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6월에 피는 꽃

林 山 2005. 7. 12. 12:27

내가 사는 부강아파트에서 일터까지는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내 일터는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 2층. 나는 늘 내가 사는 103동 아파트 7층에서부터 계단을 따라 걸어서 내려와 화단을 구경하면서 출근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러던 6월의 어느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화단을 바라보니 꽃들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꽃망울만 맺혀 있었는데..... 어느 새 벌써.....


▲아파트 현관 입구에 활짝 핀 장미꽃

아파트 현관을 나오니 활짝 핀 빠알간 장미꽃이 반갑게 맞아 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흥겹고 향그러워진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장미에게 다가가자 장미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영산홍(진분홍 색)

건너편 101동 아파트 화단에는 영산홍이 활짝 피었다.



▲영산홍(붉은 색)

요염한 자태를 지닌 여인을 연상케하는 영산홍..... 진분홍 영산홍과 붉은 영산홍..... 영산홍은 야생화의 자연미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초롱꽃

아주 연한 녹색바탕에 자색이 감도는 초롱꽃도 활짝 피어나고 있다. 불을 밝히는 초롱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초롱꽃..... 중년 여인의 기품있는 자태를 닮은 초롱꽃..... 아마도 이 초롱꽃은 누군가 산에서 옮겨와 심었을 것이다. 옛 고향 산자락을 그리워 함인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꽃창포

화단 한켠에는 꽃창포가 피었다. 날렵한 잎과 꽃대 끝에 진자주색 꽃을 피워 올린 꽃창포..... 꽃망울이 맺혔을 때의 모양이 꼭 붓을 빼닮았다. 그래서 붓꽃이라고도..... 꽃창포를 볼 때면 언제나 청초한 여인이 연상된다.



▲패랭이꽃(원예종)

꽃들의 향연은 계속된다. 저만치 빠알간 패랭이꽃이 홀로 피어 있다. 그런데 야생화가 아니라 원예종 패랭이꽃이다. 패랭이꽃 야생화는 꽃잎이 야리야리 하늘하늘한 것이 특징인데.....



▲채송화

노란색과 분홍색으로 피어난 채송화도 보인다. 언제나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동요를 떠올리게 하는 꽃..... 앉은뱅이로 피어나 몸을 숙여야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꽃 채송화.....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꽃 채송화..... 곱게도 피었다.


 
▲금잔화

노란색과 진황색의 금잔화도 한창이다. 금잔화는 오래도록 피는 꽃이어서 도로변이나 화단에 많이들 심는다. 원산지는 유럽이지만 우리나라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잔화는 햇빛이 쨍쨍 내려쬐는 한여름날 태양을 닮은 모습으로 피어난다.

금잔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태양신을 사랑한 소년이 있었다. 태양신도 역시 소년을 사랑했다. 그러나 구름신의 질투를 받은 태양신은 일주일이 넘도록 구름에 둘러싸여 소년을 보지 못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소년은 그만 상사병에 걸려서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슬픔에 젖은 태양신은 소년을 꽃으로 환생시켰다.

그 꽃이 바로 금잔화다. 그러한 연유로 금잔화의 꽃말은 '이별의 슬픔'이 되었다. 사람들은 금잔화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것도 소년의 태양신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추리

아파트 화단 한켠에는 원추리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원추리는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한다. 원추리를 삶아서 먹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고 해서 망우초란 이름이 붙었다. 무언가를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원추리를 삶아서 먹을지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10리 밖에 있는 원추리는 망우효과가 떨어진다고 한다.

또 옛날 우리나라 부녀자들은 원추리 꽃대로 비녀를 만들어 머리쪽에 꽂고 다니기도 했다. 그것은 고추모양의 원추리 꽃봉오리를 몸에 지니면 뱃속에 든 딸이 아들로 변한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아를 선호할 수 밖에 없었던 기현상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다.



▲봉숭아

당단풍나무 그늘아래에는 봉숭아 몇 포기가 빠알간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봉숭아는 한자식 이름으로 봉선화라고도 한다. 일제치하 우리 민족의 한을 노래했다고 알려진 홍난파의 '봉선화'가 널리 불려지면서 봉숭아보다는 봉선화가 더 많이 쓰여지게 되었다. 홍난파가 친일활동을 많이 한 작곡가라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봉숭아는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인 귀화식물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동화되어 이제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꽃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옛부터 처녀들의 손톱을 물들이는 용도로 봉숭아를 많이 심었다. 봉숭아 꽃잎을 따서 괭이밥 풀잎을 섞어 백반이나 소금을 약간 넣어 잘 찧은 다음 손톱에 싸서 하룻밤 정도 매어두면 예쁘게 물이 든다.

봉숭아 열매가 여물면 조금만 건드려도 톡 터지면서 씨앗이 멀리 날아간다. 그래서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 -me-not)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봉숭아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한맺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머언 옛날(백제나 고려 때) 한 여인이 선녀로부터 봉황을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았다. 그 여인은 딸에게 봉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임금 앞에 나아가 연주까지 할 정도로 거문고를 잘 탔던 봉선이는 갑자기 그만 큰 병을 얻어 앓아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봉선이가 사는 동네를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나아가 손끝에서 피를 흘리며 연주를 해주었다. 임금은 그 모습을 보고 봉선이가 불쌍해서 손수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손가락에 매주고 떠나갔다. 그러나 끝내 봉선이는 죽고 말았다. 얼마후 봉선이의 무덤에는 빠알간 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은 그 꽃을 봉선이의 환생이라고 여겨 그때부터 봉선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상추

내 일터가 있는 아파트 상가 뒤편으로 발길을 돌린다. 상가 뒤편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올봄에 한 평 정도 될까말까한 땅을 일구어 상추씨를 뿌려 놓았었다. 고추도 몇 포기 심고..... 지금 보니 꼭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상추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어려서 무슨 채소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싱싱한 상추로 식탁이 풍성해지겠다.

상추는 유럽과 서아시아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상추는 기원전 4500년경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 작물로 기록될 정도로 그 재배역사가 오래 되었다.

상추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여 빈혈환자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상추의 줄기나 잎에서 나오는 우윳빛 즙액에는 진통과 최면효과가 있는 락투세린과 락투신이 들어 있다. 그래서 상추를 많이 먹으면 잠이 오게 된다.



▲민들레

상추밭 바로 옆에는 노오란 민들레가 피어 있다. 전국 각지 어느 곳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 산에도 들에도..... 그래서 민중들의 삶을 상징하는 민들레.....

민들레의 어린 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뿌리로는 김치를 담가서 먹기도 한다. 또 뿌리와 잎을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뒤 가루로 만들어 차로 마신다. 민들레는 한약재명으로 포공영(浦公英)이라고 하는데 꽃과 뿌리를 말려 기침이나 가래가 심할 때 쓰면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뜻하지 않게 아파트 화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꽃들의 향연에 참여하고 흥겨워진다. 오늘은 하루종일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겠다. 내 한의원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꽃소식을 전해 드려야지

2005년 6월 어느 날






Lotus Of Heart - Wang Sheng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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