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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 사구(鳥取砂丘) 모래 미술관(砂の美術館)을 찾아서 1

林 山 2019. 3. 22. 12:51

돗토리 사구센터 전망언덕(砂丘センター見晴らしの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돗토리 사구(Tottori Sand Dunes, 鳥取砂丘) 남동쪽에 붙어 있는 모래 미술관(砂の美術館)으로 향했다. 모래 미술관은 지방도 유야마-돗토리 선에서 지방도 돗토리 사큐-호소카와 선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다. 사구센터 전망언덕에서 걸어서 내려와도 금방 도착한다. 차량은 돗토리 사구 정보관(鳥取砂丘情報館) 주차장에 세워두면 된다. 


모래 미술관 입구


2006년 11월 18일 돗토리 사구에 모래를 소재로 한 조각 작품(砂像)을 전시하는 모래 미술관이 개관했다. 모래 미술관의 총감독은 2009년 '뉴스 위크'가 뽑은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에 선정되는 등 일본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모래 조각가 겸 프로듀서 차엔 가쓰히코(茶圓勝彦)다. 모래 미술관에서는 차엔 가쓰히코의 지휘 아래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유명 조각가들이 창조한 세계 최고 수준의 모래 조각을 선보이고 있다. 


차엔 가쓰히코(茶圓勝彦)


모래 미술관은 '모래로 세계 여행'을 기본 개념으로 매년 주제를 바꾸어 스토리가 있는 모래 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가 끝나면 모래 조각들을 가차없이 허물어 버린다. 작품들은 모래로 다시 돌아가 다음 작품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모래는 여기서 덧없는 순환을 반복한다. 모래 조각들은 모래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기간 동안만 존재한다. 거기에는 허망한 아름다움이 있다. 영원히 남지 않는 아름다운 모래 조각이기에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제1기부터 제4기까지는 지붕이 없는 전시장에서 야외 전시를 했다. 제1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편', 제2기는 '세계 유산 - 아시아 편', 제3기는 '모래로 세계 여행 - 오스트리아 편', 제4기는 '모래로 세계 여행 - 아프리카 편'을 주제로 했다. 제3기는 임시로 설치한 큰 텐트에서 전시를 가졌다.


모래 미술관


2012년 4월 돗토리 사구에 세계 최초로 모래 조각을 위한 건물을 세우고 모래 미술관을 개관했다. 실내에서의 첫 전시는 제5기 '모래로 세계 여행 - 영국 편'이었다. 이후 제6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동남아시아 편', 제7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러시아 편', 제8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독일 편', 제9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남미 편', 제10기 '모래로 세계 여행 - 아메리카 편'을 거쳐 2018년 4월 14일에는 제11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북유럽 편(砂で世界旅行 - 北欧編)' 전시회가 열렸다. 제11기 전시 기간은 2019년 1월 6일까지다. 


2019년 1월 7일부터 4월 12일까지는 모래 그림 제작과 미술관 정비 등을 위해 휴관한다. 제12기 '모래로 세계여행 - 남아시아 편(砂で世界旅行 - 南アジア編)'은 2019년 4월 13일부터 2020년 1월 5일까지 열린다. 입장료는 일반인 500엔, 고등학생까지는 200엔이다.  


제11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북유럽 편'  참여 작가들


전시장 입구에는 총감독 차엔 가쓰히코 등 제11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북유럽 편' 제작에 참여한 20명의 모래 예술가들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앞줄은 왼쪽부터 일리야 필리몬체프(Ilya Filimontsev, 러시아), 수잔느 뤼슬러(Susanne Ruseler, 네덜란드), 아그네스 루드지테-키릴로바(Agnese Rudzite-Kirillova, 라트비아), 캐런 프랄리치(Karen Fralich, 캐나다), 질 해리스(Jill Harris, 미국), 차엔 가쓰히코, 마리엘 히셀(Marielle Heessels, 네덜란드), 메리네이즈 보르가르(Melineige Beauregard, 캐나다), 수 맥그루(Sue Mcgrew, 미국), 레오나르도 우골리니(Leonardo Ugolini, 이태리), 빠벨 밀니코프(Pavel Mylnikov, 러시아) 등이다. 뒷줄은 왼쪽부터 앙게랑 다비드(Enguerrand David, 벨기에), 안드리우스 페트쿠스(Andrius Petkus, 리투아니아), 데이빗 듀참(David Ducharme, 캐나다), 케빈 크로포드(Kevin Crawford, 호주), 기-올리비에 듀보(Guy-Olivier Deveau, 캐나다), 토머스 코트(Thomas Koet, 미국), 크리스츠 자린쉬(Krists Zarins, 라트비아), 드미트리 클리멘코(Dmitrii Klimenko, 러시아), 댄 벨처(Dan Belcher, 미국) 등이다.


모래 미술관 전시장 전경


실내체육관 정도 넓이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우선 모래 조각 작품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교하고도 섬세하게 조각된 모래 작품들이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모래 조각 작품들로부터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모래 미술관 전시장 전경


이토록 웅장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2019년 1월 6일까지만 전시되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산산이 부숴져 모래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좀 아쉽고 안타까왔다. 하지만 다음에 더 좋은 작품으로 환생하리라는 생각이 들자 다소 위안이 되었다. 2019년 1월 7일부터 이들 작품들은 이제 사진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댄 벨처(Dan Belcher, 미국) 작 '바이킹(Viking)'


'바이킹(Viking)'은 미국의 댄 벨처(Dan Belcher)가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바이킹 전사와 그들이 타고 다녔던 배 드라카르(Drakkars, 롱쉽)를 형상화했다. 댄 벨처는 25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모래 조각을 제작해 왔다. 그는 뛰어난 도시계획가이자 조경가이기도 하다. 또 그는 미주리(Missouri) 주 웬즈빌(Wentzville)에 있는 양조장의 설립 파트너로서 모래 조각과 맥주 양조를 병행하고 있다. 


댄 벨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 머틀 비치(Myrtle Beach)에 2008년 1월 10일 머틀 비치 컨벤션 센터(Myrtle Beach Convention Center)에서 열린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토론회 참석자들의 얼굴을 모래 조각으로 형상화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자들은 전 테네시 주 상원의원 프레드 톰슨(Fred Thompson),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미트 롬니(Mitt Romney), 전 뉴욕 시장 루디 줄리아니(Rudi Giuliani), 전 아칸소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ee), 아리조나 주 상원의원 존 매케인(John McCain), 텍사스 주 하원의원 론 폴(Ron Paul) 등이었다. 그는 또 2016년 매사추세츠 주 리비어 비치(Revere Beach)에서 열린 리비어 비치 모래 축제(Revere Beach Sand Festival)에 참가해서 단체전 대상을 받은 바 있다.   


바이킹(노르웨이어 Vikinger, 스웨덴어 Vikingar)은 고대 노르드어(Old Norse) 비킹르(víkingr)에서 유래한 말이다. 비킹르는 '작은 만의 거주자',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카테가트 해협(Kattegat strait) 비켄(Viken) 지역의 거주자라는 뜻이다. 게르만족(Germane) 중 노르드인(Norsemen) 또는 북게르만족(north Germanic tribes)으로 노르드어를 사용하며, 8세기 말에서 11세기 말까지 롱쉽((longship, 바이킹 배)을 타고 본거지인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북유럽과 중앙유럽까지 진출하여 교역과 약탈을 일삼은 해양 민족을 일컬어 바이킹이라고 부른다. 당시 바이킹은 프랑크 왕국(프랑스어 Royaumes francs, 영어 Francia)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헤데비(Hedeby) 같은 큰 도시를 거점으로 무역 활동을 전개했다.  


