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를 보기 위해 강릉 안인해변으로 가는 길에 화암팔경(畵岩八景) 중 으뜸이라는 몰운대(沒雲臺)를 찾았다. 몰운대는 정선군(旌善郡) 화암면(畵岩面) 몰운리(沒雲里) 한가운데를 흐르는 어천(漁川) 가에 솟아 있다. 어천은 백두대간 금대봉 부근의 백전리(栢田里) 마당목에 있는 용소에서 발원한다. 현지인들은 어천을 동대천(東大川)이라고도 부른다.
화암팔경은 정선군 화암면 몰운리에서 화암리(畵岩里)에 이르는 소금강계곡(小金剛溪谷)에 있다. 화암팔경은 화암약수터와 거북바위, 용마소(龍馬昭), 화암동굴, 화표주(華表柱), 신선암(神仙巖), 설암(雪岩), 몰운대 등 경치가 아름다운 여덟 곳을 이른다. 화암약수터는 주변의 산세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약수도 위장병과 피부병, 안질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설암은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널리 알려진 명승이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층암절벽의 기묘하고 장엄한 형상은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고 하여 소금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몰운대 가는 길
몰운대 입구에 세워진 시비
몰운대
몰운대
몰운대 정자
몰운대 정자 편액
몰운대 정상의 '知郡(지군) 吳宖默(오횡묵)' 암각서
몰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몰운리
화암팔경 중 제7경인 몰운대는 수십 길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벽 위는 백여 명이 설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평하다. 절벽 밑에도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드넓은 반석이 펼쳐져 있다. 정상에는 삼형제 노송과 함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절벽 끝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죽은 채 서 있다. 죽은 소나무 등걸에서 수백 년 동안 삭풍한설(朔風寒雪)을 견디고 견디다가 마침내 수명을 다한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몰운대 정상에 서면 대덕산(大德山, 1,307m)과 노목산(櫓木山, 1,150m), 지억산(芝億山 1,117m), 남전산(942.3)으로 둘러싸인 화암면 몰운리와 호촌리(虎村里), 백전리(栢田里) 일대의 평화로운 산골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찔한 절벽 위에 세워진 몰운대 정자에 오르면 바로 아래 계곡을 흐르는 어천의 맑은 물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옛 전설에는 천상의 선인들이 선학을 타고 몰운대에 내려와 시흥에 취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몰운대는 구름도 쉬어 간다고 할 만큼 경치가 뛰어나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세기 말 정선군수(旌善郡守)를 지낸 오횡묵(吳宖默)도 이곳을 찾아 7언율시(七言律詩)를 남겼다. 몰운대 정상 바위에는 '知郡(지군, 군수) 吳宖默(오횡묵)'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오횡묵은 1887년(고종 23) 3월부터 1년 5개월 동안 정선군수를 지냈다. 1888년 5월 10일 집강(執綱) 유종택의 안내로 몰운대를 돌아본 뒤 오횡묵이 지은 7언율시(七言律詩)가 정선총쇄록(旌善叢鎖錄)에 수록되어 있다. 오횡묵의 한시는 몰운대 입구에 세워진 시비에도 새겨져 있다.
沒雲高臺出半天(몰운고대출반천) 몰운의 높은 대는 허공 높이 솟았는데
飛笻一上絶風烟(비공일상절풍연) 지팡이 날려 올라가니 바람 안개도 끊어졌네
盤陀俯瞰臨流歇(반타부감임류헐) 굽어보니 굽이진 비탈은 강물에 다다라 다하였고
危角回瞻倚斗懸(위각회첨의두현) 돌아보니 우뚝한 바위 끝은 북두성에 매달렸네
此地居人眞脫俗(차지거인진탈속) 이 땅에 사는 사람 속세를 떠났으니
今來太守似成仙(금래태수사성선) 이번에 온 태수는 신선이 된 듯하네
留名欲倩劉郞手(류명욕천유랑수) 이름 남길 것을 유랑(劉郞)에게 부탁하노니
若比龜趺較似賢(약비귀부교사현) 그래도 비석을 세우기보다 낫지 않으리
오횡묵의 한시를 보면 몰운대 정상 바위의 글씨 '知郡 吳宖默'은 집강 유종택을 시켜서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정비를 세우게 하지 않고 몰운대에 자신의 이름 석자만 새기게 한 오횡묵은 그래도 청렴한 수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횡묵이 정선에 자신의 선정비를 세우게 했다면 백성들은 그 비용 추렴과 부역 동원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오횡묵 시비 하단에는 정선아리랑 '산수편'의 일부도 새겨 놓았다.
