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강릉 안인항을 찾아서

林 山 2016. 1. 18. 18:08

가끔은 문득 겨울 바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불현듯 동해의 푸르른 바다가 보고 싶어 먼 길을 달려 강릉시(江陵市) 강동면(江東面) 안인진리(安仁津里) 안인항(安仁港)을 찾았다. 안인항을 안인진항(安仁港)이라고도 한다. 외지 사람들은 안인진과 안인을 헷갈리기 쉽다. 군선강(群仙江)을 중심으로 그 북쪽은 안인리(安仁里), 남쪽은 안인진리이다. 


안인리에는 (주)한국남동발전(韓國南東發電) 영동화력발전소(嶺東火力發電所)와 경북 영주와 강릉을 연결하는 영동선 안인역(安仁驛), 염전해변 등이 있고, 안인진리에는 봉화산(烽火山, 60m)과 해령사(海靈祠), 성황당(城隍堂), 안인항, 안인해변(安仁海邊), 강릉 항일기념공원(抗日紀念公園), 임해자연휴양림(臨海自然休養林), 통일공원(統一公園)의 통일안보전시관과 함정전시관 등이 있다.


안인(安仁)은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관아(官衙)였던 강릉시내 칠사당(七事堂)을 중심으로 본다면 대략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동남방이다. '안인(安仁)'의 '안(安)'은 '편안함, '인(仁)'은 방위상 '동쪽', 곧 '강릉 동쪽의 편안한 곳'이란 뜻이다.  


군선강 하구


선강 하구


봉화산 북쪽으로는 안인리와 안인진리 경계를 군선강(群仙江)이 흐른다. 군선강은 칠성산(981m)과 만덕봉(1035,3m) 사이 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 발원하여 동북쪽 모전리를 지나 안인진리 관마을 앞에서 임곡천(林谷川)과 합류하여 동해로 흘러든다. 군선강 하구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에는 숭어가 많이 올라와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염전해변에서 바라본 봉화산

 

봉화산 북쪽 군선강 어구에는 실제로 안인진항이 있다. 안인진리 포구마을 어선들은 현재 봉화산 동남쪽 산발치에 자리잡은 안인항을 주로 이용한다.


1530(중종 25)에 완간(完刊)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봉화산이 해령봉(海靈峰), 강릉부지(江陵府誌) '산천조'에는 해령산(海靈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부들이 산 위에 있는 해령사(海靈祠)에서 기도를 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어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한다. 해령산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봉화산 북쪽 산기슭 군선강 하구에는 강릉 삼문의 하나인 명선문(溟仙門)이 있다. 명선문은 동해 용궁으로 통하는 문, 인근의 정동진은 용궁의 입구라고 전해진다. 바위에 새겨진 ‘溟仙門(명선문)’ 글씨는 조선 정조대에 강릉부사를 지낸 이집두(李集斗)가 쓴 것이다. 신라시대 영랑(永郞)과 술랑(述郞), 남석랑(南石郞), 안상랑(安祥郞) 등 화랑(花郞)들이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서 무리를 이뤄 놀았다고 하여 군선강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신라 화랑들은 신선도(神仙道)로 심신을 수련했기에 선랑(仙郎) 또는 국선(國仙)이라고도 했다.      


안인항


안인항 돛단배 조형물


안인항 활어회센타


건조대의 생선들


안인항은 북서쪽으로 봉화산이 병풍처럼 아늑하게 에워싸고 있는 작은 포구다. 부둣가 광장에는 돛단배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겨울 안인항은 고깃배들이 간간이 드나들고 있을 뿐 한산하고 조용했다.


부두 뒤편에 있는 자연산가자미활어회센타 횟집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어 개점휴업 상태였다. 활어회센타에는 안인어촌펜션이라는 간판도 걸려 있었다. 생선회는 염전해변에 있는 고향횟집에서 먹고 왔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부두 한켠에는 어부의 아낙네들이 손질해서 건조대에 매달아 놓은 가자미들이 해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안인항에서 바라본 봉화산


안인항에서 바라본 괘방산


안인진 연안에서는 주로 가자미와 넙치가 잡히며, 그 밖에 전복과 해조류도 많이 난다. 넙치와 전복 양식도 한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안인항에서 동해안 청정해역에서 생산되는 참가자미를 맛보고,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안인 노란참가자미 축제’가 열린다. 

 

봉화산 해령사(출처 국립민속발물관)


봉화산 정상에는 안인진 포구마을 어민들이 풍어(豊漁)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당인 해령사가 있다. 해령사는 ‘바다신령(海靈)의 사당(祠)’이라는 뜻이며, 여랑사(女娘祠), 해랑당(海娘堂), 액신사(厄神祠)로도 불린다. 단칸 기와 건물 안에는 1930년대에 해랑신(海娘神)과 김대부신(金大夫神)을 합배한 이후 해랑지신위(海娘之神位)와 김대부지신위(金大夫之神位)라고 쓴 위패를 세워 놓았다. 무속인 단체에서 두 신위의 화상도 그려서 봉안했다. 해랑신은 땋은 머리에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은 모습이고, 김대부신은 도포 차림에 갓을 쓴 모습이다.


