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천등산 포토기행

林 山 2006. 5. 4. 12:43

아침부터 하늘에는 황사가 부옇게 떠 있다. 이런 날은 등산이나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으련만 그놈의 역마살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다. 오늘은 내 고향 산척에 있는 천등산을 오르기로 한다. 광동마을과 행정마을 사이로 뻗어내린 천등산 지맥의 능선에 올라선다. 이 능선의 중간 쯤에는 나의 증조할아버님의 묘소가 있다. 두 번의 절을 올려 자손으로서의 예를 다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지만 이 분이 계셨기에 오늘날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참취

 

산기슭에는 참취의 연한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보드라운 참취를 뜯어서 봉지에 담는다. 이따가 산을 내려가서 하산주를 한 잔 마실 때 삼결살을 구워서 싸먹기 위함이다. 봄철에는 이보다 더한 진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봄철의 산나물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크나큰 혜택이다. 참취를 뜯다 보니 진한 참취향이 손끝에 묻어난다. 참취가 국화과에 속하는 식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참취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거나 데쳐서 말려 묵나물로 먹기도 한다. 참취는 한방에서 동풍채근(東風菜根), 산백채(山白寀), 백지초(白之草)라고 한다. 동풍채는 이뇨제나 보익제로 쓰며, 방광염과 두통, 현기증 치료에 사용한다. 또 감기, 진통, 건위, 폐염, 황달 및 항암치료제로도 활용된다. 요즘에는 이런 용도로 거의 쓰지 않는다.



*각시붓꽃

 

소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 호젓하다. 주인을 잃은 무덤가에 자주색의 각시붓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있다. 각시붓꽃은 애기붓꽃이라고도 한다. '각시'라는 말이 들어가는 꽃은 대개 작고 여리지만 새색시처럼 아름답다. 각시붓꽃은 붓꽃에 비해 크기가 작다. 잎도 가늘고 짧으며, 꽃대도 작아서 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가 될까말까 하다. 각시붓꽃은 꽃이 청초하고 아름다워 사람들로부터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화분이나 정원에 심으려고 보는 족족 캐어가기 때문이다. 각시붓꽃의 뿌리줄기는 편도선염과 인후염, 주독, 폐렴 등에 좋은 효능이 있다. 또 피멍을 풀어주고 종기를 낫게 하며, 지혈작용이 있어서 토혈이나 코피, 자궁출혈에도 쓰인다.

 

각시붓꽃에도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주노 여신에게는 아름답고 예의바른 시녀 아이리스가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주피터는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수 없어 무지개로 변하여 주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는 이야기다. 각시붓꽃의 속명 Iris는 그리스어로 무지개란 뜻인데 그것이 그대로 꽃이름이 되었다. 각시붓꽃의 꽃말은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랑이다.

 

*빗살현호색꽃

 

천등산 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임도를 지나 천등산 주능선으로 들어선다. 낙엽이 쌓인 산비탈에 빗살현호색이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의 모양은 자주괴불주머니꽃과 비슷한데 잎을 보니 빗살현호색이다. 현호색은 현호색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꽃모양이 다소 독특하다. 갸름한 대롱모양의 꽃은 그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쯤 된다. 끝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보라빛꽃은 마치 요염한 여인이 입술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또 어떻게 보면 새가 부리를 쫙 벌리고 있는 모양같기도 하다. 꽃잎은 벌어진 입술처럼 위 아래로 갈라져 가운데가 약간 패어 있고, 꽃의 꼬리는 약간 들리면서 뭉툭하게 오므라져 있다.현호색의 속명 콜리달리스(Corydalis)는 종달새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꽃모양이 종달새의 머리깃과 닮은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현호색의 꽃색은 보라색, 연보라색, 보라빛이 도는 하늘색, 분홍색에 가까운 보라색, 연자주색, 자주색 등 매우 다양하다. 현호색은 잎의 모양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잎이 서로 다른 크기로 갈라져 있으면 현호색, 셋으로 갈라져 있으면 왜현호색, 잎이 대나무 잎처럼 길쭉한 것은 댓잎현호색, 빗살무늬로 갈라져 있으면 빗살현호색, 잎이 코스모스 잎처럼 가늘게 갈라져 있는 애기현호색 등 그 종류가 많다.