춘삼월에 피는 꽃은 할미꽃이 아니요
동면산천(東面山川) 돌산바위에 진달래 핀다
정선아리랑의 기원은 고려 말 조선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의 조선 창업을 반대한 72명의 고려 유신(遺臣)들은 송도(松都, 개성) 서쪽에 있는 만수산(萬壽山) 두문동(杜門洞)에서 숨어 살았다.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성계의 군사가 두문동을 습격하였다. 고려 유신 72명 가운데 다 죽고 살아남은 전오륜(全五倫), 김충한(金沖漢), 고천우(高天祐), 이수생(李遂生), 신안(申晏), 변귀수(邊貴壽), 김위(金瑋) 등 7명은 정선군 남면(南面) 서운산(瑞雲山) 거칠현동(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겨 왔다. 이들을 고려유신칠현(高麗遺臣七賢)이라고 한다.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킬 것을 맹세한 이들은 풀뿌리와 산나물을 뜯어먹고 연명하면서 훗날을 도모했다. 이들은 고려왕조와 두고 온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달픔 등을 한시로 지어 읊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를 풀이하여 부른 것이 정선아리랑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정선아리랑 가운데 고정적으로 전승되는 노래말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은 고려 유신들이 불렀음직하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만수산'은 고려의 서울이었던 개성의 서쪽에 있는 산이다. 두문동은 바로 만수산 기슭에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는 장차 고려에 불어닥칠 망국의 운명을 비유한 것이고, '만수산 검은 구름'은 고려의 수복을 도모하는 유신들에게 풍전등화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위기에 빠진 유신들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야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리랑 고개 나를 넘겨주소'는 여기서 단순한 후렴구로 다가오지 않는다. 고려 유신들의 망국의 한이 담겨 있는 듯한 후렴구다.
시인 황동규도 이곳의 경치에 매료되어 '몰운대행(沒雲臺行)'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몰운대행(沒雲臺行)' 중 '몰운대 기억'이란 시가 있다.
흐릿한 기억을 닦아내고
한번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얼굴이 있다면
강원도 정선 화암리 몰운대로 찾아가보라
물론 차마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벼랑 초입에서 머뭇거리다
갑자기 발길을 돌려세우려 할지도 모른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맨정신으로는 한번 본 적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대의 인연들이 한꺼번에 와락 달려드는 몰운대
그 낭떠러지 끝에서
저 아래 강물 위로 떨어지는 꽃가루 소리까지 들었다면
꽃잎보다 조금 더 무거운 인연으로
몰운대에서 혼자 오래도록 머물지는 말 일이다
황동규는 '한번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얼굴이 있다면, 강원도 정선 화암리 몰운대로 찾아가보라'고 하면서도 '몰운대에서 혼자 오래도록 머물지는 말 일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왜 몰운대에서 오래도록 머물지 말라고 했을까? 인연따라 몰운대 벼랑끝에 꽃잎처럼 질지도 모르니까.
몰운대에 이르는 산길에는 책 모양의 시비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정선이 낳은 시인 박정대의 '몰운대에 눈 내릴 때'라는 제목의 시비도 있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에 투신하는 건 차마 아득한 눈발뿐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니었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다시 시작되는 세상
몰운리 마을을 지나 광대골로 이어지고
언제나 우리가 말하던 절망은 하나의 허위였음을
눈 내리는 날 몰운대에 와서 알았네
꿩 꿩 꿩 눈이 내리고 있었네
산꿩들 강물 위로 날고 있었네
불현듯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은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박정대는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다가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시인 이인평의 '몰운대에서'라는 제목의 시비도 있다.
이 깍아지른 벼랑끝에 이르러
내 삶은 끝인가 시작인가
아래만 보고 걸어왔는데도
허리를 굽혀 절벽의 하방을 내려다보니
헛건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온 지난 날들이
오히려 아찔하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다다른 내 세월은
오름인가 내림인가
낭떠러지 밑으로 꿈처럼 흘러가는
한줄기 물살이 절벽을 타고 솟구치는 바람이 되어
어리석은 육신을 잡아끄는 순간
현기증 도는 세상에서 오금이 저린 나는 어느새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자란
옹골진 소나무의 허리를 붙들고 있다
아득한 절벽위에서
한조각 구름이 솔바람을 쓸어가듯
가파른 화암의 벼랑 사이를 지나온 내 삶의 영혼은
이곳에 이르러 끝인가 시작인가
해거름에 고요의 여운을 쓸어오는 물소리가
내 오랜 갈증의 혀를 적신다.
이인평은 깎아지른 듯한 몰운대의 벼랑끝에 이르러 '내 삶은 끝인가 시작인가', '내 세월은 오름인가 내림인가' 자문하면서도 '옹골진 소나무의 허리를 붙들고' 있다. 시적 화자의 삶의 의지가 엿보인다.
정선아리랑의 '산수편'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몰운대를 떠나다.
201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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