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의장으로부터 바람도 쐴 겸 해서 경남 하동군 악양에 있는 매암차문화박물관을 한번 다녀가라는 초대를 받았다. 지난 민주노동당 당대표 선거에서 나는 그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하지만 주대환 후보는 당대표 선거에서 3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주대환 전 의장을 위로도 할 겸 차박물관도 보고 지리산도 볼 겸 악양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도로 떠나는 여행길에 오른다. 남도여행은 실로 오랜만이다. 일상이 늘 바쁘기도 하거니와 거리도 멀기 때문이다. 네 시간 정도 걸려서 악양 매암차문화박물관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늦었다. 마중을 나온 강동오 관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강 관장도 하동군 지구당 위원장을 지낸 사람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주대환 전 의장과 박만순 전 청주시 흥덕지구당 위원장과 한귀자씨, 5.3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주광역시 북구의회 이승희 의원 부부, 이종화 안산시 광역의원 후보, 울산시당 명숙 부위원장(이 분은 남성중심주의의 상징인 성씨를 안 쓴다고 했다.) 등 전국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나도 충주시 지구당 위원장을 지낸 적이 있는지라 자연스레 민주노동당이 현재 안고 있는 당면문제와 그 해법, 그리고 각자가 안고 있는 고민같은 것들이 화제가 되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자리는 끝이 났다. 내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것은 이 땅에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입각한 선택이었다. 나는 평소에 지식인이라면 이 사회의 기울어진 균형추를 맞춰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은 지식인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사명이다. 한국사회에 있어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이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곡학아세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보수세력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매스컴 등 전 분야를 장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진보진영은 그 세력이 턱없이 미약하다. 이것은 음양원리에 비추어 보아서도 조화를 잃은 것이다. 사회가 음양의 조화를 잃으면 그 사회는 병들게 된다. 한국이 선진적이고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보수와 진보진영 사이에 서로 대등하면서도 공정한 경쟁과 조화, 견제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생각에서 나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요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직선거에서의 부정선거 의혹이라든지, 자민통을 비롯한 민주노총, 전농과 같은 거대조직의 정파 또는 종파주의에 입각한 조직이기주의 등 보수정당에서나 있을 법한 비상식적인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진보정당은 보수정당과는 달리 투명하면서도 상식이 통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당원 중에서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수준미달인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성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원입네 하고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런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진보정당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진정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당이라면 내가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절간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민주노동당도 이제는 국회의원을 비롯해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 의원, 기초의회 의원을 배출했으니 어느 정도 기초는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 한 사람 탈당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민주노동당을 미련없이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천하의 명산 지리산 기슭까지 와서 정치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정치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정치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성철 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조차도 사실은 고도의 정치를 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론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좋은 정치가 이루어져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모든 사회구성원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이 가까워서 잠이 들다.
*매암차문화박물관 입구
이튿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난 뒤 강동오 관장이 차대접을 하겠다고 한다. 통나무를 세워 만든 정문에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긴 '梅巖茶文化博物館'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박물관의 소재지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293번지. 악양은 푸른 청학이 노닐었다는 한국의 10승지 중 하나로 봄이면 온 천지에 매화꽃 향기가 진동을 하는 고을이다. 신선대와 성제봉, 수리봉, 칠성봉, 구재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골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악양땅의 앞으로는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거기다 만석지기를 서넛은 낼 수 있다는 기름진 무딤이 들판이 있어 예로부터 악양은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강동오 관장도 5대째 천석지기를 한 집안이라고 한다.
*매암차문화박물관 건물
정문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일본풍의 건물이 보인다. 이 일본풍의 건물이 바로 매암차문화박물관이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아직까지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관장이 귀뜸을 한다. 원래 이곳의 부지와 건물은 경남 임업 시험장이었던 것을 1963년에 매입하여 매암농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1969년 녹차농장인 매암다원을 조성하였다. 1989년에는 제2다원인 평사다원을 열고, 2000년 5월 21일 이 건물에 매암차문화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동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하절기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관람할 수 있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고 한다.
강씨 가문이 악양 매화골(매계)에 삶의 터전을 잡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이라고 한다. 강동오 관장의 증조부인 매계 강성호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망국의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이곳에서 차밭을 가꾸고 농사를 지으면서 묵묵히 젊은 시절을 보낸다. 매계는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식들 교육을 철저하게 했으며, 겨레얼을 말살시키려는 일제의 야욕에 맞서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이를 지켜 내려고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굳은 지조와 절개를 가진 선비로서 노동의 신성함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다.
