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큰제비고깔 '위엄(威嚴), 영웅(英雄)'

林 山 2023. 8. 3. 16:29

2022년 10월 초순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한산(南漢山, 522m)을 찾았다. 남한산성(南漢山城) 남문(南門)인 지화문(至和門)에서 동문(東門)인 좌익문(左翼門) 방향으로 성곽길을 따라가다가 검단산(黔丹山)이 마주보이는 제1남옹성(第一南甕城) 기슭에서 진한 자주색 꽃이 활짝 피어 있는 큰제비고깔을 만났다. 남한산에서 큰제비고깔 꽃을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야생(野生)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만날 때마다 인품이 향그러운 옛 지기를 만나는 듯한 반가움을 느끼곤 한다.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경험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큰제비고깔(경기도 광주 남한산, 2022. 10. 8)

큰제비고깔은 미나리아재비목(Ranunculales)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제비고깔속(Delphinium)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는 큰제비고깔이 고산성(高山性)의 희귀식물(稀貴植物)로 분류되어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는 부전제비고깔, 산제비고깔, 털제비고깔 등의 이명(異名)이 등재되어 있다. 국생정에는 부전제비고깔이 비추천명(非推薦名)으로 실려 있다. 큰제비고깔의 꽃말은 '위엄(威嚴), 영웅(英雄)'이다. 꽃말이 다소 생경(生硬)하다. 

큰제비고깔은 제비고깔보다 식물체가 커서 '큰'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제비고깔이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제비처럼 날렵하고 고깔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고깔 속에 제비 새끼들이 웅크리고 있는 꽃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 제비를 닮은 꽃봉오리가 펼쳐지면 고깔 모양이라서 제비고깔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 꽃 속을 들여다보면 고깔 속에 제비 새끼들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국표, 국생정 등재 큰제비고깔의 학명은 델피니움 마키아눔 레겔(Delphinium maackianum Regel)이다. 속명(屬名) '델피니움(Delphinium)'은 돌고래(dolphin)의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델피스(delphís)'에서 유래했다. '델피스(delphís)'에 추상명사를 형성하는 데 사용되는 라틴어 접미사 '-이움(-ium)'이 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움(-ium)'은 때때로 '사무실(office), 그룹(group)'을 나타낸다. 속명은 꽃 모양이 돌고래의 등을 닮았다고 생각한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가 처음 붙였다. 린네는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현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린다.   

종소명(種小名) '마키아눔(maackianum)'은 러시아의 박물학자이자 지리학자, 인류학자인 리하르트 오토 마아크(Richard Otto Maack, 1825~1886)의 이름을 딴 것이다. 큰제비고깔을 영어명 'Maack's larkspur(마아크의 미나리아재비)'라고 한다. 마아크는 러시아 극동아시아와 시베리아, 특히 우수리와 아무르 강 계곡 등 오지(奧地) 탐험으로 유명하다. '마키아눔(maackianum)'은 성 '마아크(Maack)'와 '회랑(回廊), 아케이드(arcade), 복개된 통로(covered passageway)'란 뜻을 가진 라틴어 명사 '이아눔(ianum)'의 합성어로 보인다. '이아눔(ianum)'은 '이아누스(iānus)'의 대격(對格) 단수형이다. '레겔(Regel)'은 독일 원예가이자 식물학자 에두아르트 아우구스트 폰 레겔(Eduard August von Regel, 1815~1892)이다.  

국표, 국생정 등재 큰제비고깔의 영어명은 마아크스 라크스퍼(Maack's larkspur)이다. '마크의 미나리아재비'란 뜻이다. 일문판 Flora of Mikawa(三河の植物観察, FOM) 등재 일본명은 부시바히엔소(ブシバヒエンソウ)다. FOM, 중문판 위키백과(维基百科), 바이두백과(百度百科) 등재 중국명은 콴바오취취에화(寛苞翠雀花)이다. '넓은 포 제비고깔(飞燕草)'이란 뜻이다.   

