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는 한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조현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 이 주장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박정희 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조현래는 주장한다.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林 山>
■ '두 얼굴의 무궁화' 비판(24)] 한서 남궁억을 왜곡하다(3) 신문기사 조작
[두 얼굴의 무궁화] 일제 강점기와 1961년 5·16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전 그 어떤 문헌과 자료에도 <무궁화 동산 사건>은 없었다. <십자가당 사건>만 있을 뿐이다. 당시 신문 기사 제목과 내용을 전수 분석하였으나 무궁화는 일언반구도 없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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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 조선총독부 검사 무라타사분(村田佐文)의 남궁억에 대한 기소 내용은 무궁화는 일언반구도 없다. 다음은 조선중앙일보 1935년 1월 19일 2면 '조선역사를 기록한 『조선화』내용이 문제, 기미사건의 기술이 불온하다고 검사기소 내용'의 제목으로 된 검사기소 요지다.(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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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 check(1)》 : 당시 신문 기사제목과 내용에 무궁화는 일언반구도 없다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전수 분석'(!)을 했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이제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없는 사실의 생성, 있는 사실의 삭제와 은폐 그리고 논리 조작 등 그 방법이 문제일 뿐, 결론은 사실에 대한 왜곡, 조작 및 날조이다.
-여기서 '전수 분석'도 동일하다. 방법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동아일보 1933년 12월 3일자 기사 내용이다!
-동아일보 1933.12.3.자 기사는 제목을 "남궁억사건"이라고 명시하고, 그 내용에서 "조선의 역사를 말할 때에는 철저히 가르치므로 이에 따라 불온한 사상 선전의 혐의가 농후하다하며 전에도 모곡학교에 유일한 기본재산인 무궁화 묘목(苗木)에 판로를 찾아 선전하였던 광고문이 불온하다하여 말이 있었고, 동교 교가 등이 불온하다고 수차례 받던 것이라 하며"(일부 표기 수정-필자)라고 보도하였다.
-동아일보 기사는 명확히 '무궁화 묘목'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혹시 한글을 읽지 못하는 것인가?
▶동아일보의 1933년 12일 27일자 기사 내용이다!
-동아일보 1933.12.27.자 기사는 남궁억 선생의 기소 내용을 보도하면서 제목을 "홍천 '십자가당 남궁억사건"이라 하고, 그 기사의 소제목을 "목사 유복석 중심 비밀결사를 조직"과 "무궁화 묘목을 팔고 민족주의 고취"라고 달고 있다.
-남궁억 선생은 무궁화 묘목을 팔면서 민족주의를 고취하였다고 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유복석(유자훈의 오기-필자) 목사는 십자가당의 비밀 결사를 조직했다고 하여 '치안유치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일부 사람 이름 등에 오보가 있지만, 남궁억 선생은 무궁화와 조선 역사를 매개로 민족주의 고취 혐의로 보안법이 적용되었고 유자훈 목사 등은 십자가당 조직에 따른 치안유지법이 적용되었던 실제 기소 내용 및 재판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다(국사편찬위원회의 예비심사청구 및 공판조서 참조).
-혹시 무궁화를 한자로 無窮花라 보도하였기 때문에 한자를 읽지 못하는 것인가?
▶동아일보의 1934년 8월 4일자 기사 내용이다!
-동아일보 1934.8.4.자 기사는 남궁억 등에 대한 예비심사 절차를 종료(종예)하고 정식의 공판절차로 회부된 내용을 보도하면서 제목을 "홍천 십자가당 사건 남궁억 오인 종예"로 하면서 그 기사의 내용에 "모곡학교를 설립하고 민족주의 고취 무궁화재배 조선사화(朝鮮史話) 책 5권을 지은 것 등이 보안법 위반에 걸렸던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무궁화 재배와 관련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공판절차에 회부되었음을 보도하였다.
-위 동아일보 기사는 명백히 '무궁화 재배'를 통한 민족주의 고취로 인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공판절차에 회부되었음을 보도하였다.
