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이질풀(痢疾草)

林 山 2020. 12. 21. 09:28

2020년 9월 6일 주말을 맞아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 태백시 소도동과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경계에 솟아 있는 함백산(咸白山, 1,573m)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만항재를 지나 함백산 깔딱고개 초입에 이르렀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제법 강하게 불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고, 우비를 입고 함백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 주변에는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야생화는 비에 흠뻑 젖은 둥근이질풀 꽃이었다. 비에 젖은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애처로와 보였다.   

 

예쁜 꽃에 이질풀(痢疾草)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질(痢疾)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이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질풀은 유사종이 20여종이나 될 정도로 많아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둥근이질풀이나 꽃쥐손이풀 같은 경우는 특징이 뚜렷해서 구별하기가 비교적 쉬운 편이다. 하지만 크기나 모양이 비슷한 이질풀과 쥐손이풀은 야생화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조차도 구별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대략 꽃잎을 보면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있다. 꽃잎에 핏줄 같은 선명한 맥이 3~4개인 것은 쥐손이풀, 5~6개인 것은 이질풀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이파리나 꽃받침, 줄기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비교해야 한다. 

 

이질풀(괴산 대야산, 2006. 8. 6)

이질풀은 쥐손이풀목 쥐손이풀과 쥐손이풀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저레니엄 툰베르기이 지볼트 & 추카리니(Geranium thunbergii Siebold & Zucc.)이다. 학명 저레니엄(Geranium)은 그리스어로 학을 뜻하는 게라노스(Geranos)에서 유래했는데, 열매의 모양이 학의 부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질풀의 영어명은 툰베리스 저레니엄(Thunberg's geranium)이다. 제라늄은 일본식 발음이다. 중국명은 망니우얼먀오(牻牛儿苗), 니보얼라오관차오(尼泊尔老鹳草) 또는 라오관차오(老鹳草), 펀홍화(粉红花)이다. 일본명은 겐노쇼우코(ゲンノショウコ, 現の証拠)이다. 꽃말은 '새색시, 귀감'이다.

 

둥근이질풀 (태백 함백산, 2015. 8. 10)

 

이질풀을 광지풀, 현초(玄草), 현지초(玄之草)라고도 한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이질풀의 이명이 방우아묘(牻牛儿苗), 방우아초(牻牛儿草)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는 이질풀의 중국명을 한자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이질풀의 분포 지역은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타이완, 일본 등 아시아이다. 한국에는 제주, 전남, 경남, 경북, 강원, 경기, 황해도, 함경남도 등지의 산지에 야생한다.

 

둥근이질풀(한라산 윗세오름, 2006. 8. 15)

이질풀의 뿌리는 여러 개로 갈라진다.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또는 기어가면서 길이 50cm 정도 뻗는다. 줄기에는 위로 퍼진 털이 있고, 곳곳에 마디가 있다. 이질풀은 줄기의 털이 옆을 향해서 나고, 쥐손이풀은 줄기의 털이 아래를 향한다. 잎은 마주나기하며 엽병이 있고, 손바닥 모양으로 3~5번 갈라진다. 양면에는 흔히 흑색 무늬가 있고, 표면에 복모가 있다. 뒷면 맥 위에는 비스듬히 선 곱슬털이 있다. 열편은 거꿀달걀모양 둔두이고, 얕게 3개로 갈라진다. 윗부분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탁엽은 서로 떨어진다. 이질풀은 잎의 끝쪽에만 톱니가 있고, 쥐손이풀은 전체적으로 톱니가 있다. 

 

꽃은 8~9월에 핀다. 꽃의 지름은 1~1.5cm로서 연한 홍색, 홍자색 또는 백색이다. 화경에서 2개의 꽃자루가 갈라져 각 1개의 꽃이 달린다. 꽃자루와 꽃받침에 짧은 털과 더불어 퍼진 긴 샘털이 있다. 씨방에는 털이 있다. 암술머리는 길이 2mm 정도이다. 열매는 삭과로 5개로 갈라져서 위로 말린다. 삭과에는 5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열매 껍질이 용수철같이 말리는 힘으로 씨를 멀리 퍼뜨릴 수 있다. 

