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만다라’로 널리 알려지고 ‘국수(國手)’로 유명한 김성동 작가의 유고 역사 에세이가 나왔다.
작은숲출판사는 11일 “‘미륵뫼를 찾아서’는 김성동 작가가 양평 용문산자락 덕촌리에 머물 때 미륵뫼(용문산의 옛 이름)에 발자국을 남긴 인물 이야기를 각종 사료에 근거해 집필한 육필 원고 2024매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1부에서는 미륵뫼 전사(前史)로 궁예와 당취부대 이야기를, 2부에서는 미륵뫼와 개화파 이야기가 나온다. 3부에서는 항일의병장 김백선 장군을 비롯한 미륵뫼 의병 이야기를, 4부에서는 미륵뫼에서 온 붉은 승려 김성숙 이야기를 담았다. 끝으로 5부에서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학자도 아닌 소설가 김성동이 총 740쪽에 달하는 역사 이야기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미륵뫼 당취가 젤 쎘지. 일금강 이지리 삼용문이라고 했지만 진짜로는 용문산, 그러니까 미륵뫼서 온 당취들이 젤 무서웠다니까. 악양반 악지주 악공다리 가왜놈들한텐 말이지.”(책 701쪽)
이 책에는 궁예와 여운형 선생도 등장하지만, 양평군민들에게 익숙한 항일 을미의병장 김백선 장군과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등의 이름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름자를 알 법한 인물들조차도 우리 역사책에서 다루기를 꺼리는 인물들이다. 일제와 싸우다 이름도 무덤도 없이 돌아가신 의·승병들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미륵뫼 당취’, 미륵뫼를 근거지로 활동했던 이름 없는 의·승병들이다.(오늘날 못된 중을 일컫는 말로 된 ‘땡초’ 말밑이 되니 당취→당추→땡추→땡초로 그 말이 바뀌어진 것이라고 말한다.-본문 79쪽 참조)
이 책에서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개화파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갑신정변을 주도하며 개혁적 인물로 각인되었던 그들이 어떻게 민족 반역자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개화파들의 사상적 근원과 그들의 변화 그리고 변절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우리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74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뿐 아니라 언급된 여러 사료와 자료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역사 에세이’라기보다 ‘역사 학술서’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학자도 아닌 소설가 김성동이 이토록 역사적 문제에 천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일류대학 나오고 도일유학, 도미유학, 도구유학을 했다는 박사 역사학자라는 이들이 죄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도 힘부림하는 물건들 무서워라기보다 밥그릇 뺏길까 두려워 입을 닫고 있는 것인지 정말 몰라서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 불치(不齒) ‘사레기’(쓰레기역사가) 젖히고 이 많이 모자라는 중생이 나선 까닭이다.”(책 702쪽)
그는 2017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주최한 ‘인간과 문학, 인간과 역사-친일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연 초청 강연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의식 없이 글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1년 10월 청운면 가현리 자택에서‘양평시민의소리’와 한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4대강사업으로 전 국토가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가 보상 문제로 마을 주민 사이에 갈등과 증오심이 싹트고 있어요. 4대강사업은 단순히 강의 문제를 넘어 인간성 파괴와도 연결됩니다. 4대강사업을 반대하며 문수스님이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燒身供養)했는데도, 불교가 이를 이슈화하여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을 막지 못했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주도해온 대학생들도 이제는 자기 살길을 찾느라 관심이 없어요. 대학이 거대한 취업학원으로 변한 탓이지요. 낭만과 꿈과 민족과 정의를 외친 대학생들에게 이젠 생명처럼 중요시했던 가치관이 다 사라져버렸어요. 안타깝습니다.”
1947년 충남 보령 출생인 김성동 작가는 유가(儒家)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성장했다. 1964년 서울 서라벌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965년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해 10년가량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해방 뒤 뒤죽박죽과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와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줄곧 전쟁난리와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흉터 속에서 헤맸다.
1975년 ‘주간종교’에 첫 단편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며 등단했으나,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전체 승려를 모독했다는 조계종단 몰이해로 만들지도 않은 승적을 빼앗겼다. 1976년 환속한 그는 1978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만다라’로 당선됐으며, 이 작품은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되면서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1983년 해방전후사를 밑그림으로 하는 장편소설 ‘풍적(風笛)’을 문예중앙에, 1960~70년대 학생운동사를 다룬 장편소설 ‘그들의 벌판’을 중앙일보에 연재하다 좌익 움직임을 다룬 속뜻과 반미적 속뜻이 문제가 돼 각각 2회·53회 만에 중동무이됐다. 1983년 중편소설 ‘황야에서’로 소설문학 작품상을 받게 됐지만, 문학작품을 상업적으로 써먹으려는 주관사 측 속셈에 맞서 수상을 뿌리치기도 했다.
2020년 충주로 이사 가기 전 20년 가까이 청운면 가현리, 용문면 덕촌리 등 양평에서 살았다. 이 책의 집필을 끝낸 후인 2021년 조선의 별이었던 김삼룡 선생 옛살라비(고향의 우리말)인 충주에 바랑을 풀고, 충주 얼안 해방동무들과 역사기행을 준비하다가 2022년 9월 25일 향년 75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김성동기념사업회는 오는 21일 대전문학관 1층 다목적강의실에서 김성동 선생 2주기 추모식 겸 유고 에세이 ‘미륵뫼를 찾아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 대전민예총과 대전작가회의, 세종마루시낭독회가 후원한다.
용은성 기자 yes@ypagora.co.kr
출처 : 양평시민광장(http://www.ypagor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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