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충주 고불선원 소조여래좌상을 찾아서

林 山 2016. 8. 24. 18:02

백두대간(白頭大幹) 속리산(俗離山) 천왕봉(天王峰, 1,058m)에서 시작되는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북상하다가 부용지맥(芙蓉枝脈)을 분기하고, 부용산(芙蓉山, 645.2m)에서 갈라진 가섭지맥(迦葉枝脈)은 선지봉(두호2봉, 574m)을 지나 동남방의 봉학산(鳳鶴山, 수리봉, 576m)과 가섭산(迦葉山, 709.6m)으로 이어진다.   


선당마을 선당소류지에서 바라본 가섭산


가섭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과 봉학산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사이 계곡에 충주시(忠州市) 신니면(薪尼面) 선당리(仙堂里)가 자리잡고 있다. 선당경로당에서 너머선고개를 넘으면 너머선골이고, 너머선골 바로 위에 선골이 있다.  


고불선원


주말을 맞아 봉학산 북쪽 산기슭 선골에 있는 고불선원(古佛禪院)으로 향했다. 충주 고불선원 소조여래좌상 (忠州古佛禪院塑造如來坐像,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8호)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57호, 제358호)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고불선원 법당


석암(石岩) 고불선원장에게 소조여래좌상과 묘법연화경을 보러 왔다고 말하고, 고불선원 경내 관람과 문화재 촬영에 대한 허락을 구했다. 흔쾌히 허락한 석암 선원장은 앞장서서 나를 법당으로 안내하여 불상과 복장 유물, 문화재 등에 대하여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고불선원은 아미타불도량이라고 한다. 고불선원의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 두 동이 있다. 법당에는 북쪽으로 지대방과 판도방(判道房)이 붙어 있다. 지대방은 차를 마시면서 법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판도방은 절방 가운데 가장 크고 넓은 방으로 승려들이 모여 불경도 읽고 참선도 하는 곳이다.


법당과 요사채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주련은 그 도량의 지향점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주련은 백우 박항용 거사가 썼다고 한다. 법당과 요사채의 주련을 음미해 보자.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육문에서 항상 자금광을 발하는도다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극락당의 보름달 같은 아미타부처님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옥호와 금빛 얼굴 허공을 비추는구나

靑山疊疊彌陀窟(청산첩첩미타굴) 청산은 겹겹이 그대로 아미타굴이요 

滄海茫茫寂滅宮(창해망망적멸궁) 아득히 넓은 바다 그대로 적멸궁일세

物物拈來無罣碍(물물염래무괘애) 세상사 모든 것에 아무런 걸림 없으니

回光返照念佛人(회광반조염불인) 빛을 돌려 염불인을 거꾸로 비춰보라

阿彌陀佛自呼名(아미타불자호명) 아미타부처님 제 이름을 제가 부르네

覷破如今念佛人(처파여금염불인) 염불하는 사람을 궤뚫어볼 수 있다면 

覰破如今覰底人(처파여금처저인) 궤뚫어본 자를 궤뚫어볼 수 있으리라


주련의 1, 2구는 고려 말의 나옹 혜근(懶翁慧勤) 선사의 칠언절구 1, 4구와 동일하다. 나옹선사의 한시 칠언절구도 음미해 보자.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마음에 깊이 새겨 절대 잊지 말지어다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 생각이 다하여 무념처에 이르게 되면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육문에서 항상 자금광을 발하는도다


법당의 불단


소조석가여래좌상사존불


유리 보호벽이 설치된 법당의 중앙 불단에는 석가모니사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그 뒤 후불탱화에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걸려 있다. 소조여래좌상을 본존불로 그 왼쪽에는 소조불상(塑造佛像)과 미륵불입상,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좌상이 협시하고 있다. 불단에 설치된 유리 보호벽의 반사광 때문에 사진 촬영에 애로가 많다. 불단의 남쪽 벽면에는 신중탱화와 산신탱화, 북쪽 벽면에는 지장탱화가 걸려 있다. 


영산회상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 등 6대보살과 사천왕, 십대제자 등이 묘사되어 있다.    


