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남도명창 이중선(李中仙)의 묘소를 찾아서

林 山 2017. 1. 17. 17:05

부안삼절 이매창의 묘소에 참배한 뒤 매창공원을 돌아보다가 판소리 명창 이중선(李中仙)의 묘소를 발견했다. 이중선의묘소는 매창 묘 남쪽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중선이 누구냐 하면 저 유명한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의 동생이자 판소리 고수 이화성(李化成)의 누나이다. 이영민(李榮珉)은 '벽소시고(碧笑詩稿)'에서 이중선과 이화중선 자매를 일러 양가선(兩歌仙)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양가선 중 한 사람인 이중선의 음악 인생을 좇아가 보자.


부안 매창공원 이중선 묘


이중선

(출처-이정규 발행, 한국 국보급 국창 명창 명고 명금 사진시집)


이중선은 1901년에 세습예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출생지는 전라북도 고창(高敞)이라는 설도 있고, 남원(南原)이라는 설도 있다이중선의 사승관계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후기 팔명창(後期八名唱) 중 한 사람인 장재백(張在伯)에게서 소리를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시대인 1920년대 이중선은 언니 이화중선과 함께 고창군 풍류객들의 모임인 율회(律會)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임상문(林相文)이 이끄는 대동아창극단(大東亞唱劇團)이 함경남도 원산에서 공연할 때는 이화중선이 이도령, 이중선이 춘향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화중선이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의 명창이었다면 이중선은 남도잡가(南道雜歌) '육자배기'와 남도민요(南道民謠) '흥타령'을 잘 부르기로 유명했다.


1920년대 후반 이중선은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남도잡가와 남도단가(南道短歌)를 불렀다. 그녀는 또 이화중선, 한성준(韓成俊)과 함께 경기가요(京畿歌謠), 경기속요(京畿俗謠), 경기잡가(京畿雜歌), 남도가요(南道歌謠), 남도잡가 등을 취입하였다. 이때 취입한 '느진살풀이', '육자배기', '명기명창(名妓名唱)', '방아타령' 등의 노래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이중선이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노래에는 '개구리타령', '개성난봉가', 단가 '호남가'(湖南歌, 장고 김옥진), '춘향가' 중 '쑥대머리'(獄中歌, 장고 김옥진), '적벽가' 중 '군사설움 대목'(三國誌 古堂上鶴髮兩親. 장고 김옥진) 등이 있다. 오케음반에는 이중선이 이화중선, 최순경과 함께 부른 '금수강산', '긴육자배기', 단가 '천하태평'(天下泰平, 장고 김종기), '춘향가' 중 '옥중상봉 대목'(獄中相逢歌, 장고 김종기) 등이 전한다. 또 오케음반에서는 '춘향가' 중 '사랑가'(장고 김종기)와 '자진사랑가'(장고 김종기)를 이화중선과 병창으로 남겼다.  


1932년 '삼천리(三千里) 4권 8호의 광고에는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흥타령'과 '명기명창'이 소개되었다. '삼천리' 4권 12호에는 김옥진과 함께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민요 '육자배기', 민요 '이팔청춘가', 이화중선과 함께 취입한 잡가 '꽃사거리'가 소개되었다.


1935년 이중선과 이화중선 자매는 임종원이 창단한 대동창극단(大東唱劇團)에서 강남중, 신영채, 홍갑수, 박초선, 박초홍 등과 함께 삼남(三南)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그녀는 '육자배기', '흥타령', '성주풀이', '농부가', '자진농부가', '새타령', '진도아리랑', '개구리타령' 등의 남도민요를 음반에 취입하였다.


1932년 이중선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부안읍내 어느 골방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매창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이중선도 미처 다 피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매창공원 동쪽에는 매창과 이중선이 마치 친자매처럼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 있다.   


2017.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