노르드인들의 군사적, 상업적 성장과 인구 팽창은 중세 스칸디나비아뿐만 아니라 발트 해(Baltic Sea)를 넘어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 아일랜드 섬(얼스터 스코트어 Airlann), 프랑스, 키예프 루시(Kievan Rus'), 시칠리아 등 광범한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789년에는 잉글랜드(England) 남해의 포틀랜드 섬(Isle of Portland)을 습격했고, 793년에는 잉글랜드 동해안의 린디스판(Lindisfarne)에 있는 수도원을 약탈했다. 865년 전설적인 노르드인 영웅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 Lodbrok)의 아들들인 헬프덴(Healfdene), 인바에르(Inwaer), 후바(Hubba)가 이끄는 군대가 고대왕국 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 노섬브리아(Northumbria)를 정복하고 머시아(Mercia) 왕국의 영토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잉글랜드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해안도 바이킹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잉글랜드 영토의 태반은 바이킹의 일파인 데인족(Danes)이 지배했다. 잉글랜드 남부 웨식스(Wessex)의 앨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은 계속 저항하다가 878년 바이킹과 휴전협정을 맺고, 886년에는 평화조약을 맺어 데인로(Danelaw)를 인정했다. 데인로는 데인족이 식민지로 삼은 잉글랜드 북부와 중부, 동부 지역을 말한다. 892~899년 앨프레드 대왕이 바이킹 공격을 물리친 뒤, 그의 아들 대(大) 에드워드(Edward the Elder)는 그 여세를 몰아 924년까지 데인로 대부분을 정복했다. 954년에는 에드레드(Edred)가 노섬브리아의 스칸디나비아 바이킹 세력을 분쇄했다. 


하지만 바이킹은 980년 잉글랜드를 다시 습격했고, 잉글랜드는 결국 크누트(스웨덴어 Knut, 덴마크어 Knud)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042년에 이르러 평화적으로 잉글랜드 토착 왕조가 복원되었다. 윌리엄 1세(William I) 재위 중 크누트 2세(Knut II)는 몇 차례 침공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것을 끝으로 바이킹의 위협은 사라졌다. 


바이킹은 795년 레크루 섬을 약탈하면서 아일랜드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토착민들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바이킹은 더블린(Dublin)과 리머릭(Limerick)워터퍼드(Waterford) 등지에 왕국을 건설했다. 더블린의 강대한 바이킹 왕들은 한때 해외원정을 감행하기도 했으며, 그들 중 몇몇은 10세기 초 더블린과 잉글랜드 북동부의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를 동시에 통치하기도 했다. 바이킹은 오크니 백작(Duke 0f Orkney)과 토착민의 지원을 받아 아일랜드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1014년 바이킹은 클론타프(Clontarf) 전투에서 무참한 패배를 당하면서 아일랜드의 통합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12세기 잉글랜드인들이 아일랜드를 침공했을 때도 더블린, 워터퍼드, 리머릭, 웩스퍼드(Wexford), 코크(Cork)는 여전히 바이킹이 지배하고 있었다.   


9세기 초 바이킹은 롱쉽을 타고 프랑스의 론 강(Rhone River)이나 센 강(Seine River)을 비롯한 내륙 수로를 따라 공격을 감행했다. 10세기 프랑스 샤를 3세(Charles III) 시대에는 노르웨이 신 바이킹 롤로(Rollo)와 덴마크 출신 베른하르트(Bernhard)가 이끄는 노르만족(Norman)이 파리로부터 흐르는 센 강 하류의 양안에 정착하였고, 이 정착촌은 노르망디(Normandie) 공작령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이 지역의 지명은 노르망디가 되었다. 


바이킹은 진보한 항해술로 스페인의 강을 거슬러 올라갔으며, 발트 해 연안,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을 장악하였다. 이들은 또 스칸디나비아에서 멀리 떨어진 지중해 연안과 동쪽의 카스피 해(Caspian Sea),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한 적도 있었다. 이후 노르드인들은 북서유럽, 우크라이나, 러시아, 북대서양 도서, 멀리는 북아메리카 북동해안 등 전세계 각지에 정착했다.


바이킹이 건설한 도시로는 잉글랜드의 요르비크(Jórvík, 현 요크), 우크라이나의 키이우(Kyiv, 현 키예프),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이 있다. 덴마크 출신 바이킹들은 네덜란드 북부의 프리슬란트(Friesland), 프랑스, 잉글랜드 남쪽에 진출했다. 1013년~1016년에는 크누트 대왕(Cnut the Great)이 잉글랜드와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위에 있었다. 


스웨덴 출신 바이킹들은 동쪽 발트족(Balts)과 슬라브족(Slav)의 땅, 오늘날의 발트 해 연안,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 진출했다. 바랑고이족(Varangian)의 류리크(Ryurik)는 최초의 슬라브 국가 노브고로트(Novgorod) 공국을 건설하였다. 류리크의 친척 올레크(Oleg)는 키예프 대공국(Kievan Rus)을 세웠다. 러시아 군주 가문의 진짜 시조는 올레크의 후계자로서 류리크의 아들로 보이는 이고리(Igor)로 여겨진다. 


러시아 지역에 진출한 바이킹은 빠르게 슬라브족에 흡수되었다. 이들이 독립적인 민족으로 존재한 것은 길어야 1050년까지였다. 러시아인을 뜻하는 '루스(Rus)'라는 명칭 속에 바이킹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러시아 원초 연대기(Primary Chronicle)'의 912, 945년 항목에는 바이킹과 그리스인 사이에 체결한 통상조약 2가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통상조약 서명자는 바이킹계 이름이다. '루스'는 무역상인임이 분명하다.  


스웨덴 출신 바이킹들은 이 지역의 강을 따라 흑해(Black Sea),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le, 현 이스탄불), 비잔티움 제국(Byzantine Empire)까지 진출하였다. 11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진출한 바이킹은 비잔틴 황제의 바랴크인(Варяг) 근위대로 복무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은 주로 북서쪽과 서쪽으로 대서양의 페로 제도(Faeroe Islands), 셰틀랜드 제도(Shetland Islands), 오크니 제도(Orkney Islands)헤브리디스 제도(Hebrides), 맨 섬(Isle of Man), 아일랜드, 영국 북부와 아이슬란드에 진출하여 정착촌을 건설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인도거나 거주민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900년경부터 바이킹 정착민들은 아이슬란드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붉은 에이리크(Erik the Red)는 그린란드를 발견하여 정착이 이루어졌다.


1000년경에는 비아르니 헤리올프손(Bjarni Herjólfsson)이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빈란드(Vinland)라고 명명했다. 붉은 에이리크의 아들 레이프 에이릭손(Leif Erikson)과 토르핀 칼세프니(Þórfinnur Karlsefni)가 그린란드로부터 북미 정착을 시도하였다. 캐나다 남동부 뉴펀들랜드(Newfoundland) 섬 북쪽 반도에 있는 랑스 오 메도즈(L'Anse aux Meadows)에서 소규모 정착촌이 시작되었지만, 원주민들과의 충돌과 기후 변화로 몇 세대만에 중단되었다. 유엔은 랑스 오 메도즈의 고고학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처럼 바이킹은 9~11세기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습격하고, 식민지로 만들어 유럽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북반구가 수백 년 동안 유난히 추워지게 된 소빙하기(Little Ice Age)로 접어들면서 바이킹의 해외 진출은 점차 쇠퇴하였다. 그린란드의 식민지는 몇백 년만에 몰락했고, 바이킹의 서부 진출도 중단되었으며, 바이킹의 고향 스칸디나비아도 타격을 받았다. 


