 "평생을 기다려요? 그러다가 모두 관에 들어가고 아무도 없겠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거예요?"라고 반문하자 라오싼은 "내가 널 평생 기다릴 거라는 사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해주려고."라고 대답한다. 징츄는 발을 붕대로 감싸주는 라오싼을 바라보며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징츄가 말하는 '기다림'은 사실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징츄는 '사랑'이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기다림'이라는 말을 썼을 뿐이다. ‘나를 평생 기다릴 수 있어요?’(你能等我一辈子吗? Would you wait for me forever?)라는 물음에는 ‘나를 평생 사랑할 수 있어요?’(你能爱我一辈子吗?, Would you love me forever?)라는 속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어쩌면 '기다림'이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뜻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다림'은 '볼 수 없어도, 만날 수 없어도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라오싼이 발길을 끊자 징츄는 그가 선물로 주고 간 바알갛게 익은 산사 열매가 그려진 대야를 고이 잘 간직한다. 산사나무의 꽃말은 '유일한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산사나무는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빨갛게 익은 산사 열매가 그려진 대야를 선물로 준다는 것은 징츄를 향한 라오싼의 '유일한 사랑'이 익을 대로 익었음을 암시한다. 징츄는 빨간 대야에 그려진 산사 열매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대야는 바로 라오싼이 준 '유일한 사랑'의 증표였던 것이다.     

 

라오싼을 향한 징츄의 사랑도 깊어만 가고..... 라오싼은 자신이 백혈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징츄가 걱정할까봐 거짓말로 안심시킨다. 하지만, 징츄는 수소문 끝에 라오싼이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3일 간 휴가를 낸 징츄는 라오싼이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간다. 

 

둘은 방 한 칸을 빌려 함께 밤을 보내게 되는데..... 징츄는 방바닥에서 자겠다는 라오싼을 침대로 불러들인다. 하지만, 둘은 손만, 정말, 손만 잡고 잠을 잔다. 라오싼은 남녀가 손만 잡아도 임신하는 줄 아는 너무나도 순진한 징츄의 순결을 끝까지 지켜준다. 이처럼 라오싼은 죽는 날까지 오로지 징츄만을 위해 살았던 지고지순한 남자였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이 헤어질 때가 되었다. 징츄는 강을 건너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떠나가는 징츄를 바라보는 라오싼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강을 다 건너서도 징츄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추고는 라오싼이 있는 곳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별을 슬퍼하는 징츄와 라오싼

라오싼은 징츄를 껴안는 것처럼 두 팔을 둥글게 내민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징츄도 라오싼을 향해 두 팔을 내민다. 두 사람은 이렇게 두 팔을 내밀고 강의 이쪽과 저쪽 기슭에 안타깝게 서 있다. 탁한 강물은 둘 사이를 속절없이 흐르고..... 그리고..... 라오싼의 애절한 사랑을 간직한 채..... 마침내 징츄는 돌아서 간다. 

 

얼마 후 라오싼의 임종을 지켜보라며 차량이 급하게 달려온다. 병원으로 달려간 징츄는 영원한 이별 앞에서 라오싼을 마주하게 된다. 의식이 없는 라오싼..... 징추의 눈에서는 슬프디 슬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슬프게 우는 징츄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흰자위만 간신히 보이는 라오싼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애통의 눈물이.....

 

라오싼의 임종을 지키는 징츄

라오싼은 산사나무 꽃 구경을 함께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둘은 그들이 처음 만난 날로부터 꼭 2년 뒤인 1976년 화창한 5월의 어느 날에서야 비로소 함께 그곳으로 갔고, 라오싼은 산사나무 아래에 묻혔다. 그렇게 둘은 다시 만난다. 누군가 말했듯이 그건 사랑의 회귀(回歸)였다. 비록 이승과 저승은 다르지만 사랑이 처음 시작된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이다. 

 

영화는 정치적 탄압을 받는 부모 밑에서 가난과 싸우며 열심히 살아가던 징츄와 그런 그녀에게 조건 없는 무한 사랑을 바쳤던 라오싼의 순애보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아름다웠지만 안타까웠던 유년의 추억을 찾아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징츄와 라오싼의 사랑처럼 순진무구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징츄가 라오싼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대를 처음 본 날부터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좁은 길이라면 그대가 내 앞에 걸어 내가 항상 그대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를. 만약 우리의 삶이 넓은 길이라면 그대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 수많은 사람 속에서 영원히 그대 잃어버리는 일 없기를."이라고 빌었을까!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어쩌면 인류의 영원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징츄와 라오싼의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가슴 아픈 순애보다. 우리에게 잃어버린 순수와 사랑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 주는..... .   

 

장이머우 감독은 "징츄(숑인)와 라오싼(쑨졘신)의 계산 없는 순수한 사랑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미 사랑에도 가치를 매기고 상업화하는 현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내용만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영화의 규모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는 '영웅'이나 '연인'을 만들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상에 젖었다. 나는 두 주인공을 관찰하듯 촬영했고, 그 과정은 나를 평온으로 이끌었다.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일은 어려웠지만, 많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장이머우 감독의 말에 구구절절 동감이다.   

 

'산사나무 아래'는 이른 아침 맑은 이슬을 머금은 한 송이 이름없는 풀꽃 같은 징츄와 라오싼의 순진무구한 사랑을 그린 영화다. 아름답고 슬프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더한 무한 감동을 준다. 실화가 주는 감동이다.

 

2022. 9. 16.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