큰제비고깔은 한강토(조선반도), 중국, 러시아에 분포한다. 한강토에서는 경기도 이북 지방에 난다. 백두대간 및 임도 주변의 노출된 지역에 10곳 미만의 자생지가 있으며, 개체수도 많지 않다(국생정). 부시바히엔소(ブシバヒエンソウ)의 원산지는 한강토, 중국, 러시아이다(FOM). 콴바오취취에화(寛苞翠雀花)는 한강토, 러시아, 중국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헤이룽쟝(黑龙江), 지린(吉林), 랴오닝(辽宁) 등지의 해발 500~550m 지대 산림과 초원에서 자란다(维基百科, 百度百科). 

큰제비고깔(경기도 광주 남한산, 2022. 10. 8)

큰제비고깔의 굵은 근경(根莖)은 땅속 깊이 들어간다. 키는 1m까지 자란다. 줄기는 곧추서며 밑부분과 꽃차례에 털이 있으나 대부분 털이 없다. 줄기 상부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엽병(葉柄)이 길며, 단풍잎처럼 3~7개로 갈라진다. 열편(裂片) 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밑부분의 잎은 엽병이 길고 크다. 중앙부의 잎은 엽병의 길이가 5cm 정도이고, 엽신(葉身)은 길이 9cm, 너비 12cm이다. 

꽃은 7~9월에 짙은 자주색(紫朱色)으로 핀다. 원줄기 끝의 총상꽃차례(總狀花序)에 달린다. 포(苞)는 잎 같고, 작은포는 꽃자루의 중앙부에 달리며 막질(膜質)이다. 꽃자루는 꽃대축의 윗부분과 더불어 갈색(褐色) 융털이 있다. 꽃받침 열편은 5개가 꽃잎처럼 되며, 위쪽의 것은 거(距)가 있고, 꽃잎이 그 속에 들어 있다. 열매는 골돌과(蓇葖果)이다. 골돌과는 3개이고 긴 타원형(楕圓形)이며, 길이 1.5cm 정도로서 끝이 길게 뾰족해진다. 

큰제비고깔은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절화(切花)로서 가치가 있다. 낙엽수림(落葉樹林) 아래나 교목(喬木) 아래를 덮는 지피식물(地被植物, ground cover plant)로 이용할 수도 있다.   

콴바오취취에화(寛苞翠雀花)는 맛이 맵고(辛), 성질은 따듯하다(温). 간경(肝经)과 신경(肾经)으로 들어간다. 조경지통(调经止痛)의 효능이 있어 월경불순(月经不调), 생리통(痛经) 등을 치료한다(百度百科). 큰제비고깔은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나 동의보감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한의사들도 임상에서 큰제비고깔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큰제비고깔(경기도 광주 남한산, 2022. 10. 8)

국표 등재 큰제비고깔의 유사종 자생식물에는 제비고깔(Delphinium grandiflorum L.), 배제비고깔(Delphinium naviculare W.T.Wang) 등 2종이 있다.    

제비고깔(Siberian larkspur, bouquet delphinium, Chinese delphinium, オオヒエンソウ, 翠雀)의 원산지는 중국, 몽골, 러시아이다. 북한 지방에 자생하는 식물로 한택식물원에서 재배시험 중이다. 키는 60cm까지 자란다. 꽃은 7~8월에 보라색, 짙은 하늘색으로 핀다.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배제비고깔(Central Asian larkspur, 船苞翠雀花)은 국표에 국명, 학명, 영문명만 등재되어 있다. 국생정 미등재종이다. 

국표 등재 큰제비고깔의 유사종 재배식물에는 델피니움 '그린 트위스트'(Delphinium 'Green Twist'), 제비고깔 '블라우어 츠베르크'(Delphinium grandiflorum 'Blauer Zwerg'), 참제비고깔(Delphinium ajacis L.), 캐시미어제비고깔(Delphinium cashmerianum Royle) 등 21종이 있다. 국표 등재 큰제비고깔의 유사종 외래식물에는 가지제비고깔(Delphinium consolida L.) 1종이 있다.   

 

2023. 8. 3.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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