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한국 맥주의 불편한 진실을 갈챠주마

林 山 2014. 4. 5. 12:23

맥주(麥酒, beer)란 무엇인가? 맥주는 보리를 싹티운 엿기름(맥아)으로 맥아즙을 만들고, 이것을 여과한 뒤 호프(hop)를 첨가하여 맥주효모로 발효시켜 만든 알콜 음료다. 우리나라 주세법에서는 맥아 및 호프와 백미, 대맥, 옥수수, 고량, 감자, 전분, 당질, 캬라멜 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것과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여과, 제성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독일 맥주순수법(Reinheitsgebot)은 맥아와 물, 효모, 호프만을 사용하여 발효한 것을 맥주라고 정의하고 있다. 독일은 맥주의 본고장답게 순수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맥주가 들어왔다. 한국 최초의 맥주공장은 1933년 영등포에 세워진 삿포로맥주(札幌麥酒, 조선맥주)와 쇼와기린맥주(昭和麒麟麥酒, 동양맥주)다. 이후 1999년까지 한국은 양조 재료의 구성비 중 맥아가 67.7%를 넘는 술을 맥주로 정의하여 주세를 부과해왔다. 


그런데 한국 맥주의 원조 일본의 맥주업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맥아 구성비 67.7%라는 주세법의 근거를 제공하던 일본이 편법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즉, 맥아 구성비가 67.7% 이상은 맥주, 50 ~67.7%는 제1발포주, 25~50%는 제2 발포주, 0~25%는 제3발포주, 0%는 리큐르로 분류하고 주세를 차등 부과했다.    


일본의 편법을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은 1999년 12월 주세법을 개정하여 2000년부터 맥아를 10% 이상만 쓰면 맥주로 인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문제는 맥아 구성비가 낮아질수록 맥주의 주세가 싸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맥주회사들은 주세가 비싼 맥주를 버리고 너도나도 주세가 싼 제2, 제3 발포주 제조에 나섰다. '말오줌만도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 맥주는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맥아 대신 첨가하는 재료는 무엇일까? 맥아보다 값이 훨씬 싼 옥수수, 타피오카(카사바 뿌리 전분), 쌀 등이다. 쌀의 경우 제조 원가는 맥아의 25% 정도 밖에 들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저질 원료들이 맥아만큼 당질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맥아보다 발효가 어렵고, 보리 특유의 맛과 향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맥주회사들은 이 문제를 인위적인 당분 첨가와 식품첨가물을 통해서 해결했다. 맥주회사들이 어떤 종류의 첨가물을 쓰는지는 소비자들이 알 도리가 없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표기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 소비자들은 무슨 첨가물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 채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싸구려 저질의 원료로는 좋은 맛을 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산 맥주회사들은 인위적으로 맥주에 탄산을 주입하는 방법을 썼다. 탄산 주입 맥주를 마실 경우 톡 쏘는 자극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맥주 본연의 맛과 향을 느끼기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한국의 맥주회사들이 광고를 할 때 '톡 쏘는 맛'으로 '원샷'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산 맥주의 약점을 교묘하게 장점으로 둔갑시킨 광고라고나 할까!  


한국 맥주회사들은 또 맥주잔을 차갑게 냉각시켜서 내놓는 것을 장려한다. 맥주가 순간적으로 냉각되어 결정이 생기면 목넘김을 좋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의 저질 맥주회사들이 사기치던 것처럼 한국의 맥주회사들은 소비자들에게 '무조건 차게, 탄산이 강하게, 원샷에 마신다!'는 사고방식을 세뇌시키고 있다. 한국 맥주는 차갑게 냉각시키지 않으면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반어적 광고라고나 할까! 


