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창평에서 와신상담하며 선조가 불러주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다. 영의정에서 물러난 서인의 영수 박순 부친의 고향인 전라도 광주로 낙향하다. 정철의 절친 부제학 신응시가 세상을 떠나다.
'차사암운(次思菴韻)'은 정철이 사암 박순의 '자용산귀한강주중작(自龍山歸漢江舟中作)'이란 칠언율시에서 차운하여 쓴 시다. 박순은 서인의 영수였고, 정철은 서인의 행동대장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시에 있어서도 의기투합했다.
自龍山歸漢江舟中作(자용산귀한강주중작)-용산에서 한강 가는 배에서 짓다(박순)
琴書顚倒下龍山(금서전도하용산) 거문고와 책을 끼고 용산에 가서는
一棹飄然倚木蘭(일도표연의목란) 두둥실 목란배 타고 난간에 기대네
霞帶夕暉紅片片(하대석휘홍편편) 놀은 저녁빛을 띠어 조각조각 붉고
雨增秋浪碧漫漫(우증추랑벽만만) 갈물은 비 더하여 아스라이 푸르네
江蘺葉悴騷人怨(강리엽췌소인원) 강리의 잎 파리하니 시인은 슬프고
水蓼花殘宿鷺寒(수료화잔숙로한) 여뀌는 시들어 잠든 백로 춥겠구나
頭白又爲江漢客(두백우위강한객) 흰 머리 이 몸 또한 강한의 객 되어
滿衣霜露泝危灘(만의상로소위탄) 급한 여울 오르니 이슬에 옷이 젖네
'목란(木蘭)'은 목란으로 만든 배를 말한다. 목란꽃은 향기가 매우 좋다. '소(騷)'는 초나라 굴원이 쓴 '이소(離騷)'를 가리킨다. '소인(騷人)'은 시인과 문사를 뜻한다. '강리(江蘺)는 향초다. '리(蘺)'는 천궁, 돌피, 왕골 등의 뜻이 있다. '목란', '강리'는 초나라 굴원이 쓴 '이소(離騷)'에 나오는 시어들이다. '수료화(水蓼花)'는 물여뀌꽃을 말하는데, 옛날 선비들은 여뀌꽃으로 강변의 풍경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鷺)'는 해오라기, 백로다. '강한(江漢)'은 중국 양쯔강(揚子江, 長江)과 한수(漢水)가 합류하는 형초(荊楚) 일대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한강을 가리킨다.
이 무렵에는 박순도 정여립의 논핵을 받고 영의정에서 물러나 부친의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 있던 시기였다. 박순은 자신의 처지를 추위에 떨면서 잠든 해오라기에 감정이입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사암운(次思菴韻)-사암의 시에서 차운하다(정철)
身如病鶴未歸山(신여병학미귀산) 이 몸은 병든 학처럼 산에도 못 가는데
溪老松筠谷老蘭(계로송균곡로란) 시내엔 늙은 송죽 골짝엔 늙은 난초라
漢水秋風愁裏度(한수추풍수리도) 한수의 가을 바람은 근심 속에 지나고
楚雲鄕路夢中漫(초운향로몽중만) 남방의 고향 길은 꿈 속에서 흩어졌네
人情閱盡頭全白(인정열진두전백) 온갖 세파 겪어 머리털은 하얗게 셌고
世味嘗來齒更寒(세미상래치갱한) 세상 참맛을 알게 되니 이 더욱 시려라
遠憶松江舊釣侶(원억송강구조려) 먼 추억 죽록천에서 낚시하던 옛 벗들
月明搖櫓下前灘(월명요로하전탄) 밝은 달 노저어 앞 여울로 내려가나니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고 벼슬에서도 쫓겨나 창평에서 귀양 아닌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고고하지만 병든 학에 비유하고 있는 시다. 정쟁을 하느라 머리털은 하얗게 세고, 이빨마저 시리다. 여기서 고향 길은 담양의 창평을 말한다. 그리하여 죽록천에서 함께 낚시하던 고향의 옛 친구들이 더욱 더 그리운 것이다. 광주에 내려와 있던 박순은 가까운 이웃 고을 담양 창평을 방문해서 정철과 함께 죽록천에서 낚시를 했을 수도 있다. 13살 연상의 박순은 정철의 정치적 '려(侶)', 즉 동반자이자 벗, 형이자 대선배였다.