매계의 이런 정신은 그의 아들인 매암 강화수로 이어지고 다시 그의 손자 강동오가 이어받게 된다. 강씨 가문을 통해서 전해져 온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정신은 마침내 매암차문화박물관이라는 결실로 나타난다. 박물관에는 차와 관련된 수많은 유물을 전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전통 차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하였으며, 누구에게나 박물관을 개방해서 차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나눔의 행사를 열어 차문화인 본연의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박물관 내부. 정면에 토기고배와 도인다담도가 보인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5세기경 가야시대 유물인 토기고배(土器高杯)와 18세기경 조선시대 유물인 도인다담도(道人茶啖圖)가 눈에 띈다. 도인다담도는 도인들이 차를 달여서 마시는 정경을 그린 그림이다. 다담은(茶啖)은 불가(佛家)에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내놓는 다과를 말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절제하였으므로 차를 마시는 풍습과 함께 병과류(餠菓類)를 즐겨 먹었고, 손님을 접대할 때에도 차와 병과를 내놓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억불숭유 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는 차문화가 크게 쇠퇴할 수 밖에 없었으며, 손님 접대도 술 위주의 교자상 차림으로 바뀌었다.
*토기고배
토기고배는 삼국시대 특히 가야와 신라에서 주로 만든 제기로 굽그릇, 두(豆), 굽다리접시라고도 한다. 토기고배는 일반적으로 회청색 경질(硬質)의 두형토기(豆形土器)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양사오문화(仰韶文化)에서부터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무산 호곡동 유적에서 굽이 달린 그릇이 출토되었고 낙랑의 왕광묘(王光墓)에서는 나무로 깎은 두(豆)가 나왔다. 전형적인 굽다리접시는 3세기경 김해지방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열장에 전시된 차와 관련된 유물들
골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두 칸의 온돌방과 오른쪽으로 두 칸의 넓은 마루방이 모두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온돌방에는 옛 선비들이 손님을 맞던 거주공간에 다담상이 있는 정경을 재현해 놓았다. 가장 큰 유물 전시관의 두 층으로 된 진열장에는 3세기경 원삼국시대의 홍토기잔과 6세기경 가야시대의 토기장경호(長頸壺)와 고배, 6세기경 신라시대의 귀달린토기잔을 비롯해서 차와 관련된 각종 다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삼국시대의 홍토기잔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원삼국시대란 기원 전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 삼한시대를 말한다. 본격적인 철의 생산과 함께 철제 무기와 농기구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삼국이 국가체제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시기가 원삼국시대다. 장경호는 긴목항아리로 목이 짧은 단경호(短頸壺)와 구별하기 위한 명칭이다. 대족(臺足)이 달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있다. 목항아리는 굽다리접시와 함께 대표적인 신라토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신석기시대의 토기에서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원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쇠뿔형 손잡이가 몸통 좌우에 달린 긴목항아리가 유행하였고, 서기 3세기경부터는 대족이 달린 목항아리가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4세기에 이르러 회청색을 띤 경질토기로서의 본격적인 신라와 가야 목항아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다담상
큰 마루방 한쪽에는 언제라도 차를 달여 마셔도 될 것 같은 다담상이 차려져 있다. 화로와 주전자까지 갖추어져 있어 고풍스런 멋까지 풍긴다. 화로에 숯불을 담아서 끓인 물로 우려낸 차맛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원한 지리산의 산경치를 바라보면서 차 한 잔 마시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큰 마루방 유물 전시실 한가운데 진열된 다구들
큰 마루방 한가운데에도 전통 다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금 전에 본 다구들과 비교해서 다소 투박해 보인다. 놋쇠화로와 물을 끓이는 질그릇 주전자가 인상적이다. 옛날에는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물을 끓여서 차를 달여서 마시는 과정에서 시간이 매우 많이 걸렸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동양인들은 단순히 차만을 마셨던 것이 아니라 차를 달여서 마시는 전 과정을 중요시했다. 차를 마시는 일은 마음자리를 닦는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차를 나누는 사람들과 교분을 나누는 사교의 장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청자연화형잔을 비롯한 청자 유물들
