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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Ludwig van Beethoven)-Symphonie No.3 in E flat major 'Eroica' Op.55(교향곡 제3번 '영웅')

林 山 2017. 7. 25. 09:42

베토벤(Beethoven)-Symphonie No.3 in E flat major 'Eroica' Op.55(교향곡 제3번 '영웅')


베토벤(Beethoven)-Symphonie No.3 in E flat major 'Eroica' Op.55(교향곡 제3번 '영웅')


<교향곡 3번 ‘영웅’(Symphony no.3 in E♭Major, Op.55 “Eroica”)>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본격적으로 창조력을 분출시키기 시작하던 1803~1804년에 작곡해서 로프코비츠 후작에게 헌정했다. 초연은 1805년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베토벤이 고전주의 시대의 양식을 완성하고 나아가 시대의 관습을 초월하는 음악적 혁신이 동시에 드러나는 작품이다. 나폴레옹에 찬사를 보내기 위해 원래는 이 곡에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스스로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에 실망하여 그 이름을 지우고 ‘영웅 교향곡’이라 명명했다. 구성은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2악장 장송행진곡: 아다지오 아사이(funeral march: Adagio assai),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Scherzo, Allegro vivace-Trio),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몰토(Finale: Allegro molto) 등 4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연주시간만 약 5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편성은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호른3, 트럼펫2, 팀파니, 현5부로 되어 있다. 


1803년에 작곡에 착수한 〈교향곡 3번〉은 베토벤의 본격적인 창조력의 분출 시기를 알리는 출발점이자 대표작이다. 소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사건(1802년) 이후에, 베토벤은 당대에 표준으로 여겨졌던 고전주의 시대의 양식을 완성하고 확립함과 동시에 시대의 관습을 초월하는 음악의 혁신을 실험해나갔고, 〈교향곡 3번〉은 그런 베토벤의 독자성을 표출하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었다.


우선 편성에서부터 그런 혁신을 발견할 수 있는데, 베토벤은 전작인 1, 2번 교향곡에서처럼 만하임 악파의 관현악 편성을 바탕으로 하되 〈교향곡 3번〉에서는 클라리넷을 오케스트라에 편성하고 혼과 트럼펫을 추가로 편성하는 과감함을 시도했다. 특히 호른을 3대나 편성한 것은 당시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변칙이었는데, 3악장의 ‘스케르초’ 중 트리오 부분에서 변칙적인 세 호른이 만들어내는 호쾌한 팡파르를 들을 수 있다. 또 악기의 종류나 수를 추가한 것뿐 아니라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전체에서 각 악기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사운드와 기교를 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에로이카(영웅)’라는 부제에 걸맞은 웅장하고 역동적인 4악장의 드라마가 완성됐다.


베토벤이 처음 의도했던 이 교향곡의 제목은 ‘보나파르트’였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공화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라고 여겼고, 그에 대한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 존경심을 은밀하게 드러낸 작품이 1801년에 작곡한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었다면, 〈교향곡 3번〉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찬사를 표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베토벤은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표지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훗날 수정본에 첨가된 악보 표지에는 “보나파르트” 부분은 거칠게 지워져 있는 대신, “신포니아 에로이카 – 한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라고 수정된 제목이 남아있다.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가 아닌 그들과 함께 시대적 모순을 변혁해가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을 꿈꿨던 베토벤의 정치적 이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이 표지는 사본 악보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 소장돼 있다.


〈교향곡 3번〉의 각 악장에서도 ‘영웅’의 존재를 묘사하거나 염두에 두고 작곡한 듯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E♭의 꽉 찬 화음을 쾅쾅 두 번 울리며 시작하는 도입 부분과, 웅장한 느낌을 강조한 주제 선율은 〈교향곡 3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또 베토벤이 자신의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선율을 주제로 발전시킨 4악장의 피날레는 2악장의 장송행진곡으로 영웅의 죽음을 암시했던 베토벤이 영웅의 부활을 암시한 부분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2악장의 장송행진곡에 대해서는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죽음을 대비해 미리 써 놓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805년 빈에서의 초연은 기대 이하의 혹평을 받았다. 청중들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때론 광폭하게 들리는 작품의 무게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교향곡 3번의 연주 시간은 메트로놈 박자를 기준으로 52분에 달한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교향곡의 2-3배 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초연 당시의 혹평은 당연하다. 〈교향곡 3번〉이 초연된 후 한 평론가는 “끝없이 길다. 이 곡은 전혀 압축되지 않았다. 이 곡은 곧 쓸모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같은 곡에 관해 후대의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영웅’ 교향곡〉은 착상과 그 처리에 있어 힘에 넘쳐 있고, 그 양식에 있어 균질적인 숭고성을 지녔으며 그 형식에 있어 극히 시적이라는 점에서 드높은 영감으로 이룩된 다른 작품들과 비견할 만하다. 이것을 들을 때 나는 어떤 깊은 슬픔에 잠기었다”고 했다. 지휘자에 따라서 〈교향곡 3번〉은 본래 베토벤이 지정해놓은 악기편성보다 더 확장해서 연주하기도 한다.(클래식 백과)


2017.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