오늘날 바이킹이 용감하고 호전적인 해양 전사로 알려진 것은 당시의 정치적 이유와 관련이 깊다.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08년 러시아는 스웨덴이 지배하고 있던 핀란드를 점령했다. 이에 스웨덴은 핀란드를 수복할 자신감을 북돋우기 위해 용감하고 영화로운 과거 역사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다. 용맹한 바이킹 역사 창조에 큰 역할을 한 단체는 예타회(Geatish Society)였다. 에리크 구스타프 예이예르(Erik Gustaf Geijer)의 서사시 '바이킹(The Viking)'으로부터 바이킹의 전설은 시작되었다. 에사이아스 텡네르(Esaias Tegnér)는 아이슬란드 사가(Saga)에 바탕을 둔 연작시 '프리티오프 사가(Frithiofs Saga)'를 근대적으로 개작해 북유럽과 영국, 독일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사가는 중세 북유럽 신화의 영웅담이다. '프리티오프 사가'는 바이킹에 대한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북유럽 신화 - 니벨룽의 전설'


그리스 신화(Greek mythology)와 더불어 유럽 신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북유럽 신화(Nordic myths)는 기독교가 북유럽에 전파되기 전 게르만족이 거주하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덴마크를 중심으로 아이슬란드, 독일 등 광범위한 지역에 퍼진 신화 체계다. 북유럽 신화를 게르만 신화(Germanic mythology)라고도 한다. 게르만 신화는 태고의 인도유럽조어(Proto-Indo-European language, PIE) 사용자들의 공통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족의 문화와 풍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북유럽 신화는 800년~1200년대 작자 미상의 시 40여 편을 모은 '운문 에다(Poetic Edda, 고 에다)'와 13세기 아이슬란드의 스노리 스투를루손(Snori Sturluson)이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쓴 '산문 에다(Prose Edda, 신 에다, 스노리 에다)'가 주요 출전이다. 


'고(古) 에다'는 13세기 후반에 기록되었다. 37개의 장시(長詩) 중 16개는 게르만족의 신에 관한 내용이며, 나머지는 시구르드(Sigurðr) 등 영웅에 관한 내용이다. 시구르드는 '볼숭 일족의 사가(Vǫlsunga saga)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중세 고지(高地) 독일어 서사시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의 지크프리트(Siegfried)에 해당한다. 스노리의 에다보다 기록 시기가 늦지만 내용 자체는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고 에다'라고 부른다. 


'고 에다' 중 신화(신들의 노래)는 '예언녀의 계시(뵐루스파 Völuspa)', '그림니르의 노래(그림니스말 Grimnismal)', '바프스루드니르의 노래(바프스루드니스말 Vafþrudhnismal)', '오딘(Óðinn)의 루네 마법(흐라프나갈드르 Hrafnagaldr)', '벡탐의 노래 혹은 발드르의 꿈(벡탐스크비다 Vegtamskvidha, 또는 발드르스 드라우마르 Baldrs draumar)', '지존자의 노래(하바말 Havamal)', '하르바르드의 노래(하르바르드스리오드 Harbardsliod)', '히미르의 노래(히미스크비다 Hymiskvida)', '에기르의 술잔치(외기스드레카 Oegisdrecka)', '트림의 노래 혹은 망치 찾아오기(트림스크비다 Thrymskvida, 혹은 하마르스헤임트 Hamarsheimt)', '알비스의 노래(알비스말 Alvismal)', '스키르니르의 여행(스키르니스푀르 Skirnisför)', '그로아의 소생(그로갈드르 Grogaldr)', '피욜스비드르의 노래(피욜스빈스말 Fiölsvinnsmal)', '리그르의 노래(리그스말 Rigsmal)', '힌들라의 노래(힌들루리오드 Hyndluliod)' 등이다. 


'고 에다' 중 영웅전설(영웅들의 노래)은 '뵐룬두르의 노래(뵐룬다르크비다 Völundarkvida)', '효르바르드의 아들, 헬기의 노래(헬가크비다 효르바르드소나르 Helgakvida Hjörvardssonar)', '훈딩을 죽인 헬기의 노래 제1곡(헬가크비다 훈딩스바나 퓌리 Helgakvida Hundingsbana fyrri)', '훈딩을 죽인 헬기의 노래 제2곡(헬가크비다 훈딩스바나 외누르 Helgakvida Hundingsbana önnur)', '신표틀리의 종말(신표틀라로크 Sinfiötlalok)', '파프니르를 죽인 시구르드의 노래 제1곡 혹은 그리피르의 예언. 첫 번째 시구르드 노래(시구르다르크비다 파프니스바나 퓌르스타 에드하그리피스파 Sigurdarkvida Fafnisbana fyrsta edha Gripisspa)', '파프니르를 죽인 시구르드의 노래 제2곡. 두 번째 시구르드 노래(시구르다르크비다 파프니스바나 외누르 Sigurdarkvida Fafnisbana önnur)', '파프니르의 노래(파프니스말 Fafnismal)', '시그르드리파의 노래(시그르드리포말 Sigrdrifomal)', '브륀힐드의 노래 단편(브로트 아프 브륀힐다르크비다 Brot af Brynhildarkvida)', '파프니르를 죽인 시구르드의 노래 제3곡. 세 번째 시구르드 노래(시구르다르크비다 파프니스바나 트리디야 Sigurdarkvida Fafnisbana thridja)', '브륀힐드의 저승길(헬레이드 브륀힐다르 Helreid Brynhildar)', '구드룬의 노래 제1곡(구드루나르크비다 퓌르스타 Gudrunarkvida fyrsta)', '니플룽들의 살해(드라프 니플룽가 Drap Niflunga)', '구드룬의 노래 제2곡(구드루나르크비다 외누르 Gudrunarkvida önnur)', '구드룬의 노래 제3곡(구드루나르크비다 트리디야 Gudrunarkvida thridja)', '오드룬의 탄식(오드루나르그라트르 Oddrunargratr)', '고 아틸라 노래(아틀라크비다 Atlakvida)', '신 아틸라 노래(아틀라말 Atlamal)', '구드룬의 사주(구드루나르흐뵈트 Gudrunarhvöt)', '함디르의 노래(함디스말 Hamdismal)' 등이다.    


'신(新) 에다'는 '고 에다'보다 50년쯤 전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기록했다. 북유럽 신화와 시의 작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1부 '길피의 환상(길피의 속임수, 길파긴닝 Gilfaginning)', 2부 '시문학 언어(시법, 스칼드스카파르말 Skaldskaparmal)', 3부 '운율표(시행 목록, 하타탈 Hattatal)'로 구성되어 있다. '길피의 환상(속임수)'에는 북유럽 신화의 내용이 있고, '시문학 언어(시법)'에는 고시의 시법을 해설했으며, '운율표(시행 목록)'에는 운율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직접 쓴 장시가 기록되어 있다.


'에다'에는 북유럽 신화에 있어 세계 구조의 핵심이 되는 위그드라실(Yggdrasill)이라는 큰 물푸레나무가 등장한다. 우주나무 위그드라실은 신계-중간계-저승계 등 3개의 수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수평면은 다시 3개의 세상으로 나뉘어져 있어 도합 9개의 세상이다. 고대 북유럽인들은 3과 9를 신성한 숫자로 생각했다. 우주나무의 뿌리에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 명의 여신이 살고 있다. 이 여신들은 우주나무의 뿌리가 말라죽지 않도록 물을 주며 보살핀다.


우주나무 윗부분에는 신들과 독수리가 살고 있다. 신계는 에시르(Aesir, 노르웨이어 Æsir) 신들이 사는 아스가르드(Asgard), 반(Vanr, 복수형 Vanir) 신들이 사는 바나헤임(Vanaheimr), 요정들이 사는 알프헤임(Álfheimr)으로 나뉜다. 아스가르드에는 아름다운 신들의 궁전이 있고, 반 신족들은 에시르 신족에게 전쟁에 패한 뒤 바나헤임을 떠나 알프헤임으로 이주했다.