*청자다완, 청자찻잔, 해무리굽잔
*청자찻잔, 청자연화문잔 등 청자 그릇
이번에는 작은 마루방에 마련된 전시실로 자리를 옮긴다. 벽을 따라서 유리를 씌운 세 개의 진열대가 있다. 진열대에는 청자연화형잔을 비롯해서 청자다완, 청자찻잔, 해무리굽잔, 청자연화문잔 등 여러 가지 청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청자 유물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청자는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를 빚어 1~3% 정도의 철분이 섞인 유약을 입혀 1,250~1,300도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낸 푸른 빛의 자기를 말한다. 청자의 색은 대부분 녹색이나 올리브색, 청색, 회색인데, 때로는 철분이 산화해서 황록색, 황갈색이 나타나기도 한다. 청자는 고려시대(910~1392)의 대표적인 그릇으로 청록색에서 연한 회갈색까지 그 색상이 다양하다. 고려 청자의 특징은 여러 가지 유약 밑에 상감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다. 후기의 분청사기는 먼저 점토에 무늬를 새겨넣은 다음 흑백의 점토로 그 틈새를 메워넣었다. 상감무늬는 대부분 꽃이고 가끔 새의 무늬도 있다. 조선시대(1392~1910) 초기에는 무늬를 손으로 새기는 대신 도장을 찍어서 새겨 넣기도 했다.
*매암다원과 찻집 '매석'으로 들어가는 입구
박물관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차밭인 매암다원을 둘러보고 찻집 '매석'에서 차를 마시기로 한다. 호박돌을 깔아놓은 길 양쪽에는 키작은 녹차나무들이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꽤 오래 묵었음직한 감나무들이 운치를 더해 준다.
*매암다원의 녹차밭
안으로 들어가자 7천여 평에 이르는 푸르른 녹차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녹차밭 곳곳에 자라고 있는 감나무들은 차나무들에게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란다. 예로부터 남녘의 어머니 산인 지리산은 경치와 산세가 뛰어나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되었다. 매암다원은 이 지리산 아래 소수와 상수가 만나는 복지라고 일컬어지는 악양땅에 제1다원과 제2다원을 합해 도합 2만여 평의 녹차밭을 40년간 자연농법으로 가꾸어낸 친환경적인 생태다원이다. 이곳의 녹차밭은 배수가 잘되고 주야간 일교차가 커 차의 향기와 맛이 뛰어나며 적절한 강수량과 따뜻한 기후로 국내에서 녹차 생산에 가장 적합한 기후와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매암다원은 여기서 생산되는 원료를 가지고 녹차제품을 생산하는 '매암제다'라는 자체공장을 가지고 있다.
*다원에 있는 정자
지리산 수리봉에서 구재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환하게 바라다 보이는 곳에는 작은 정자를 지어 놓았다. 사방이 푸르른 녹차밭 한가운데 정자에 앉아 맛과 향이 좋은 차 한 잔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으리라. 문득 감이 바알갛게 익어가는 가을 달밤에 저 정자에 올라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야외무대 한쪽에 만든 녹차 화분
매암다원에는 야외무대가 있다. 해마다 5월 중순 경 이곳에서 열리는 매암차문화축제를 위한 무대다. 무대 한켠에 있는 녹차나무 화분이 특이하다. 올해로 일곱 번째 열린 매암차문화축제는 지난 5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축제는 참가자가 몸소 차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행사, 그림전시와 차유물 전시같은 전시행사, 노래공연이나 시낭송회와 같은 공연행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올해는 특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전쟁 피해자들을 초청해서 나눔의 축제가 되기도 하였다.
*매암다원을 배경으로
매암다원에서는 또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한국 문화 속에 나타나는 차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함께 하는 나눔의 정신을 체험하는 차문화사 강좌이다. 또한 차와 함께 하는 자연학습 프로그램으로 차울력으로 표현되는 제다를 함께 함으로써 노동의 의미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체험하도록 하는 박물관 제다체험, 청소년 대상 교육프로그램으로 우리의 전통 차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소양을 기르고 친자연적인 녹색사상을 방학 기간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청소년 초록체험, 장애우를 대상으로 차에 대한 실습과 체험을 통하여 그 특성과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장애우 차문화 학교 등의 프로그램도 있다.
