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천마산 포토기행

林 山 2006. 6. 22. 12:55

남양주 오남읍에서 평면작업을 하는 이재민 작가의 초대로 천마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다. 장백 작가와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방글네님도 함께 하기로 한다.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산을 오를 때는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동행이기에.....

 

*천마산 등산지도

 

오남리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겠다. 등산로 초입 산비탈에는 애기나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오르자 한창 건설중인 골프장이 눈에 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온 산기슭을 다 까뭉개고 있다.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 주어야 할 자연이 경제논리에 따라 속절없이 파괴되는 현장을 보고 마음이 우울해진다. 골프는 분명 자연을 파괴하는 스포츠다. 내가 골프를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골프장 가장자리를 따라 철조망이 빙 둘러쳐져 있다. 철조망은 등산로를 따라서 한동안 이어진다. 정말 볼썽 사나운 풍경이다. 

   

*노루발풀꽃

 

골프장을 벗어나자 한동안 이어지던 철조망이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산길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서 좋다.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산길을 걷는다. 산기슭에는 활짝 핀 노루발풀꽃이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있다. 땅에 붙어 있는 잎들 사이에서 나온 긴 꽃대에 여덟 송이의 작고 흰 꽃이 피었다. 민간에서 노루발풀의 즙으로 뱀이나 개, 벌레에 물린 데 발라서 치료하기도 했다. 또 전초를 말린 것을 녹제초(鹿蹄草)라 해서 피임약으로 쓰거나 각기병을 치료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용도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얼마쯤 가자 '견성암'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견성암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한다. 절간 마당에는 비구니 스님이 키운다는 온갖 기화요초들이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이 원예종 꽃들이어서 이름을 모르겠다.  


*관음봉 정상

 

견성암을 나와 다시 천마산으로 가는 능선길에 오른다. 얼마쯤 가자 안개속에서 관음봉(566m)이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낸다. 관음봉 정상은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어 시야가 좋지 않다. 가끔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곳은 전망이 매우 좋아서 멀리까지 볼 수 있고, 세상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관음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사능 방향이다.


*기린초꽃

 

관음봉 정상 바위틈에 노오란 기린초꽃이 비에 젖은 채 피어 있다. 돌나물과에 속하는 기린초는 관상가치가 높은 식물로 정원의 바위틈에 심으면 좋다. 이른 봄에 어린 순과 줄기를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타박상이나 종기 등에 생풀을 짓찧어 붙이기도 했다. 기린초의 전초를 말린 것이 비채(費菜), 백삼칠(白三七), 또는 양심초(養心草)라고 하는 한약재로 지혈, 이뇨, 진정 등의 효능이 있어 각종 출혈증이나 오심, 심계항진을 치료하는데 쓰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일엽초

 

관음봉을 지나 천마산으로 향한다. 응달진 바위틈에서 이끼와 함께 자라고 있는 일엽초 군락지가 눈에 띈다. 일엽초는 고사리과에 속하는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축축하고 그늘진 바위나 오래된 나무의 표면에 붙어서 자란다. 일엽초 전초를 말린 것을 와위(瓦韋)라고 하는데 이뇨, 지혈의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 임질이나 각종 출혈증에 쓰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다.  


*골무꽃

 

보라색의 골무꽃이 빗물에 젖은 채 피어 있다.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 애처로와 보인다. 골무꽃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줄기 끝에서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서 두 줄로 나란히 피어난다. 꽃은 꿀풀꽃과 마찬가지로 통꽃인데 꽃부리가 위아래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아래쪽 꽃부리가 더 넓고 앞으로 나와 있으며 진한 자주색 점들이 있다.


*땅비싸리꽃

 

땅비싸리꽃은 싸리꽃과 비슷하지만 꽃색이 분홍색으로 더 엷은 색이다. 콩과에 속하는 땅비싸리는 낙엽활엽 소관목으로 논싸리, 땅비수리라고도 부른다. 번식력이 좋아서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고, 벌을 치는 사람들에게는 밀원용 꽃이기도 하다. 