우주나무 중간 부분은 인간들이 사는 미드가르드(Midgard), 거인족 요툰(jǫtunn, 복수형 jǫtunar)이 사는 요툰헤임(Jötunheimr), 난쟁이들이 사는 스바르트알파헤임(Svartálfaheimr) 등 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계에는 바다 영역도 있다. 다람쥐도 여기 산다. 요툰헤임에 사는 거인들은 호시탐탐 신과 인간을 노리며 괴롭힌다. 요툰헤임은 기후가 좋지 않아 살아가기가 고달프고 힘이 들기 때문이다. 스바르트알파헤임에 사는 난쟁이들은 검고 심술 사납지만 손재주가 아주 좋다.


위그드라실의 아랫부분인 저승계는 로키(Loki) 신의 딸 헬(Hel)이 다스린다. 뱀도 여기 산다. 독수리와 뱀은 사이가 안 좋다. 다람쥐가 위아래를 오가며 이간질을 하기 때문이다. 저승계는 불타는 지역인 무스펠헤임(Muspelheim)과 죽은 자의 세계인 니플헤임(Niflheim)으로 이루어져 있다. 니플헤임은 얼음과 안개로 뒤덮여 있는 추운 지역으로 무스펠헤임과의 사이에 깊은 기눙가(Ginnunga) 강이 흐른다. 무스펠헤임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북쪽 니플헤임의 얼음을 녹이면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창조주 보르(Bor, Bur)의 아들로 신 중의 신인 오딘(Odin)은 추하게 생긴 헬에게 혐오감을 느껴 이곳으로 추방했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Karl Magnus)는 게르만족의 기독교 이전 기록을 많이 수집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은 그의 사후 다른 이들이 없애 버렸다. 에다를 모아서 작성한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북유럽 신화는 기록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럽 대부분이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옛 신앙이 계속 전승되어 노르드 신화(독일어 Nordische Mythologie, 스웨덴어 Nordisk mytologi)가 게르만 신화를 대표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노르드 신화를 북유럽 신화라고도 한다. 핀란드도 북유럽이지만, 핀란드 신화(Finnish mythology)는 노르드 신화와는 별개로 취급된다.


노르드 신화의 세계관에서는 9개의 세계가 위그드라실에 매달려 있다. 세상은 맨 처음 태초의 존재 위미르(Ymir)의 몸을 찢어 그 시체로 만들어졌다. 오딘과 동생 빌리(Villi), 베(Vé) 등 세 신은 나무로 최초의 인간인 아스크르(Askr)와 엠블라(Embla) 한쌍을 창조했다. 아스크르와 엠블라는 오딘에게 숨(생명), 빌리에게 이해력, 베에게 감각과 외모를 각각 받았다. 


이 세계는 언젠가 라그나뢰크(Ragnarǫkkr)라는 말세가 오면 망하고 새로이 태어날 것이라고 한다. 라그나뢰크 때 신들과 신들에 적대하는 모든 존재들은 건곤일척의 대전쟁을 벌이고, 세상은 불길에 휩싸인 뒤 물에 잠겨 멸망한다. 그 뒤 살아남은 소수의 신들이 다시 만나고, 푸르고 비옥한 새 땅이 솟아나며, 리프(Líf)와 리프트라시르(Lífþrasir)라는 한 쌍의 부부로부터 다시 세상에 인간들이 번성할 것이다.


노르드 신화의 원류는 게르만 신화이다. 노르드 신화에는 다양한 신들이 등장한다. 신 중의 신 오딘은 애꾸눈에 도래까마귀를 부리면서 세계의 지식을 탐욕적으로 추구하고, 인류의 수호신이자 천둥의 신 토르(Thor)는 망치 묠니르(Mjölnir)를 들고 적들의 머리를 사정없이 깨부순다. 사랑과 풍요, 아름다움의 여신 프레이야(Freyja)는 깃털 망토를 걸치고 세이드(Seiðr)라는 주술을 부리며, 겨울의 여신 스카디(Skadi)는 늑대 울음소리를 좋아하는 잔인한 신이다. 내해(內海)의 신 뇨르드(Njörðr)는 바다와 불 및 땅의 지력을 상징하는 강력한 신이다. 뇨르드 신은 바다와 바람을 다스리며, 어부들을 보호한다. 뇨르드의 아들 프레이(Frey)는 햇빛과 비, 결실과 평화의 신으로 날씨와 농사를 주관하며, 인류에게 기쁨을 주는 신이다. 여신 이둔(Idun)은 영원한 젊음을 주는 사과가 열리는 나무를 관리한다. 신들의 야경꾼 헤임달(Heimdall)은 아홉 명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금으로 된 이빨을 가졌다. 뿔나팔 걀라르호른(Gjallarhorn)을 가진 정체불명의 괴상한 신이다. 오딘의 아내 프리그(Frigg)는 신들의 여왕이고, 빛의 신 발드르(Baldr)는 오딘과 프리그의 아들이다. 거인족 요툰(Jötunn) 출신의 로키는 발드르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신들에게 파멸을 가져오는 신이다. 그 외에도 많은 신이 있다.


북유럽 신화는 후세의 문화 콘텐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북유럽 신화에는 거칠지만 역동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인물과 서사적 특징, 탁월한 상상력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특히 영화와 동화, 게임 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동화는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이 쓴 동화들이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The Snow Queen)', '성냥팔이 소녀(The Little Match Girl)', '인어 공주(The Little Mermaid)', '엄지 공주(Thumbelina)', '야생의 백조들(De vilde svaner, 백조 왕자)', '백설 공주(The Snow-Maiden)', 프랑스의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지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 핀란드의 자카리아스 토펠리우스(Zacharias Topelius)가 쓴 '별의 눈동자(Stjärnöga)' 등은 북유럽 신화의 정서가 내재된 동화라 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이 쓴 3부작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도 북유럽 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왔다.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중요한 절대반지의 모티브는 노르드 신화에 나오는 황금을 낳을 수 있는 마법의 반지 안드바라나우트(Andvaranaut)에서 가져온 것이다. 안드바라나우트는 불의 신 로키가 안드바리(Andvari)라는 드워프(Dwarf)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난쟁이족 김리Gimli)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난쟁이 종족 드워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한국 만화가 이명진의 판타지 웹툰 제목 '라그나뢰크'도 북유럽 신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라그나뢰크'는 흔히들 '신들의 황혼'이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라그나뢰크'는 원래 북유럽 신화를 마무리하는 세상의 마지막 전투,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 신과 인간 세계의 종말을 일컫는 말이다. 이명진은 2002년 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MMORPG 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Ragnarok online)'의 개발에 참여하면서 정작 만화 연재는 중단했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검과 마법의 판타지 세계이다. 원작이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신화와 관련된 용어나 아이템이 다수 존재한다.


앙상블 스튜디오에서 개발하고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가 발표한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Age of Mythology)'는 그리스, 이집트 신화와 함께 북유럽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실시간 전략 게임이다. 이 게임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Age of Empires)' 시리즈의 외전격이다. 


'룬'은 2000년 휴먼헤드 스튜디오에서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개발한 3인칭 시점의 액션 게임이다. 신 중의 신 오딘과 불의 신 로키의 갈등, 그리고 최후의 전투 라그나뢰크와 세계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 언리얼 3차원 게임 엔진을 사용해 북유럽 바이킹의 세계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드미트리 클리멘코(Dmitrii Klimenko, 러시아) 작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클리멘코(Dmitrii Klimenko)가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오딘과 오딘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게리(Geri)와 프레키(Freki)라는 두 마리의 늑대를 표현한 것이다. 