'한수(漢水)'는 한강(漢江)이라고도 하며, 장강(長江, 양쯔강)의 지류이다. 산시성(陝西省) 남부 닝창(寧强)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흘러 후베이성(湖北省) 샹판(襄樊)에 이른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흘러 우한(武漢)에서 장강으로 들어간다. '초운(楚雲)'은 초나라 하늘의 구름으로 남방, 남쪽 나라를 뜻한다.
성혼은 정철의 시에 화답한 오언절구 '차정송강운(次鄭松江韻)'을 지었다. 판액에는 시제가 '상송강복차(上松江服次)'라고 되어 있다. 이 시는 '우계집(牛溪集)' 1권에 실려 있으며, 뒤에 정철에게 보내는 편지가 함께 실려 있다.
송강정의 '상송강복차(上松江服次)' 편액
차정송강운(次鄭松江韻)-정송강의 시에서 차운하다(성혼)
彼美松江水(피미송강수) 저 아름다운 송강의 물이
秋來徹底淸(추래철저청) 가을 들어 더욱 더 맑으니
湯盤供日沐(탕반공밀목) 탕반에 부어 매일 씻으면
方寸有餘醒(방촌유여성) 마음 또한 깨우침 있겠지
송강수 즉 죽록천의 물로 매일 씻어서 마음을 깨끗이 하겠다는 다짐을 노래한 시다. 판액 끝에 새겨져 있는 기암(畸菴)은 성혼의 시를 집자한 정철의 4남 정홍명의 호다.
'방촌(方寸)'은 마음(心)을 가리킨 것이다. 심장(心臟)은 크기가 사방 한 치(寸)이며, 마음이 심장 속에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성혼도 담양의 정철 우거지와 죽록천을 다녀갔던 모양이다. 성혼은 우계와 송강의 물이 한 물이라고 했을 정도로 정철은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지기였다. 정철이 동인들의 탄핵을 받으면 성혼은 박순, 이이와 함께 적극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변호했다. 정치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철은 수시로 성혼의 자문을 구하곤 했다. 정철은 장남 정기명(鄭起溟)을 성혼의 문하에서 공부시킬 정도로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은 그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시문(詩文)과 주색(酒色), 풍악(風樂)에 두루 능했을 뿐만 아니라 벼슬길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렸던 정철은 창평에 낙향해 있으면서 외롭고 쓸쓸했다. 오언절구 '즉사(卽事)', '추일작(秋日作)'에 정철의 그러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즉사(卽事)-즉흥시(정철)
萬竹鳴寒雨(만죽명한우) 찬 비 후두둑 대숲 울릴 제
迢迢江漢心(초초강한심) 머언 강한으로 가고픈 마음
幽人自多事(유인자다사) 은자는 스스로 일도 많아서
中夜獨橫琴(중야독횡금) 한밤에 홀로 거문고 타노라
秋日作(추일작)-가을 어느 날에(정철)
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에 비 내려 밤새 대숲 울리고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 풀벌레 소리 더욱 크게 들리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 어찌 멈추게 하랴
白髮不禁長(백발부금장) 길어지는 흰 머리 막을 수 없네
'즉사(卽事)'에서는 한밤에 홀로 거문고를 타는 정경에서 정철의 고독과 비애가 느껴진다. '秋日作(추일작)'에서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드러나 있다.