 

둥근이질풀(태백 함백산, 2020. 9. 6)

이질풀의 유사종에는 둥근이질풀(Korean cranesbill, 학명 Geranium koreanum Kom.), 흰이질풀(학명 Geranium thunbergii f. pallidum Nakai), 흰꽃이질풀(학명 Geranium thunbergii f. albiflorum T.H.Chung), 흰둥근이질풀(학명 Geranium koreanum f. albidum Kom.), 털둥근이질풀(학명 Geranium koreanum var. hirsutum Nakai), 사국이질풀(Shikoku marbled cranebill, 학명 Geranium shikokianum Matsum.), 선이질풀(학명 Geranium krameri Franch. & Sav.), 태백이질풀(학명 Geranium taebaekensis S.J.Park & Y.S.Kim), 참이질풀(학명 Geranium koraiense Kom) 등이 있다. 

 

둥근이질풀은 고산성 식물이며, 키는 1m 정도이다. 꽃이 커서 왕이질풀이라고도 한다. 꽃의 지름이 1.8~2cm로서 연한 홍색이다. 원줄기 끝에 3~5개의 꽃이 산형으로 달리며, 한군데에 3개 또는 1개씩 달리는 것도 있다. 흰이질풀은 흰색 꽃이 피는 이질풀이다. 키가 1m 정도이고, 윗부분의 잎 사이에 긴 화경을 내어 그 끝에 1~3송이의 흰색 꽃이 핀다. 흰꽃이질풀은 키가 1m 정도이다. 꽃은 윗부분의 잎 사이에 긴 꽃대를 내어 그 끝에 1~3송이씩 달린다. 흰둥근이질풀은 흰색 꽃이 피는 둥근이질풀이다. 털둥근이질풀은 원줄기와 꽃자루에 퍼진 털이 있는 둥근이질풀이다. 경북과 경기도 및 강원도에서 자란다. 사국이질풀은 한라산 고지대에서 자란다. 사국은 일본의 시고쿠(四國)를 말한다. 키는 30~50cm이고, 줄기에 개출모(開出毛)가 있다. 화경끝에 꽃자루가 있는 적자색 꽃이 2개씩 달리고, 지름은 2cm 정도이다. 선이질풀은 특히 남한산성에 많이 자란다. 키는 60~80cm, 꽃은 홍자색이다. 긴 꽃대끝에 2개의 꽃이 달리고, 밑을 향한 복모가 있다. 꽃부리는 지름 약 2~2.5cm이다. 태백이질풀은 강원도 태백산에 많이 자생한다. 키는 40~60cm이고, 밝은 분홍색 꽃이 2개가 달린다. 꽃잎은 길이 1.8~2cm, 폭 8.9~9.0mm로 끝부분이 W형이다. 참이질풀은 한국 특산종으로 경기, 평남 등지에 분포한다. 키는 60cm 정도이며, 연분홍색 꽃이 줄기 끝에 취산화서(聚繖花序)로 핀다.   

 

이질풀의 유사종에는 또 쥐손이풀(학명 Geranium sibiricum L.), 산쥐손이(Dahurian cranesbill, 학명 Geranium dahuricum DC), 부전쥐손이(Glabrous cranesbill, 학명 Geranium eriostemon var. glabrescens Nakai ex H. Hara), 흰털쥐손이(학명 Geranium eriostemon Fisher ex DC.), 꽃쥐손이(학명 Geranium eriostemon var. megalanthum), 털쥐손이(학명 Geranium eriostemon), 섬쥐손이(Hallasan cranesbill, 학명 Geranium shikokianum var. quelpartense Nakai), 세잎쥐손이(Wilford's cranesbill, 학명 Geranium wilfordii Maxim.), 큰세잎쥐손이(학명 Geranium knuthii Nakai), 갈미쥐손이(학명 Geranium lasiocaulon Nakai), 미국쥐손이(Carolina geranium , アメリカフウロ, 학명 Geranium carolinianum L.) 등이 있다. 