드미트리 클리멘코는 2016년 제9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남미 편'에서 '아마존의 동물들', 2017년 제10기 '모래로 세계 여행 -미국 편'에서 '서부개척시대'라는 작품을 만든 바 있다.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도미니카 공화국, 독일, 네덜란드, 홍콩, 이탈리아, 쿠웨이트, 라트비아, 폴란드, 대만, 미국 등 15개국 이상의 모래 조각 축제에 참가했다. 2017년에는 데이빗 듀참과 함께 조를 이뤄 캐나다 팍스빌 비치(Parksville Beach)에서 열린 '캐나디언 오픈(Canadian Open)'에 참가하여 대상을 받은 바 있다.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 신화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북유럽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신도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신 중의 신 오딘도 종말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 쓰지만 괴물들과 싸우다가 결국 장엄한 최후를 맞는다. 신들도 가혹한 운명과 싸워야 했으며, 최후의 종말 전쟁에서는 인간의 도움까지 필요로 했다. 북유럽 사람들은 혹독한 추위와 거친 환경에 시달리다보니 암울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북유럽 신화는 유럽 정신의 모태가 되었다. 일주일 중 화요일(Tuesday), 수요일(Wednesday), 목요일(Thursday), 금요일(Friday)은 북유럽 신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Tuesday(화요일)는 전쟁의 신 'Tyr(티르)', Wednesday(수요일)는 폭풍의 신 ‘Wodin(우딘)', Thursday(목요일)는 천둥의 신 '토르(Thor)의 날(day)’, Friday(금요일)는 사랑의 신 '(Freyja(프레이야)'에서 유래했다. 북유럽 신화는 그동안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밀려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최근 게르만 민족의 각성으로 인해 북유럽 신화가 각광을 받고 있다. 장엄하고 웅장하며 서사적인 북유럽 신화는 오늘날 동화와 판타지의 중요한 모티브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북유럽 신화의 보물은 화려하고 마법적인 힘이 있다. 난쟁이들이 만든 오딘의 창 궁니르(Gungnir)는 뚫지 못하는 갑옷이 없고, 던지면 항상 목표에 명중하는 힘을 지녔다. 천둥신 토르의 망치 묠니르는 태산도 쪼개는 힘을 지녔으며, 던지면 주인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마법의 힘까지 지녔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을 보면 묠니르의 위력이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북유럽 신화는 거칠고 폭력적이다. 북유럽인들은 늘 난폭한 바다와 씨워야 했으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혹독한 추위에 시달렸기 때문에 신화 속 이야기도 거칠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리야 필리몬체프(Ilya Filimontsev, 러시아) 작 '니벨룽의 노래 - 아이슬란드 여왕의 알현'


'니벨룽의 노래 - 아이슬란드 여왕의 알현'은 러시아의 일리야 필리몬체프(Ilya Filimontsev)가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니벨룽의 노래'에서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지크프리트(Siegfried, 노르드 신화의 시구르드)가 미모의 아이슬란드 여왕 브륀힐트(Brünhild, 노르드 신화에서 브륀힐드)를 알현하는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까운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일리야 필리몬체프는 네덜란드의 수잔느 뤼슬러(Susanne Ruseler)체코의 라도반 지브니(Radovan Zivny)와 함께 '모래의 술탄들(Sultans of sand)'이란 팀을 이뤄 2018년 성탄을 맞아 예솔로 시(Jesolo city)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가 프란치스코(Francis) 교황에게 헌정한 '모래 조각 성탄 구유(Sand Nativity)' 제작에도 참여했다. 이 작품은 너비 16m, 높이 5m, 폭 6m의 웅장한 규모였다. 필리몬트세브는 천사로 시작해서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탄생, 뤼슬러는 목동, 지브니는 동방박사의 형상을 각각 만들었다.  


'니벨룽의 노래(독일어 Nibelungenlied)' 또는 '니벨룽겐의 노래'는 중고지 독일어(Mittelhochdeutsch)로 쓰여진 서사시이다. 중세기 최대 걸작 중 하나인 '니벨룽의 노래'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대인 5~6세기 경부터 전승되다 1200년경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근무하던 기사(騎士)가 영웅전설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하고 호화로운 궁정을 배경으로 중세 기사들의 덕목인 명예와 충성을 게르만 민족의 영웅주의에 결부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연작 가극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53~1874)'와 프리드리히 헵벨(Friedrich Hebbel)이 쓴 희곡 '니벨룽의 사람들(Die Nibelungen, 1862)'은 바로 이 영웅 서사시를 원전(原典)으로 하고 있다. 이후에도 '니벨룽의 노래'는 독일의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니플룽(Niflung, Niflungr) 또는 니벨룽(Nibelungen)은 작품 전반부에서 지크프리트의 나라와 백성 및 보물을 가리키지만, 후반부에서는 부르군트족(Burgundians)의 또 다른 이름으로 쓰인다. '안개의 일족'이라는 뜻을 가진 '니플룽'은 5세기 초 지금의 보름스(Worms) 지방에 살았던 부르군트족의 왕족이라고 한다. 볼숭 일족과 함께 노르드 신화의 큰 줄기 중 하나인 볼숭(Vǫlsungr) 대계(니벨룽의 노래)의 중심에 놓인 씨족이다.


내용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 라인 강 하류 지방의 왕자 지크프리트 부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르군트족 군터(Gunther, 노르드 신화의 군나르) 왕의 여동생 크림힐트(Kriemhild, 노르드 신화의 구드룬)에게 구혼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보름스에 이르렀을 때, 군터의 신하 하겐(Hagen)은 그를 알아보고 보물을 손에 넣은 일 등 지난날 지크프리트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이야기한다. 보름스에서 데인족(Danes)과 색슨족(Saxon)이 선전포고를 해오자 지크프리트는 부르군트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 눈부신 활약을 한다. 전투에서 돌아온 지크프리트는 처음으로 크림힐트를 만나게 되고, 궁정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이때 뛰어난 힘을 지닌 아이슬란드 여왕 브륀힐트 있는데, 그녀에게 대적할 수 있는 남자만이 그녀와 결혼할 수 있다는 소식이 군터의 궁정에 들려온다. 군터는 브룬힐트에게 구혼하기로 결심하고, 지크프리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면 그에게 누이동생인 크림힐트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지크프리트는 브륀힐트의 왕국으로 원정대를 이끌고 가서 군터의 신하 행세를 한다. 브륀힐트와의 대결에서 군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망토를 입은 지크프리트의 도움을 받아 세 번의 대결에서 모두 이긴다. 브륀힐트는 먼저 군터에게 장정 세 명이 겨우 들 수 있는 창을 던졌지만 망토를 뒤집어써서 보이지 않는 지크프리트가 중간에서 쳐낸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장정 열두 명이 달려들어야 들어올릴 수 있는 바위를 군터에게 던졌는데, 역시 지크프리트가 중간에 쳐내서 모두 비껴간다. 대결에서 진 브륀힐트는 결국 군터를 남편으로 맞이한다. 약속대로 지크프리트도 크림힐트와 결혼한다. 


결혼식 첫날밤 브륀힐트는 군터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내주길 거부하고 도리어 그를 꽁꽁 묶어 방 천장에 매달아 버린다. 이때 투명망토를 입은 지크프리트가 들어와 브륀힐트의 뼈를 부러뜨리고, 속옷을 찢은 다음 허리띠와 반지를 빼간다. 이후 브륀힐트는 초인적인 힘을 잃고 군터의 순종적인 아내가 된다. 하지만 브륀힐트는 여전히 의심을 하면서 만족하지 못한다. 