찾아오는 이도 없어 10일 동안이나 문도 열지 않고 지내던 정철에게 드디어 손님이 찾아온다. 얼마나 반가왔을까! 오언절구 '사사상공내방(謝使相公來訪)' 4수에 그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사사상공래방(謝使相公來訪)-사상공의 방문에 감사하며(정철)
老去病轉嬰(노거병전영) 몸이 늙으니 병은 더욱 깊어져
山中久不出(산중구불출) 산속에서 오래 나오지 않았지
佳期歲已闌(가기세이란) 기약한 세월은 이미 늦었나니
竹裏愁寒日(죽리수한일) 죽림 속에서 추운 날 시름하네
古峽烟霞滿(고협연하만) 옛 골짜기엔 안개 놀 가득한데
空庭鳥雀喧(공정조작훤) 텅 빈 뜰엔 참새들만 지저귀네
今朝使華至(금조사화지) 오늘 아침 사신 행차 이르러서
童子早開門(동자조개문) 동자는 아침 일찍 문 열었다네
落日歸鴉亂(낙일귀아란) 해 지니 까마귀 어지러이 날고
秋天古木昏(추천고목혼) 가을 하늘 고목에 어둠 깃드네
山中無過客(산중무과객) 산 속이라 지나는 사람 없으니
十日不開門(십일불개문) 열흘 동안 문도 열지 않았다네
天外故人來(천외고인래) 하늘 밖 멀리서 옛 벗이 왔나니
他鄕客病久(타향객병구) 타향 객 되어 병든 지 오래였네
山妻有好顔(산처유호안) 집사람도 기뻐하여 좋은 얼굴로
瓮裏開新酒(옹리개신주) 새 술 익었나 항아리 열어 보네
궁벽한 산중에 옛 벗이 사신으로 왔으니 그 반가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적 화자의 아내도 덩달아 기쁜 마음이다. 귀한 손님이 왔으니 주안상이 빠질 수 없다. 역시 애주가 정철의 시답다.
'사상(使相)'은 '사(使)'자가 들어가는 벼슬과 '상(相)'자가 들어가는 벼슬을 한 사람을 부르는 명칭이다. 대감과 비슷한 말이다. '사화(使華)'는 사신을 말한다.
창평에 머물면서 정철은 선조가 불러주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자신을 버린 선조를 애타게 그리는 마음은 점점 더 깊어갔다. 정철은 버림받은 쓸쓸한 심경을 '축요루(祝堯樓)'와 '야좌문견(夜坐聞鵑)'에 담아 읊었다.
축요루(祝堯樓) - 정철
去國一千里(거국일천리) 한양을 떠나 천 리나 떨어진 곳
天涯又見秋(천애우견추) 머나먼 곳에서 또 가을을 맞네
孤臣已白髮(고신이백발) 머리털 허옇게 된 외로운 신하
獨上祝堯樓(독상축요루) 홀로 축요루 올라 임을 그리네
정철이 담양읍성 안 객사 동쪽에 있던 축요루에 올라, 멀리 창평에 떨어져 있어 선조를 가까이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회를 읊은 시다. 선조에게 버림받아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정철의 모습이 그려지는 시다. 축요루는 제2차 조일전쟁(정유재란) 때 불에 타서 없어졌다. '축요(祝堯)'는 당요(唐堯) 때 화(華)의 봉인(封人)이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 등 세 가지 일을 요임금에게 빌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임금을 배알하고 축수하는 일을 비유해서 '축요'라고 한다. '고신(孤臣)'은 임금에게 버림받아 외로운 신하다.