 

쥐손이풀은 키가 30~80cm 정도이고, 줄기는 가늘며 눕거나 비스듬히 자라고 엽병과 더불어 거슬러 난 털이 있다. 꽃은 지름 1cm로서 5개이고, 연한 홍색 또는 홍자색이다. 화경은 줄기나 가지 윗부분 잎겨드랑이에서 나오고 끝에 꽃이 한 개씩 달리지만, 밑부분에서는 2개의 꽃자루로 갈라져서 각각 1개의 꽃이 달린다. 산쥐손이는 키가 60~90cm 정도이다. 줄기 전체에 보드라운 털이 나 있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작은 꽃자루에 한 송이씩 붉은빛을 띤 자주색 꽃 두 송이가 달린다. 꽃의 지름은 1.8cm 정도이다. 부전쥐손이는 함경남도 부전고원 및 고산지대에 자란다. 키는 30~50cm, 줄기 전체에 역모(逆毛)가 밀생한다. 꽃의 지름은 2.5~3cm로서 원줄기 끝에 10송이씩 우산모양꽃차례로 달린다. 꽃자루는 곧으며 퍼진 샘털이 있다. 흰털쥐손이는 잎 뒷면에 백색 샘털이 밀생한다. 꽃쥐손이는 키가 30~50cm이고,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 꽃의 지름이 3.5~4cm이다. 털쥐손이는 고산지대에서 자라고, 키는 45~60cm 정도이다. 꽃은 홍자색이며, 지름은 2.5cm이다. 털쥐손이는 꽃쥐손이로 통합되었다. 섬쥐손이는 제주도 한라산 꼭대기 근처에 자란다. 키는 30cm 정도이며, 기본종에 비해 식물체가 작고 퍼진 털이 밀생하며, 잎 뒷면에 견모가 없는 것이 다르다. 화경 끝에 꽃자루가 있는 적자색 꽃이 2개씩 달리고, 지름은 2cm 정도이다. 세잎쥐손이는 키가 40~80cm이며, 잎이 밑부분의 것 이외에는 3개로 깊게 갈라진다. 엽병과 화경에는 뒤로 꼬부라진 털이 있다. 꽃은 지름 1~1.5cm이며, 연한 홍색이다. 줄기 끝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긴 화경 끝에 1~2송이씩 달린다. 큰세잎쥐손이는 키가 60cm 정도이다. 꽃잎은 거꿀달걀모양이며 길이 1.2~1.3cm로 밑가장자리에 돌기가 있다. 꽃은 자주색이며 맥이 보다 짙은 색이다. 갈미쥐손이는 함경북도 관모봉, 설령(雪嶺)에 자생한다. 일본산 Geranium yesoense var. nipponicum Nakai에 비해 줄기 전체에 걸쳐 곧은 흰색의 긴 털이 있다. 미국쥐손이는 남북아메리카,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키는 20~40cm 정도이다. 줄기는 기부에서 가지를 많이 치고, 곧게 선다. 연모가 나고 간혹 회색의 샘털이 있다. 꽃은 담홍색 또는 흰색으로 우산모양꽃차례를 이룬다. 꽃의 지름은 0.8~1.3cm이고, 꽃대에 2개씩.달린다. 

 

둥근이질풀(태백 함백산, 2020. 9. 6)

이질풀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차로도 이용한다. 초여름 꽃이 피어 있을 때 채취해 햇빛에 말린다. 잘게 썬 것에 뜨거운 물을 부어 건강차로 마시거나 달여서 마신다. 충주 지방에서는 이질풀을 나물이나 차로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질풀은 꽃이 예뻐서 화단에 심어도 좋고, 화분에 심어 분재로 감상할 수 있다. 담밑이나 교목 아래에 지피식물로 이용해도 좋다. 

 

쥐손이풀 및 이질풀의 동속근연식물(同屬近緣植物)의 과실이 달린 전초를 본초명 노관초(老鹳草)라고 한다. 여름에서 가을철 과실이 익기 전 지상부 또는 뿌리째 뽑아서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다. 노관초는 활혈거풍(活血祛風), 청열해독(淸熱解毒)의 효능이 있어 류머티즘에 의한 동통(疼痛), 경련, 마비, 옹저(癰疽, 화농성 종양), 타박상, 장염, 이질 등을 치료할 수 있다. 달여서 또는 술에 담가서 복용한다. 전액(煎液)을 졸여서 고제(膏劑)로 하여 복용하기도 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둥근이질풀(지리산 노고단, 2021. 8. 13)

민간에서는 이질이나 복통, 변비, 대하증, 방광염, 피부염, 종창, 위궤양 등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한다. 양계농가에서 병아리 때부터 이질풀을 달인 물을 먹이면 닭의 백리병(白痢病) 등 위장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질풀을 5대 영약(靈藥)의 하나로 여긴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이질에 특히 잘 걸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2021. 8. 16. 최종 수정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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