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6월 1일 '의병의 날'을 맞아 충남 당진의 항일의병장 유곡(楡谷) 최구현(崔九鉉) 선생 유족장학회를 통해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당진시 송산면 송산초등학교와 송산중학교, 석문면 석문중학교에 각각 1질씩 보내주었다. 친일민족반역자들이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이 되어 망친 나라를 '친일인명사전'을 읽고 민족 정기를 함양한 학생들이 바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친일파는 부일민족반역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강점기에 친일 행위를 한 한국인의 목록을 정리한 책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1년 8월 친일 인사 3,090명의 명단을 발표하였고, 12월에는 개인 1,850명과 185개 단체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출범했다. 같은 날 학계를 망라한 12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재단 산하 특별위원회로 발족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5년 8월 29일 사전에 오를 친일 인사 3,090명의 명단을 1차 발표하자 수구보수 시민단체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이적행위로 매도하고 기자회견, 시위 등을 벌이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이적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매국노들을 옹호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났다. 프랑스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사전편찬위원회는 2008년 4월 친일인사들을 매국, 중추원, 관료, 경찰, 군, 사법, 종교, 문화예술, 언론출판 등 16개 분야로 나누어 선정하였다. 분야별 친일인사는 매국 24명, 수작·습작 138명, 중추원 335명, 일본제국의회 11명, 관료 1,207명, 경찰 880명, 군 387명, 사법 228명, 친일단체 484명, 종교 202명, 문화예술 174명, 교육학술 62명, 언론출판 44명, 경제 55명, 지역 유력자 69명, 해외 910명 등 5,207명에 달했다. 중복자를 제외하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인물은 4,776명이었다.
친일인명사전은 2008년 8월경 발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관련 인물 유족들의 이의 신청으로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은 연기되었다. 이후 추가 검증 작업을 거친 뒤 인명편 3권만 먼저 나왔다.
'의병의 날' 제정 과정은 이렇다. 1982년 10월 19일 의병기념사업회(회장 안호상)는 독립기념과 건립 추진과 때맞춰 외세에 대한 항쟁정신을 국민들에게 고취시키고자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인 음력 4월 22일을 '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했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1592년 음력 4월 22일 경남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의병의 효시가 되었다. 2008년 8월 의령군수 등 1만 5586명은 '호국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했다. 2010년 2월 국회 본회의는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로 '의병의 날'로 선정하였다.
최구현 의병장은 1906년 봄(음력 3월 경)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여 드디어 기지시(현 당진군 송산면)에서 창의도소를 개설하고 거병했다. 창의영도장(倡義領導將)으로 추대된 선생은 구식 무기로 무장한 의병군을 이끌고 1906년 4월 17일 초저녁 면천읍성을 공격했으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 수비대의 반격을 받고 패배하고 말았다. 면천읍성 공격에 실패한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당진시 석문면의 소난지도로 들어갔다가 항일의병항전을 계속하기 위해 만주의 간도로 근거지를 옮길 계획을 세웠다.
그때 소난지도를 염탐하던 친일매국노가 최구현 의병장에 대한 정보를 일본 경찰에 밀고했다. 일본군 수비대와 관군은 1906년 음력 7월 5일(7월 24일) 새벽에 소난지도 의병군을 기습 공격했다. 최구현 의병군은 우세한 화력을 갖춘 조일연합군에 맞서 용감하게 항일항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선생은 음력 11월 모진 고문 끝에 전답 30결을 몰수당한 뒤 수레에 실려 출옥했다. 12월 23일 새벽 선생은 마침내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했다.
내가 유곡 최구현 선생 유족장학회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봄이다. 작년 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장학금을 조금 내놓은 것이 인연이 되어 올해도 당진의 세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보내게 되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201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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