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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이별가 黃眞伊(황진이)의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林 山 2020. 3. 18. 11:28

소세양(蘇世讓, 1486년 ~ 1562)은 조선 중기에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문신이다. 그는 또 당대 최고의 한량이기도 했다. 그런 소세양이 송도에 재색을 겸비한 황진이(黃眞伊, ?~?)가 있다는 소식을 모를 리 없었다. 


소세양은 어느 날 친구들과 내기를 했다. 천하의 송도 기생 황진이를 꼬셔서 한 달만 데리고 놀다 오겠다고 말이다. 친구들은 그렇게 못한다는 데 걸었다. 왜냐하면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 스타 화담(花潭) 서화담(徐敬徳, 1489~1546)만을 오로지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소세양은 친구들의 말을 비웃으며 황진이를 만나러 보란듯이 송도로 떠났다. 송도에 도착한 소세양은 황진이를 찾아갔다. 소세양을 맞이한 황진이는 한눈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인물 좋고, 글 잘하고, 시도 잘 쓰는 소세양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것이다. 아이돌 앞에는 천하의 황진이도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세양도 당대 최고의 여성 지성인 황진이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세양과 황진이는 그렇게 꿈만 같은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쏜살처럼 지나갔다. 이젠 소세양이 한양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돌아왔다.  


소세양이 한양으로 떠나기 전날 밤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황진이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황진이는 소세양에게 이별주를 따라주며 거문고 가락에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을 불렀다.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黃眞伊(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 아래 오동잎은 다 떨어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서리 속 들국화 노랗게 피었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대 높고 높아 하늘은 낮은데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 취해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물 소리에 거문고 소리도 찬데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피리 소리에 매화 꽃 향기롭네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서로 이별하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애끓는 정 강물처럼 끝 없으리


황진이의 이별가에는 연인 소세양을 향한 사무치는 정이 담겨 있었다. 이별가를 묵묵히 듣고 있던 소세양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의 낭만주의자 소세양은 마음을 바꿔 송도에 한 달 더 머물기로 했다. 황진이는 사랑하는 연인과 한 달 더 꿈 같은 밀월을 보냈다. 


황진이와 소세양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는 여러 세기를 지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황진이가 오늘날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금물이지만 말이다. 


2020.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