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형예술의 모든 것

김형권의 '달빛그림' 감상

林 山 2006. 3. 7. 12:09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붓을 잡으면 나도 모르게 달빛 속으로 끌려 들어가
달과 함께 살아 온 세월이 벌써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정도의 긴 세월이 흘렀다.
달빛은 모든 것을 감싸 주는 넓고 따스한 덕을 나누어 주며,
현재 보다는 과거를 뒤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통로이기도 하다.-작가의 말

 

달 빛 을 찾 아

어린 시절 문밖만 나서면 언제나 쉽게 대할 수 있던
맑고 투명한 달빛은
도시의 밝은 조명에 가려 사라진지 오래다.
행여 그 빛을 찾아볼까
고개 들어보면
시름거리며 죽어 가는 빛들 뿐,
달이 토한
맑고 신비한 그 빛은 없다

이제는 마음속 깊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빛이 내가 살아가는 생명의 빛이라고 확신하며,
오늘도 내 안에 불씨처럼 남아 가물거리는
오래된 기억속의 달빛 추억을 찾아 나선다.-작가의 말
                                                                                                     2003.12    김  형  권

김 형 권

 

개인전 16회 ( 서울. 부산. 전주. 군산)

 

공 모 전
국전 및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6회
구상전 및 기타공모전 20여회 입상

 

단체전
각종.초대전 및 단체전 300여회

 

경력:
왕신여자고등학교 교사.
전북산업대학교 강사. 대진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서울미술협회 이사. 광진미술협회 회장 역임

 

현재
사단법인 구상전 이사. 광진미술협회 명예회장. KIFAA 운영위원.
한국미술협회 회원. 삼성플라자문화센타. 애경백화점문화센타강사.
인터넷 미술포럼 WSART. 월산미술연구소 대표.

 

작품소장:
호암미술관 (80호 월하야상곡)
대우 옥포조선소 (300호 월야 -장생)
대우자동차(100호. 월하야상곡)
삼동훈련원 (300호 월야-지리산)
(주)삼대양건설 (300호 추일) 외
(주)서진엔지니어링(300호 설악산)
(주)레피드어드벤스(200호 마음의 고향)

 

저서: 구도의 표현(사라져간 한국 농촌풍경) /도서출판 M.K

 

달아 달아 밝은 달아               / 달빛 추억 /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붓을 잡으면 나도 모르게 달빛 속으로 끌려들어가 달과 함께 살아 온 세월이 벌써 강산이 3번이나 변할 정도의 긴 세월이 흘렀고, 주변 화우들로부터도 이제는 그 달빛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도 들었지만 모든 작업의 마지막 결론은 달빛으로 귀결 되어지는걸 보면 아마도 나는 보이지 않는 달의 인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왜? 수많고 많은 소재 중에 유독 달빛에 끌려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한 길을 향해 걸어온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어린시절의 작은 기억에서부터 시작 된 거 같다.

 

 아마 중학교 3학년 가을 농번기 방학 때 일어난 사건일거다. 그 당시 시골 학교는 바쁜 추수기에는 일손을 돕기 위해 약 3-5일정도의 방학을 실시하였는데, 그 때에 맞추어 친한 친구와 함께 말로만 듣던 캠핑을 떠나기로 하여 난생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 섬진강 근처에 있는 유원지에서 3일의 꿈같은 둘만의 시간이 시작 되었고, 처음 느껴보는 보모님과 학교의 해방감에 들떠 모든 세상이 내 것만 같았다. 옆 집 형에게 빌려온 텐트를 치고 어설픈 저녁을 지어 먹은 후 점차 어둠이 다가오자 호기심 많은 사춘기 두 소년은 닭서리가 생각이 났고 둘이는 인근 마을 농가의 닭장을 열어 닭을 훔쳐서 한 걸음에 1킬로미터가 넘은 거리에 위치한 우리 텐트로 돌아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멀리 보이는 횃불들이 우리를 향하여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 시절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지라 마을 사람들은 아마 벼루고 있었던 일처럼 그 횃불은 우리의 행위를 응징하려는 마을 주민들의 분노와 흥분이라는 짐작이 떠올랐고 그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돌아올 죄에 대한 크고 감당 못할 벌의 위중함과 함께 부모님과 무섭기만 하시던 호랑이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우리 둘은 누가 말하기도 전에 온 종일 정성들여 꾸며 놓았던 텐트와 옷가지를 둘둘 말아 배낭에 쑤셔 넣어 각기 빠른 속도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 현장을 피해 어둠 속으로의 도주가 시작되었다.  약 10여분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십 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그 현장을 뒤돌아 바라 보았을 때 많은 횃불들은 그 주변에서 우리를 찾고 있었고, 우리는 더욱 더 바쁜 걸음으로 그 장소에서 멀리 피해야만 했다.

