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클래식에서 헤비메탈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Symphonie No.5 ‘Schicksal’ Op.67(교향곡 제5번 '운명')

林 山 2017. 7. 26. 10:04

베토벤(Beethoven)-Symphonie No.5 ‘Schicksal’ Op.67(교향곡 제5번 '운명')


베토벤(Beethoven)-Symphonie No.5 ‘Schicksal’ Op.67(교향곡 제5번 '운명')


베토벤(Beethoven)-Symphonie No.5 ‘Schicksal’ Op.67(교향곡 제5번 '운명')


<교향곡 5번 ‘운명’(Symphony No.5 in c minor Op.68)>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1807~1808년에 작곡해서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초연은 1808년 12월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운명 교향곡’이라고 잘 알려진 이 교향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모든 음악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서양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음악이 된 작품이다. 네 음으로 이루어진 유명한 주제 동기로 운명의 문을 연 이 작품은 4악장 승리의 찬가로 마무리되면서, 청력상실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이 위대한 불멸의 작품을 완성해낸 베토벤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다.편성은 피콜로,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콘트라베이스, 호른2, 트럼펫2, 트롬본3, 팀파니, 현5부로 되어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이 그렇게도 엄청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아마도 이 곡을 시작하는 네 음의 모티브가 어느 누가 들어도 귀에 쏙들어올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곡이 작곡가 베토벤 자신의 삶과 항상 결부되어 해석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곡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이 불멸의 작품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곡이 작곡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투쟁, 그리고 그 투쟁에서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은 이 곡이 초연될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이어져 내려오는 베토벤의 신화의 주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곡과 베토벤의 ‘운명’이 결부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의 입에서 직접 나온 이야기라기보다 그의 제자이자 베토벤의 사후 베토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인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쉰들러의 증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그가 전해주는 베토벤 관련 일화들의 많은 부분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왔다. 사실 쉰들러는 오늘날의 ‘베토벤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 대해 쉰들러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는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베토벤이 이 곡에 대해 설명하기를, 이 곡의 오프닝 모티브가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So pocht das Schicksal an die Pforte)이라고 묘사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베토벤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쉰들러의 이야기는 이 곡의 오프닝 모티브에 대한 매우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해준다. 사실 이 모티브는 고전 교향곡에 있어서 매우 관습적이지 않은 모티브이기도 하고, 서주 없이 곧바로 시작되는 모티브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한편, 이 시작부분과 관련해, 쉰들러와 베토벤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적, 역사적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많은 감상자들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이 오프닝의 시그널이 항상 다르게 들린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베토벤은 자신이 30대 초반이었던 1802년경부터 자신의 청력 상실을 인정했고, 자신의 장애가 최대한 음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타협하는 일련의 길고 긴 과정들을 시작한다. 그 결과 청력 상실은 창작의 감퇴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베토벤을 만들어 주었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고, 그의 사교 생활 특히 여성들과의 사회적 관계도 영원히 회복될 수 없었다. 자신의 후천적 장애에 맞서는 그의 태도는 훨씬 더 전투적이었다.


청각상실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온 첫 번째 작품은 〈교향곡 3번 ‘영웅’〉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베토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거의 초인적인 창작력은 이후 10년간 베토벤의 소위 ‘영웅적 작품들’로 이어졌다. 베토벤 학자들은 이 시기를 베토벤의 ‘영웅적 시기’(heroic period)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의 음악적 규모의 장대함은 물론, 곡 매무새의 아름다움과 기술적인 장인정신, 우주적인 개념들, 표현과 형식에 있어서의 급진적인 자유, 이 모든 것들은 베토벤의 자신과의 전투 과정에서 쟁취한 것들이자 음악사의 새로운 길이기도 했다.


〈교향곡 5번〉을 시작하는 유명한 네 음의 모티브는 1악장을 듣는 내내 곡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단순히 모티브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곡이 계속 진행되고 4악장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된다. 한편 2악장은 매우 기술적으로, 또한 신기한 방식으로 베토벤 특유의 칸틸레나 악장에 군악대적인 트럼펫 사운드를 혼합한다. 3악장 역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3악장은 저항적이지도, 그렇다고 승리의 찬가도 아니다. 유머러스함과 괴기스러움이 공존하는 듯한 3악장으로부터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 이르러 승리의 찬가가 만들어지게 된다(이 두 악장은 중간 휴지 없이 이어진다). 4악장에 이르러 트롬본에 의해 ‘선포’되는 듯한 우주의 새로운 질서는 C장조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무게를 지고, 가장 높은 음역에서는 피콜로, 가장 낮은 음역에서는 콘트라바순까지 동원된다. 우리는 C장조의 도달과 함께 하이든이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에서 C장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떠올리면서 이 곡의 우주적인 스케일을 느끼게 된다.(클래식 백과)


2017.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