어느 날 보름스 대성당 앞에서 브륀힐트와 지크프리트의 아내 크림힐트 사이에 누구 남편이 더 잘났는지에 대해 싸움이 벌어진다. 브륀힐트가 신하와 결혼했다고 시누이 크림힐트를 비웃자, 크림힐트는 반지와 속옷을 보여주면서 올케 브륀힐트가 지크프리트와 군터에게 속았다고 모욕을 준다. 이때 하겐이 브륀힐트 편에서 복수를 하기 위해 크림힐트의 신임을 얻는다. 크림힐트로부터 남편의 몸 가운데 단 한 군데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하겐은 지크프리트에게 치명상을 입혀 죽게 만든다. 하겐은 브륀힐트를 위한 복수라기보다는 권력이 점점 강력해지는 지크프리트를 경계하여 그를 제거했던 것이다. 브륀힐트와 지크프리트의 이야기는 600년경 프랑스 왕국 메로빙거 왕조(Merovingian dynasty)의 역사에 나오는 사건에서 소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지크프리트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지고, 크림힐트는 슬픔에 잠긴다.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를 죽게 한 군터, 하겐에게 앙심을 품는다. 세 사람은 보름스로 옮겨온 지크프리트의 보물을 처분하기 위해 잠시 화해한다.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보물을 모두 나누어주기 시작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하겐이 보물을 라인 강에 빠뜨려 버린다. 여기서 하겐은 군터의 명예를 지키는 충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후반부는 하겐과 크림힐트의 다툼 및 부르군트족에 대한 크림힐트의 복수를 주로 다루고 있다. 훈족(Hun)의 왕 에첼(Etzel, 헝가리어 Attila hun király)이 크림힐트에게 구혼한다.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를 받아들인다. 여러 해가 지난 뒤 크림힐트는 에첼(아틸라)에게 부탁하여 자기 오빠들과 하겐을 훈족의 궁정으로 초대한다. 하겐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에첼의 궁에 오게 되고, 결국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임을 당한다. 크림힐트는 군터를 죽이도록 명령하고, 묶여서도 끝까지 보물이 있는 곳을 밝히지 않은 하겐을 지크프리트의 칼로 죽인다. 그러자 크림힐트의 잔혹함에 분노한 힐데브란트(Hildebrand)라는 기사가 그녀를 죽인다. 힐데브란트는 에첼의 궁정에 망명해 온 동고트족(Ostrogoth)의 왕 디트리히(Dietrich)의 신하였다. 부르군트족은 훈족과의 전투에서 패해 마침내 멸망한다. 이 이야기는 437년 훈족이 보름스의 부르군트 왕국을 멸망시킨 사건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다. 


브륀힐트의 이야기는 고대 노르웨이 문학에도 나타난다. 지크프리트의 영웅적 활동은 스칸디나비아의 '고 에다' 외에 '뵐숭가 영웅담(Völsunga Saga)', '티드리크스 사가(Thidriks Saga)'에도 들어 있다. 이들 문헌에서 지크프리트는 지구르트(Sigurd)라 불린다. 부르군트족의 멸망을 다룬 후반부 전체는 더 오래된 에다의 시 '아틀리의 노래(Atlakvida)'에 나온다.


'니벨룽의 노래'가 씌어진 시대는 중세 독일 문학에서 풍부한 교양과 반듯하고 점잖은 몸가짐 등 궁정 덕목이 강조되던 때였다. 그럼에도 '니벨룽의 노래'에는 이 시기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복수와 명예를 철저히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니벨룽의 노래'가 튜튼족(Teutonic peoples) 대이동 시기의 영웅설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튜튼족은 고대 윌란 반도(Jylland Halvø, 유틀란트 반도)에 살았던 테우토니족(Teutoni)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사멸한 뒤에도 라틴 작가들은 게르만족을 가리켜 튜튼족이라 불렀다. 


일리야 필리몬체프(Ilya Filimontsev, 러시아) 작 '니벨룽의 노래 - 아이슬란드 여왕의 알현'


'니벨룽의 노래'에서 아이슬란드의 여왕 브륀힐트는 노르드 신화에서 브륀힐드(노르드어 Brynhildr, 독일어 Brünhild)이다. 노르드 신화에서 브륀힐드는 스캴드메르(skjaldmær, 방패의 처녀, 여전사)이자 발키리(valkyrja, 여전사)이다. 에다에서 그녀는 시그드리파(Sigrdrífa)라고 불리기도 한다.


브륀힐드는 부들리의 딸(Budli)이다. 옛날 햘름군나르(Hjalmgunnar)와 아그나르(Agnarr)라는 두 왕이 싸웠다. 오딘은 브륀힐드에게 두 왕 중 한쪽에게 승리를 주라고 명령한다. 오딘은 햘름군나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브륀힐드는 아그나르에게 승리를 준다. 분노한 오딘은 그녀를 필멸자로 만들고, 힌다르퍌(Hindarfjall) 산 위 외딴 성에 가두어 잠에 빠뜨린 뒤 성을 불의 고리로 둘러싼다. 


데이빗 듀참(David Ducharme, 캐나다) 작 '니벨룽의 노래 - 대장장이와 시구르드'


이때 노르드 신화의 영웅이자 '볼숭 일족의 사가'의 중심 인물 시구르드(Sigurðr, '니벨룽의 노래'의 지크프리트)가 등장한다. 시구르드 전설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1세기에 만들어진 스웨덴의 룬스톤(Runsten) 암각화이다. 룬스톤 암각화에는 시구르스(Sigruþr)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시바르드(Sivard)가 있다. 어근 'Sig-'는 '승리'를 의미한다. '니벨룽의 노래',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지크프리트(Siegfried), 중세 스칸디나비아 발라드(ballade)에서는 시바르드 스나렌스벤(Sivard Snarensven)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뵐숭 사가'에 따르면 시구르드는 영웅 시그문드(Sigmund)와 효르디스(Hjǫrdís) 사이에서 태어난 세 번째 아들이다. 시구르드는 시그문드가 훈딩(Hunding) 왕에게 살해당한 뒤 태어난 유복자다. 어머니 효르디스가 덴마크의 왕 히얄프레크의 아들 알프와 재혼하면서 그는 덴마크 왕의 궁전에서 자라게 된다. 궁전 대장간에는 솜씨좋은 대장장이 레긴(Reginn)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장간에서 지내는 걸 좋아한 시구르드는 자연스럽게 레긴에게 여러 가지 지식과 꾀를 배우게 된다.


시구르드는 레긴의 말에 따라 히얄프레크 왕에게 말 한 마리를 달라고 청한다. 왕은 숲속의 마굿간에 있는 아무 말이나 가지라고 한다. 시구르드는 슬레이프니르(Sleipnir)의 후손인 늙은 애꾸눈 나그네의 도움으로 가장 용감한 잿빛 수말을 선택하고, 이 말에 잿빛이란 뜻의 그라니(Grani)란 이름을 붙여 준다.


데이빗 듀참(David Ducharme, 캐나다) 작 '니벨룽의 노래 - 시구르드의 용 퇴치'


레긴은 어른이 된 시구르드에게 안드바리(Andvari)의 보물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고, 사악한 용 파프닐(Fáfnir)을 쓰러뜨리고 보물을 차지하자고 유혹한다. 시구르드는 어머니 효르디스가 보관하고 있던 부서진 명검 그람(Gram)의 조각들을 받아 레긴과 힘을 합해 다시 벼려낸다. 시구르드는 히얄프레크 왕의 군대를 빌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온 오딘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원수 훈딩 왕과 그 아들들의 일족을 모두 처단한다. 


