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보 10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10 - 양자징 필암서원에 배향되다

1703년(숙종 29) 양택지는 김장생을 문묘에 배향하자는 상소를 4차례나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택지는 양진태, 양학연과 함께 소쇄원가의 위상을 드높인 인물이다. 그해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명나라 신종(神宗)을 위한 사당 만동묘(萬東廟)가 건립..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9 - 양경지 '소쇄원 30영'을 노래하다

1690년(숙종 16) 기정익(奇挺翼, 1627~1690)은 양진태의 부탁으로 양천운의 행장을 지었다. 1696년(숙종 22) 35세의 양경지는 진사가 되었으나 부모 봉양과 가업을 잇기 위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소쇄원을 지켰다. 양경지는 지역 문인과 죽림칠현이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해 7월 양경지는..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8 - 박세채 양산보의 묘갈명을 쓰다

1636년(인조 14) 제2차 조청전쟁이 일어나자 양천운은 옥과현감 이흥발(李興浡), 대동찰방 이기발(李起浡), 순창현감 최온(崔薀), 전 한림 양만용(梁曼容), 전 찰방 유즙(柳楫) 등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청나라 군대를 물리치러 나갔으나 강화가 이미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다시..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7 - 소쇄원가 고난이 불어닥치다

1574년(선조 7) 4월 20일부터 나흘 동안 고경명은 광주목사(光州牧使) 임훈(林薰)과 함께 무등산(無等山)과 소쇄원을 유람한 뒤에 기행문 '유서석록(遊瑞石錄)'을 썼다. '유서석록'에는 소쇄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이 실려 있다. 소쇄원에 대해 고경명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오후 3..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6 - 양산보 세상을 떠나다

1550년(명종 5) 양자징의 부인이 자녀를 낳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김인후에게는 사랑스런 딸이었고, 양산보에게는 며느리였으니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이후 양자징은 두 번째 부인을 얻어 3남3녀를 두었다. 1552년(명종 7) 양산보는 중종대에 이어 다시 유일로 천거되었으..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5 - 김인후 소쇄원 48경을 노래하다

내원의 제월당 구역은 광풍각 구역 바로 위에 있다. 제월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왼쪽 한 칸에는 방을 들이고, 나머지 두 칸은 마루를 깔았다. 마루 뒷벽에는 활짝 열 수 있는 문이 달려 있다. 제월당 마루에서는 광풍각 지붕 너머로 앞산까지 바라다보인다. 제월당 ..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2 - 소쇄원을 조영하다

1526년(중종 21) 17세의 김인후는 담양에 있는 송순을 찾아와 수학했고, 그 이듬해부터는 기묘사화로 동복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최산두를 찾아가 학문을 배웠다. 같은 해 양산보의 세째 아들 지암(支岩) 양자정(梁子渟, 1527~1597)이 태어났다. 하지만 김윤덕은 자정을 낳은 해에 세상을 ..

[남도정자기행] 양산보의 소쇄원을 찾아서 1 - 조광조의 문하에 들다

호남의 사종(詞宗)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식영정(息影亭)과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의 환벽당(環碧堂)에 이어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소쇄원(瀟灑園, 명승 제40호)을 찾았다.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

[남도정자기행] 송순의 면앙정을 찾아서 10

소쇄처사 양산보는 '면앙정원운' 1수의 운자 '만(巒), 만(漫), 건(乾), 간(干)', 2수의 운자 '전(前), 연(連), 연(烟), 전(傳)'을 차운하여 '차면앙정운'을 지었다. 양산보는 송순의 고종사촌동생이자 김윤제의 매형이었다. 그러니까 송순과 김윤제는 한 다리 건너 사돈 간이었다. 그런 양산보였으니 송순의 면앙정에 시 한 수 걸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차면앙정운(次俛仰亭韻)-면앙정제영에서 차운하다(양산보) 崱崱群山混混川(측측군산혼혼천) 큼직큼직한 산들에 출렁대는 시내까지 悠然瞻後忽瞻前(유연첨후홀첨전) 느긋하게 뒤를 보다가 문득 앞도 보나니 田墟曠蕩亭欄斷(전허광탕정난단) 정자 난간은 크고 넓은 들판을 향하고 松逕逶迤屋砌連(송경위이옥체련) 구불구불한 솔숲길로 섬돌 이어졌구나 大野燈張皆我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