고불선원 소조여래좌상


고불선원 소조석가여래좌상(출처 고불선원)


충주 고불선원 소조여래좌상(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8호)은 작고 아담하지만 형태가 완전한 불상이다. 얼굴에는 철분이 칠해져 있어 검은색이다.   


소조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불신(佛身)에 비해 상호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통통하게 살집이 있는 편이다. 머리카락은 나발(螺髮)에 계주(髻珠)를 표현하였으나 정수리에 육계(肉髻)는 없다. 이마에는 백호가 표현되어 있는데, 보주(寶珠)는 최근에 끼워 넣은 것이라고 한다. 눈은 선정에 든 듯 지긋이 감고 있다. 코는 다소 뭉툭하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는 듯하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으로 대의 자락이 'U'자 형으로 대칭되게 흘러내렸다. 가슴에는 군의(裙衣)와 군의를 맨 띠가 있고, 옷 주름은 두텁게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손가락 부분을 보수하여 정확한 수인을 알 수는 없지만,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왼쪽 무릎에 올려 놓아 여원인(與願印)과 비슷하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手印)을 결하고 있다. 


불상의 밑부분에는 복장 유물을 넣고 진흙으로 밀폐한 흔적이 있다. 아쉽게도 복장 유물이 모두 분실되어 불상의 조성 시기와 원래의 소장처는 알 수 없다. 


고불선원 소조여래좌상 전체적으로 단아한 체구와 입가의 잔잔한 미소 등으로 볼 때 고려 후기 단아양식(端雅樣式, 신고전양식)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옷 주름의 표현은 18세기 충청도 북부 지방에서 유행한 목조불상의 양식과 유사하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단아양식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이 불상은 소재의 희소성이 있어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좌보처 소조불상


소조불상 복장유물


소조여래좌상의 바로 왼쪽에 봉안된 소조불상은 부처인 듯 승려인 듯 다소 특이한 모습의 좌상이다. 불상의 높이는 34.5cm이다. 머리는 민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은 통통한 편이며, 이마에 백호는 없다. 눈썹은 一자형으로 가늘고 길며, 눈은 선정에 든 듯 반쯤 감고 있다. 눈꼬리가 약간 치켜올라가 있어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코는 뭉툭하고 입술은 약간 도톰하다. 귀는 얼굴에 비해 상당히 길고, 목에는 염주가 걸려 있다. 왼손은 여원인,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결하고 있다. 


2016년 4월 고미술협회의 입회 하에 소조불상의 복장을 개봉한 결과 청동을 두들겨 은박을 입힌 높이 11.5cm, 너비 13cm 크기의 사리함에서 높이 6.1cm의 옥제 약사여래좌상과 사리 9과, 반야심경 진언, 관세음보살 진언, 부적 등의 명문이 발견됐다. 특히 복장물에서 ‘흥국사(興國寺)’가 새겨진 목판 인쇄본이 나와 이 불상이 924년에 조성되어 개성 만월동 흥국사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암 고불선원장은 '소조불상은 북한의 개성 만월동 흥국사에서 온 것이고, 소조불상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성불상(成佛像)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리는 녹색, 연녹색, 청색, 연청색, 남색, 보라색 등 오색이 영롱하다. 이렇게 오색이 영롱한 사리는 처음 본다. 옥제 약사여래좌상은 빛이 반투과되는 부분과 빛이 투과되지 않는 부분이 절묘하게 나뉘어 두상은 은은하게 빛이 나고 불투명한 부분은 마치 법의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조불상이 과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의 성불상이 맞다면 이는 불교사적으로 매우 희귀하고 특이한 불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리함(출처 고불선원)


사리(출처 고불선원)


고불선원에는 진신사리(眞身舍利) 16과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사리는 흰색이 3과 고동색이 4과, 흑갈색이 9과이다. 16과의 사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라면 고불선원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서의 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사실 다비 후에 나온 사리의 유무, 다소가 그 승려의 법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진신사리 논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살아 생전의 이타행, 보살행, 두타행이야말로 진실로 중요한 것이다.    


