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비가 몹시도 내린 7월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고 나선다. 그동안 아파트 화단에는 또 어떤 꽃들이 피고 졌을까.....
비비추꽃
현관 계단을 내려와서 처음 마주친 꽃은 비비추. 연보라색의 꽃이 막 피어나고 있다. 비비추는 한해살이 풀로 정원이나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뿌리에서부터 모여서 나오는 긴 타원형 잎은 물결 모양의 주름이 져 있다. 비비추의 여린 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언젠가 지리산에 갔을 때 돼지평전을 연보라색으로 물들이던 비비추..... 언제나 나로 하여금 노스탤지어에 젖게 하는 지리산.....
장미꽃
비비추 곁에는 비를 흠뻑 맞은 빨간 장미가 무리지어 활짝 피어 있다. 빨간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 욕망, 열정, 기쁨, 아름다움, 절정'..... 장미는 주로 사랑과 관련된 꽃말을 가졌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장미꽃다발을 주고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옛날부터 페르시아에는 붉은 장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옛날 페르시아에서 꽃의 지배자는 연꽃이었다. 그런데 연꽃은 밤이 되면 잠만 자고 여러 꽃들을 지켜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꽃들은 신에게 일러 바쳤다. 신은 화를 내며 꽃들의 지배자가 되어 꽃들을 지킬 수 있도록 흰장미를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날아왔다가 하얀 장미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날개를 펴 품에 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흰 장미의 가시가 그만 나이팅게일의 날개를 찔러 피를 흘렸는데, 그 피가 흰장미를 붉게 물들였다. 이렇게 해서 붉은 장미가 태어났던 것이다.'
범부채꽃
화단 한켠에는 때늦게 피어난 범부채꽃 한 송이..... 다른 범부채들은 꽃이 이미 다 지고 열매를 맺고 있는데.....
꽃잎의 무늬는 표범의 가죽무늬를 닮고 잎은 부채살을 닮았다고 해서 범부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바람에 쓰러져 누워 있는 잎들에는 물방울이 구슬처럼 맺혀있다. 붓꽃과의 다년생 초본인 범부채의 뿌리는 한방에서 청열해독약재로 사용된다. 범부채의 뿌리는 한약명으로 사간(射干)이라고 하는데 인후염이나 편도선염에 탁월한 치료효과가 있다. 그래서 '본초강목'에서도 사간을 인후종통(咽喉腫痛)을 치료하는 요약(要藥)이라고 했다.
참나리꽃
꽃과 줄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백목련나무에 의지한 채 활짝 피어난 참나리꽃 두 송이.....
참나리는 노란 빛이 도는 붉은 색 바탕에 흑자색 반점이 있는 것과 엽액(葉腋)에 짙은 갈색의 주아(珠芽)가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수술은 6개가 꽃밖으로 길게 나와 있고 그 끝에 꽃밥이 달려 있으며 암술은 하나로 하나로 길게 나와 있다. 개화시기는 7월말부터 8월말까지다. 참나리의 비늘줄기를 한방에서 백합(百合)이라고 하는데 해소·천식·종기·혈담을 치료하는 한약재다. 민간에서는 영양제나 강장제, 진해제로 사용된다
부처꽃
밭둑이나 습지에서 잘 자라는 부처꽃도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다지 아름다운 꽃도 아닌데.....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홍자색의 귀엽고 앙징맞은 꽃이다. 어떤 연유로 부처꽃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그것은 연못에 피는 연꽃은 깊어서 따지 못하고 물가 근처에 많은 이 꽃을 부처님께 대신 바친 데서 유래되었다. 일본에서는 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불공인 우란분절에 이 부처꽃을 불단에 바친다고 한다.
노루오줌
산이나 들의 습지에서 잘 자라는 노루오줌도 한 무리 보인다. 오줌이란 이름이 붙은 식물은 대개 꽃냄새가 좋지 않다. 이 꽃도 심하진 않지만 지린내가 난다. 그래서 노루오줌이란 이름이 �었다. 노루오줌은 7~8월에 홍자색으로 피는데 원추(圓錐) 꽃차례로 무리지어 핀다.
과꽃
과꽃도 피었다. 과꽃을 볼 때마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동요가 떠오른다. 어릴 때 많이 부르던 노래..... 과꽃은 흰색, 연분홍, 분홍, 빨강, 자주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이 핀다.