 

현호색은 천동초, 명천동, 혹아지꽃이라고도 한다. 현호색의 뿌리에 달려 있는 덩이줄기를 현호색 또는 비취엽자근이라고 하는데 한방에서 약재로 많이 쓴다. 현호색은 양귀비 다음으로 진통효과가 아주 좋은 한약재로 두통이나 치통, 복통 등을 치료하는데 쓴다. 또 어혈을 잘 풀어주어 타박상 치료에도 우수한 효능이 있다. 그러나 현호색은 독성이 있어서 법제를 잘 해야 하며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야만 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덩굴딸기꽃

 

덩굴딸기꽃도 연분홍색으로 피었다. 덩굴딸기는 줄딸기, 덤불딸기, 만경현구자, 만매, 곰의딸, 동꿀딸기라고도 하는데, 한국과 일본 및 중국의 해발 900m이하  산기슭에 많이 자생한다. 열매는 6~7월에 빨갛게 익는다. 산이나 들에서 만나는 딸기를 통칭 산딸기라고 하는데 덩굴딸기, 곰딸기, 멍석딸기, 복분자를 비롯해서 그 종류가 꽤나 많다. 특히 복분자는 강장과 간을 보호하는 효과가 뛰어난 한약재로 알려져 있다.

 

2001년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이 덩굴딸기의 덕을 참 많이 봤다. 배가 고플 때마다 바알갛게 잘 익은 산딸기밭이 나타나곤 해서 싫도록 따먹었던 기억이 난다. 산딸기는 산에서 나의 비상식량 노릇을 톡톡히 했다. 고마운 산딸기..... 

 

*호제비꽃

 

산기슭에 자주색의 호제비꽃이 한창이다. 산이나 들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제비꽃이 바로 이 호제비꽃이다. 꽃색은 자주색, 자갈색, 담자색을 띈다. 호제비꽃의 전초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자화지정(紫花地丁)이라고 한다. 자화지정은 청열해독(淸熱解毒)과 양혈소종(凉血消腫)의 효능이 있어서 벌겋게 부어오르는 종기나 부스럼, 악창, 정독을 치료하는데 좋은 한약재다. 


*알록제비꽃

 

알록제비꽃도 눈에 띈다. 알록제비꽃을 알록오랑케꽃이라고도 부른다. 알록제비꽃은 잎이 특이하다. 잎모양을 보면 난형이나 넓은 타원형 또는 심장형인데 끝은 둔하거나 둥글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그리고 표면 엽맥을 따라 백색 무늬가 있으며, 뒷면은 자주색이고 양면에 털이 약간 나 있다. 알록제비꽃은 잎모양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꽃도 예쁘고 귀여워서 관상가치가 매우 높다. 

 

*철쭉꽃

 

벌써 철쭉꽃이 피어나고 있다. 연분홍색의 꽃이 곱기도 하다. 꽃을 가마히 들여다 보니 위에 달린 꽃잎에는 적갈색 반점이 찍혀 있다. 길다란 암술을 중심으로 긴 수술 다섯 개와 짧은 수술 다섯 개가 나와 있다. 철쭉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대개 5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철쭉의 종류는 수백 가지나 된다. 흰꽃이 피는 것을 흰철쭉(백철)이라 하고, 갈색 털과 꽃대에 점성이 있고 잎이 피침형인 산철쭉, 분홍빛깔을 띄는 자산홍, 붉은빛을 띄는 영산홍, 노란색의 황철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산철쭉은 진달래와 혼동하기 쉽다. 진달래는 이른 봄 산철쭉보다 먼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는 특징이 있다. 진달래가 지고난 뒤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대에 끈적끈적한 점성이 있으며 잎과 함께 붉은색의 꽃이 피는 것은 철쭉이 아니라 산철쭉이다. 철쭉은 지리산과 같은 높은 산에서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는데, 진달래나 산철쭉보다는 잎이 훨씬 크고 모양도 다르다.