국산 맥주가 물맛이 나는 이유는 또 있다. 대부분의 한국 맥주회사들은 미국의 저가 맥주회사들이 사용하는 하이 그래비티(high gravity) 공법으로 맥주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량생산에 적합한 이 공법은 발효 과정을 인위적으로 강화시켜 알콜 도수 9~10%까지 끌어올린 뒤 50%의 물을 섞어서 알콜 도수 4.5~5%의 일반 맥주를 만드는 방법이다. 희석식 맥주라고나 할까! 희석식 소주는 값이라도 싸지만 희석식 맥주는 그렇지도 않다. 미국 맥주는 하이 그래비티 공법을 상표에 표기하도록 되어 있으며, 일본 아사히 맥주도 이를 실시하다가 중단했다고 한다.  


호프 사용량을 줄인 것도 한국 맥주의 품질을 떨어뜨린 중요한 원인이다. 쌉쌀한 맛의 담색 라거(Lager)인 필스너(Pilsner) 맥주에서 호프는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원료이다. 호프는 쌉쌀한 맛과 보존성, 향미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다. BTR(Bitterness rate)가 독일 맥주는 18~19, 일본 맥주는 14~15, 한국 맥주는 10 정도라고 한다. 한국 맥주들의 BTR이 낮은 것은 전량 수입인데다가 값도 매우 비싼 호프의 사용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최근 맥주 애호가들의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한국 맥주회사들이 품질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조선맥주는 예전부터 흑맥주를 생산해 오고 있고, 하이트진로는 D 맥주를 출시했다. 맥아 100%라고 광고하는 맥스(Max) 맥주는 다른 국산 맥주에 비해 확실히 맛과 향이 좋다. 그런 맥스 맥주조차도 하이 그래비티 공법으로 만들고 있으며, 호프도 함유량도 적다. 국내외의 맥주 전문가들이나 애호가들은 여전히 한국 맥주를 세계 최악의 맥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 맥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한국의 거대 맥주회사들의 로비 때문인지 하우스맥주회사를 만들려고 해도 대규모 시설을 의무화하여 맥주 제품의 다양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하우스맥주의 판매도 매장 안에서만 하도록 제한해 왔다. 최근에 이런 제한들이 다소 완화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 한국 맥주는 아직도 보리향을 가미한 알콜 탄산음료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또 소주의 경우처럼 맥주도 한국의 모든 식음료 가운데 유일하게 성분 표시 의무를 면제받고 있는 점도 국산 맥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독점은 제품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한국의 거대 맥주회사들과 관련 정부 부처 공무원, 국회의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상품의 질이 떨어지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메이저 맥주회사들이 출시한 에비스나 산토리프리미엄 같은 고급 맥주가 있다. 최근 일본의 맥주회사들은 필스너 뿐만 아니라 기네스류(Guinness類)의 스타우트(Stout)나 영국식 에일(Ale), 독일식 밀맥주 등 다양한 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맥주회사들은 이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맥주회사들이 보리착향 알콜 탄산음료 생산을 계속 고집한다면 한국 맥주는 폭탄주 제조용 보조술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맥주 애호가들이 주의할 점이 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수입맥주들 속에 국내에서 생산된 맥주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수입맥주인 양 진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눈여겨 살펴보지 않으면 여간해서 이들이 짝퉁 수입맥주라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수입맥주를 구입할 때는 반드시 상표 한구석에 깨알처럼 인쇄된 생산지명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앤호이저-부시 인베(Anheuser-Busch InBev)사의 버드와이저(Budweiser)와 벨기에의 호가든(Hoegaarden)은 국내 맥주회사에서 위탁생산을 하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朝日)와 기린(麒麟) 맥주는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간혹 네덜란드의 하이네켄(Heineken)도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들어오기도 한다. 아사히 생맥주도 롯데가 수입하면서 물을 타서 팔고 있다는 풍문이 돌고 있고, 호가든도 국내 생산하면서 짝퉁 오가든이 되어버렸다.  


한국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국내 소비자들을 봉으로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명심하라. 한국 맥주회사들의 반성과 분발을 기대한다.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