원수를 갚은 시구르드는 레긴과 함께 용 파프닐을 처치하러 떠난다. 시구르드는 파프닐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 마침내 그 용을 죽인다. 뒤에 숨어 있던 레긴은 파프닐이 죽자 그 피를 마시고, 시구르드한테 용의 심장을 구워놓으라 시킨 뒤 옆에서 잠이 든다. 심장을 굽다가 끓는 기름이 손가락에 묻자 시구르드는 손가락에 묻어 있는 용의 피를 핥는다. 그러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얻게 된다. 새들은 '용의 심장은 놀라운 힘을 지니게 해주며, 힘을 얻은 레긴이 시구르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다'면서 '차라리 시구르드가 레긴의 목을 자르고 파프닐의 황금을 독차지 하는 것이 좋을 텐데'라고 말한다. 시구르드는 고민하다가 결국 레긴을 죽이고, 자신이 파프닐의 심장을 먹은 뒤 보물을 가지고 떠난다. 


시구르드는 용살자(龍殺者)란 명성을 얻고 덴마크의 히얄프레크 왕에게 돌아가는 도중에 한 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키리가 근처 산 위에 잠들어 있으며, 다만 불의 장벽이 그녀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깨우려면 엄청난 용기와 무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 다른 새는 '이대로 가면 시구르드가 규키(Gjúki)라는 왕이 사는 나라에 도착해 그 딸과 결혼하게 된다'는 말을 해준다. 


시구르드는 첫 번째 새의 말을 토대로 힌다르퍌 산을 찾아가 엄청난 높이의 불의 장벽을 뛰어넘은 후 성안에 잠들어 있는 발키리 브륀힐트를 발견한다. 시구르드는 브륀힐트의 투구와 쇄자갑(鎖子甲)을 벗겨내 잠에서 깨운다. 시구르드와 브륀힐드는 이내 사랑에 빠진다. 시구르드는 브륀힐드에게 황금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반지 안드바라나우트(Andvaranaut)를 선물로 주며 청혼한다. 이어 두 사람은 브륀힐드가 성장했던 헤이미르(Heimir) 왕의 궁정에 와서 다시 한 번 결혼맹세를 한다. 시구르드는 다시 돌아와서 브륀힐드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하고, 부르군트족의 왕 규키의 궁전으로 향한다. 당장 결혼하는 대신 좀더 명예를 쌓기 위해서였다. 


시구르드가 떠난 뒤 규키의 딸 구드룬(Guðrún, '니벨룽의 노래'에서 크림힐트, '니벨룽의 반지'에서 구트룬)이 브륀힐드를 찾아와 자신이 꾼 꿈의 해몽을 부탁한다. 꿈은 시구르드가 브륀힐드를 배신하고 구드룬과 결혼하리라는 예지몽이었다. 


규키의 궁정에서 시구르드는 구드룬의 구애를 받지만 이미 임자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부르군트족의 왕국에서는 규키 왕의 아내 마녀 그림힐드(Grímhildr)가 시구르드를 자신의 딸 구드룬과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림힐드가 기억을 잊게 하는 마법약을 시구르드에게 몰래 먹여 브륀힐드를 잊게 만들자 그는 구드룬과 결혼한다. 또 시구르드가 발키리를 만난 이야기를 들은 그림힐드는 브륀힐드를 자기 아들 군나르(Gunnarr, '니벨룽의 노래'의 군터)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군나르는 브륀힐드에게 청혼하려 하지만 성을 둘러싼 불의 고리 때문에 실패한다. 이에 시구르드가 군나르의 모습을 하고 불의 고리를 뛰어넘는다. 군나르로 변신한 시구르드는 브륀힐드에게 청혼하고 3일 밤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군나르를 위해 브륀힐드와의 사이에 검을 놓고 그녀를 취하지 않는다. 시구르드가 군나르보다 먼저 브륀힐드와 정을 통했다는 전승도 있다. 시구르드는 브륀힐드가 가지고 있던 안드바라나우트를 구드룬에게 준다. 군나르와 시구르드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고, 브륀힐드는 군나르와 결혼한다.


시간이 흘러서 구드룬과 브륀힐드는 서로 자기 남편이 더 잘났다고 말다툼을 벌인다. 브륀힐드가 군나르는 불속에 뛰어들 정도로 용감하다고 하자, 구드룬은 그 사람이 사실 시구르드였다고 폭로한다. 브륀힐드는 분노했고, 기억을 되찾은 시구르드는 그녀를 달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브륀힐드는 힌다르퍌에 갇혔을 때 시구르드와 정을 통했다고 거짓말을 해서 군나르가 그를 죽이도록 부추긴다. 군나르와 그의 남동생 호그니(Hǫgni, '니벨룽의 노래'의 하겐)는 시구르드와 의형제를 맺었었기 때문에 그를 죽이기를 두려워했다. 노르드 세계에서 맹세를 어긴 자는 지옥 나스트론드(Nástrǫnd, 니플헤임에 있는 시체의 해안)에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나르와 호그니는 막내동생 구토름(Guthorm)에게 마법약을 먹여 그로 하여금 잠든 시구르드를 죽이도록 했다. 시구르드는 죽어가는 와중에 구토름에게 칼을 던져 그를 죽인다. 브륀힐드는 시구르드의 어린 아들을 죽인 다음 시구르드의 시체가 화장될 때 불속으로 뛰어들어 죽는다. 그렇게 시구르드와 브륀힐드는 함께 헬헤임(Helheimr, 저승)으로 간다. '니벨룽의 노래'에는 브륀힐트가 지크프리트의 장례식에서 자살했다는 내용이 없다.


'시구르드의 짧은 서사시'에는 군나르와 시구르드가 브륀힐드의 오라비인 아틀리(라틴어 Attila, 노르드어 Atli 아틀리, 독일어 Etzel)의 성을 공격했는데, 아틀리가 자기 여동생을 내줄테니 휴전하자고 하자 군나르가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러나 브륀힐드는 시구르드와 결혼하겠다고 맹세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는 군나르를 시구르드로 알고 속아서 결혼하게 된다. '볼숭 그 일족의 사가'에 따르면 브륀힐드는 시구르드와의 사이에 아슬라우그(Aslaugr)라는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은 나중에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r Loðbrók)와 결혼했다고 한다.


브륀힐드의 캐릭터는 메로빙거 왕조의 희대의 악녀 브륀힐다(Brunhilda of Austrasia, 543~613)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인다. 브륀힐드가 구드룬과 갈등을 겪거나 시구르드를 죽게 한 이야기는 브륀힐다가 프레데군다(Fredegunda, ?~597)와 싸움을 벌이고 많은 왕과 왕족을 죽게 만든 역사적 사실과 매우 유사하다. 브륀힐다에서 유래한 캐릭터는 북유럽 신화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키리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니벨룽의 노래 - 대장장이와 시구르드', '니벨룽의 노래 - 시구르드의 용 퇴치'는 캐나다에서 온 데이빗 듀참(David Ducharme)의 작품이다. 데이빗 듀참은 2016년 모래 미술관의 제9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남미 편'에서는 '잉카제국'이란 작품, 2017년 제10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미국 편'에서는 '미국 독립 선언'이란 작품을 만든 바 있다.