 

철쭉은 꽃이 아름다워 정원에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는다. 진달래는 꽃을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하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개꽃이라고 한다. 철쭉의 잎과 꽃은 강장제나 이뇨제, 건위제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처음 듣는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런 용도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진달래꽃

 

야생화를 보면서 산을 오르니 별로 힘든 줄도 모르겠다. 어느덧 꽤 높이 올랐다. 지나 오면서 보니 낮은 곳에는 진달래꽃이 다 졌던데 이곳에는 이제서야 한창이다. 어린 시절 진달래꽃을 따서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진달래꽃을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달착지근하면서도 약간 떫은 맛이 난다.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입맛도 세월을 따라서 변하는 모양이다.  


*천등산에서 누릅재 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천등산 정상에서 산줄기 하나가 누릅재를 향해서 뻗어내리고 있다. 산허리를 구렁이처럼 휘감고 돌아가는 임도가 볼썽사납다. 산불을 예방하고 숲을 잘 가꾸기 위해서 임도를 닦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 반대인 것 같다. 저렇게 산허리를 절개해 놓으면 홍수철에 산사태가 나거나 토사물이 쏟아져 내리지 않겠는가! 자연은 되도록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자연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려면 아예 불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천등산은 충주의 진산이다. 그러니까 제발 좀 손을 대지 말았으면 좋겠다. 충주시청이나 산림청 등 행정기관에서 탁상행정만 일삼는 사람들이여!

 

새만금 간척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농경지가 늘어났느니 국토가 늘어났느니 온갖 궤변을 동원해서 합리화하고 있지만, 갯벌이 가진 가치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간척지를 만드는 것보다 갯벌을 보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가치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엄연히 나와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새만금 간척지는 자연과 인류에 대한 중대한 범죄의 현장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릴렀는지 새만금은 두고두고 증언할 것이다. 새만금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새만금을 죽이는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간들은 오리발을 내밀고 뻔뻔스런 변명으로 일관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그러나. 한 번 죽은 새만금은 다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새만금을 죽인 사람들을 저주하면서.....  


*남산제비꽃

 

낙엽이 쌓인 등산로 한가운데 흰색의 남산제비꽃 한송이가 피어 있다. 남산제비꽃은 하얀색의 꽃과 코스모스 잎처럼 가늘게 갈라지는 이파리가 특징이다. 잎은 뿌리로부터 모여나는데 잎자루가 길고 새발처럼 세 갈래로 갈라져 난다. 세 갈래진 잎은 각각 다시 깃털처럼 세 갈래로 갈라져 바소꼴이 된다.


*뱀딸기꽃

 

샛노란색의 뱀딸기꽃도 피었다. 이 꽃도 봄에 일찍 피는 꽃 가운데 하나다. 꽃이 지고나면 6월 무렵부터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둥글고 작은 열매는 붉은색을 띠는 위과(僞果)로 모양은 딸기와 비슷하지만  별로 맛은 없다. 어릴 때 뱀딸기를 많이 따먹어 보았지만 그때마다 실망만 했다. 어떤 사람들은 뱀딸기에 독이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사실은 독이 없다. 뱀딸기는 산과 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진달래꽃 능선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는 길이 또 나타난다. 소나무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 피어난 붉은 진달래가 운치를 한껏 더한다. 꽃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산길이다. 진달래꽃을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그 유래가 있다. 촉나라 망제(望帝)가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는데, 그 피울움이 땅에 떨어져 핏빛 꽃이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두견화, 즉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산기슭에 짓붉게 핀 진달래꽃을 보고 어찌 김소월의 시 한 수 읊지 않을 수 있으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바위너덜지대

 

진달래 꽃길을 지나자 바위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별로 험하지도 않고 가파르지도 않아서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산은 바위가 있어야 제멋이 나는 법이다. 좋은 산세에 소나무와 바위가 잘 어우러진 산이 명산이다.   