*천마산 가는 길

 

오남리에서 천마산으로 가는 능선길은 울창한 숲길이다. 여름에 햇빛이 쨍쨍 내리쬘 때도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 등산하기에 좋겠다. 잠시 안개가 걷히면서 푸르른 산경치를 드러낸다.

 

천마산으로 가는 길..... 나는 왜 오늘 천마산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일까? 그것은 거기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생길 아니던가! 나는 그 인생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싸리꽃

 

홍자색의 싸리꽃도 피었다. 땅비싸리와 마찬가지로 싸리꽃도 콩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중국에서는 싸리의 잎과 줄기를 백일해 치료제로 쓴다. 한국에서는 싸리의 줄기 껍질을 벗겨 밧줄을 만들거나 줄기로 채그릇을 만드는데 이용해 왔다. 또 빗자루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합성섬유와 플라스틱의 발명으로 싸리로 만든 밧줄이나 채그릇, 빗자루는 요즘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꿀풀꽃


*엉겅퀴꽃

 

길가에 잡초만이 무성한 무덤이 하나 있다. 무덤가에 꿀풀꽃과 엉겅퀴꽃이 피어 있다. 꿀풀과 엉겅퀴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풀이기에 흔하게 눈에 띄는 꽃들이다.


*꿩의다리꽃

 

꿩의다리꽃은 이제 한창 피는 중이다. 하얀색의 실이 방사상으로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꽃이 특이하다. 꿩의다리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이른 봄에 어린 순과 줄기를 데쳐 나물로 먹기도 한다.


*'천마의 집' 고개 정상

 

'천마의 집'이 있는 고개로 내려오니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나타난다. 미금시 호평동에서 이 고개로 올라 천마산을 오르거나 오남읍 팔현리로 넘어갈 수 있다. 천마산 정상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정상이 어디쯤인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장백 작가와 하늘님은 방글네님과 함께 야생화 탐사를 위해 이 고개에서 바로 팔현리로 내려 가기로 한다. 팔현리 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일행을 떠나 보내고 이재민 작가와 나는 천마산 정상으로 향한다.


*통나무 계단길

 

천마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서 가파른 통나무 계단길을 만난다. 계단길은 무릎관절에 상당히 좋지 않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무릎에 더 무리가 간다. 그래서 무릎관절이 안 좋은 사람들은 되도록 계단길을 피하는 것이 좋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마산 정상

 

한 30분 정도 올라가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천마산 정상을 바라보니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못 할 정도로 오리무중이다. 오늘은 천지신명님이 천마산을 꼭꼭 숨겨두시려나 보다.


*임거정(林巨正)바위

 

헬기장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큰 바위 앞에 돌탑이 쌓여져 있다. 바로 임거정바위다. 팻말에는 꺽정바위라고 씌어져 있다. 임거정 할아버지.....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조 3대 의적이라고 일컫는 임거정 할아버지다. 나의 자랑스런 조상님들 중 한 분이시다.

 

임거정은 16세기 중반(조선 명종 전제정권 때) 몰락농민과 천민, 백정들을 규합해서 조선왕조 전제정권과 지배층의 폭압과 수탈정치에 저항하는 혁명을 일으킨 영웅이다. 그는 백정신분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여 황해도로 이주하여 생활했다. 그와 뜻을 함께 하는 농민들과 그 가족들은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 산악지방을 무대로 의적활동을 시작했다. 날쎄고 용감한데다가 지혜로왔던 임거정은 1559년경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 토호를 습격하여 이들이 백성들에게서 수탈한 재물을 빼앗았다. 또 평양과 한양을 잇는 도로와 그 밖의 주요 교통로를 장악하고 조선왕조 전제정권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토지세나 공물, 진상품들을 도로 빼앗았다. 임거정 부대는 빼앗은 곡식과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이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파죽지세로 관군을 격파하던 임거정 부대는 1559년에는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을 포살할 정도로 그 세력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참모 서림이 체포됨으로써 임거정의 의적부대는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된다. 임거정은 토포사 남치근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을 받던 중 1562년 마침내 서흥에서 체포돼 보름만에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고 만다. 