수잔느 뤼슬러(Susanne Ruseler, 네덜란드) 작 '겨울 스포츠'


'겨울 스포츠'는 네덜란드의 수잔느 뤼슬러(Susanne Ruseler)가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북유럽인들이 즐기는 바이애슬론(Biathlon)과 크로스 컨트리(cross-country) 등의 장면과 함께 북유럽 신화에서 '고운 신부'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겨울의 신 스카디(Skaði)가 승리의 여신이 되어 응원하는 모습을 올림픽 오륜 마크와 함께 표현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수잔느 뤼슬러는 2003년부터 모래 조각 작품을 시작했다. 그녀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스페인의 마드리드(Madrid),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 한국 등에서 열린 모래 조각 축제에 참가한 바 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 스카디는 항상 스키를 신고 높은 산맥을 넘나들면서 활사냥을 한다. 스카디는 곧 스키의 신이기도 하다. 북유럽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서 스키는 생활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스키를 비롯한 겨울 스포츠가 많이 발달했다. 스키 종목은 크게 알파인(Alpine)과 노르딕 복합(Nordic Combined), 프리스타일(Free Style)로 나뉜다. '알파인(Alpine)'은 유럽의 알프스 산맥(Alps)에서 온 말이고, '노르딕(Nordic)'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의 북유럽 국가 또는 인종을 뜻하는 말이다. 노르딕 복합은 90m 스키점프 점수와 15km(Free) 크로스 컨트리 경기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북유럽, 특히 노르웨이에서 발달한 노르딕 복합은 1924년 제1회 사모니(Chamonix)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크로스 컨트리는 체력과 지구력, 스키 점프는 순발력과 담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이다. 세부 종목으로는 남자 k90+15km, K120+7.5km, 릴레이 종목으로 K90+5km로 구분된다. 


앙게랑 다비드(Enguerrand David, 벨기에) 작 '요정 트롤과 북유럽의 숲'


'요정 트롤과 북유럽의 숲'은 벨기에 출신의 앙게랑 다비드(Enguerrand David)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리 밑 어둠컴컴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거인족 트롤(troll)을 표현한 것이다. 앙게랑 다비드는 2013년 모래 미술관 제6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동남아시아 편'에서 '계단식 논과 농민의 생활', 2016년 제9기 '모래로 세계 여행 - 남미편'에서 '쿠스코의 거리 풍경'이란 작품을 만든 바 있다. 


트롤은 스칸디나비아와 스코틀랜드의 전설에 등장하는 거인족이다. 이들은 괴물같이 생겼고 때때로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키는 1.2~3.3m이며, 몸무게는 1톤이 넘는다. 수명은 무려 300년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거인들의 나라 요툰헤임에 살던 거인들이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산의 동굴, 다 허물어져가는 오두막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오늘날 노르웨이 중앙의 빙하를 안고 있는 고원 이름도 요툰헤임이다.


스칸디나비아의 트롤은 깊은 계곡에 살며, 키가 크고 힘이 세서 인간을 잡아먹는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한때 정착해 살던 켈트족(Celt) 지역인 스코틀랜드의 셰틀랜드(Shetland Islands)와 오크니 제도(Orkney Islands)에서는 트롤을 트로(tro)라고 한다. 이들은 흙무더기나 바다 근처에서 사는 작고 해로운 존재이다. 발육 상태도 좋지 않고 허약하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의 트롤보다 더 교양이 있으며, 좋은 음악을 감상할 줄 안다.


트롤은 어슴푸레한 그림자 속에서만 목격되기 때문에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다만 손발이나 머리가 붙어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 트롤은 공통적으로 흉측한 얼굴에 피부는 바위처럼 딱딱하며, 어금니가 난 입과 길고 예리한 발톱을 가진 괴물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트롤은 종종 난폭한 돌발 행동을 일삼는 것으로 유명하며, 곤봉 정도의 무기는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트롤은 사람들이 모두 잠든 밤에 나타나 마을을 배회한다. 트롤이 다가가기만 해도 동물들은 두려움에 떨며, 암소의 젖은 잘 나오지도 않고, 암컷 새는 알을 낳지 않게 된다고 한다. 트롤은 일반적으로 조악한 언어 몇 마디로 이루어진 듯한 소리를 내면서 의사소통을 한다. 트롤은 주로 날고기를 먹으며, 야생동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앙게랑 다비드(Enguerrand David, 벨기에) 작 '요정 트롤과 북유럽의 숲' 


트롤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이 1867년에 쓴 시극 '페르 귄트(Peer Gynt)'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트롤은 페르 귄트가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눈을 뽑아버린다. 여기서 트롤은 파괴적인 본능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현대 아동문학에서 트롤은 주로 다리 밑에서 살며, 여행자들을 위협하고 힘든 일과 통행료를 강요한다. 판타지에서의 트롤은 체력이 빨리 회복되고 자연적으로 치유가 가능한 몬스터 또는 종족으로 등장한다.


'페르 귄트(Peer Gynt)'는 입센이 아스비욘센과 함께 노르웨이 구드브란스달(Gudbrandsdal) 지방에서 수집한 민담을 기초로 만든 운문극이다. 전체 5막 3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센은 노르웨이 민속 설화인 '페르 귄트'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자신의 부모를 모델로 하여 구체적인 스토리를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페르 귄트'는 몽상가인 페르 귄트가 세계 각지를 방랑하고 고향에 돌아와 아내인 솔베이그(Solveig)의 사랑을 깨달을 때까지를 묘사한 작품이다. 내용은 상당히 환상적이고 파격적이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게으르고 방탕한 청년으로 언젠가는 자신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는 몽상가이다. 그는 부와 모헙을 좇아 세계를 여행하면서 남의 부인을 빼앗기도 하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마왕의 딸과 지내기도 한다. 이후 농부의 딸 솔베이그와 사랑을 맹세하지만, 페르 귄트는 그녀를 두고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자 그는 다시 먼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아프리카 추장의 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면서 방황하다가 끝내는 몰락하고 만다. 늙고 쇠약해진 그를 맞아준 사람은 바로 젊은 날의 사랑 솔베르그였다. 그는 결국 솔베이그의 품에 안긴 채 죽음을 맞이한다. 페르 귄트의 모험담은 부와 권력, 야망에 대한 사회적인 풍자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시적이고 초월적인 장면으로 적절히 배합된다. 


'페르 귄트'의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초부터 1860년대, 공간적 배경은 노르웨이의 산악 지대에서부터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이집트까지 굉장히 광대하다. 등장 인물도 100여명에 이른다. 트롤 같은 요괴에서부터 미치광이, 사기꾼, 선장, 유목민 베두인족 등 여러 대륙에 걸쳐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처럼 시공간을 넘나드는 장면은 19세기의 연극 무대로 구현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일종의 레제드라마(Lesedrama)였지 연극 무대를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 


입센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집안의 파산으로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1850년에 첫 희곡 '카틸리나'를 썼다. 1851~57년 노르웨이 극단에서 145편 이상의 희곡 제작에 참여했다.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1864년 고국을 떠나 27년간 해외에서 살았다. 1866년 출판된 '브란'의 성공 이후 '페르 귄트', '인형의 집', '유령'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891년 노르웨이로 돌아와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에 정착했다. 1900년 뇌일혈로 쓰러진 입센은 1년 뒤 또 다시 발작을 일으킨 뒤 1906년에 죽었다. 


입센은 근대 사실주의 희극의 창시자이다. 1879년에 쓴 '인형의 집'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당시 노르웨이 사회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여성의 자유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독립을 주제로 삼고 있는 '인형의 집'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주인공 노라는 신여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사회의 인습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역할에 대한 당시 사회적 통념을 바라보는 비판적 인식이 드러나 있다. 사회의 고착된 인습이 어떻게 여성의 성장과 자유를 억압하는지를 진지하게 폭로한 이 작품은 이후의 여성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형의 집'은 1889년 런던에서 공연되어 극형식을 빌어 당대 도덕성을 비판하는 입센주의를 둘러싼 격론의 시발점이 되었고, 1890년대 문학논쟁의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2016.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