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녁 8시에 오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야간진료가 있는 날이다. 그 한 사람은 옌벤(延邊) 조선족 자치주 훈춘(琿春)에서 온 30살 교포 청년이다. 약혼녀와 함께 한국에 온 그 청년은 열심히 돈을 벌어 훈춘으로 돌아가 고깃집을 차리는 것이 꿈이다.
7시에 진료를 마치고 글을 쓰거나 웹 서핑을 하면서 교포 청년을 기다렸다. 8시가 되자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에게 침을 시술한 다음 타이머를 20분에 맞춰 놓고 내 방으로 돌아와 유침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청년은 고민 상담을 하고 싶다면서 내원했다. 청년은 우측 안면에 신경장애가 있었다. 음성의 한 공장에서 일한다는 청년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안면신경장애를 치료하고 싶어도 진료가 끝나는 저녁 7시까지 도저히 시간을 맞춰서 올 수가 없다고 했다. 청년은 자신을 위해 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만 야간진료를 해줄 수가 없느냐고 부탁했다.
청년의 부탁을 받고 나는 선선히 그러마고 대답했다. 청년은 몹시 기뻐하면서 거듭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청년을 위한 야간진료를 시작한 지 오늘로 벌써 3주째로 접어들었다. 청년이 다 나아서 치료를 종료할 때까지는 한 사람을 위한 야간진료가 계속될 것 같다. 조금 늦게 퇴근하면 어떠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한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생각이다.
청년은 나의 침 치료 효과에 대해 아주 만족해 했다. 청년은 침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내게 '임종헌 원장님,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깃집을 차리면 꼭 한 번 훈춘에 다니러 오세요. 제 가게에서 임종헌 원장님을 꼭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말만 들어도 나는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었다.
나는 청년이 나의 한의학적 치료로 안면신경장애를 속히 완치했으면 좋겠다. 또, 돈도 많이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고깃집을 차리고 약혼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먼 훗날 청년이 차린 훈춘의 고깃집에서 그와 술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청년에게서 한국에서의 기억이 따뜻하고도 아름다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조선족 교포 청년의 먼 훗날을 위하여!
2014.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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