*무인산불감시초소

 

사방이 잘 관찰되는 곳에는 무인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다. 안테나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동통신사의 기지국같아 보이기도 한다. 감시초소 둘레는 철망과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쳐놓았다. 숲길을 하다가 이런 흉물스런 인공건조물들을 만나게 되면 산행기분을 잡치기 일쑤다. 산불감시도 물론 중요하고 기지국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더군다나 천등산은 충주의 진산이 아니던가!


*전망대

 

무인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조금만 더 오르면 전망대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전망대는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다릿재에서 정상에 오른 뒤 도로 다릿재로 내려가는 등산객들은 대개 이 곳을 놓치기 일쑤다.

 

 

*지나온 능선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니 온 산기슭이 연두색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연두색은 생명의 색이요 평화의 색이다. 온 산과 들이 푸르른 생명의 바다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생동하는 생명기운이 온몸에 전해져 온다. 저 푸르른 기운에 동화되어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듯 하다. 왼쪽 지맥을 중심으로 우측 마을은 행정, 좌측 마을은 고구마로 유명한 둔대다. 둔대 뒤로 덕해마을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광동마을

 

전망대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이 광동이다. 광동마을에는 '박달주'와 '금봉주'로 유명한 막걸리 공장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살균막걸리다. 막걸리는 효모가 살아 있어야 제맛이 난다. 살균을 하면 더 이상 막걸리라고 할 수 없다. 살균막걸리는 생막걸리에 비해서 가격도 더 비싼 편이다. 그래서 나는 값도 싸고 효모가 살아 있는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막걸리에 관한 한 가장 싼 막걸리가 가장 좋은 막걸리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릿재

 

전망대에서는 다릿재도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다릿재는 충주시 산척면과 제천시 백운면을 연결하는 재다. 다릿재 건너 저 능선을 타고 1박2일 정도 가면 치악산에 이를 수 있다.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노래의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되는 가사로 인해 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릿재를 박달재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박달재는 구학산과 시랑산이 마주치는 곳에 있는 재로 제천시 백운면과 봉양면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터널이 완공되어 다릿재나 박달재 모두 차량통행이 드물다.   


*천등산 정상과 팔각정

 

전망대를 떠나 천등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과 팔각정이 바로 앞에 있다. 가까이에서 정상을 바라보니 웅장한 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저 평범한 야산의 봉우리처럼 보인다. 정상부근에는 주로 활엽수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노랑제비꽃

 

양지바른 곳에 노랑제비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다. 황갈색의 줄무늬가 뚜렷하게 보인다. 산 속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노랑제비꽃은 두 가지 잎이 달린다. 뿌리에서 나오는 잎(根生葉)은 하트모양처럼 잎 밑이 약간 들어가 있으며 잎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나 있다. 줄기에 달리는 잎(莖生葉)에는 잎자루가 없거나 매우 짧고 마주보면서 달린다. 꽃의 뒤쪽에 볼록 나온 것은 꿀샘이다. 어디서나 무리지어 잘 자라기 때문에 땅을 덮는 지피식물(地被植物)로도 인기가 있다. 노랑제비꽃은 아름답고 귀여워서 관상용으로도 가치가 높은 꽃이다.