*찻집 '매석'
강동오 관장의 안내로 찻집 매석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곳을 차와 인간의 초록공감을 주선하는 열린 연대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열었다고 한다. 매석은 한국인의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있는 십시일반이라는 전통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석은 스스로 체계이다. 좋아하는 차를 마음껏 음미하고 다음 사람을 위해 다기를 깨끗이 씻어두고 가면 된다. 찻값도 자율적이다. 일인당 천원 이상 형편이 되는 대로 내면 된다. 손님들이 내고 간 찻값 중에서 절반은 정신대 할머니, 원폭피해자, 이주노동자 등 도움이 필요하거나 사회의 그늘진 곳을 위해서 쓰여진다고 한다. 이렇듯 매석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눔의 문화를 만날 수 있다.
매석의 바로 앞은 야외다원인 마음의 정원이다. 잔디가 곱게 깔린 넓직한 마당에는 야외무대와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다. 7천여 평의 차밭이 펼쳐지는 들머리에 자리잡은 야외다원은 박물관의 아름다운 나눔의 행사를 열기 위한 곳이다. 매암다원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매년 차의 날이 있는 5월에 열리는 나눔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행사와 전시회가 박물관 일정에 맞추어 열린다. 아담한 무대와 객석이 배치되어 있는 이 곳은 평소에는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찻집의 찻자리로 이용되기도 한다.
*매석의 실내풍경
매석의 실내는 병풍을 치고 오래 묵었음직한 통판의 다탁을 놓아 편안하게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한 방이 하나 있다. 오래된 장식장과 백자 항아리가 고풍스런 멋을 더해 준다. 선비의 단아한 내면의 멋이 배어 있는 공간이다. 매석 차는 오감으로 마신다고 한다. 귀로는 찻물 끓이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입으로는 맛을, 눈으로는 차와 다기를 그리고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차를 오감으로 음미하려면 삶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일상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매석의 실내풍경
매석에는 선비풍의 방 말고도 소박한 다탁들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다. 창문을 통해서 바라다 보이는 녹차밭이 싱그럽다. 여기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다 보면 저절로 자연과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겠다.
매석은 매화가 만발하고 진달래와 철쭉이 온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한여름날 소나기가 내리고 난 뒤 안개가 푸르른 지리산의 허리를 휘감고 돌아가 한 폭의 진경산수를 연출할 때 찾아도 좋겠다. 또 지리산 기슭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악양들판에 황금물결이 이는 가을에 찾아와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을 듯 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 찾는 것은 어떨까? 눈덮힌 지리산을 바라보면서 은은한 차향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녹차제품 진열대
매석의 진열대에는 매암제다에서 생산한 녹차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제품이 상당히 다양하다. 매암 강화수 그가 직접 만든 '매암향'은 명품차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 끝자락 너머로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매암다원의 푸르른 차밭에서 30여 년 동안 차를 만져온 매암이 만든 매암향은 자연의 온화함을 머금은 향미가 깊고 그윽한 명차다. 올싹차인 '승설'은 고려의 승설차를 재현한 것으로 매년 곡우을 전후하여 3~4일 정도 채엽한 어린 찻잎으로 만든다. 옛 고려의 전통기법으로 법제되는 승설은 향이 뛰어난 매암제다의 최상품 차다. 첫물차인 '평사'는 이른 봄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자라난 새잎의 가늘고 고운 창과 기만을 따서 만든 차다. 향기가 맑고 오래가며 빛깔이 고운 차로 곡우를 지나 4월까지 딴 녹찻잎으로 만든다. 두물차인 '상록'은 봄비가 한번 지나갈 무렵에 고개를 내미는 5월에 피는 잎으로 만든 차다. 찻잎은 길고 크지만 그 맛은 자연의 풍부한 영양을 그대로 간직하여 싱그러운 맛을 지닌다. 홍차인 '월영'은 잊혀졌던 발효차의 맥을 찾아 재현한 차다. 이 차는 다른 나라의 발효차와 달리 자연 햇빛과 바람, 사람 손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는데 감미롭고 깊은 향이 우러난다.