 

당시 조선왕조 전제정권과 지배층으로부터 폭압과 수탈에 신음하던 민중들에게 임거정의 의적부대는 복음이자 희망이었다. 만약 임거정 혁명군이 썩을 대로 썩어빠진 조선왕조 전제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역사가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땅덩어리는 두 동강이 나고 아직도 미국과 일본 등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부정부패와 지역감정이 판을 칠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지고, 사회정의가 사라진 한심한 역사.....

 

조선의 3대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인 벽초 홍명희는 임거정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소설 '임거정'을 썼다. 소설 '임거정'을 통해서 의적이자 혁명가였던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임꺽정굴

 

임거정바위 뒤쪽에는 꽤 여러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굴이 있다. 이름하여 임거정굴이다. 이름으로 보아 임거정이 천마산을 근거지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천마산은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산이 높고 산세가 험하여 임거정이 이 곳에 본거지를 두고 마치고개를 주무대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임거정이 이 굴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긴박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끼면서 천마산 정상으로 향한다.


*나무계단길

 

임거정바위에서 바로 가파른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산을 높이 오를수록 안개가 점점 더 짙어진다. 계단길을 벗어나자 경사가 비교적 완만해진다.


*호평동과 천마산 정상, 천마산관리사무소 삼거리에 있는 작은 암봉

 

작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삼거리가 나타난다. 호평동과 천마산 정상, 천마산관리사무소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여기서 호평동과 천마산관리사무소까지는 각각 약 2.8km의 거리다. 천마산 정상까지는 135m. 엎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천마산 정상

 

삼거리부터는 암릉길이다. 드디어 천마산 정상에 올라선다. 안개 속에서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정상의 바위 위에는 시멘트 반죽으로 고정시킨 꼭지를 자른 사각뿔 모양의 표지석이 놓여 있다. 단체산행을 온 사람들이 막걸리로 정상주를 마시면서 왁자지껄한다. 천마산(天摩山)은 남양주시 진접읍과 화도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812m 높이의 산이다. 이 산은 광주산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백봉(590m), 송라산(494m), 철마산(711m) 등이 있다.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어느 지점에서나 정상을 볼 수 있으며, 남동쪽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다. 동쪽에서 발원하는 물은 북한강의 지류인 수동천으로, 서쪽에서 발원하는 물은 오남저수지로 흘러든다. 남쪽에서 천마산을 바라보면 산세가 마치 달마대사가 어깨를 펴고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안개 때문에 천마산의 산세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쉽다. 

 

천마산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말 이성계가 이 곳에 사냥을 나왔다가 산세를 살펴보고는 산이 높고 험준해 지나가는 촌부에게 산이름을 물었다. 촌부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이성계는 혼잣말로 '인간이 가는 곳마다 청산은 수없이 있지만,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笏)이 꽂힌 것 같아 손이 석자만 더 길었더라면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라고 하였다. 여기서 천마산(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천마산 정상 서남쪽에 높은 절벽바위가 있다. 바로 약물바위다. 이 바위에서는 샘물이 일년 내내 끊이지 않고 솟아 오르는데, 이 샘의 물맛이 달고 시원하여 사람들은 약물바위샘이라고 부른다. 

 

*이재민 작가와 함께. 왼쪽이 필자

 

정상 표지석 앞에서 이재민 작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천마산 정상은 전망이 아주 좋다고 하는데, 오늘은 사방이 안개장막이 드리워져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든다. 정상에 잠시 머무르다가 팔현리 쪽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정상 부근의 소나무들

 

정상에서 팔현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면 바위절벽 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안개에 싸여 있는 소나무들에서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위절벽이 안개로 가려져 있어 그 높이를 짐작도 못 하겠다.