-이 기사의 무궁화는 한글이다. 이 역시 한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참고(1)》당시 한서 남궁억 선생에 대한 구금과 재판은 (i) 경찰의 체포와 조사(1933.11.4.) ==> (ii) 사건송치(경찰에서 검찰로 이관; 1933.12.14.) ==> (iii) 검사의 조사(1933.12.14.)==> (iv) 예비심사청구(예심판사에 의한 조사; 1933.12.26.)==>(v) 예비심사 종결 결정(1934.8.4.), ==> (v) 정식의 공판절차(합의부 3인 판사에 의한 재판; 1934.8.4.), (vi) 판결 선고(1935.1.31.)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예비심사청구는 정식의 재판에 의하지 않은 기간 없는 인신구속 등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일제가 편의적으로 만든 제도이었다. 체포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한 1933.11.4.부터 정식 공판절차로 회부된 1934.8.4.까지 9개월간 자유로운 인신의 구속과 그 동안 갖은 폭행, 협박 그리고 고문이 가능하였다.
《참고(2)》70세가 넘은 노인을 9개월 동안이나 붙들어 두고 갖은 폭행, 협박 그리고 고문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무궁화 재배 그리고 무궁화 창가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였다. 일본의 진보적 시인 하마다치 쿠니오(濱口國雄, 1920~1975)가 아래와 같이 노래한 것이 어찌 결코 과장이라 할 것인가? 일제는 1933년에 한서 남궁억 선생을 투옥할 때에는 보안법의 적용에 그쳤지만, 1940년 이후에는 무궁화를 노래하는 것도 체제를 부정한 것으로 보아 치안유지법을 적용시켜 구금하고 고문했으며 실형을 선고했다(이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살피기로 한다).
花びらの芯から呻きがきこえてくる。 꽃잎 속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오다
血を流しているむくげの花よ。 피를 흘리고 있는 무궁화 꽃이여
花を愛したことで人は殺害された。 꽃을 사랑하는 것으로 사람은 살해되었다
花を植えたことで人は投獄された。 꽃을 심은 일로 사람은 투옥되었다
引き裂かれたむくげの花。 찢겨진 무궁화 꽃이여
朝鮮よ。 조선아 - 하마다치 쿠니오(濱口國雄, 1920~1975)의 「むくげの花」(「무궁화 꽃) 중에서
《fact check(2)》 : 남궁억에 대한 검사의 기소 내용에 무궁화가 일언반구도 없다고? -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선중앙일보 1935년 1월 19일자 기사 내용이 검찰 기소의 전부라고?
-조선중앙일보 1935.1.19.자 기사는 "조선역사를 기록한 '조선화' 내용이 문제, 기미사건의 기술이 불온하다고 검사 기소한 내용"이라는 소제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 본 동아일보 기사에는 무궁화 창가와 무궁화 재배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가 보안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보도되었다. 왜 이날의 조선중앙일보 기사에는 그 내용이 빠져 있을까?
-이러한 경위를 알수 있는 같은 날짜의 동아일보 기사가 있다.
-동아일보 1925.1.19.자 기사에 따르면, 모곡학교 설립과정, 담임하여 조선역사를 가르친 내용을 심리하다가 판사가 공판 심리 중에 내용이 공안을 해친다는 이유로 방청을 금지하고 친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정하도록 하여 비공개재판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조선중앙일보 1935.1.19.자 기사는 비공개로 재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심리된 내용을 보도한 것이다.
-따라서, 남궁억 선생에 대한 검사의 실제 기소 내용이 조선 역사를 가르친 내용이 불온하다는 것에 한정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이 과정에서『두 얼굴의 무궁화』저자의 태도는 참으로 기이한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궁억 선생은 '겉으로는 무궁화 보급'을 내세우면서 '속으론 비밀결사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인데, 조선중앙일보 1935.1.19.자 기사에는 이 내용(즉, 십자가당 활동)이 빠져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에 대해서 아예 모른 척한다는 것이다.
▶ 조선중앙일보 1933년 12월 14일자 기사 내용은!
-조선중앙일보 1933.12.14.자 기사는 큰 제목이 아예 "무궁화를 심어서 OO사상을 주입"한 것이 주된 범죄이고, 유자훈 등의 십자가당은 "그 부산물로 비밀결사 발견"하여 적발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신문 기사 제목과 내용을 전수 분석하였으나 무궁화는 일언 반구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기사는 아예 큰 제목이 '무궁화'이다.
