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한 50만 교원의 집중행동 선언
근무시간 중 정치중립, 근무시간 외 정치자유
우리는 교원이라는 이름의 정치천민 집단이 없는 온전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꿈꾸며 이 자리에 섰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50만 공사립교원에게 정치기본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당민주주의와 선거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대의민주국가에서 정당가입권과 선거운동권, 공직선거 출마권과 정치후원금 제공권은 모든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하는 정치기본권이지만 교원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래로 61년째 예외다. 언필칭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위해서다. 1987년 이후 지난 35년간 온갖 민주화가 진행되고 촛불혁명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깊이 고통스러워하거나 온힘을 다해 싸우는 이들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유초중등교육계가 부족했다. 지난60년 넘게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빌미로 정치시민권을 박탈당하면서도 큰소리를 내며 싸우지 못했다. 특히 유초중등교육계의 지도급인사를 자임해온 우리들이 부족했다. 교원의 근무시간 밖 정치활동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가 더 간절하고 더 치열하게, 더 치밀하고 더 집요하게 싸웠어야 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보기 나름으로는 지금이 최적기다. 국회 과반수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근무시간 밖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대선후보시절 여러 차례 공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금년 정기국회에서 정치기본권 보장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50만 교원의 집중행동을 오늘 이 자리에서 선포하고 나서는 배경이다.
교육계뿐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도 제 역할을 못했다. 모든 국민의 정치기본권과 참정권 보장을 토대로 성립하는 민주주의국가에서 100만 공무원과 50만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전면 박탈해온 것이 과연 합당한지,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해도 최소제약적인 대안은 없는지를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법조계와 법학계도 무심했다. 헌법재판소는 3년 전에도 교원의 근무시간외 정치기본권 박탈입법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으로 판결했다. 모든 선진국이 교육활동 중에는 교원의 정치중립성을 요구하면서도 시민으로 존재하는 직무 밖/근무시간외 영역에서는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는데도 헌법재판소는 이를 간단히 외면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민주주의는 100만 공무원과 교원을 정치천민으로 방치할 것인가. 촛불혁명을 거친 우리나라가 100만 정치천민이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시민들은 100만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 박탈에 대해 눈을 감은 채 인권선진국 타령을 할 것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교육은 교원의 직무상 정치중립성을 교육원칙과 교직윤리, 학교문화의 힘으로 확보하지 않고 지금처럼 교원의 정치기본권 박탈에 기댈 것인가. 도대체 우리나라 공무원과 교원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다른 나라 공무원이나 교원과 달리 직무 밖/근무시간외 정치활동의 자유까지 전면 박탈하는 것인가.
처음부터 분명히 할 게 있다. 첫째, 우리가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교원의 직무 밖/근무시간외 정치활동의 자유이지 교원의 직무상/근무시간 중 정치활동의 자유가 아니다. 우리는 교원의 직무상 정치중립성, 즉,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옹호한다. 우리는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정치 팜플릿을 돌리거나 정당 뱃지를 착용하는 등 교내 정치활동 금지에도 찬성한다. 한마디로 학교와 교실을 최대한 정치편향과 정치선동에서 보호하자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다.
둘째,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제약하는 각종 현행법의 불가피성과 최소제약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현행법을 옹호하는 측에게 있다. 근무시간외 정치시민권 제한옹호자들은 우리나라 교원의 전문성과 책임감이 유독 낮아서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직무 밖/근무시간외 정치활동의 자유까지 박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나아가서 현행법의 직무 밖/근무시간 외 정치기본권 박탈정도가 불가피한 최소제약이라는 점도 설득력 있게 입증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의 정치시민권 부인법제는 국내외 교육계의 모든 상황을 감안할 때 그 정당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반면 우리는 교육활동 중 정치중립성 원칙과 근무시간외 정치자유 원칙이 교육활동 중 종교중립성 원칙과 근무시간외 종교자유 원칙이 그렇듯이 얼마든지 양립가능하다고 믿는다. 근무시간 중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교육활동을 할 때 주입교화 금지원칙, 논쟁성 재현원칙, 학생이해관계 우선학습원칙 등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3대 교육원칙을 유념하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고 믿는다. 본래 교원은 본인의 교육행위가 정치편향이나 정치선동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특별한 감수성과 전문성을 훈련받고 연수받는 존재다. 더욱이 교사의 일방적 정치 설교와 선동, 세뇌를 항의하지 않고 그대로 놔둘 만큼 고분고분한 학생과 학부모는 더 이상 없다. 더러 개별적 일탈사례가 있겠지만 교육계 내부에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수준이다.