 

칠흑 같은 어둠. 공포에 질린 두 소년은 바람소리와 산짐승의 바스락거림에 깜짝 깜짝 놀라며, 희미하게 나타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아무 말도 못하고 걷기를 1시간여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어깨를 점점 압박해 오고 산속의 차가운 가을 공기는 더욱 더 두려움을 가중할 무렵 저 멀리 희미한 모습의 물체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고 길을 가로막고 꼼짝 않고 서있는 모습은 우리의 발걸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길을 통과하지 않은 면 집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더 더욱 불안하기만 한 것이기에 저것이 무엇일까?  귀신? 사람? 아니면 닭의 주인? 우리는 서로 손을 꼭 붙잡고 덜덜 떨고 있기를  얼마 동안의 시간인지는 지금 기억으로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시간을 그 자리에 선체로 그 괴물체를 향해 돌멩이도 던져보고, 소리도 질러보며, 물체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을 때 칠흑 같은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밝은 달빛이 환하게 비치기 시작하자 그 괴물체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의 형태로 바뀌고 있었다. 그 때는 경찰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각 郡 경계지역이나 道 경계지역에는 경찰모습의 패널을 만들어 세워둔 안내 표시판이었고. 경찰이 손에 들고 있는 판에는 어서 오십시요. 순창군입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가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는 먹구름사이로 나타난 달에 의하여 모든 상상은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느꼈을 때 우리 둘은 한동안 큰 소리를 내어 깔깔깔 웃으며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나는 처음으로 마술과 같은 아름다운 달빛세계를 체험하고 있을 때 구경하기도 힘든 차 한대가 다가와 멈췄고 차 문이 열리더니 군인 아저씨가 이 밤길에 어린학생들이 무슨 일이며,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신 후 차에 태워 주셨다. 그 군인아저씨는 지금 아마 장교 이였던 것 같았는데, 급한 일로 전주에서부터 순창까지 택시를 대절하여 고향에 가시는 길이라 했고, 우리는 그 분으로 인해 편하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경이었으니 아마 어린시절 6시간의 공포체험은 초특급이었을 거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상상에 맡기는 게 좋을 같다.

 

 나의 첫 번째 달빛과의 만남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각인되었고 그 달빛에 대한 추억은 나와 그 친구와 은밀한 비밀이 되어 둘 사이가 더욱 더 가까워져 고등학교 진학 시까지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고교시절은 개인사정으로 인해 선 후배의 관계가 되었고 그 친구는 신학대학으로 진학하여 목자의 길을 향해, 나는 미대에 진학하여 화가의 길로 서로 다른 길을 향해 갔고, 우리는 만날 때 마다 그 닭서리는 우리 대화의 화두 이었다. 그런데 그 대화의 핵심은 서로가 전혀 달랐으니 그 친구는 그 닭 주인에 대한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 했다. 그 주인을 찾으러 그 곳에 갔었는데 어느 집인지 알 수 없이 변했고 등 등,  나는 그 때 본 마술과 같은 환상적인 달빛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그 때부터 서로 관점이 달랐던 건지 아니면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우선된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 그 친구는 목사님이 되어 오래 동안 목자의 길을 걷다 일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 후 두 번째 달빛에 대한 잊지 못 할 기억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시절 나는 지리산을 자주 찾았다. 아마 어린시절 못다 이룬 캠핑의 기억도 한 몫은 했으리라 여겨지지만 자칭 산악인이라고 할 정도로 이 산 저 산 산을 찾아다니며 어설픈 스케치를 하곤 했다. 70년대 초반에는 등산인구도 적었으며 그 장비 또한 조잡하기 이루 말할 수없을 정도였다. 대학축제 기간을 이용하여 지리산 종주를 강행하였고 구례 화엄사에부터 시작한 코스는 노고단에 달하기까지는 너무 험난하여 수없이 많은 도중 포기를 생각하게 한다. 노고단에서 하루 야영한 후 벽소령에서 맞은 밤은 음력 보름날이었다. 저녁 식사 후 둥글게 떠오른 크고 환한 달에서 나오는 그 청아하고 맑은 달빛은 어린시절 보았던 그 추억의 빛이었다. 우연히 보았던 그 달은 지리산의 10경에 들어있는 벽소월야 이였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스케치북을 꺼내들어 나도 모르게 달빛에 의존하여 이것저것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빛은 수 십 와트 밝기의 형광등 불빛보다도 밝았고 그 빛은 순간적으로 내리는 강열한 태양광선과는 달리 강물처럼 조용하고 잔잔하게 내 혈관을 타고 내 몸 구석구석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시간이 나면 그 빛을 찾아 나섰고, 그 빛을 화면에 담아오다 1986년 90점의 작품을 모아 [김형권 달빛전]이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 한 후 벌써 16회개인전 이라는 숫자가 무상하기만하다. 달빛은 모든 것을 감 쌓아 주고 따스한 덕을 나누어 주며, 현재 보다는 과거를 뒤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통로이기도 하다. 한 없이 따스한 어머니 품과도 같은 달빛 그 빛 아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추한 것을 감싸주고 모든 것을 쉬게 해주는 그 아름다운 빛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포수처럼 달빛사냥을 나선다.  

                                                                                                        2003.12    김  형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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