우보처 아미타불좌상


우보처 아미타불좌상(출처 고불선원)


우보처 아미타불좌상은 약 200년 전에 조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이마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눈꺼풀은 쌍꺼풀이 져 있고, 눈은 선정에 든 듯 반쯤 감겨 있다. 코는 날카롭고 오똑하며, 입은 작고 약간 도톰하다. 귀는 길게 내려와 있다. 상호는 원만한 편이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이고 가슴에는 보주가 주렁주렁 장식되어 있다. 가슴 아래에는 군의가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중지와 엄지를 맞댄 채 무릎 위에 놓여 있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올려서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정인의 하품중생인을 결하고 있다.


고불선원은 아미타불도량이라고 하면서 아미타불좌상을 본존불로 봉안하지 않고, 왜 협시불로 봉안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소조석가여래좌상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8호여서일까?     


좌보처 미륵불입상


좌보처 미륵불입상(출처 고불선원)


좌보처 미륵불입상은 약 200년 전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코는 거의 一자형으로 곧게 내려와 있다. 매우 큰 눈은 감겨 있다. 입술은 약간 오므리고, 입가에는 미소인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이 흐르고 있다. 귀는 얼굴에 비해 매우 크게 표현되어 있다. 목은 짧아서 거의 없다. 법의는 통견이고, 옷 주름은 넓은 물결 무늬를 이루면서 발끝까지 내려와 있다. 왼손은 오른손 팔뚝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얼굴까지 들어올려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고 검지, 중지, 약지 등 중간의 세 손가락은 구부린 특이한 수인을 취하고 있다. 마치 무엇을 들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이 수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장탱화


법당의 북쪽 벽면에는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을 도상화한 지장탱화가 걸려 있다. 지장탱화는 보통 명부전에 봉안된다.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거나 삭발한 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거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고불선원 지장탱화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이다. 지장보살은 삭발 머리에 결가부좌를 튼 자세로 오른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왼손에는 석장을 짚고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협시, 명부시왕(冥府十王), 판관(判官), 사자(使者), 졸사(卒使), 우두(牛頭), 마두(馬頭) 등의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다. 


지장시왕도는 지장신앙에 시왕신앙이 결합되면서 나타난 불화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육도 중생을 교화할 것을 서원한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명부시왕 또는 시왕은 죽은 자를 심판한다는 열 명의 왕을 말한다. 시왕이 명부 심판관으로서의 성격이 강조되면서 독립된 신앙으로 명부전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도명존자는 환혼기(還魂記)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서 유래했다. 중국 양주(壤州) 개원사(開元寺)의 승려였던 도명화상은 저승사자에 의해 지옥에 불려가서 지장보살을 친견한 뒤 이승으로 돌아와 자신이 목격한 저승세계를 세상에 알리고자 그림으로 그렸다. 도명존자는 그런 연유로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고 하는 왕이다. 한 브라만(Brahman)의 딸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찾으러 저승에 갔을 때 무독귀왕이 안내하면서 여러 지옥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무독귀왕은 딸의 지극한 효심과 공덕으로 지옥에서 고통받던 어머니와 함께 있던 모든 이들이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이에 감명을 받은 딸은 미래겁이 다하도록 육도 중생을 구원하리라는 서원을 세우고 환생하여 지장보살이 되었다. 무독귀왕은 브라만의 딸을 안내한 연유로 후에 지장보살의 협시가 된 것이다.


현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장탱화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팔공산 북지장사(北地藏寺) 지장탱화, 영천 은해사 운부암 지장탱화, 고성 옥천사(玉泉寺) 지장시왕도 등이 있다.


신중탱화


아미타불의 오른쪽 벽에는 신중탱화(神衆幀畵)가 걸려 있다. 이 탱화는 상단의 제석천(帝釋天)과 대범천(大梵天), 하단의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천신(天神), 금강신장(金剛神將) 등을 묘사하였다. 신중탱화에 등장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은 우리나라의 민족신들이 많다. 불교가 유입 정착되는 과정에서 민족신들을 호법선신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 신중탱화는 모두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붉은색은 기운이 왕성하여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다.    


산신탱화


산신탱화는 색이 바래서 선명하지가 않다. 그래서 아마추어 화가가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절벽의 낙락장송을 배경으로 붉은색 도포 차림에 석장을 짚은 산신을 중심으로 뒤에는 시자인 동녀, 오른쪽에는 산왕대왕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장발머리와 수염이 풍성한 산신의 모습이 특이하다. 민화 같은 산신탱화이다. 