*고깔제비꽃

 

고깔제비꽃도 피었다. 한송이는 고깔처럼 생긴 이파리가 보이는데 다른 한송이는 이파리가 보이지 않는다. 뿌리에서 잎과 꽃이 모두 나오기에 꽃이 먼저 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잎이 나올 때는 말려나오는데 그 모양이 고깔을 닮았다고 해서 고깔제비꽃이라고 한다. 전에 무심코 다닐 때는 몰랐는데 천등산에 다양한 제비꽃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정상부근의 팔각정

 

천등산 정상 바로 부근에 있는 팔각정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다 되었다. 팔각정에 올라가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군만두로 간단한 점심을 한 뒤 후식으로 참외를 먹었다. 팔각정은 천등산에서 전망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마루를 깔고 창을 달아서 악천후시 등산객들이 비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천등산 정상

 

나에게 정기를 준 산 천등산 정상에 올라선다.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실 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천등산에서 승천하는 태몽을 꾸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너는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다.'라는 말을 들려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천등산에 오를 때마다 다른 산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곤 한다. 지금의 내가 과연 어머니께서 바라는 그런 인물이 되었는지는 영 자신이 없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천등산은 산줄기와 계곡이 아흔아홉 구비를 이루는데 그 정기를 이어받아 산척면에서는 아흔아홉 명의 큰 인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으면서 이곳의 아이들은 청운의 꿈을 키워 갔다. 지금은 어른들이 들려주던 큰 인물이라는 것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도둑질 아니면 뇌물질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진정한 큰 인물, 큰 인재는 나보다 못한 이웃들에게는 한알의 밀알이 되는 존재요, 인류에게는 어두운 밤길을 비쳐주는 등불과도 같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천등산은 인등산, 지등산과 더불어 삼등산의 조종이 되는 산이다. 천등산과 인등산은 충주시 산척면에 있고 지등산은 충주시 동량면에 있다. 천.지.인 삼등산에 전해 오는 전설이 있으니.....

 

조선 세조 때 황규라는 지사가 명당을 찾아 팔도강산을 두루 돌아보고 다닐 때 이곳 천등산에 와서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었다.황지사가 밤에 잠을 이루는데 어디선가 세차게 달리는 말굽 소리에 잠이 싹 달아났다. 황지사는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더니 한 마리의 갈색준마에 백의신선이 타고 한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황지사는 그 뒤를 몰래 따라가 보았더니 한산제당으로 가서 말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인은 갈장을 들어 산봉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천상천하 만물이 생성하는 것은 하나의 음양의 섭리인데 천지사이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도 하나의 음양의 법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하는 세 곳의 명산을 다스리는 것은 하늘의 뜻이요, 이 곳에 사는 억조창생을 위한 땅의 뜻이요, 선악의 구별은 우리의 할 일이니라. 천동이 너는 저 천산에 올라가 양을 맞아 들이고, 인동이 너는 인산에 올라가 혈을 이루도록 하고, 지동이 너는 지산에 올라가 음을 누르도록 하여라. 앞으로 이 삼산의 정기가 상통되거든 천등산 밑에는 갈마음수혈을 만들고, 인등산 밑에는 용비등천혈을 만들고, 지등산 밑에는 옥녀직금혈을 만들어라.'하고 일렀다. 그러자 세 신동들은 제각기 보라색 구름을 타고 세 곳으로 흩어져 갔는데, 잠시 후 백의신선이 갈장을 높이 들자 남쪽에서는 파란빛이, 중앙에서는 보라빛이, 북쪽에서는 황금빛이 올라가며 응징을 하였다. 이 때 백의신선이 그 세 곳의 명당을 갈장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황지사는 세 곳의 명당자리를 보고 크게 기뻐하여 삼등산의 명당도를 그려서 가슴에 품고 산을 내려가는데 느닷없이 하늘에 먹구름이 모이면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황지사는 급히 숙소로 돌아가려고 서두르는데, 그 때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이것은 비몽사몽간의 한바탕 꿈이었다. 황지사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산정을 바라보니 한 곳에는 파란색, 또 한 곳에서는 보라색, 또 한 곳에서는 황금색의 광선이 반짝이더니 서서히 꺼지는 것이었다. 날이 밝자 황지사는 이 세 산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제각기 명당혈을 찾아 다녔다. 황지사는 백의선인의 말을 기억하고 산세도를 그려놓고는 세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만 병들어 죽고 말았다. 따라서 이 삼등산의 명당자리는 지금도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삼탄역을 향해서 뻗어가는 능선

