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광주 충장로의 추억

林 山 2017. 1. 23. 17:56

함박눈이 내리던 날 먼 길을 달려 광주광역시 충장로를 찾았다. 충장로를 걸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ROTC 17기 과정을 수료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1979년 3월 1일 지금의 상무시민공원 자리에 있던 대한민국 최대의 군사교육 시설인 상무대(尙武臺)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였다. 광주는 머리에 털 나고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육군 월급날은 매달 10일이다. 3월 10일 육군 소위 임관 후 육군보병학교에서 첫 월급을 받고, 주말을 맞아 첫 외박을 나가게 되었다. 친한 동기생들 몇 명과 첫 외박을 어디로 나갈까 의논하다가 광주에서 젊은이들의 유흥가로 유명하다는 충장로를 가기로 했다.           


충장동의 야경


충장동 골목길 야경


우리는 장교 동정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충장로로 진출했다. 술집을 몇 군데나 들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밤이 늦도록 찬바람이 부는 충장로를 이리저리 활보하면서 쏘다니다가 어묵탕과 정종 대포를 파는 노점에 들렀다. 정종 대포 노점은 충장로 골목길 곳곳에 있었다. 어묵탕을 안주로 따끈하게 데운 정종 한 대포를 마시자 몸이 훈훈해져 왔다. 내 옛 기억은 여기서 필름이 끊어졌다.


충장로 골목길을 서성이면서 혹시나 어묵탕에 정종 대포를 파는 노점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정종 대포 노점은 보이지 않았다. 37, 8년 전쯤 꽃다운 청년 장교가 정종 대포를 홀짝이던 곳이 이 골목 어디쯤이었을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내 추억의 장소는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내 젊은 시절의 추억 한 자락을 영영 잃어버린 것이었다.   


꼼장어구이


눈도 피할 겸 근처 꼼장어집을 찾아 들어갔다. 남도 사투리를 걸지게 쓰는 안주인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꼼장어볶음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안주와 함께 나온 김치콩나물국이 참 얼큰하고 시원했다. 그 옛날의 추억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광주공원의 야경


광주천 야경


광주천 야경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꼼장어집을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은 사람을 낭만적으로 만들고, 시인이 되게 한다.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광주공원 포장마차촌


앵두나무집 차림표


참꼬막


발걸음은 저절로 광주교 건너 광주공원 산자락에 자리잡은 포장마차촌으로 향했다. 밤이 깊었음에도 포장마차촌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포장마차마다 젊은 청춘남녀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앵두나무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포장마차 안은 난로를 피워서 그런지 훈훈했다. 차림표를 보니 꼬막이 있었다. 주인이 벌교 참꼬막이어서 좀 비싸다고 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꼬막과 맥주를 주문했다. 꼬막은 쫀득쫀득하고 찰진 맛이 있었다. 꼬막을 씹고 있으려니 문득 조정래의 장편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외서댁이 떠올랐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민주화운동의 성지 광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2017.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