야좌문견(夜坐聞鵑)-밤에 앉아서 두견새 소리를 듣다(정철)
掖垣南畔樹蒼蒼(액원남반수창창) 궁궐에서 먼 남쪽이라 수목도 무성한데
魂夢迢迢上玉堂(혼몽초초상옥당) 꿈 속에서도 혼은 멀리 옥당에 올라가네
杜宇一聲山竹裂(두우일성산죽열) 두견새 우는 소리에 산죽도 짜개지는데
孤臣白髮此時長(고신백발차시장) 외로운 신하의 백발은 이 밤도 길어지네
머나먼 남쪽 땅 창평이라 꿈 속에서도 혼은 임금을 찾아 궁궐로 올라가고, 두견새가 되어 산죽이 쪼개질 정도로 통곡을 한다. 임금에게 버림받은 심정을 애절하게 읊은 시다. 선조의 부름을 학수고대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액원(掖垣)은 궁궐의 정전(正殿) 곁 담, '옥당(玉堂)'은 궁궐을 말한다. '두우(杜宇)'는 촉(蜀)나라 왕인 망제(望帝)의 이름이다. 망제는 물에 빠져 죽을 뻔한 별령(鼈靈)을 살려주었다. 별령은 천하 절색인 딸을 망제에게 바쳐 환심을 샀다. 망제는 별령에게 정승 벼슬을 주고 나랏일을 맡겼으며, 자신은 그의 딸에 빠진 채 세월을 보냈다. 별령은 결국 대신들과 결탁해서 왕위를 빼앗고 두우를 국외로 추방했다. 졸지에 나라와 왕위를 한꺼번에 잃은 두우는 원통함을 못 이겨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 두견새는 밤마다 촉나라를 못 잊어 '불여귀(不如歸, 돌아감만 못하다. 돌아가고 싶다)'를 외치며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도록 울었다. 이후 소쩍새를 불여귀, 귀촉도(歸蜀途), 망제혼(望帝魂)이라는 별칭으로도 부른다. 이 시에서 정철은 자신의 신세를 두우에 비유했다.
11월 26일(음력 11월 11일)은 선조의 생일이었다. 임금의 생일에 신하들은 궁궐에 들어가 하례(賀禮) 인사를 올려야 한다. 선조에게 버림받은 정철은 하례 인사도 못 올리고 천 리 길 먼 남쪽 창평에서 시름겨워 누워 있다. 정철의 그런 서글픈 심정은 '촌거치탄일감회(村居値誕日感懷)'에 담겨 있다.
촌거치탄일감회(村居値誕日感懷)-시골에 살면서 임금의 탄신을 맞은 감회(정철)
竹日亭亭下(죽일정정하) 대나무에 햇살은 곱게 곱게 내려앉고
山飆激激呼(산표격격호) 산바람은 세차게 세차게 불어오누나
今辰會慶節(금신회경절) 오늘은 임금님이 태어나신 날이거늘
愁臥老臣孤(수와노신고) 늙은 신하 외로이 시름겨워 누웠나니
11월 말은 겨울이니 대나무에 햇살이 곱게 내려앉아도 창평의 산바람은 세차게 불어온다. 임금의 생일에 하례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시름겨워 누워 있으니 산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외롭고 쓸쓸한 정철의 모습이 그려지는 시다.
같은 해 백인걸의 문인으로 이이와 성혼의 절친이자 정철과도 친하게 지냈던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신응시(辛應時)가 죽었다. 정철은 '만우(挽友)'를 지어 신응시의 죽음을 애도했다. 신응시의 자는 군망(君望)이다.
만우(挽友) - 벗을 위한 만시(정철)
人說人間勝地下(인설인간승지하) 사람들은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지만
我言地下勝人間(아언지하승인간) 내 생각에는 저승이 이승보다 낫다네
左携栗谷右君望(좌휴율곡우군망) 왼쪽에 율곡 오른쪽에 군망의 손잡고
半夜松風臥碧山(반야송풍와벽산) 한밤중 솔바람 부는 벽산에 누었으면
창평에서 외롭게 지내던 정철은 1584년 2월 27일 이이의 죽음에 이어 1년 뒤 절친 신응시마저 죽자 몹시 슬펐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절친 이이와 신응시가 죽어서 저승에 가 있다. 정철도 저승에 가서 왼손으로는 이이, 오른손으로는 신응시의 손을 잡고 누워 있고 싶다는 것이다. 벗을 그리는 애절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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