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으례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의 정강이나 정책을 이야기하지 않고 대통령감으로서의 인물론만을 거론한다. 지금까지의 대통령 선거가 인물론에 매몰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듯 하다.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후보는 후보이기 전에 한 정당의 당원이다. 즉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그러기에 후보를 선택하려면 당연히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의 정강, 정책을 면밀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인물론으로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를 가정해 보자. 만약 그가 지난날 아이엠에프 때처럼 엄청난 실정을 저지른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물을 것인가! 그에게 책임을 물으면 그가 저지른 실정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인물론의 함정이다.
정당이라는 것은 어떤 정책이나 이념을 국가운영에 실현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다. 정당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정권을 잡는 데 있다. 정권을 잡지 못하면 정당은 자신들의 정책을 국정에 실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인물론이 바로 그 중의 하나다. 예를 들어서 농민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 정당의 후보가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애매모호한 인물론 밖에 더 있는가! 그럴듯한 인물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한편 인물론은 지역감정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날 부산의 초원복국집 사건처럼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 한 마디로 선거판세가 뒤집히는 유치원 아이들이 하는 짓거리만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지역감정 선동은 나라의 운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당선만을 목표로 하는 썩은 정치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손쉬운 선거운동 방법이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면 표가 우르르 몰려오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망국병이다. 지역감정이 판치는 한 이 나라에 희망과 미래는 없다.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 보수정당에 노동자들이 표를 던지는 어이없는 투표행태는 바로 지역감정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은 정강,정책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지역감정으로 포장한 보수정당의 인물론에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각성되지 못한 유권자들의 한 표는 바로 역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다.
인물론에 얽매이는 것은 노예근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하긴 우리 나라가 노예제 사회를 벗어난 것은 아직 1세기도 채 되지 않았다. 유권자 스스로 자신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주체적인 인간임을 깨닫지 못하고 대통령 한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려는 모습에서 주인에게 순종하는 노예적인 면을 볼 수가 있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그에게 권력을 맡기고 스스로 하인이 되려고 하는가! 대통령을 국민의 하인이나 종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닌가!
형편없는 유권자가 형편없는 정치판을 만드는 법이다. 유권자는 훌륭한데 정치판만 형편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진흙탕 속에서 깨끗한 물고기가 나올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나 바른 정치에 대한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은 형편없는 정치판을 만든 데 대하여 유권자들도 겸허한 자세로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반성의 토대 위에서만 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유권자 스스로 민의가 상향식으로 수렴되고 관철되는 정당을 만들고 키울 때 비로소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선거때만 되면 인물론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책임지고 끌고 나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인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후보가 속한 정당의 정강, 정책이다. 그러기에 유권자들은 자신의 처지와 나라의 미래를 잘 생각한 뒤에 후회없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감정으로 포장한 인물론에 얽매이지 않고 각 정당의 정강, 정책을 잘 살펴보고 나서 대통령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20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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