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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2] 라멘 먹으러 오세요(Come Back Anytime) - 마음 따뜻해지는 라멘집 이야기

林 山 2022. 10. 1. 13:50

[EIDF 2022] 상영작 가운데 훈훈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었다. 일본의 라멘(ラーメン, 拉麺, 老麺)집 부부의 일상을 담은 존 대슈바크(John Daschbach) 감독의 '라멘 먹으러 오세요'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영어 제목은 '컴 백 에니타임(Come Back Anytime, 언제든지 오세요)'. 일본어 제목은 '마타이랏샤이(またいらっしゃい, 다음에 또 오세요)'다. 2021년 작품이고, 러닝 타임은 81분이다.

 

'라멘 먹으러 오세요(Come Back Anytime)' 포스터

대슈바크 감독은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에서 BA(Bachelor of Arts, 문학사),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MFA(Master of Fine Arts,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모국어는 영어이고, 일본어는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하다. 그의 대표작에는 'Smoke'(1995), 'Waking Dreams'(2004), 'Brief Reunion'(2011) 등이 있다. 그는 현재 일본 도쿄(東京)에 거주하고 있다.

 

존 대슈바크(John Daschbach) 감독

우에다 마사모토(上田正元)와 그의 아내 가즈코(和子)는 결혼을 일찍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연애를 해서 졸업하자마자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렸다. 사실, 마사모토는 고등학생 때부터 건달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마사모토는 먹고 살기 위해 주먹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까딱 잘못하면 조직폭력단 야쿠자(ヤクザ)에 몸을 담을 뻔도 했다.

 

우에다 마사모토(上田正元, 좌)와 그의 아내 가즈코(和子, 우)

마사모토의 건달 생활을 보다 못한 가즈코의 친정 부모는 가게를 한 칸 얻어 주고 라멘집이라도 해서 먹고 살라고 권한다. 정신을 차린 마사모토는 독학으로 라멘 육수를 내는 법, 라멘 끓이는 법, 맛을 내는 법, 고명을 만드는 법 등을 익힌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사모토는 마침내 라멘의 고수가 된다.  

 

라멘을 끓이는 마사모토

마사모토와 그의 아내 가즈코가 도쿄에서 라멘 가게 비젠테이(びぜん亭)를 운영한 지도 벌써 어언 40년이 넘었다. '비젠(びぜん)'은 오카야마현(岡山県)의 옛 이름 '비젠(備前)', 멋진 수염 또는 구렛나루란 뜻의 '비젠(美髯)' 등이 있다. 주인장의 멋진 수염을 그대로 가게 이름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비젠테이의 단골손님도 제법 많이 늘어났다. 비젠테이는 어느덧 주인 부부와 단골손님들의 친밀한 공동체 공간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손님들은 라멘을 먹으러 왔다가 주인장 부부의 훈훈한 정을 느끼고 돌아간다.

 

비젠테이의 단골손님들

이윤 추구와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을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사이에 따뜻하게 오가는 인정이 점점 말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문, 방송에 고독사가 심심찮게 보도되는 것이 그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젠테이에 오는 손님들은 뜨끈한 라멘을 매개체로 주인장 또는 다른 손님과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독을 나눈다. 단골손님들에게 비젠테이는 언제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그런 사랑방이다.

 

비젠테이의 단골손님들

주인장은 슬픈 사연을 안고 오는 손님에게는 진정으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또, 손님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면 마치 내 일인 양 함께 기쁨을 나눈다. 가식이 없는 주인장의 모습에 손님들은 하나 둘씩 단골이 되어간다. 사람들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오고 싶은 그런 사랑방을 만든 마사모토와 가즈코 부부야말로 정말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다.

   

단골손님의 배 과수원을 찾아 일손돕기를 하는 마사모토

주인장 부부는 비젠테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부는 주말에 함께 단골손님의 배 과수원을 찾아 일손돕기를 하거나 산촌을 찾아 현지인들과 죽순, 산마를 캐며 인정이 넘치는 삶을 공유한다. 일손돕기를 하고 받은 배, 산촌에서 캔 죽순과 산마는 비젠테이의 소중한 식자재가 되어 단골손님들의 라멘 요리로 올라온다.  

 

세상에는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비젠테이 주인장도 청년에서 어느덧 노인이 되어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 단골손님들은 비젠테이의 장래에 대해 해 관심이 많다.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비젠테이가 앞으로도 계속 사랑방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주인장이 은퇴하면 비젠테이를 인수해서 지금 이대로 계속 유지하려는 단골손님도 있다.   

 

하지만, 마사모토는 자신이 은퇴하면 비젠테이 문을 영원히 닫겠다고 선언한다. 영화에서는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비젠테이는 주인장의 인생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은퇴하면 비젠테이의 역사도 막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인 듯하다.

   

주인장 마사모토

주인장은 언제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르지만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기막히게 맛있는 라멘을 끓일 생각이다. 라멘집은 비록 비좁지만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라멘 먹으러 오세요'는 소박한 공간에서 만나는 특별한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마치 마사모토가 끓여 준 따뜻하고 깊은 맛이 나는 라멘 한 그릇을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곳에도 비젠테이 같은 라멘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휴머니즘이 꽃피는..... 

 

2022. 10. 1.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