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식소사번(食少事煩)

林 山 2016. 4. 7. 11:51

교통대학교(전 충주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퇴직한 선배가 내원했다. 요즘은 수요일과 목요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여가시간에는 붓글씨를 쓴다고 했다. 선배는 요즘 식소사번(食少事煩)을 즐겨 쓴단다. 


식소사번(食少事煩)은 삼국연의(三國演義)에 나오는 말로 '먹는 것은 적은데, 일은 번거롭다.' 또는 '소득은 적은데 일만 번잡하다'는 뜻이다. 식사를 적게 하면서 그야말로 뭐빠지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제갈량


서기 234년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 위(魏)의 사마의(司馬懿, 司馬仲達) 군대와 촉(蜀)의 제갈량(諸葛亮, 諸葛孔明) 군대가 산시성(陝西省) 바오지시(宝鶏市) 인근 웨이수이(渭水) 남쪽의 고원지대 오장원(五丈原)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다. 제갈량은 속전속결(速戰速決)을 원했고, 사마의는 지구전(持久戰)으로 제갈량의 군대가 지치기를 기다렸다. 사신만 왕래하는 지루한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다. 어느 날 사마의는 제갈량이 보낸 사자에게 물었다. '공명은 하루 식사를 어떻게 하며, 일 처리를 어떻게 하시오?' 그러자 사자는 '음식은 지나치게 적게 먹고, 일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손수 일일이 처리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사마의는 진담 반 농담 반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번거로우니(食少事煩)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사자가 돌아오자 제갈량은 '사마의가 무슨 말을 하던가?' 하고 물었다. 사자가 들은 그대로 전하자 제갈량도 '중달의 말이 맞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고 말했다. 과연 사마의의 말대로 제갈량은 병이 들어 54세의 나이로 오장원에서 죽었다.


사마의


천하의 제갈량보다 사마의가 한 수 위였던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나 할까! 선배의 붓글씨를 통해서 삼국지를 돌아보다.  


2016.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