범종


법당에는 작고 아담한 범종이 종틀에 걸려 있다. 이 범종은 약 200년 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고불선원에는 불상도 그렇고 범종도 그렇고 200년 전에 조성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고불선원 삼층석탑


금칠석조지장보살입상


고불선원 마당에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간략하고 단순한 일반형 삼층석탑이다. 기계로 깎은 듯한 느낌을 주는 석탑이다. 석암 고불선원장의 말에 따르면 약 100년 전에 조성된 탑이라고 한다. 석탑 앞에는 작은 크기의 금칠석조지장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다. 이홍식 불상연구가에 의하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불상으로 조선이 해방되자 그대로 두고 간 것이라고 한다.    


약사여래삼존불상


삼층석탑의 북쪽 마당에는 아담한 크기의 약사여래삼존불상이 있다. 약사여래삼존불상은 하나의 광배 안에 삼존불을 조각한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불상도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대좌에는 연꽃봉오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해태상이 새겨져 있다. 사자상 같기도 하다. 약사여래는 결가부좌 자세로 양손을 아랫배 앞으로 모아 약합을 들고 있다.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글고, 상호는 인자한 듯 원만하다. 머리카락은 나발이고,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눈은 선정에 든 듯 감겨 있다. 코는 콧볼이 매우 넓고 뭉툭하여 주먹코처럼 생겼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편삼 위에 대의를 걸쳐 입었다. 편삼 위로 드러난 가슴은 양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다리를 덮은 옷 주름은 다소 도식적이다. 


약사여래의 좌우 협시보살입상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추정된다. 두 보살입상은 크기와 모습이 거의 같고, 동글동글한 상호도 약사여래와 닮았다. 법의도 약사여래와 동일하게 착용했다. 다만 복부 아래 옷 주름의 방향만 반대로 되어 있다. 두 손은 약합으로 보이는 물건을 받쳐들고 있다. 


부도


고불선원 마당에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서 조성한 매우 특이한 부도 1기가 세워져 있다. 이 부도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다. 부도의 내부는 비어 있고, 주인공은 알 수 없다. 부도의 각 돌에는 구멍이 위아래로 뚫어져 있어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구멍은 맨 위 작은 돌로 막혀 있다.   


지장보살입상


고불선원 앞 언덕에는 작은 크기의 지장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다. 지장보살입상도 100~200년 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다. 지장보살은 연화대좌 위에서 고요히 눈을 감고 합장을 하고 있다. 삭발머리에 이마에는 백호가 박혀 있다. 통통한 얼굴에 상호는 원만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옷 주름을 상당히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고불선원 묘법연화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8호)


고불선원 묘법연화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8호)


고불선원 묘법연화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8호)


고불선원 묘법연화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8호)


고불선원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7호와 358호로 지정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두 권이 있다.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法華經)이라고도 한다. 법화경은 천태종(天台宗)의 소의경전으로 누구나 불법을 닦고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법화경은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7호 묘법연화경 권1은 모두 7권 중 1권 1책으로 1574년(선조 7) 월악산 덕주사(德周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간행된 연대와 간행처를 알 수 있고,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왜란) 직전의 불교와 인쇄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8호 묘법연화경은 1634년(인조 12) 전라도 순창의 복천사(福泉寺)에서 간행되었다. 책 속에는 강백년(姜栢年)-강현(姜鋧)-강세황(姜世晃) 3대와 진주강씨 여러 인물들의 인장이 보여 강세황 후손 가문의 소장본임을 알 수 있다. 석암 고불선원장(속명 강희준)도 강세황의 직계 27세손이라고 한다.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 석조여래입상(忠州院坪里石造如來立像, 중원원평리미륵석불,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과 삼층석탑(忠州院坪里三層石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5호)을 보러 왔다가 도로변의 안내판을 보고 고불선원을 알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고불선원에 소장된 소조여래좌상과 묘법연화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소조여래좌상의 입가에 흐르는 미소를 떠올리며 고불선원을 떠나다.  


2016.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