'치자꽃향차'는 향차의 일종으로 박물관에 피는 생치자꽃의 향을 착향시켜 만든 차로 치자의 은은한 향과 녹차의 깊은 맛이 어우러져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마실 수 있다. '진달래산천'은 조선 전래의 선비화차의 하나인 진달래차를 재현한 제품이다. 진달래의 달콤한 꽃맛과 홍차의 고운 진홍빛 수색이 어루어진 풍류차라고 할 수 있다. '장미꽃차'는 지리산일대에서 자생하는 야생장미의 꽃잎을 채취하여 녹찻잎과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장미의 꽃잎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어 일품이다. '박하향차'는 싱그러운 박하향과 녹차가 어우러진 고급 향차로 차의 단점인 쓴 맛을 박하가 잡아주어 차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제품이다.
차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색, 향, 미가 달라지고 또 이름도 달리 부르게 된다. 차는 차나무의 잎을 원료로 가공하여 만든 음료로서 제조 방법이나 시기, 발효 정도, 형태, 지역, 품종, 재배 방법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차의 발효 정도에 따른 분류가 있다. 발효란 적당한 온도와 습도에서 찻잎 속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산화효소인 폴리페놀 옥시디아제에 의해 산화되어 녹색이 누런색(데아플라빈)이나 붉은색(데아루비킨)으로 변하면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특한 향기와 맛이 생기는 과정이다. 불발효차인 녹차는 찻잎을 전혀 발효시키지 않고 엽록소를 그대로 보존시켜서 만든 차다. 녹차는 덖음차와 증제차가 있는데, 덖음차는 맛과 향이 좋고 증제차는 색이 곱다.
발효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약발효차, 경도발효차, 반발효차, 완전발효차, 후발효차 분류한다. 약발효차(백차)는 5~15% 정도 발효시킨 것으로 대표적인 차로 백호은침, 백목단이 있다. 경도발효차(황차)는 10~25% 정도 발효시킨 것으로 군산은침이 대표적인 차다. 반발효차(청차)는 찻잎을 햇빛이나 실내에서 시들리기와 교반을 하여 찻잎의 폴리페놀 성분을 15~75% 정도 발효시켜서 만든 차로 독특한 향기와 체중 감소 효과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 대표적인 차로 오룡차가 있으며 독특한 향기로 유명하다. 완전발효차(홍차)는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켜서 만든다. 각국에서 생산되는 홍차(black tea)는 70%이상을 발효시킨 차이다. 홍차는 시들리기, 비비기, 발효, 건조 순으로 만들어지는데, 홍차 특유의 향은 시들리기와 발효에 의한 것이다. 후발효차(흑차)는 녹차의 제조방법과 같이 효소를 파괴시킨 뒤 차잎을 퇴적하여 공기 중에 있는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해서 다시 발효가 일어나게 하여 90~100% 발효된 차를 말한다. 대표적인 차인 보이차는 혈관 속에 들어 있는 콜레스트롤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다음에는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가 있다. 엽차(잎차)는 차나무의 잎을 그대로 볶거나 찌거나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찻잎의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고 원형대로 보전시킨 차를 말한다. 엽차의 재료는 찻잎 한 가지로서 제다 방법, 차나무 산지, 차를 만든 사람, 제다 회사, 찻잎을 채취한 시기 등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한다. 말차(가루차)는 시루에서 쪄낸 찻잎을 그늘에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만든 차로 점다하여 차유로 마신다. 가루차는 떡차를 가루내서 만들기도 하고, 잎차를 가루 내서 만들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 가루차는 떡차를 가루내서 만들고, 잎차를 가루 내서 만든 가루차는 일본에서 들어온 방법이다. 삼국시대부터 전해오던 말차는 제법이 복잡하고 음용법이 까다로워 조선시대 들어 쇠퇴하였다. 병차(떡차)는 찻잎을 시루에 넣고 수증기로 찐 다음 절구에 넣어 떡처럼 찧어서 틀에다 박아낸 고형차이다. 고려시대에는 뇌원다, 유다, 청태전 등의 떡차가 있었다. 동전모양으로 만들면 돈차, 둥글게 만들면 단차, 정사각형 모양으로 만들면 방차가 되고, 벽돌이나 판자모양으로 만들면 전차가 된다. 돈차는 삼국시대부터 유래된 것으로 이런 차들은 먹을 때 가루를 내어 마시기도 하고, 그냥 그대로 덩어리째 우려 마시기도 하며, 전차의 경우는 칼로 깍거나 부스러뜨려 끓여 마신다.