해령사에는 해랑(海娘) 설화가 전해 온다.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 전 이모(李某)라는 강릉부사가 관기들을 거느리고 해령산으로 소풍을 나왔다. 관기들은 그네를 매달아 놓고 그네뛰기를 하면서 놀았다. 이때 해랑이란 미녀 기생이 그네뛰기를 하다가 그만 줄이 끊어지면서 바다에 떨어져 죽었는데, 시체마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해랑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강릉부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의 넋을 달래기 위해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주도록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석단을 쌓고 해랑의 제사를 지내 주었지만 흉어(凶漁)를 면치 못했다. 처녀 귀신은 짝이 있어야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산 위에 지은 작은 사당에 나무로 깎은 남근(男根, 남성의 성기)을 걸어 놓고 해랑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 주었다(마을 사람들의 꿈에 해랑이 나타나 남근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설도 있다). 그후 마을에 재앙이 없어지고, 풍랑이 잦아들었으며, 어획량도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다른 전승의 설화도 있다. 옛날 안인진 포구마을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처녀는 바닷가에서 미역을 따고 있다가 배를 타고 지나가는 총각을 한번 보고 그만 반해 버렸다. 그날 이후 오매불망 청년을 짝사랑하던 처녀는 상사병을 앓다가 죽었다. 그 뒤로 바다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을 어부의 꿈에 나타난 처녀는 ‘고기를 많이 잡으려거든 남근을 깎아서 바치라’고 일렀다. 처녀의 말대로 마을 사람들이 남근을 깎아서 바치자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해령사와 관련된 일화는 또 있다. 1930년경 안인진 포구마을 이장의 부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해랑신이 강림하여 '나는 설악산 김대부신을 배우자로 얻었다'고 말했다. 이장 부인은 해령사를 오르내리면서 김대부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위패에 ‘김대부지신위(金大夫之神位)’라 써 놓고 제삿날을 받아 놓자 이장 부인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기생 해랑 설화는 왜구나 해적에 겁탈당한 사실을 용으로 미화해서 구전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대부신은 조선시대 강릉 김씨 만호공(晩湖公) 김자락(金自洛)으로 보기도 한다. 강릉 김씨 파보(派譜)에는 김자락이 꿈에 동해용왕의 초청으로 이곳에서 강릉부사와 뱃놀이를 하다가 홀연히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해랑제는 16세기부터 행해졌다고 전해진다. 강릉향토지인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1933)에는 해령사에서 해상(海商) 중심으로 당제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당제가 항해시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해령사에 해마다 소나무로 깎은 남근을 황토로 바른 다음 천장에 매달아 놓고 풍어를 비는 해랑제(海娘祭)를 지냈다고 한다. 남녀신을 합위한 1960년대 이후에는 해마다 남근을 바치지 않고, 향나무 남근만 해랑지신과 김대부지신의 화상 옆에 세워 놓았다. 해랑제는 어촌계장과 마을 이장의 주관으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과 9월 9일 중양절에 두 차례 올렸으나, 현재는 봄철에만 길일을 택하여 행하고 있다. 수십 년 전에는 인근의 정동진, 강문동, 사천면, 연곡리 어민들도 참석하여 돼지머리를 놓고 풍어굿을 했다고 한다.


봉화산 성황당


봉화산 중턱에는 성황지신위(城隍之神位), 토지지신위(土地之神位), 여역지신위(癘疫之神位)를 모신 골매기 성황당(城隍堂)도 있다. 골매기는 동제(洞祭)를 지낼 때 풍양(豊穰)과 제액(除厄)을 기원하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해령사 북서쪽 30m 지점에는 봉화터가 남아있다. 해령산 봉수대(烽燧臺)는 봉화를 올려 남쪽으로는 강동면 심곡리 오근산(吾斤山) 봉수대, 북쪽으로는 강릉시 두산동 월대산(月帶山) 봉수대, 포남동 소동산(所同山) 봉수대로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해령산을 봉화산 또는 봉수산(烽燧山)이라고도 부른다. 


안인해변


안인항 바로 남쪽에는 안인해변이 있다. 바닷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서 여름 피서철에는 많은 해수욕객으로 붐빈다. 인근의 군선강 하구에서는 담수욕도 즐길 수 있다. 연안에는 바위가 많아 조개를 잡거나 노래미, 가자미, 감성돔, 우럭 등을 낚을 수 있다. 


안인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괘방산


안인항 방파제에서 바라본 괘방산과 정동진


안인항에서 바라본 정동진 썬크루즈리조트


안인항 남쪽으로는 삼우봉(三友峰, 342m)과 괘방산(掛膀山, 339m)이 솟아 있고, 대양산과 고성산, 정동진의 썬크루즈리조트가 아스라이 보인다. 삼우봉 북쪽의 258m봉과 266m봉 기슭에는 강릉임해자연휴양림이 있다. 정동진리 괘방산은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이 산 어디엔가에 두루마기에다 급제자의 이름을 쓴 방을 붙여 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괘방산 기슭에는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와 하슬라아트월드가 있다.  


함정전시관에 전시된 대한민국 해군의 퇴역 916함


안인진 대포동 앞바다에서 좌초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의 잠수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이 탈출할 때 타고 온 목선


안인진 대포동에는 강릉항일기념공원, 강릉통일공원의 통일안보전시관과 함정전시관 등이 있다. 대포동은 1996년 9월 1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인민군 특수부대가 잠수함으로 침투한 곳이다. 대포동 침투사건을 계기로 대포동 강릉통일공원에는 안보체험전시관과 함정전시관, 등산로 등을 개설하였다. 당시 침투했던 잠수함은 함정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정동진에는 썬크루즈리조트를 비롯해서 정동진해변과 모래시계공원, 조각공원, 해돋이공원 등이 있다. 정동진역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안인항 방파제에서 가없는 동해를 바라보다. 시원하게 뻥 뚫린 가슴을 안고 귀로에 오르다.   


2016.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