교원의 직무 밖 정치기본권 박탈입법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예컨대 현행법제는 교원의 공직선거 출마를 실질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교육입법, 교육정책, 교육예산, 교육행정을 다루는 각급의회에 유초중등교육전문가의 진출을 막고 필요한 전문성을 제공하지 못하게 만든다. 교육전문성이 결여된 각급의회는 교육본질가치에 충실하지 못한 교육잡법, 교육잡정책, 교육잡예산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거나 스스로 양산함으로써 교육현장에 다양한 교육잡무를 떠안기며 교육현장을 교란한다.
뿐만 아니다. 교원은 민주시민을 길러낼 법적 책무를 부여받은 유일한 전문직종으로서 누구보다도 먼저, 또한, 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민주시민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원은 정당과 선거, 선출직과 각급의회 등 정치의 세계는 물론이고 논쟁적인 정치현안에 대해서도 일반시민보다 더 깊게 알고 더 많이 경험할 것이 요구된다. 교사 각자는 본인이 가진 것만을 학생에게 줄 수 있고 본인이 가진 것은 다 주게 돼있다. 이렇게 볼 때 교사는 본인이 체질화한 민주시민성만큼만 아이들에게 전수할 수 있다. 지금처럼 정치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 권한과 기회를 제도적으로 봉쇄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천민 교사들이 과연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데 적합한지 의문이다.
요컨대,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교육의 종교중립성과 마찬가지로 교육활동 중/근무시간 중의 교원에게만 요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원의 직무 밖/근무시간외 정치활동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OECD스탠더드 헌법원칙이다. ‘근무시간 중 정치중립, 근무시간외 정치자유’라는 우리의 슬로건이 위의 OECD스탠더드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헌법적으로 볼 때 OECD국가 중 유독 우리나라의 학생들만 체벌을 감수해야할 정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듯이, OECD국가 중 유독 우리나라의 교원들만 정치천민 지위를 감수해야할 정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아래 우리는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빌미로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박탈해온 오랜 흑역사를 끝장내고 21대 국회와 주요정당에 교사정치기본권 보장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50만 교원의 뜻을 모아 오늘부터 교사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한 집중행동에 나설 것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그 수단으로 첫째, 11월9일까지 전국의 50만 교원을 상대로 한 입법촉구서명운동을 전개하고, 둘째, 전/현직 교육감과 국회의원, 교육시민사회대표 100인의 교사정치기본권 지지선언을 11월4일에 조직, 공표하며, 셋째, 주요정당의 당대표와 원내대표와 면담을 추진하여 이번회기 내 입법을 촉구하고, 넷째, 3인 자전거원정대를 전국의 주요도시에 파견하여 시민사회대표들과 시도교육감의 협력을 확보할 것이다.
이번 50만 교원 집중행동을 맨 앞에서 이끌어나갈 3인의 자전거원정대는 오는10월30일부터 11월9일까지 날마다 전국의 주요도심을 자전거로 돌며 대시민 홍보작업을 진행하고 교육시민사회 연석회의와 교육감간담회를 조직하여 시도지역별 캠페인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다. 3인 원정대는 법학자로서 교사정치기본권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하며 ‘교사면천운동’을 제창해온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 지난2000년 현직교사로서 처음으로 정치기본권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윤우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 교원의 정치기본권 확보와 정치진출 지원을 위해 실천적으로 헌신해온 강신만 교사정치학교 교장으로 구성된다.
교원의 정치기본권 쟁취를 위한 50만 교원의 집중행동과 3인 원정대의 전국대장정이 성공하여 정치천민이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과 파퓰리즘에 휩쓸리지 않는 새로운 교육정치로 성큼 나아가길 꿈꾸며 우리는 50만 교원의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정치권에 요구한다:
1. 21대국회는 교사의 직무 밖/근무시간외 정치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기존법제의 개폐 등 필요한 입법조치를 서두르라!
2.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시대전환, 기본소득당 등 원내정당은 교사의 근무시간 밖 정치기본권 보장입법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소속의원을 독려하라!
3.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교사의 근무시간 밖 정치기본권 보장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대선후보시절의 거듭된 다짐을 지체없이 이행하라!
4.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사의 근무시간 밖 정치기본권 보장이 여야나 진보보수에 따라 이해관계와 입장이 갈릴 수 없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과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보장입법에 합의하라!
5. 정의당 대표는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오랜 당 차원의 공약을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
6.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와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는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입법에 적극 앞장섬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교육의 진일보에 동참하라!
2022년 10월 27일
주최단체 대표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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