 

천등산 정상을 떠나 삼탄역을 향해서 뻗어가는 능선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비님이라도 오시려나. 비옷을 가져오지 않아서 비가 오면 안 되는데.....


*개별꽃

 

정상에서 내려가다가 첫번째 만난 안부에서 개별꽃 자생지를 만났다. 개별꽃은 꽃모양이 마치 별과 같다고 하여 들별꽃이라고도 한다. 산지의 나무 밑에서 자라는 개별꽃은 인삼 뿌리를 닮은 사각뿔 모양의 작은 뿌리가 있다. 꽃잎은 5장부터 8장까지 달린다. 개별꽃도 그 종류와 변이종이 많아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봄철에 개별꽃의 어린 순을 나물로 먹으면 태자삼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또 민간에서 위장병 치료나 위암, 폐암 같은 암치료에 쓴다고도 하고, 기를 보충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양기를 좋게 하는 보약으로도 쓴다고 하는데..... 글쎄다.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다. 개별꽃보다도 훨씬 더 좋은 한약재가 얼마든지 있는데 이것을 굳이 약재로 쓸 필요가 있을까?


*산괴불주머니꽃

 

산봉우리 하나를 넘어서 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자 산괴불주머니 군락지가 나타난다. 현호색과에 속하는 이 꽃은 북한에서는 산뿔꽃이라고 부른다. 꽃이 매우 연약하게 달려 있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후두둑 떨어잔다. 그래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주위가 온통 떨어진 꽃 천지가 된다. 괴불주머니류 중에서 산에서 많이 볼 수 있어 산괴불주머니라 한다. 현호색과 비슷한데, 현호색보다 꽃이 가늘고 꿀주머니가 위쪽으로 조금 휘어진 점이 다르다. 꽃의 색은 대개 노란색이지만 연한 노란색, 자주색, 붉은빛을 띤 노란색도 있다. 한국에 자생하는 괴불주머니류에는 큰괴불주머니, 자주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 염주괴불주머니 등이 있다. 그 중 눈괴불주머니는 가을에 맨 마지막으로 꽃을 피우는 종이다. 꽃의 생김새가 특이해서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산괴불주머니의 전초나 뿌리를 국화황련(菊花黃連)이라고 하는데 진통제나 타박상을 치료하는데 쓴다.



*금붓꽃

 

사람의 발길이 여간해서 잘 닿을 것 같지 않은 능선에서 금붓꽃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이 꽃은 전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꽃이 아름답고 희귀해서 무분별한 사람들의 남획으로 인해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촬영장소를 공개하지 않는다. 사실은 이 사진을 싣지 않으려고 했다. 야생화를 남획해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알게 되면 금붓꽃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붓꽃은 노랑붓꽃과 비슷하다. 그러나 노랑붓꽃은 줄기 끝에 두 송이의 꽃이 피지만 금붓꽃은 줄기 끝에 한 송이의 꽃만 핀다. 또 금붓꽃은 노랑붓꽃에 비해 꽃과 잎의 크기도 작다. 금붓꽃의 뿌리줄기는 각시붓꽃과 마찬가지로 편도선염, 인후염, 폐렴, 백일해 등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기어코 비님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산행을 중단하고 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꼬박 한 시간 정도 비를 맞았다. 몸에 한기가 들고 손이 시려온다. 그래도 오늘은 금붓꽃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부디 금붓꽃의 자생지가 훼손되지 않기를 천지신명께 간절히 빌어본다. 

 

2006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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