과꽃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아주 머언 옛날, 백두산 깊은 산속에 어린 자식들이 딸린 추금이라는 과부가 살고 있었다. 추금은 남편이 죽은 뒤 남편이 가꾸어오던 꽃을 그 대신 열심히 키웠다. 그리고 이 꽃이 필 때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꽃들을 바라다보곤 했다. 그러는 동안 추금은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무과 과거시험을 보게 하려고 한양으로 떠나 보냈다. 어느 날, 꿈속에서 그녀는 이웃 마을에 사는 중매쟁이의 재혼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런데 얼마 후 만주지방에 살던 부족이 쳐들어와 부인을 납치해 갔다. 족장은 추금을 보고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첩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족장의 청을 완강하게 거절했다. 한편, 추금의 아들은 무과에 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찾았으나 없었다.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만주의 한 부족에 의해 납치되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분노한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만주 부족을 급습해서 어머니를 무사히 구출해 냈다. 이 때 추금은 아들에게 '이 곳은 꿈속에서 너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이다.'라고 말하고, 뜰로 나갔다가 무수히 많은 자줏빛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남편이 가꾸어 오던 꽃과 똑같은 이 꽃을 캐어 품에 안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그 뒤 이 꽃은 과부를 지켜준 꽃이라 하여 과꽃이라 불리게 되었다.
참취꽃
봄철 아주 향기로운 산나물인 참취도 꽃을 피웠다. 참취는 초롱꽃목 국화과인데 취나물, 취, 동풍채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취나물의 종류는 70여종으로 대단히 많다. 참취, 미역취, 개미취, 곰취, 수리취, 단풍취, 바위취, 분취 등등..... 봄에 참취의 연한 어린 잎을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하루 정도 찬물에 담가 우려낸 뒤 무쳐서 먹으면 향과 맛이 뛰어난 산나물이다. 삼겹살을 구워 상추나 깻잎과 함께 참취에 쌈을 싸서 먹어도 그 향이 아주 좋다. 하얀 참취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쌉쓰름하면서도 상큼한 참취향이 입안에 감도는 듯 하다.
도라지꽃
자기 키를 이기지 못해 누운 채 보라색으로 피어 있는 도라지꽃..... 도라지꽃은 청초한 여인의 자태를 떠오르게 한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로 시작되는 민요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야생화 도라지.....
흰색 꽃이 피는 도라지를 백도라지라고 한다. 도라지는 초롱꽃과(─ 科 Campanulaceae) 도라지속(─ 屬 Platycodon)에 속하는 단 하나뿐인 동아시아산 다년생초본이다. 뿌리를 몇 가닥으로 찢어서 맑은 물에 담가 아린 맛을 없앤 다음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훌륭한 도라지나물이 된다. 또 말갛게 탕으로 끓여서 먹어도 좋다. 도라지 뿌리에는 당분·철분·칼슘이 많고 또한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 한약재로 쓰인다. 도라지 뿌리를 말린 것을 길경(桔梗)이라고 하는데 담을 삭히고 기침을 멈추게 해주는 약(化痰止咳平喘藥)으로 인후통, 편도선염, 기침, 해수, 기관지염, 폐염 등에 빠질 수 없는 한약재다.
맨드라미꽃
꽃모양이 닭의 벼슬과 닮았다고 해서 계관화(鷄冠花)라고도 불리는 맨드라미..... 예전에는 추석명절에 기장떡을 할 때 맨드라미꽃으로 수를 놓아서 쪘다. 빠알갛게 예쁜 무늬가 들어간 기장떡을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기장떡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분꽃
어제 내린 비를 맞고 꽃잎을 늘어뜨린 분홍색 분꽃...... 몸이 매우 무거워 보인다.
분꽃은 분홍색, 흰색, 노란색등 세 가지가 있다. 분꽃이 지면 작은 구슬같은 까만 씨가 맺히는데, 그 씨를 '자말리자'(刺茉莉子)라고 한다. 씨앗에 분가루같은 고운 녹말이 들어 있어서 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의 본초서 본초강목습유에는 자말리자를 '가루로 만들어 얼굴의 반점, 기미, 여드름을 없애는데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성들은 얼굴에 기미나 주근깨가 있을 때 분꽃 씨의 하얀 가루를 발라서 화장을 하였다. 그러니까 분꽃 씨는 천연화장품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다.
호박꽃
땅으로 뻗은 호박넝쿨에는 노오란 호박꽃이 정겹게 피었다. 그 누가 호박꽃을 꽃이 아니라고 했는가! 호박꽃도 엄연한 꽃이다. 그것도 아름다운.....