 

*암릉길

 

밧줄을 매어놓은 가파른 암릉길을 조심조심해서 내려간다. 물기에 젖은 바위가 미끄럽기 짝이 없다. 곧 보광사와 팔현리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보광사로 가는 등산로는 지금은 폐쇄되었다.

  

*옹달샘

 

팔현리로 내려가는 계곡길은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매우 습하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땀을 흘리며 한참 내려오니 바위 밑에서 솟아나는 옹달샘이 하나 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신다. 고마운 옹달샘..... 바위에는 이끼와 함께 고사리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바위떡풀

 

바위떡풀 한 포기도 바위에 붙어서 자라고 있다.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바위떡풀은 광엽복특호이초(光葉福特虎耳草)라는 속명을 가지고 있다. 고산지대의 습한 바위에 붙어서 살아간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바위

 

팔현리 계곡은 음습해서 바위마다 이끼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자생하고 있는 식물도 음지식물과 습지식물이 대부분이다. 비는 오지 않는데 가끔 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지곤 한다. 안개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함박꽃

 

음습한 계곡을 빠져 나오자 우마차길이 나타난다. 그 때 개울가에 우아하게 핀 함박꽃이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하얀색의 함박꽃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자태가 느껴진다. 함박꽃에 다가가니 그윽한 향기가 진동을 한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의 낙엽소교목으로 목란, 산목련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며, 열매껍질은 향신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깊은 산속에서 소담스럽게 핀 함박꽃을 만나게 되면 그 아름다운 자태와 더없이 향긋한 향기로 인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함박꽃은 북한의 국화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부른다. 박정희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북한의 국화인 진달래를 찬양하기만 해도 잡혀가거나 탄압을 받던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북한의 국화를 진달래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198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은 이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나무에 피는 난초라는 뜻의 '목란(木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북한의 국화로 정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한의 국화는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평양특별시 대성동 중앙식물원에 있는 대성산 함박꽃나무다.

 

나무나 꽃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목란이 목련이나 모란과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하기도 한다. 또 작약꽃을 함박꽃이라고도 하는데 목란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하루종일 안개 속을 헤매다가 함박꽃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팔현리 등산로 입구

 

팔현리 계곡 등산로 입구로 나오자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된다. 계곡을 따라서 음식점과 민박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어떤 음식점은 손님을 끌기 위해 유행가를 크게 틀어 놓았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 오리라. 그렇게 되면 팔현리 계곡은 또 한번 몸살을 앓을 테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서서히 망가져 갈 것이다. 먼저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는 방글네님 일행과 다시 합류해서 팔현리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팔현리에서 바라본 천마산 능선

 

팔현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온 천마산을 뒤돌아 본다. 깊은 계곡을 빠져나온 터라 방향감각을 모르겠다. 눈앞에 보이는 저 능선은 아마도 보광사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마침 버스가 와서 오남저수지로 향한다.

 

오남저수지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길조'라는 식당에서 풀씨님을 만나 쇠고기 샤브샤브 요리를 대접받았다. 냄비에 각종 야채와 버섯을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이면서 아주 얇게 썬 쇠고기를 살짝 익혀서 먹는 요리다. 맛도 일품이다. 육수도 구수하면서 시원하다. 이 요리는 일명 징기스칸이라고도 한다.

 

방글네님과 풀씨님은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고마운 마음 한량없다. 들풀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씨가 비단결같은가 보다. 

 

임거정이 조선왕조 전제정권과 지배층의 억압과 착취를 종식시키고 백성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들어왔던 천마산..... 그 천마산 구비구비마다 서려있는 혁명의 기운을 온몸 가득히 느끼면서 귀로에 오르다. 

 

200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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