찻잎 채취시기와 품질에 의한 분류도 있다.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우전차(곡우 이전), 첫물차(곡우 이후부터 양력 4월 하순), 두물차(양력 5월 초순부터 5월 중순), 세물차(양력 5월 중순부터 6월 초순)가 있다. 찻잎의 여리고 굳은 정도에 따라 세작, 중작, 하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세작은 곡우에서 입하 경에 딴 찻잎으로 만든다. 잎이 다 펴지지 않은 창과 기만을 따서 만든 차다. 곡우 5일 전에 딴 것을 작설차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다인들이 송나라 때부터 불러온 이름으로 싹의 모양이 새의 혀 모양을 한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중작(보통차)은 잎이 좀 더 자란 후 창과 기가 펴진 잎을 한두 장 함께 따서 만든 차로 일명 명차라고도 한다. 하작(거친 차)은 중작보다 더 굳은 잎을 딴 것으로 조차라고도 한다.
색상에 따른 분류법도 있는데, 차의 제조 공정과 제품의 색상에 따라 백차, 녹차, 황차, 청차(오룡차), 홍차, 흑차 등 6가지가 있다. 백차는 솜털이 덮인 차의 어린 싹을 따서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한 차잎이 은색의 광택을 낸다. 향기가 맑고 맛이 산뜻하여 여름철에 열을 내려주는 작용이 강하다. 한약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 복건성 정화 등이 주산지이다. 녹차는 차잎을 따서 증기로 찌거나 솥에서 덖어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차의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차다. 비타민 C가 레몬의 5~8배나 함유되어 있으며, 노화억제와 암예방, 식중독 예방 등 여러 가지 질병의 예방과 치료 효과가 있는 카테킨 성분이 다량 함유된 기능성 차다. 황차는 녹차와는 달리 찻잎을 쌓아두는 퇴적과정을 거쳐 습열상태에서 찻잎의 성분변화가 일어나 특유의 맛과 향이 나타난다. 녹차와 오룡차의 중간에 해당되는 차로서 찻잎 중의 엽록소가 파괴되어 황색을 띠게 되는데, 쓰고 떫은 맛을 내는 카테킨 성분이 약 50~60% 감소하여 차의 맛이 순하다. 황차는 찻잎의 색상과 우려낸 수색, 그리고 찻잎 찌꺼기의 색 등 세 가지 색이 모두 황색을 띤다.
청차(오룡차)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으로 발효정도가 15~75% 사이인 반발효차를 말하며 오룡차라 하기도 한다. 중국 남부의 복건성과 광동성, 대만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중국 고유의 차로 찻잎의 모양이 까마귀와 같이 검고 용처럼 구부러져 있다고 하여 오룡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룡차는 60% 가량 발효시키므로 발효 정도가 높은 차이다. 홍차는 발효정도가 80% 이상으로 떫은 맛이 강하고 등홍색의 수색을 나타내는 차다. 인도의 다즐링(dazzeling), 중국의 기문, 스리랑카의 우바(Uva) 홍차가 세계 3대 홍차로 꼽히며, 차엽 그대로 우려 마시는 스트레이트티와 밀크를 타서 마시는 밀크티 형태가 있다. 흑차는 찻잎이 흑갈색을 나타내고 수색은 갈황색이나 갈홍색을 띤다. 처음 마실 때는 곰팡이 냄새로 인해 다소 역겨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몇 번 마시다 보면 독특한 풍미와 부드러운 차맛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잎차류보다 차를 압착하여 덩어리로 만든 고형차가 주로 생산되며 저장기간이 오래 될수록 고급차로 간주된다.
*강동오 매암차박물관장
강동오 관장이 다관에 장미꽃차를 우려서 따라 준다. 장미꽃차는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야생 장미꽃잎과 녹차의 잎을 혼합해서 만든 차라고 한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맛을 보니 장미꽃 향기가 은은하게 입안 가득 퍼지는 듯 하다.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람에게 좋은 차를 대접받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사람의 행복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 따뜻한 마음으로 이렇게 서로 차 한 잔 나누는 것 이것이야말로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리산 성제봉을 오르려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다음에 또 오리라는 기약을 하고 강동오 관장의 배웅을 받으며 매암차박물관을 떠나다.
2006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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