나팔꽃
생김새가 나팔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나팔꽃도 청자색으로 피었다. 인도가 원산지인 나팔꽃은 푸른 자주색, 붉은 자주색, 흰색, 붉은 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나팔 꽃은 모닝글로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른 새벽에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해서 아침 9시 쯤이면 활짝 피고, 오후가 되면 꽃잎이 시들어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나팔꽃에는 '덧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이 붙었다. 덧없는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
나팔꽃의 씨는 한방에서 견우자(牽牛子)라고 하는데 하제(下劑)로 사용한다. 그러나 성질이 대단히 차고 맛이 쓰며 독성이 있어서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벌개미취꽃
102동 화단에는 벌개미취가 무리지어 활짝 피어 있다. 벌개미취는 중부 이남 지역에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으로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다른 이름으로 별개미취라고도 불린다. 봄철에 채취한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개미취의 뿌리를 한방에서는 자완이라고 하는데 화담지해평천약(化痰止咳平喘藥)이다. 가래에 피가 섞이는 증상과 인후가 건조하고 아픈 증상을 치료하는 한약재다. 급만성 호흡기 감염증상에도 쓸 수 있다
무궁화꽃
아파트 후문 담장에는 무궁화꽃이 한창이다. 군데군데 하얀색의 무궁화꽃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
무궁화는 7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10월까지 약 100일 동안 계속해서 피는 아름다운 꽃나무이다. 무궁화는 보통 홑꽃·반겹꽃·겹꽃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반겹꽃과 겹꽃은 일반 꽃들과 같이 수술이 꽃잎으로 변한 것이다. 꽃의 빛깔은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이 있다. 꽃잎의 기부에 있는 진한 보라색 또는 적색의 원형 무늬를 단심(丹心)이라고 한다.
무궁화의 'syriacus'라는 종명은 '시리아 원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원산지가 시리아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는 인도와 중국이 원산지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후난성(湖南省)·푸젠성(福建省) 및 광시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일대에 널리 자생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반도에서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에 피어서 저녁에 시든다'(君子之國在其北……有薰花草 朝生募死)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국은 한반도를 말하고, 훈화초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 이름이다. 또한 중국의 고금주(古今注)에는 '군자의 나라는 사방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한반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무궁화라는 이름은 옛날부터 불러오던 꽃 이름이 아니고 한자음을 따서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명문장가 이규보(1168~1241)의 문집에는 무궁화를 한자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논란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無宮'으로 쓸 것인가 '無窮'으로 쓸 것인가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으나 결론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학자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 양화편(養花篇)에는 무관화(舞官花)로 기록되어 있다. '無宮·無窮·舞官'은 뜻이 모두 다르나 발음은 서로 비슷한데, 뜻이 가장 좋은 무궁화(無窮花)로 자연스럽게 통일되어 씌어져온 것으로 짐작된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면서 역사와 전통문화를 서서히 말살해 나가기 시작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상징인 무궁화를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 버렸으며, 무궁화가 좋은 약용식물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온 사실인데도 사람이 가까이하면 눈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애국지사 남궁억은 강원도의 보리울에 은거하면서 많은 무궁화 묘목을 생산하여 온나라에 나눠주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한국 보이 스카우트의 전신인 조선소년단·조선소년척후대는 스카프의 무궁화 도안이 문제가 되어 해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아담한 관목의 꽃나무인 무궁화는 정원수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울타리로도 많이 이용된다. 무궁화의 나무껍질과 뿌리껍질을 한방에서는 목근피(木槿皮)라고 하는데 이질, 장출혈, 탈항, 개선(疥癬) 등과 같은 각종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제로 쓰인다. 또 꽃봉오리는 요리에, 꽃은 차의 재료로, 나무껍질은 고급종이를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벽을 타고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려는 담쟁이..... 무엇을 위한 오름인가.....
담쟁이 덩굴은 포도과에 딸린 낙엽덩굴식물로 줄기마다 흡착근이 있어서 그것으로 나무나 바위, 담장 등을 타고 올라가며 자란다. 담쟁이를 한방에서는 ‘석벽려’ 또는 ‘지금’(地錦)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이란 땅을 덮는 비단이란 뜻이다. 담쟁이는 가을에 빨갛게 물드는 단풍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정원의 담장 밑에 많이들 심는다. 작은 포도알 모양으로 까맣게 익는 열매도 보기 좋다. 담쟁이 덩굴의 줄기를 꺾어서 씹어 보면 단맛이 나는데, 옛날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담쟁이 덩굴을 진하게 달여서 감미료로 썼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설탕의 원료로도 이용되었다.
상추
6월에 보았을 때는 어리디 어렸던 상추가 이제는 새버렸다. 쌈으로 먹기에는 너무 억새다. 꽃이 피어 씨앗을 맺을 일만 남았을 뿐..... 세월이 이리도 빠름인가.....
고추도 이젠 약이 오를 대로 오를 만큼 자라고..... 벌써 빨갛게 익은 고추도 보인다. 시골에 살 때 시원한 대포 한 사발 마시고 날된장에 풋고추를 쿡 찍어서 먹던 그 기막힌 맛..... 입안에 매콤한 고추향이 감도는 듯 하다.
오늘도 꽃밭에서 놀다보니 마음마저 향그러워진다. 아! 이 순간의 행복이여.....
2005년 7월 31일
El Sicuri- Savia And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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