《참고(3)》조선중앙일보의 1933.12.14.자 기사 제목의 "OO사상"이라고 되어 있는 OO은 아마도 "민족"이라는 말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일제강점기 자료들에 따르면, 일제는 각종 신문과 문헌에 무궁화를 민족의식이나 독립으로 연결되는 경우 이를 검열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빈번하였는데, 조선중앙일보의 이 기사도 검열되어 민족이라는 말이 삭제된 것으로 추론된다.
▶『두 얼굴의 무궁화』의 새로운 방법의 왜곡과 조작?!
-『두 얼굴의 무궁화』, p.198은 동아일보 1933.12.27.자 기사(위 사진3)의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을 모두 소개하면서, "무궁화 묘목을 팔고 민족주의 고취"라는 작은 제목만을 빼 버리고, "무궁화는 일언 반구도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기사의 중요 내용을 없는 것처럼 왜곡하여 결론을 조작한 것이다.
-그런데 『두 얼굴의 무궁화』, p.198~p.199는 대단히 독특한 왜곡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조선중앙일보 1933.12.14.자 기사(위 사진5)는 큰 제목이 "무궁화를 심어서 민족사상을 주입"으로 되어 있으니, 차마 "무궁하는 일언 반구도 없다"라는 주장을 펼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으로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서 『두 얼굴의 무궁화』, p.198은 1933.11.7.~1935.1.19.기간은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만 일부 내용을 빼는 방법으로 소개하고, 『두 얼굴의 무궁화』, p.199는 조선중앙일보의 기사에 대해서 동아일보 기사와 기간이 다르게 1935.1.19.~1936.2.4.까지 동안의 제목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기사 내용이 포함된 조선중앙일보 1933.1.19.자 기사(위 사진6)를 포함시키고 차마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조선중앙일보 1933.12.14.자 기사(위 사진7)를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런 정도의 치밀한 방법을 사용한 것을 보면, 단순히 무지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 조작 그리고 날조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결론》 : 왜곡과 조작 그리고
▷끊없는 왜곡과 조작!
-사실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악의적인 사실 왜곡에다 없는 사실을 만들기 위한 의도적 조작이 끝이 없다.
-이 모든 일은 무궁화가 일본 군국주의의 꽃이라는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신념과 확신-근거 없는 신념과 확신을 망상이라고도 한다-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대상이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 선생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 신한민보 1939년 5월 11일자 기사 그리고.
-한서 남궁억 선생이 '무궁화재배사건'으로 70년이 넘은 나이에 옥고를 치르고 난 후유증으로 1939.4.5. 별세(=서세)했을 때, 일제에 의한 강압적 통치가 극에 달하여 신문사의 강제폐간 조치를 앞두고 있었던 국내 신문들은 별세 소식을 단신으로 다루었을 뿐 선생의 삶에 대해 제대로 된 기사를 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재미 한인단체가 발간한 신한민보가 선생의 별세와 삶을 알리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옛 표기와 일부 옛 단어는 현재의 표기와 단어로 수정함).
○ 남궁억 선생의 별세를 슬퍼함
■ 무궁화도 슬퍼합니다.
-만년에 홍천 모곡학원을 경영하시며 그 동산에 무궁화 천 주를 심으셨(다). -무궁화가 또한 슬퍼합니다. 오호라 적막한 이 강산에 다시 무궁화를 심을 자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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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무궁화 창가의 작사와 교육 그리고 무궁화 재배와 보급을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한 한서 남궁억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는 기사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두 얼굴의 무궁화』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서 남궁억 선생께서 속으로 비밀결사 운동(?)을 위해 겉으로 일제와 협력한 것이 무궁화 창가와 무궁화 보급인데, 저 신한민보의 기사는 일제와의 협력 행위를 찬양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두 얼굴의 무궁화』의 이러한 인식은 재판기록을 날조하고, 한서 남궁억 선생을 사회주의자로 둔갑시키고 그리고 당시 신문기사의 내용을 왜곡하고 조작함으로써 이루어 낸 결과물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의 마지막까지 헌신한 분을 상대로 이런 일을 벌인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런 일을 벌이는 그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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